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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세화 "2006년 한국, 존재를 배반하는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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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세화 "2006년 한국, 존재를 배반하는 사회"

"신자유주의 파고에 '양보'는 해도 '포기'는 말라"

"프랑스에서는 26세 미만의 젊은이들을 대상으로 2년 안에 마음대로 해고할 수 있는 '최초고용계약법'(CPE) 때문에 예비노동자인 대학생들, 심지어 고등학생들까지 무려 150만 명이 거리로 나와 대규모 시위를 벌이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어떠한가. 26세 미만은 물론이고 전 연령에 걸쳐 2년 고용계약을 할 수 있고 2년 안에는 아무 때나 해고할 수 있는 비정규직법안을 만들어 놓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관심이 없다."

22일 저녁 동국대 본관 중강당, 홍세화 <한겨레신문> 시민편집인은 '강정구 교수 천막강의'의 세번 째 강사로 나서 이와 같은 질문을 던졌다. '대학생, 지식인으로 산다는 것은'이라는 제목의 이날 강연에는 300여 명의 동국대 학생들이 참석해 홍 씨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한국에서는 '비정규직 법안'에 왜 관심이 없나"**

홍 편집인은 비정규직 법안에 대한 한국의 '침묵'에 대해 '비판적 사회의식'의 부족을 원인으로 꼽았다. 그는 "신자유주의의 파고 속에서 나만 고시 공부하고, 학점 공부하고, 토익 공부해서 상층부에 진입하겠다는 계층 상승을 모색할 것이 아니라, 스스로 사회에 대한 비판적 안목을 키우고 사회 전체의 방향을 함께 고민해야 하지 않겠는가"라고 주문했다.

홍 편집인에 따르면 인간의 존재는 '몸'과 '의식' 두 가지로 이뤄지는데, 우리는 '몸'에 대해서는 지나치리만큼 관심이 높으면서도, 반대로 '의식'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다.

그는 "과연 우리의 의식은 우리가 주체적으로 형성한 것인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 볼 것"을 권유했다. 국가적 이념만을 강조하는 교육체계와 자본이 장악한 대중매체에 의해 의식화된 일반 대중들이 어느샌가 '자발적 복종'에 익숙해져 있다는 것이다.

즉 국가가 교육을 통해 노골적으로 '복종'을 강요하지는 않지만, 우리는 분단 이후 '반공', '안보', '질서'라는 이름으로, 최근에는 '국익', '국가 경쟁력'이라는 이름으로 은연 중에 국가권력에 복종할 것을 강요받고 있다.

또한 '자본에 의해 장악된' 대중매체도 TV를 켜면 하루에도 수십 번 씩 '당신의 능력을 보여주세요', '당신이 사는 곳이 당신이 누구인지를 말해줍니다'라는 광고 카피가 물신주의를 조장하며 강력하게 일반인들의 의식세계를 파고들고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한번 형성된 의식은 쉽사리 바뀌지 않는다. 홍 편집인은 "TV토론을 나가봤는데, 토론자들은 나와서 시종일관 자시의 주장을 관철하는 데만 관심이 있을 뿐 애초부터 다른 사람의 의견을 받아들일 자세가 없다"고 일침을 가했다. 그는 "스피노자의 말처럼 한번 성립된 의식이나 세계관은 좀처럼 바꿀 수 없다"며 "인간은 합리화에 능한 존재이기 때문에 끊임없이 의심하지 않으면 결국 자기의 고집에서 헤어나지 못한다"고 말했다.

홍 편집인은 특히 '정보화 사회' 덕분에 사람들이 '다 알고 있다'고 믿는 또 다른 무지 상태에 놓여 있다고 역설했다. 그는 "택시를 타고 가다 택시기사에게 '<한겨레신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으면, 20%는 호의적이지만, 80%는 '여당지다', '운동권신문이다', '편파적이다', '빨갱이신문이다', 심지어 '전라도 신문이다'는 반응까지 보이며 부정적 인식을 나타낸다"며 "그러나 정작 <한겨레신문>을 자세히 보면서 이렇게 얘기하는 사람들은 드물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전교조를 욕하면서 사실 전교조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이 없고, 민주노동당에 대해 부정적이면서도 민주노동당에 대해 제대로 알려고 노력해본 사람도 없다"며 "대개의 사람들이 인터넷이나 '조중동'과 같은 주류 매체에 의해 전해지는 피상적인 정보만 갖고 쉽게 판단하며 그냥 그렇게 믿고 살아간다"고 지적했다. 모두 '비판적 사회의식' 혹은 '성찰적 자아에 대한 고민'이 부족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존재를 배반하며 살고 있다"**

이런 사회의 구성원들은 결국 '존재의 배반'을 낳는다. 홍 편집인은 "20:80의 사회(상위 20%가 부의 80%를 소유하고 있는 사회)라고 하는데, 하위 80%를 위해 '무상의료', '무상교육'을 하자고 하면 정작 이들은 자신들을 위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무상교육·무상의료에 찬성하지 않는다"며 "이는 지배세력이 다수 서민들의 의식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결국 자신의 삶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는 '비정규직 법안'에 대해 관심이 없는 우리 사회는 '존재를 배반한' 사람들로 가득찬 사회이거나, 최소한 구성원들이 '자신은 비정규직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근거 없는 믿음 속에 사는 것이다.

홍 편집인은 이를 바탕으로 대학생들에게 "끊임없이 긴장하고 살 것"을 주문했다. 그는 "우리나라 젊은이들은 인생을 통해 딱 두 번 긴장을 하는데, '대학입시'와 '취직시험'"이라며 "그러나 자신의 삶에 있어서 끊임없이 성찰하고 자아 실현을 위해 긴장을 늦춰서는 안 된다"고 충고했다.

이에 한 여학생이 "신자유주의가 전세계적으로 팽배한 상황에서 '먹고 사는' 문제도 중요한 것 아닌가"라고 물었다. 이에 홍 씨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생존을 위해 노동을 강요당하고 있고, 나름대로 그 속에서 자신의 자아실현의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결국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 수는 없는 것이 사실"이라며 "그러나 '양보'는 가능할지언정 '포기'를 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세상에 '양보'는 할지언정, '포기'는 하지 말라"**

대학 진학, 사회 진출의 순간에 자신이 원하는 길을 가지 못했다고 해서 '그냥 나는 돈이나 벌래'라는 식으로 '포기'하지 말고, 다른 길을 가는 순간에도 다시 자아실현을 할 수 있는 길을 끊임없이 도모해야 한다는 말이다.

홍 편집인은 이날 대학생들에게 ▲고전 읽기 ▲견문 쌓기 ▲내면적 성찰 ▲인간성 회복을 강조했다. 그는 "리영희 선생의 '대화'라는 책을 읽었는데, 리 선생이 일제시대 중학생이던 시절 '데칸쇼'를 즐겨 읽었다고 쓴 구절을 봤는데, 여기서 말하는 '데칸쇼'는 데카르트, 칸트, 쇼펜하우어를 말한다"며 "대학 시절에는 '5년 안에 10억 만들기' 같은 책보다는 고전을 통해 풍부한 지식과 사색의 기회를 가질 것"을 권유했다.

그는 또한 "요즘 배낭여행들을 많이 하는데, 뒤통수 너머 사진찍기에만 골몰하지 말고 북유럽이나 그런 곳에 가게 되면 대학교수와 청소부가 월급이 똑같은데 왜 그들은 그렇게 하는지 관심을 갖고 직접 알아보는 등 견문을 넓힐 것"을 주문했다.

홍 편집인은 "마르크스를 비난할 때 제발 모르고 비난하지는 말라. '자본론'을 읽는 것까지는 바라지 않는다. 최소한 '경제학초고'나 '공산당 선언' 정도는 읽고 비판해도 해야 하지 않겠나"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2시간여에 걸친 강연을 끝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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