대구 지하철 화재 참사의 희생자를 추모하고 유가족을 위로하는 인기가수 10팀의 콘서트가 오는 10일 오후 7시 대구 경북대학교 대운동장에서 열린다. 특히 이번 공연은 기업의 협찬이나 지원을 받지 않고 가수들이 자비를 들여하는 무료공연이며, 입장료를 안받는 대신 모금함을 통해 관객의 정성을 모아 수익금을 유가족에게 전달할 계획이라는 게 큰 특징이다.
'우리의 노래가 힘이 될 수 있다면'이란 제목으로 꾸미는 이번 콘서트에는 최초 제안자인 가수 신형원을 비롯, 안치환, 이승철과 부활, 박진영, god, 비, 별, 인순이, 설운도, 주현미 등 10팀의 신세대 및 중견 가수들이 고루 참여할 예정이다. 또한 2002 월드컵 개막식과 부산 아시안게임을 기획한 김관호 작가가 구성을 맡고 월드컵 플라자, 2002년 전국체전을 연출한 이준명 감독이 연출자로 나선다.
이번 공연은 크게 '천국에서 쓰는 편지'(신형원, 인순이, 비, 별) '어머니에게'(안치환, 주현미, 설운도) '희망의 싹을 틔우며'(박진영,이승철과 부활, god) 등 3부로 나뉘어 진행될 예정이다. 가수들은 사회자 없이 릴레이로 공연하며 희생자들이 천국에서 보낸 것으로 가정한 영상편지, 대구 지하철 화재 참사 관련 테마영상, 희망을 담은 촛불의식 등 다양한 추모행사를 마련한다.
이번 행사를 맨처음 제안한'터'와 '개똥벌레'의 가수 신형원씨를 만나 공연준비와 홍보를 위해 바쁘게 움직이고 있는 신형원씨를 7일 만나 이번 행사를 준비하게 된 계기와 그의 음악세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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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씨는 이번 공연을 준비하게 된 계기를 "내가 딸이 하나 있는데 '그 애가 저 안에 있었다면'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유가족을 위해서 뭔가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시작했다고 밝혔다.
신씨는 이번 행사가 모두의 자연스런 동참으로 쉽게 성사됐다고 밝혔다.
"친구인 가수 인순이에게 이번 참사를 위로하는 공연을 해야 하지 않겠냐고 전화를 했고 인순이가 '당연히 해야지'라고 말했다. 내가 '차비도 본인이 부담해야 하고 돈도 우리가 내야 할 것'이라고 했는데, 인순이가 역시 '당연히 그래야지'라고 말했다. 그리고 박진영씨도 연락을 했더니 '소속 가수들도 데리고 가겠다'고 했고 안치완씨도 그렇고 이구동성으로 참여의사를 밝혀 일이 성사됐다."
신씨는 "어떤 분이 '이런 정도 가수들이면 기업으로부터 협찬금을 엄청 따낼 수 있다'고 조언해 주기도 했으나 최대한 자원봉사 개념의 순수한 추모행사로 이끌려고 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신씨는 자신이 '의식 있는 가수'로 대중에게 인식되는 것에 대해 "어려서부터 정의롭지 못한 것을 못 참는 성격이었는데 아버지의 영향인 것 같다. 아버지가 "불의와 타협하지 못해서 좀 더 좋은 자리로 가지 못하고 머물렀노라"고 하시는 말씀을 들었는데 그 영향이 있었던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신씨는 또 음악인생을 이야기하면서 지난 93년 김영삼 대통령의 취임 축하 음악공연때 출연섭외를 받고도 '3당합당'이라는 정치야합을 용납할 수 없어 불참했던 사연과, 방송사측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고집스레'서울에서 평양까지'를 처음 방송에서 소개한 일 등 그동안 일반인들이 모르던 비사들도 밝혔다. 신씨는 이밖에 전통시절 자신의 첫 히트곡 '불씨'에 숨겨진 시대적 은유에 대해 말하기도 했다.
지난달 25일 노무현 대통령 취임식때 참석해 노래를 불렀던 신씨는 노대통령에게 "우리 주위에 보면 '관행'이라는 이유로 분명히 잘못되고 있는데 그냥 가는 것이 있다. 불합리한 것이 너무나 많다. 그런 것들을 고쳐 주셨으면 한다. 이번 대구참사 때도 사고후 물청소를 한 분들은 왜 그렇게 하면 안 되는지를 몰랐다고 한다. 사람의 생명과 관련된 일을 다루는 부분만이라도 좀 신경을 써야 한다"고 주문하기도 했다.
다음은 신형원씨와의 인터뷰 전문.
***모두들 '당연히 해야지'라고 말했다**
프레시안 : 이번 추모 공연을 주도하게 된 계기는?
신형원 : 이번 사건을 보고 모든 국민이 똑같이 슬픔을 느꼈을 것이다. 이번 사건을 보면서 '내가 저 안에 있었다면'이라는 생각과 내게 딸이 하나 있는데 '그 애가 저 안에 있었다면'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유가족을 위해서 뭔가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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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시안 : 이번 공연의 의미에 대해 설명한다면?
신형원 : 우리가 가수니까 우리 노래가 아픔을 겪은 대구시민과 유가족, 피해자들에게 아주 작은 위로와 희망이라도 되길 바란다.
프레시안 : 박진영, 설운도씨 등 다양한 장르의 가수들이 같이 하게 된 인연은?
신형원 : 친구인 가수 인순이에게 이번 참사를 위로하는 공연을 해야 하지 않겠냐고 전화를 했고 인순이가 "당연히 해야지"라고 말했다. 내가 "차비도 본인이 부담해야 하고 돈도 우리가 내야 할 것"이라고 했더니, 인순이가 역시 "당연히 그래야지"라고 말했다. 그리고 박진영씨에게도 연락을 했더니 "소속가수들도 데리고 가겠다"고 했고, 안치완씨도 그렇고 이구동성으로 참여의사를 밝혀 일이 성사됐다.
좀 더 장르에 대해 이야기를 하자면 이전에 이런 행사를 시민단체들이 하면 꼭 신형원, 안치완, 노찾사 같이 늘 출연하는 사람만 나오고 오는 사람만 오는 식이었데, 이번에는 각 장르별로 모여서 정말 시민들이 다 와서 위로를 받을 수 있도록 했다.
프레시안 : 가수들이 자비를 내고 기자재도 무료협조로 공연을 하는 것으로 아는데 스폰서도 없이 하는 데 따른 어려움은...
신형원 : 어떤 분이 "이런 정도 가수들이면 기업으로부터 협찬금을 엄청 따낼 수 있다"고 조언해 주기도 했다. 하지만 최대한 자원봉사 개념의 순수한 추모행사로 이끌려고 한다. 공연을 하려면 조명과 음향을 위한 발전차등 여러 가지 비용이 들지만 '이승철과 부활'이 음향을 해 줄 사람을 알아봐 주고 의자는 또 어디서 도움을 받고 하는 식이다. 그래도 의자를 가져갈 트럭 운송비는 또 돈이 들고 하는 식이다. 사실 가수는 매니저하고 둘이 가면 되지만 무엇보다 전날부터 일을 해야 하고 무대를 미리 만들어야 할 스텝 분들의 봉사와 고생이 심하다. 그런 부분을 맡은 분들이 너무나 고맙다.
***"불의와 타협 안한 아버님 영향 커"**
프레시안 : 신형원씨라면 '의식 있는 가수'로 인식하는 사람들이 많다. 어떻게 그렇게 됐나?
신형원 : '터'나 '서울에서 평양까지' 같은 노래를 부른 것이 계기가 된 것 같다. 내 노래를 찾는 곳이 다양해, '세상에 이런 부분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모르는 곳이 많았다. 그곳에서 함께 분노하고 연대하고 해결해 나가며 자연스럽게 그런 이미지가 주어진 것 같다.
프레시안 : '의식 있는 가수' 라는 타이틀의 부담은 없는지?
신형원 : 자연스럽게 거기에 순응하는 편이다. 내가 비춰지는 그대로 일 것이고 어떻게 비춰지든 내 모습일 것이다. 어려서부터 정의롭지 못한 것을 못 참는 성격이었는데 아버지의 영향인 것 같다. 아버지가 "불의와 타협하지 못해서 좀 더 좋은 자리로 가지 못하고 머물렀노라"고 하시는 말씀을 들었는데 그 영향이 있었던 것 같다.
프레시안 : 신형원씨는 그런 곡을 발표해도 대중의 거부감이 적은 것 같은데, 예술의 참여와 순수문제는 어떻게 보는가?
신형원 : 내 노래 중 '서울에서 평양까지'를 예로 들자. 이 노래는 원래 모이는 사람들만 모여서 공유하는 노래였다. 특별히 과격하거나 공격적이지 않았는데도 그랬다. 그래서 다시 불러보기로 하고 '분단세력 몰아내고'라는 가사만 아직은 대중이 받아들이기 힘들 것 같아 '우리의 꿈 우리의 희망'으로 고쳤다.
그런데 '열린 음악회'에서 이 노래를 부른다고 하니 처음에는 그렇게 하라고 했다가 나중에 담당자 한 분이 어디서 무슨 이야기를 듣고 오셨는지 "이 노래가 뭐냐?"고 했다. 하지만 결국은 내가 그 쪽을 설득해서 불렀다. 이후 라디오에도 이 노래가 자연스럽게 나오게 됐다. 학교 대동제 등에 초대를 받아 갈 때도 안타까운 것이 운동권, 제도권을 너무 나눠서 '권별'로 한다는 것이다. 무대 위에서는 안 나눴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그리고 더 큰 것은 우리 학생들이나 운동하는 사람들은 더 많은 것을 수용하고 뭔가 달라야 큰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공연할 때도 그런 멘트를 자주한다.
프레시안 : 첫 히트곡이 아직도 사랑받는 발라드 곡인 사랑노래 '불씨'인데...
신형원 : 82년은 진짜 노랫말대로 "아무리 우겨 봐도 어쩔 수 없는", 걸핏하면 잡혀가는 살벌한 시대였다. 표현을 직접적으로 할 수가 없었다. '불씨'는 사실 젊은이들의 이상과 꿈을 은유한 것이었다. 노래의 속뜻은 '불씨'조차 피울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당시 대학생들이 그렇게 좋아들 했던 것 같다. 물론 일반대중에게도 그 자체로 좋은 이별노래였다. 특히 군인들이 고무신 거꾸로 신은 애인을 생각하며 많이 통곡했다고 한다.(웃음)
***고등학교 땐 락을 좋아 했다**
프레시안 : 가수가 된 인연은?
신형원 : 사실 통기타 가수가 아니라 고등학교 때는 락을 좋아 했다. 고1부터 신중현씨의 '아름다운 강산'을 기타로 치면서 따라 불렀고 고등학교만 졸업하면 '기타들고 나서리라'고 했는데 집이 너무 엄해서 '딴따라'는 절대로 안 된다고 했다. 그래서 81년도에 시집을 갔다.(웃음) 82년에 우연히 옴니버스 앨범에 기념으로 두곡을 넣었는데, 두 곡이 방송활동도 없이 1,2위를 동시에 하는 바람에 가수가 됐다.
프레시안 : 이번에 노무현 대통령 취임식 공연에 선 소감은?
신형원 : 솔직하게 말하면 어떤 일에 감정기복이 심하게 있는 편이 아니다. 행사가 끝난 후에 사람들이 자꾸 소감을 물어 큰 행사라고 느꼈다. 이전에도 민주당 행사에 초청가수로 간적이 있어서 그런 행사의 연장선이라고 느꼈다. 처음 '정치행사'에 나간 것은 90년대 초에 체조경기장에서 열린 민주당 행사였다. '터'를 그때 부른 것이 인연이 됐다.
프레시안 : 김영삼 대통령 취임직후 청와대에서 열렸던 음악회에는 섭외를 거절했다고 하는데?
신형원 : 어떻게 했건 3당합당으로 대통령이 된 것은 정도가 아니라고 봤다. 가수 7팀이 초대를 받아 나갔고 누가 캐스팅이 됐는지 서로 부러워하고 했는데, 나는 나가는 것이 솔직히 힘이 들었다. 다른 당 행사에 자주 나간 입장이라 당 자꾸 바꾸는 의원처럼 느껴져서 나가기가 힘들었다. 의원들은 참 쉽게 하더라.(웃음)
방송국 높은 곳에서도 새벽1시까지 전화가 와서 나오라고 했는데 안 갔다. 가수생활 그대로 접는 줄 알고 고민도 많이 했다. 가수는 그런 쪽 섭외나 공연요청을 안 들으면 힘들어지는 것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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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주제가는 역시 '개똥벌레'**
프레시안 : 자신의 '주제가'라고 할 수 있는 곡은?
신형원 : 내 주제가는 역시 '개똥벌레'다. 우리는 모두를 노랫말처럼 "아무리 우겨 봐도 어쩔 수 없는" 때가 있다. 가수생활 중에 벽에 부닥칠 때가 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하는 식으로 여기까지 왔다. 매니지먼트 등 여러 관행에 치여서 힘이 들었다. 타협하면 활동이 쉽게 될수도 있겠지만 외로울 때도 많았다. 진짜로 울다가 잠이 든 적도 있다. (웃음) 그래서 내 노래라고 생각하다.
프레시안 : 주목하는 후배는?
신형원 : 김범수씨가 노래를 참 잘 부른다. 감정 표현을 참 잘한다. 그리고 박진영은 천재인 것 같다. 앞으로는 그 천재성을 청소년들이나 공익을 위한 부분에 일정 부분 할애를 했으면 한다.
프레시안 : 자신의 숨은 명곡을 하나 소개한다면?
신형원 : '쓸쓸한 사람'이라는 곡이다. 4집에 있는데 당시가 LP에서 CD로 넘어가는 시절이라 구하기 힘들다. 2000년에 원곡에 가깝게 재녹음을 해서 앨범에 실었다.
***'관행'이라는 이유로 분명히 잘못되고 있는데 그냥 가는 것이 있다**
프레시안 : 노무현 대통령에게 기대하는 것은?
신형원 : 우리 주위에 보면 '관행'이라는 이유로 분명히 잘못되고 있는데 그냥 가는 것이 있다. 불합리한 것이 너무나 많다. 그런 것들을 고쳐 주셨으면 한다. 이번 대구참사 때도 사고후 물청소를 한 분들은 왜 그렇게 하면 안 되는지를 몰랐다고 한다. 사람의 생명과 관련된 일을 다루는 부분만이라도 좀 신경을 써야 한다.
프레시안 : 가수로 팬들에게 부탁이 있다면?
신형원 : 저를 좋아하는 분들은 대부분 조용하고 나서지 않는 분들이라 외로울 때가 있다. 가끔은 나서서 힘도 주시길 바란다.
프레시안 : 끝으로 할 말이 있다면?
신형원 : 지난 3일에도 대구에 다녀왔다. 희생자 한분 한분의 사연이 너무나 슬프고 가슴이 아팠다. 그분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아야 한다. 그 분들의 영혼이 영원히 사는 길은 다시는 이런 사건이 일어나지 않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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