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권상 사장의 후임 사장이 누가 될지에 방송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는 가운데 방송개혁의 핵심과제 중 하나인 KBS 개혁에 관한 토론회에서 구체적인 신임사장 후보가 거론되고 KBS의 독립성 확보를 위해 사장선임 절차를 공모제로 하자는 방안도 나오는 등 다양한 의견이 쏟아졌다.
전국언론노조 KBS본부(위원장 김영삼)가 12일 주최한 'KBS 신임사장의 개혁과제 토론회'에서 토론자들은 상명하달식의 관료적 조직문화 개선과 보도에서의 '기계적 객관성' 탈피, 그리고 KBS2TV 정체성 확립 등이 신임 사장의 개혁과제가 돼야 한다는 데 의견일치를 보았으나 사장 인선방법과 KBS 내부개혁 방법에 대해서는 서로 다른 시각차를 보였다.
<토론회 사진>
***"보도국 의사결정 구조를 민주화 하는 것이 시급"**
발제자로 나선 최영묵 성공회대 교수는 "조직내부의 일선 PD들이 가지고 있는 위기의식을 간부들도 알기 바란다"며 제왕적 사장 중심의 위계질서와 지나친 보수성을 중요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최 교수는 "KBS 내부개혁의 핵심은 과감한 인적청산과 관료적 조직문화의 개선으로 요약된다"며 "특히 '기계적 객관주의'라는 이상한 저널리즘이 지배하고 있는 보도국의 의사결정 구조를 민주화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최 교수는 "신임사장은 노조 등 내부단체와 원활한 의사소통과 협력 체제를 구축하고 저널리즘의 활성화, 조직투명성 강화 등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 교수는 또 시청자단체나 시민사회단체와의 연대를 강조하며 "시청자위원회 등 시청자참여제도도 그 취지를 잃고 덕담이나 나누는 '국내 최대복덕방'이라는 소리를 듣고 있는데 신임 사장은 좀 더 치열하고 생산적인 토론의 자리로 개선하기 바란다"고 요구했다.
최 교수와 함께 발제를 맡은 최민희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민언련) 사무총장은 "박권상 사장이 재임한 5년간은 수많은 개혁과제와 내·외부의 기대가 있었지만 박 사장의 보신주의와 권위주의로 인해 보도·시사교양프로가 '기계적 중립성'에 집착했고 선거나 미군 문제 보도에 있어서는 그나마도 잘 지켜지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이사회를 본부장급의 내부인사들로 구성해 사장을 견제해야"**
토론자로 참석한 김평호 단국대 교수는 "신임사장이 임명돼 개혁적인 방향으로 일을 할 수 있도록 견인하는 장치가 중요하"며 "인사청문회 도입을 생각해볼 수 있으며 사장 선임절차 개선을 중장기적 과제로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교수는 또 "현재 사장을 제외하고 모두 비상임으로 구성된 11명의 이사들이 참여하는 KBS 이사회는 제왕적 사장을 위한 요식행위"라며 "이사회를 본부장급 내부인사들로 구성해 사장을 견제해야 한다"고 말했다.
***"사장을 공모제로 뽑자"**
김기식 참여연대 사무처장은 "KBS 내 구성원이나 외부에서 생각하는 방송을 알고, 도덕적이며, 개혁에도 적극적인 모든 요건을 1백% 다 갖춘 사장을 찾기는 어려울 것이다. 공모제를 통해 사장을 뽑는다면 부적격자들은 알아서 자제를 할 것"이라며 사장공모제를 제안했다.
김 사무처장은 "이사회에 상근자는 사장만이 참여하는 기형적인 이사회 구조로 인해 사장 1인의 지배체제가 강화되고 있다"며 김평호 교수의 의견에 동의하고 "본부장들을 일반기업처럼 이사로 전환해서 이사회에 참석해 사장의 권한을 나눠 갖도록 해야 하부로의 권력분산이 가능하다"고 해결책을 제시했다.
김광범 언론노조 정책실장은 "KBS의 '국가기간 방송'이라는 주장이 밖에서는 냉소와 조소의 의미로 쓰이고 있다"며 "수신료라는 안정적 재원을 확보하고 있는 KBS가 왜 방송의 선도적인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는가"라고 반문했다. 그는 "이제는 기계적인 중립성에서 벗어나 MBC에 뺏긴 보도의 아젠다 설정을 가져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 실장은 이어 "수신료의 현실화 문제와 2TV의 문제는 노·사가 모두 대외적으로 언급을 회피하거나 소극적인 부분"이라며 "이 문제도 신임사장이 해결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방송을 아는 인물이 사장으로 와야"**
변희재 인터넷사이트 '서프라이즈' 운영자는 "KBS 사장은 늘 '지사풍'의 언론인이 와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잘못된 인선을 부른다"며 "지금 이 자리에서 언급되고 있는 언론인 정모씨나 강모 교수가 사장으로 선임이 된다고 해도 보도국과 교양프로만 챙기는 사장이 될 것이다. 언론인 중 방송을 아는 인물이 와서 현재 문제가 많은 오락프로 등도 개선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사진 변희재 서프라이즈 운영자.>
변 운영자는 또 "시청률에 대한 부담이 상대적으로 덜한 KBS는 이제 '공정성'이라는 말보다는 '실험성'을 강조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강택 KBS PD협회장은 "지금 내부구조의 의사결정이 아침에 사장과 본부장의 회의내용이 국장을 거쳐 CP와 부장에게 하달되면 오전 10시 전후로 일선 PD들에게 그 내용이 하달되는 방식"이라며 "봉건적 조직의 틀을 벗어나야 한다는 스스로의 의문이 적었다"고 인정했다.
그는 "노예규약이나 다름없는 '편성규약'등이 고쳐지고 하부로 권한분산을 이루지 못하면 사장으로 누가 와도 시청자나 직원들에게 '립 서비스'나 하다가 가고 말 것"이라고 주장했다.
다음은 토론회가 끝난 후 가진 김영삼 노조위원장과 이강택 PD협회장과의 인터뷰.
***김영삼 노조위원장 "공영방송이라면 공기가 돼야지 빈 그릇은 아니다"**
프레시안 : 신임 사장인선과 개혁이 KBS의 화두가 되고 있다.
김영삼 위원장 : 오늘 이야기가 나온 여러 가지 의견 중 ‘사장추천위원회’제도에 대해 관심을 갖고 고민하고 있다. 방송위원회 이사회 재청과 대통령의 임명을 이런 제도로 바꿀 수 있는지 그리고 강제할 수 있는 방안이 있는지 검토할 것이다.
프레시안 : 신임 사장이 해야 할 개혁과제는?
김 위원장 : 내부 개혁과제로는 제도적인 차원에서 권한의 대폭적인 이양을 통한 자율성 신장이 절실하다. 구체적으로는 공정방송위원회의 활성화와 격 높이기가 필요하다. 현재 부사장이 사측 대표인데 사장이 나오는 것으로 하고 노·사간에 핵심문제에 대한 진지한 의사소통이 있어야 한다. 편성규약도 내적 자율성 신장을 전제로 한 재개정이 필요하다. 그리고 한시적인 과제로 인적쇄신이 필요하다. 지금까지의 간부에 대한 평가가 필요한데 자의적인 잣대가 아닌 공정한 잣대로 평가해야 한다. 노조가 일정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프레시안 : 외적인 개혁과제로는 어떤 것이 있는가?
김 위원장 : 방송의 상업성으로 인한 악순환의 고리는 어떻게든 끊어져야 한다. 2TV의 정체성 문제도 논의가 있어야 한다. 전체적으로 공영성강화와 상업성 약화를 위해 신임사장이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프레시안 : 토론에서 방송정책 결정에서 KBS는 늘 끌려만 다닌다는 말도 나왔다.
김 위원장 : 우리도 나름대로 자신의 목소리를 낼 필요가 있다. 한 예로 디지털TV 전송방식은 가장 중요한 행위자가 KBS인데 자의적 목소리가 아니라면 자신의 솔직한 입장을 공개적으로 밝혀야 한다. 이제까지 너무나 소극적이었다.
프레시안 : 보도의 아젠다설정(의제설정)에서 밀린다는 이야기도 계속 나온다.
김 위원장 : 결국 '기계적 중립성'과 형평성의 문제다. 박권상 사장과 간부들의 입장은 '이만큼 했으면 과거보다 많이 나아졌다'는 것이다. 당파적 입장은 물론 없어야 한다. 그러나 맹점은 현재 한국사회 구도가 옳고 맞느냐는 것이다. 기계적 중립성은 현재 구도를 고착화할 위험도 있다. 일부 수구신문의 보도를 보라.
프레시안 : 중립성 문제도 계속 논란이 되고 있다.
김 위원장 : 언론이 입장이 없을 수는 없다. 구체적으로 주한 미군문제를 예로 보자. 터부시했다면 그리고 이제까지 잘못된 점이 있다면 다양한 소리를 전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언론이 잘못된 길을 걸어온 것은 사실이고 개선이 필요하다. 기계적 형평성이나 중립성의 가장 큰 문제는 입장 자체가 없다는 것이다. 그런 애매한 태도는 공적인 기제가 못된다. 공영방송이라면 공기가 돼야지 빈 그릇은 아니다. 언론이 다시 역사의 훼절이나 부역을 담당해서는 안 된다. 언론이 무가치한 태도를 보이는 것은 속이는 것이다. 거울이라도 방향과 크기에 따른 입장은 있어야 한다. KBS는 지금 지나친 자기검열로 그 역할을 멈추고 있는데 국민의 기대는 그보다는 크다고 본다.
프레시안 : 노조측이 생각하는 구체적인 사장 후보가 있나?
토론회에서 몇몇 이름이 거론됐지만 아직 구체적인 거명은 시기상조라고 생각한다.
***이강택 PD협회장 "방송의 편성규약은 노예문서 같은 규약"**
프레시안 : 현장에서 PD가 느끼는 KBS의 문제점은 무엇인가?
이강택 PD협회장 : 방송을 하는 조직이야말로 가장 자율성이 바탕이 돼야 하는데 박권상 사장은 이를 여러 가지 제도를 통해 옥죄었다.
프레시안 : 구체적인 문제점을 지적한다면?
이 협회장 : 방송의 편성규약이다. 프로그램에 대한 모든 권한이 사장에게 그리고 그의 위임을 받은 간부들에게만 있다. 우리는 프로그램으로 분쟁이 생겼을 때 자신의 의견을 전달만 할 수 있을 뿐이다. 노예문서 같은 규약이다.
프레시안 : 어떤 식으로 제작에 제약을 받고 있나?
이 협회장 : PD저널리즘은 발생하면 바로 대응하는 방식이 아니라 어떤 사안을 심도 깊게 구조를 다 보고나서 스탠스를 정해 방송을 해야 하다. 그런 식으로 하려고 하면 민감한 사안일 경우도 관철이 예전에는 됐는데 박 사장 재임 2기부터는 복수로 아이템을 올려 위에서 낙점을 받는다.
<사진 이강택 PD협회장>
프레시안 : 민감한 소재가 간부에게 거부당할 것을 예상하고 복수로 올린다는 것인가?
이 협회장 : 그렇다. 이전에는 취재·편집하고 나가는데 큰 문제가 없었다. 지금은 아이템이 자유롭지 못하니 장면의 컷이나 기술적인 편집의 완성도만 몰입하는 실정이다. 테크닉이 뛰어난 작품만 나온다.
프레시안 : 아젠다 설정에서 타 방송사에 밀리는 이유가 거기에 있는 것인가?
이 협회장 : 그렇다. 사회적 의제설정에서 텅 비게 된 것이다. 휴먼다큐멘터리만 양산한다. 안전한 분야이기 때문이다.
프레시안 : '추적 60분' 등의 프로가 약해진 원인도 그렇게 보는가? 제작비가 편당 2백만원이라는 말도 있다.
이 협회장 : 그렇게까지는 아니지만 물론 어느 정도 연동은 있다. 자본주의 사회니까 고사시키고 싶다면 사측은 돈이나 인력 그리고 편성시간을 이용하여 고사시킬 수 있다. 그러나 그런 것들은 부차적인 문제고 본질은 기획자체에 대한 간섭이다. 간부들은 마음에 안 들면 결정을 안 내린다. 피디는 방영날짜가 하루하루 쫓기고 있는데 '다른 것 좀 찾아보라'는 뉘앙스를 자꾸 준다. 민감한 것 가져가면 자꾸 압박만 받는다. 한번 그런 일을 겪으면 다시는 하고 싶지 않다. 현장에서 뛸 인력들이 그런 일을 경험하면 '내 몸이라도 편하자'는 생각에 다른 부사로 간다. 그런 것들로 인해 치명적으로 KBS의 PD저널리즘이 약화됐다. 결국 박 사장의 2기 3년간은 '약화의 기간'이었다.
프레시안 : 개인적으로 구체적인 경험이 있다면?
이 협회장 : 2000년 미국 대선에 맞춰서 MBC '미국'보다 먼저 준비한 5부작 다큐멘터리가 있었다. 결국은 매향리사건, 국방연구소문제를 다룬 것 등이 문제가 되자 위에서 연기를 시켰고 못하게 됐다. 결국 아이디어가 유출이 됐는지 MBC에서 그 프로가 만들어졌다. '미국'보다 훨씬 높은 차원의 시각에서 미국의 본질을 다룰 프로그램이었는데 참 아쉽다. 실제로 방송가에서는 KBS가 망설이거나 연기하는 동안에 그 아이디어를 다른 방송국이 빨리 제작해서 나가는 경우가 종종 있다.
프레시안 : 앞으로 신임 사장의 개혁에 바라는 점은?
이 PD : 시대정신과 자기양심 그리고 사회적인 합의에 입각해서 프로그램의 기획과 제작이 수행될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편성규약의 무효선언이 필요하다. 그리고 하달식이 아닌 자유로운 상향식의 의사결정 구조가 이뤄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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