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디타 학살 규탄', '자이툰 부대 철수' 등을 내걸고 벌어진 이날 '6.24 반전행동'의 참석자들은 "일본도, 이탈리아도, 영국도 이라크에서 철군하는데 왜 노무현 정부만 아무 말이 없느냐"고 입을 모았다.
"참전국들의 철군 러시 속에 노무현 정부만 침묵"
이태호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은 "우리 축구 대표팀은 월드컵이라는 '축구 전쟁'에서 16강 진출에 안타깝게 실패했지만 미국이 이라크에서 벌이고 있는 '침략 전쟁'에서 한국은 일찌감치 4강에 진입했다"고 말했다. 미국과 영국에 이어 파병 규모 3위를 '자랑하는' 한국의 위상을 꼬집는 발언이었다.
이태호 협동사무처장은 이어 "일본 자위대도 다음달 말까지 모두 철수하겠다고 하고 개전 당시 3대 참여국 중 하나였던 호주도 이미 거의 철수를 완료했다"며 "이탈리아, 폴란드, 영국도 철수 움직임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데 오직 노무현 정부만 침묵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김하영 다함께 운영위원도 "5.31 지방선거 결과가 준 메시지는 '대통령이 대통령 다워야 대통령이지'였다"며 "노무현 대통령은 집권 후 국민들에게 많은 배신감을 줬지만 이라크 파병은 그 가운데도 중요한 배신이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허영구 민주노총 부위원장은 "노무현 정부는 직접 군대를 보내 이라크의 민중 학살에 동조하고 있을 뿐 아니라 한미 FTA로 미국 침략전쟁의 물적 토대까지 마련해주려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날 반전 행동 참석자들은 결의문을 통해 "더 이상 이라크 점령과 자이툰 부대 주둔의 정치적 명분은 존재하지 않는다"며 "노무현 정부는 겨우 1000명 감축을 통해 비판을 무마하고 계속 주둔하려 한다"고 비판했다. 이들은 6월 정기국회에서 하루 빨리 자이툰 부대 철군 논의가 시작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월드컵에 몰두하는 동안 우리가 가담한 전쟁의 실상은 잊혀져"
최근 미국은 이라크에서 여러 가지로 막다른 골목으로 몰리고 있는 게 사실이다. 최근 이라크 주둔 미군의 양민학살 사건이 잇따라 드러나면서 미국 내에서도 반전 여론이 점점 높아지고 있어 부시 대통령을 곤혹스럽게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국내 언론들은 월드컵 열기에 묻혀 '꼭지점 댄스를 추고 있는 자이툰 부대'의 모습을 전할 뿐 이라크 주둔 미군이 저지른 '만행'의 실상을 제대도 보도하지 않았다.
이태호 협동사무처장은 "우리가 월드컵이라는 즐거운 전쟁에 몰두하고 있는 동안 우리가 가담하고 있는 끔찍한 전쟁의 실상은 잊혀가고 있었다"며 이라크 전쟁에 대한 관심을 호소했다.
김하영 다함께 운영위원도 "하디타 학살 사건은 중요한 진실을 얘기해주고 있다"며 "그 진실은 미국이 이라크에서, 그리고 미국 국내에서 막다른 골목에 내몰리고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하영 위원은 "하디타는 미군이 바그다드를 점령할 당시 가장 안정된 곳으로 자랑하던 곳"이라며 "그러나 점령이 지속되면서 하디타에서도 불만이 높아졌고 그것이 결국 미군의 양민학살이 일어나는 비극으로 드러난 것"이라고 주장했다. 가장 안정됐던 곳에서조차 저항세력들이 점령에 반대하는 활동을 벌이기 시작했다는 것은 미군의 점령 정책의 실패를 보여준다는 얘기다.
이날 집회에서는 표명렬 평화재향군인회 대표가 반전 연설을 해 눈길을 끌었다. 표명렬 대표는 "반전 운동은 전쟁을 경험했던 군인들이 나서야 한다"며 "나에게는 한국의 반전 집회에 수백만의 예비역들이 참석하는 꿈이 있다"고 밝혀 참석자들의 박수를 받았다.
이라크평화를 위한 연대모임의 미니 씨는 바그다드에 살고 있는 살람 씨가 한국의 친구에게 보내온 편지를 낭독하기도 했다.
이라크인 살람 씨는 이 편지에서 "이라크인들은 살인·납치·억압 속에서 살고 있다"며 "우리는 매일 죽음과 마주한다"고 말했다.
살람 씨는 또 "아이들은 학교 가는 길에 머리가 잘린 시체를 본다"며 "우리가 언젠가는 평화롭게 살 수 있을까?"라고 물었다. 이 편지글 낭독을 들은 참석자들은 "이라크인이 느끼는 고통이 전해져 오는 것 같다"며 안타까워했다.
다음은 이날 집회 참석자들 앞에서 미니 씨가 읽어 준 이라크인 살람의 편지 일부다. 이 편지는 오늘날 이라크인들이 겪고 있는 전쟁의 실상과 그로 인한 그들의 절망을 잘 보여준다.
사랑하는 로하이. 나에게 평화에 대해 말해준 날 생각나요? 분명 기억할 거예요. 그리고 이라크에 평화가 곧 올 거라고 한 거 기억나요? 제발, 기억하고 있다고 말해줘요. 전 로하이 말을 진짜 믿었거든요. 기억하죠? 나에게 평화가 전 세계에 곧 올거라고 말했잖아요. 그 말 기억난다고 해줘요. 그냥 부끄러워 말고 사실을 말해줘요. 평화, 사랑, 사람들, 어린이들, 그리고…. 만일 이 모든 이야기들을 기억하고 있다면 이제 말해줘요. 대체 우린 지금 어디에 있는 거죠? 평화는 어디 있죠? 목숨을 잃은 수많은 이라크인들의 피, 현재 이라크 모습을 보여주고 싶군요. 이라크인들은 살인·납치·억압 속에서 살고 있어요. 1분 마다 우리 이라크인들이 죽고 있어요. 우린 매일 죽음과 마주합니다. 부모 잃은 어린이, 수많은 납치, 거리 위의 피…. 아이들은 학교 가는 길에 머리가 잘린 시체를 봅니다. 한 여자가 학교 앞에서 아이를 기다립니다. 그 때 두 패 사이에서 싸움이 벌어집니다. 여인은 아무 이유 없이 누군가에게 죽임을 당합니다. 단지 그녀가 이라크인이기 때문에 죽임을 당합니다. 우리는 절대 가고 싶은 곳을 아무 곳도 갈 수 없어요. 우리는 늘 집 안에만 있어야 해요. 하지만 어떻게 집에 있을 수 있죠? 전기도 없고 물도 없는데…. 아무나 쉽게 집에 들어와 집에 있는 사람들을 모두 죽일 수 있죠. 안전이라고는 조금도 없어요. 우리가 어떤 상황인지 다 설명해 줄 수 없어 미안해요. 우리가 언젠가 평화롭게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난 이제 그 날이 오지 않을 것 같아요. 우리가 언젠가는 다른 인간들처럼 사랍답게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난 모르겠어요. 사랑하는 로하이, 내 형제여. 이렇게 좋지 못한 그림으로 시작해서 미안해요. 그러나 이해해줘요. 지금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상황은 정말 비정상적이고, 상상 이상이예요. 현재 내 상황은 다른 날과 다를 바 없는 날들입니다. 어디를 가든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길을 나서기 전에는 항상 길을 확인하고…. 어찌됐든 우리는 아직도 살아가고 있습니다. 전쟁이 없는 이라크를 보기를 기다리며 그렇게요. 이라크에 평화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는 말이 하기 싫어요. 난 세상이 싫습니다. 아뇨, 난 세상을 믿지 않아요. 아직도 당신과 친구들과 함께 보낸 시간을 기억합니다. 내 친구들을 아직도 기억해요. 내 아이들도 모두 당신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당신이 그립고, 사랑합니다. 살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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