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가 설립하고 '한국독립영화협회'(이하 한독협)가 위탁을 받아 기획 및 운영관리를 하기로 한 영상문화센터 '활력연구소'가 지난 달 30일 오후 문을 열었다. 그러나 정작 서울시 관계자는 한명도 없고, '한독협'측 인사들만 참가한 반쪽 개관식이 되고 말았다. 개관식장엔 다음과 같은 '구호 같지 않은 구호'가 내걸렸다.
'미워도 다시 한번'
'여보셔, 서울씨... 애를 나 혼자 낳았수'
***지난달 30일 '활력연구소' 파행 개관**
'활력연구소'는 서울시 문화관광국이 2000년 4월에 계획한 '서울시지하철 문화공간 조성종합계획'의 일환으로 시민들의 영상·미디어 교육과 창작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설립됐다. 총 9억4천여만원에 달하는 건축비와 장치설비는 전액 서울시와 서울지하철공사의 지원에 의존했다.
그런데 문제는 '활력연구소'가 앞으로 연간 4억여원(한독협 추정치)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는 운영비 부분에 대한 지원을 서울시 측에 요구하는 과정에서 양측의 입장에 현격한 차이가 발생했다는 것이다.
'한독협'은 비영리목적인 시민대상의 교육프로그램을 중심으로 운영하는 공공시설인 만큼 서울시가 운영비의 일부를 부담할 것을 요청했다. 그러나 서울시 관계자들은 이에 대해 '개인으로 따지면 아파트를 지어주고 살게 해주니 생활비도 달라는 격'이라며 난색을 표명했다.
이로 인해 애초에 8월말로 예정되어 있던 개관이 3차례나 연기되었고, 서울시는 지난 11월8일 '설치 후 지하철공사로 무상양여를 하는 시설이기 때문에 지원이 불가하다'는 방침을 확정하고 이 사업을 지하철공사로 넘기고 손을 떼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러한 서울시 방침에 맞서 '한독협' 측은 11월 30일 오후 4시 서울시의 운영예산에 대한 협조나 대안을 요구하는 여론을 환기시키기 위한 파행 개관에 나선 것이다.
***"운영예산 지원해 달라" vs "기업지원과 스폰서 통해 조달하라"**
최소원 '활력연구소' 매니저는 "설립계획 당시 서울시는 6차례나 회의를 하고 영상센터운영을 위해 함께 노력한다고 약속했다"며 "하지만 막상 설립을 해 놓고 실질적인 운영예산에 대한 지원은 계속 미루더니 민선 3기 이명박 시장을 맞이해 다른 사업에 밀려 예산확보도 실패하자 '지원불가'로 입장을 확정한 것 같다"고 경위를 설명했다.
그는 또 "서울시 관계자들의 마인드는 '수익이 나면 그 범위에서 사업을 하고 수익이 안 되면 사업을 접겠다'는 것 같다"며 "활력연구소 같은 시민을 위한 문화시설은 20세기에 도서관이 한 일을 21세기에 하자는 것인데 그럼 수익도 안 되는 도서관을 20세기 내내 붙잡고 운영한 이유를 알고 싶다"고 서울시를 비판했다.
이에 대해 서울시 문화과 관계자는 "운영비 지원 등은 사업계획 과정에서 전혀 약속한 적이 없다"며 "활력연구소 측이 외부 기업지원이나 스폰서를 통해 운영비를 조달하려고 계획했으나 여의치 않자 떼를 쓰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또한 "운영비를 2003년 예산에 올렸던 것도 하도 사정을 해서 예산승인이 안될 걸 알고도 우선 형식적으로 올려만 준 것뿐이며 후원단체나 광고주를 유치하기 위한 노력도 시측이 더 적극적으로 노력했다"고 말했다.
그는 또 "다른 지하철 문화시설들은 위탁운영에 전혀 문제가 없는데 영상센터가 자꾸 언론을 이용해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턱없이 부족한 문화예산으로 위탁기관 어려움 심해**
그러나 '시설을 건립해 줬으니 수익모델을 창출해서 자체운영을 하라'는 서울시의 논리로 인해 다른 지하철 문화시설도 운영상에 어려움을 겼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어린이공원 역사 내의 미술교육 시설인 '어린이 미술마당'을 서울시로부터 위탁운영중인 '광진문화원' 관계자도 서울시의 문화정책에 대한 불만은 마찬가지였다.
이 관계자는 "현재 국내에 민간시설로 '삼성어린이 미술관'이 있기는 하지만 공공시설로는 유일한 것이 '어린이 미술마당'인데 서울시는 만들어 놓기만 하고 발을 빼는 듯한 인상을 받았다"고 유감을 표시했다.
그는 운영비 문제에 대해 "영상 관련 사업은 수익이 날수도 있겠지만 미술교육은 미래에 대한 투자고 완전한 공공사업인데 '알아서 수익을 맞추라'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활력연구소'와 유사한 형태의 공공기관인 '영상미디어센터'를 영화진흥위원회로부터 위탁받아 운영중인 김명준 영상미디어센터 소장도 "실제로 문화부로부터 50~60% 정도의 운영비 지원을 받고 있으나 재정이 힘든 상태"라고 밝혔다.
김 소장은 활력연구소의 파행 개관 사태에 대해 "예산규모나 예산을 집행할 수 있는 힘에서 서울시장의 위치가 문화부장관보다 작지는 않을 것"이라며 "결국 문화영역에 대한 무지와, 봉사기능을 포기하고 수익 위주의 장사꾼 개념으로 접근한 이명박 시장이 자초한 일"이라고 진단했다.
파행 개관을 하긴 했지만 활력연구소는 이미 시민들 사이에 새로운 명소로 떠오르고 있다. 향후 연구소가 '혼자 낳은 애'로 천덕꾸러기 신세가 될런지, '함께 낳고 기르는 애'로 씩씩하게 자라날지 지켜볼 일이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