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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진도 안 나가요?"

중ㆍ고교 국어교육 문제와 발전방안 모색 토론회

"선생님, 진도 안 나가요?"

중고등학교 수업시간에 교사가 교과서와 관련없는 이야기를 하며 학생들을 가르칠 때 일부 학생들이 반발하며 던지는 질문이다. 교사뿐만이 아니라 학생들 스스로가 얼마나 성적위주의 진도에 얽매여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이 같은 중·고교 국어교육의 문제점을 점검하고 대안적인 언어교육을 모색하기 위한 토론회가 8일 저녁 ‘문화개혁을 위한 시민연대’ 주최로 혜화동에 있는 '전국국어교사모임' 회의실에서 열렸다.

<사진>

***현재 교과서는 교묘하게 국가이데올로기 반영**

김주환 전국국어교사모임 전 회장은 ‘국어과 교육과정의 현실과 개선방향’이라는 발제를 통해 “국어학 연구대상과 아이들이 우리말을 잘 쓰기 위한 교육은 별개의 것인데 아이들에게 학문적인 성과를 주입하려 하는 것이 문제”라며 "청소년의 발달과정을 고려한 체계적인 읽기와 쓰기 교육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 교사는 유신시대부터 국어교과서 텍스트에 과도할 정도로 국가 이데올로기가 등장한 점도 지적하고 “현재 교과서에는 김지하의 시도 올라와 있지만 오히려 그 내용이나 교과목표는 더욱 교묘하고 기술적으로 국가 이데올로기를 반영하는 것 같다는 의심이 든다”고 지적했다.

두 번째 발제를 맡은 김명인 ‘황해문학’ 편집주간은 “현재 우리나라 국어교육은 시각의 차이나 다양한 해석을 인정하지 않는 전체주의적인 면이 있다”며 “한국 일본 대만에서만 쓰고 있는 ‘국어’라는 용어부터가 일제식민지시대의 잔재로 ‘국어’를 통해 말 잘 듣는 ‘국민’을 만들겠다는 의도가 엿보인다”고 말했다.

김 주간은 또 “텍스트에 대한 억압과 배제를 전제로 한 현재의 국어교육은 입시제도라는 또 다른 블랙홀로 인해 교사가 새로운 수업방식이나 다양한 텍스트로 학생을 이끌려고 해도 학생들 스스로가 ‘선생님 진도 나가요’라고 말하는 상황”이라며 "이 악순환을 깨기 위해서는 수직적인 주입식 교육에서 수평적인 열린 교육으로의 전환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마지막 발제자인 강내희 중앙대학교 영문과 교수는 대학에서의 언어와 문화교육의 문제를 중심으로 국어교육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강 교수는 “대학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영어영문학과 독어독문학과라는 분류는 언어학과 문학을 억지로 함께 끼워 넣은 ‘혼인을 빙자한 별거’같은 상황”이라며 "문학과 어학이 학문적 소통은 전혀 없는데도 같이 몰아넣은 대학의 관습이 그대로 청소년의 언어교육에도 적용되고 있다"고 말했다.

강 교수는 “부실한 대학에서의 교육이 결국 부실한 교사를 만들어 학생들의 교육에 피해를 준 것은 아닌지 모두가 반성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세심한 교육법의 개발과 프로그래밍이 필요한 시기"**

발제에 이은 토론에서 김만섭 경기고 국어교사는 “5공 시절인 5, 6차 교육개정 때 국가 이데올로기를 학생들에게 주입하려는 의도가 교과서에 드러났으나 거기에 대한 대항으로 의식 있는 교사들이 추구한 민족, 민주, 인간화 교육도 그 방식에서는 똑같은 주입식 이었다”며 “학생들을 중심으로 한 세심한 교육법의 개발과 프로그래밍이 필요한 시기”라고 말했다.

권정혜 문정중학교 국어교사는 “교사들이 참고할 만한 학생들의 언어발달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도 전혀 없는 상황”이라며 “예를 들면 영어만 해도 학년별 단어숫자라도 있지만 국어 어휘교육은 그런 시스템과는 다른 것이 필요할 텐데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그 방안이 연구돼야한다”고 지적했다.

***"주입식교육은 학자들간의 '영토싸움'에 의한 것"**

정정호 중앙대 영문학과 교수는 자신이 대입시험 출제를 위해 교육평가원에 차출됐을 때 경험을 소개하며 "현재 국어과목에서 고전 문학 문법 등 다양한 내용을 가르치고 있는 본질이 학자들 사이의 영역싸움으로 인한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고 밝혔다. 그는 “학파나 전공에 따라 각자의 영역을 건드리지 않는다는 묵계 속에 지금 차지한 영역을 교과서에서 지켜내기 위해서 대입문제를 수단으로 사용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 교수의 설명에 따르면 우리나라 인문학계는 각 학문간의 영역이나 영향력의 우위를 대입시험의 출제 빈도로 따지기 때문에 이를 위해 교과서의 구성에서부터 청소년에게 과도한 지식을 주입하려 한다며 "주입식교육은 학자들간의 '영토싸움'에 의한 것"이라고 다시 한번 강조했다.

김중신 수원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대안적인 교육이 이 자리에서 논의되고 있지만 교육문제에 대한 성급한 진단과 투여는 위험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며 “30년 혹은 그 이상이 지난 후에 결과가 나타나는 만큼 장기간에 세심한 연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국어 뿐 아니라 현재 우리나라 교육의 본질적인 문제는 교육과정을 개정한 후에 실제로 학생들에게 미치는 교육성과나 문제점에 대해서는 충분히 점검도 하지 않고 교육관련 공무원들 중심이 돼서 바로 새로운 교육과정을 설계한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김 교수도 자신의 대입시험 출제경험을 예로 들고 “새로운 언어문화에 대한 문제로 인터넷 채팅을 예문으로 하려 하자 교육평가원측이 ‘원조교제를 조장한다’는 등 말도 안되는 이유로 문제의 채택을 거부한 일도 있다”며 교육관련 공무원과 관계자들의 경직된 사고를 꼬집었다.

토론회 사회를 맡은 심광현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장은 “이제까지 국어교육이 실생활과 관련이 적은 학문적 지식의 주입식 전달에 치중한 점은 토론회 참석자들이 대부분 동의하는 것 같다”며 “앞으로는 지식과잉의 나열식 교육에서 수평적인 정서교육이 필요한 때인 것 같다”고 강조했다. 심 원장은 “이를 위한 교수법과 교과과정의 개선에 대한 노력이 계속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어교사로서 관심이 있어 이 토론회를 참관했다는 한 교사는 “현재 국어교육에 문제점에 대한 지적은 충분했으나 앞으로의 교육방향이나 수업법에 대한 토론이나 대안제시가 부족한 점은 아쉬웠다”고 토론회 의의를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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