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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현대차에 속았나…대선자금 수사 '부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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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현대차에 속았나…대선자금 수사 '부실'

당시 정몽구 회장 불입건, 명백한 오류로 확인

2002년 대선을 앞둔 시점. 한나당 측 서정우 변호사는 고교 후배인 현대차 최한영 부사장(현 상용부문 사장)에게 '대선자금 지원'을 부탁했다. 최 부사장은 이를 김동진 부회장에게 보고했고, 김 부회장은 이상기 당시 현대캐피탈 사장에게 자금 마련을 지시했다.

이 사장은 현대캐피탈 사옥 지하 4층에 보관하고 있던 현금 100억 원을 80개의 상자에 나눠 담은 뒤 40상자씩 스타렉스 승합차에 실어 양재동 청계산 주차장으로 보냈고, 주차장에서 기다리던 최 부사장이 승합차를 몰고 경부고속도로 만남의 광장으로 가서 서 변호사에게 차 키를 건네줬다. 이른바 '차떼기' 방식.

당시 100억 원의 출처에 대해서 80억 원은 고 정주영 명예회장이 개인적으로 관리하던 돈으로 타계 후 정몽구 회장이 넘겨 받아 관리하던 자금이었고, 나머지 20억 원은 현대캐피탈이 자동차 할부 관련 공증 수수료 일부를 모아 조성한 비자금인 것으로 결론났었다.

여기까지가 2003년 말 발표된 검찰의 현대차그룹 관련 대선자금 수사 결과이다. 검찰은 당시 정몽구 회장이 대선자금 제공에 개입했다는 증거를 찾을 수 없다는 이유로 정 회장에 대해 입건은 커녕 소환도 하지 않았고, 김동진 부회장에게만 책임을 물어 김 부회장을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 상의 횡령,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기소했다. 김 부회장은 징역2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 받았다.

검찰, 현대차에 속았나. '대선자금 수사' 부실·축소 논란
▲ ⓒ연합뉴스

그러나 18일 현대차가 지난 대선을 앞두고 계열사인 글로비스 금고에서 70억 원을 빼내 한나라당에 제공한 것으로 알려지며 '대선자금 수사' 부실 논란이 일고 있다.

가장 큰 의문점은 '글로비스 70억 원'이 '현대캐피탈 100억 원'과 같은 돈인가이다. '현대차 비자금' 제보자에 따르면 글로비스의 옛 금고에서 70억 원을 35억 원 씩 인출해 스타렉스 승합차에 실어 만남의 광장에서 차 열쇠를 건네는 방식으로 자금을 제공한 것으로 알려졌다.

2003년 검찰의 발표와 비교해 보면 '스타렉스, 만남의 광장' 부분만 같고 현금의 출처와 액수가 다른 것이다. 글로비스 70억 원에 현대캐피탈 30억 원을 보태 100억 원을 제공했다고도 볼 수 있지만, 70억 원이 전달된 구체적 정황까지 공개된 것을 볼 때 현대차 측이 100억 원만 자백하고 70억 원은 숨기고 있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그렇다면 현대차가 한나라당에 제공한 정치자금의 규모는 170억 원으로 늘어난다.

또한 대선을 앞둔 2002년 9월부터 12월 사이 글로비스 금고에서 매달 20억∼50억원의 뭉칫돈이 빠져나가는 등 2002년 한해 동안 246억 원이 출금됐던 것으로 확인된 점도 이와 같은 의혹을 뒷받침한다. 한나라당에 100억 원이 제공됐는데, 노무현 후보 캠프에는 6억6000만 원만 제공됐다는 수사 결과도 석연치 않은 점 중 하나다.

글로비스 비자금 창고 숨기려 검찰에 허위진술?

이에 대해 검찰은 "현대차가 한나라당에 제공한 100억 원 중에 70억 원의 글로비스 자금이 포함돼 있었다"는 입장이다. 검찰 관계자는 "이 부분이 이번에 추가로 밝혀져 정 회장에게 업무상 횡령 혐의를 추가했다"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실 수사'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검찰의 설명대로라면 대선자금 수사 당시 현대차 측은 글로비스의 '비자금 금고'를 숨기기 위해 돈의 출처에 대해 '현대 캐피탈 지하에 보관하던 돈'이라는 허위 진술을 했고, 검찰이 이를 곧이 곧대로 믿은 셈이기 때문이다.

현대차 측이 글로비스 사무실 벽 뒤에 '비밀 금고'를 만든 시점이 대선자금 수사가 한창이던 2003년 9월~10월 사이인 점을 감안할 때 현대차가 '비자금 창고'를 숨기기 위해 자금 출처를 '현대캐피탈'로 둘러댔다는 점이 설명된다.

재벌 총수 봐주기 논란도 피할 수 없을 듯

검찰의 잘못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정치자금법 위반의 공소시효가 3년이어서 이번에 정 회장을 정치자금법으로 처벌할 수 없다는 입장이지만, 검찰은 이미 2003년 정 회장에 대해서 소환 조사 한 번 없이 '불입건' 조치했었다. 그물 안에 들어온 물고기를 풀어줬던 것이다.

또한 당시 검찰은 한나라당에 건네진 100억 원 중 80억 원에 대해 정몽구 회장이 물려 받은 정주영 회장의 '개인 돈'으로 결론내리면서도 증여세 포탈 등의 혐의를 적용하지 않아 논란을 일으켰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자금의 출처에 대한 현대차그룹 전면 수사가 부담스러워 대충 결론 내린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그러다가 이제와서 업무상 횡령 혐의로 기소한 것은 명백한 '축소 수사'의 증거라는 것이다.

검찰은 "정치권의 요구에 의해 기업들이 어쩔 수없이 불법 자금을 제공한 측면이 크고, 이런 정당의 불법적인 관행을 철폐하는데 수사 초점을 맞췄기 때문에 기업인들에게는 최대한 선처를 했다"고 해명했었다.

그러나 당시 '주인은 놔두고 마름만 처벌'한 검찰의 처분이 오류였음이 이번에 명백하게 드러난 것이다. 현대차 김동진 부회장은 "회장님께 보고 드리지 않았고 독자적으로 판단해 자금을 집행했다"고 주장했었으나 결국 정 회장 대신 죄를 뒤집어 쓴 셈이다.

당시의 '마름만 처벌'은 현대차뿐만이 아니었다. 삼성그룹도 당시 불법대선자금으로 336억 원을 제공했지만, "이건희 회장의 개인 돈이며 이학수 부회장이 보고 없이 전적으로 집행했다"고 결론 내려지며 이 부회장만 처벌됐다. 수백억 원의 불법대선자금을 제공한 LG그룹도 총수는 제외된 채 강유식 당시 부회장만 처벌을 받았다.

하지만 수백억 원의 자금, 그것도 '총수의 개인재산'이라는 자금이 정치권에 제공되는데 총수와의 협의를 거치지 않았다는 점은 일반적으로 쉽게 납득되지 않는 부분이다. 이 부회장 재판 당시 재판부가 "회장 개인 재산이라도 몇 천만 원도 아니고 300억 원이 넘는 돈을 보고하지 않고 써도 되느냐"고 의문을 표시할 정도였다.

삼성이나 LG의 경우 이번 일과는 무관하지만, 현대차그룹의 경우만 놓고 볼 때 결국 검찰의 대선자금 수사가 정치권에만 초점을 맞추고 경제인들에게 지나치게 관대해 기업 부정을 방조한 결과를 초래했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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