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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임 총리…포장은 '분권형', 내용은 '관리형' 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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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임 총리…포장은 '분권형', 내용은 '관리형' 될 듯

[분석] 노대통령이 후임 총리 고민을 빨리 끝낸 이유

노무현 대통령이 이해찬 전 총리의 후임 총리 인선 고민을 끝낸 듯하다. 청와대는 "금주 중에 후임 인선이 있을 것"이라고 한다.

노 대통령에게 이 전 총리 후임 인선은 참 어려웠지만 결과적으론 쉬운 문제가 됐다. 후임 총리 인선은 당.청관계, 향후 국정운영 방식, 차기 대권구도 등과 연관된 매우 복잡다단한 '고차방정식'일 수 있지만 노 대통령은 이 문제를 최대한 단순화한 것으로 보인다. 임기가 채 2년도 남지 않은 상황에서 국정지지율이 20% 초반대인 대통령이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는 별로 많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가 하면, 지금의 상황이 5.31 지방선거를 앞둔 특수한 상황인 데에다 여야 모두 강력한 차기 대권주자가 아직 부상하지 않았다는 점은 노 대통령에게 한 박자 쉬어갈 수 있는 여유를 주기도 한다. 노 대통령은 지방선거가 끝날 때까지는 계속 양극화 해소를 화두로 제시하면서 국정 운영에 전념하는 모양새를 만들 것으로 보인다. 지방선거 이후 도래할 '정치의 계절'을 대비하면서 말이다.

***노대통령, 총리의 정치적 비중 낮출 듯**

사실 노 대통령에게 더 어려운 문제는 이해찬 전 총리 진퇴 여부였다. 노 대통령이 아프리카 순방 기간 동안 이 전 총리의 거취에 대한 전망은 오르락내리락 종잡을 수 없었다. 그러나 노 대통령은 '내기골프' '황제골프' 의혹 등으로 악화될 대로 악화된 여론, 5.31 지방선거를 앞둔 여당의 강력한 반발 등을 접하자 전격적으로 이 전 총리의 사의를 받아들였다.

이 전 총리의 낙마는 노 대통령에게 두 번째 좌절을 의미했다. 이는 지난 2004년 탄핵 이후 정확히 2년 만에 또 다시 맞은 현 정부 국정운영 시스템의 사실상의 위기였기 때문이다. 이 문제의 연장선상에 있는 후임 총리 인선은 그래서 현 정권을 어떻게 마무리할 것인가와 직결된 문제라는 점에서 노 대통령은 고심에 고심을 거듭할 것으로 전망됐다.

하지만 노 대통령은 예상보다 빨리 '답'을 낸 듯하다. 지방선거가 얼마 남지 않았고, 대통령 지지율은 바닥을 친 뒤 오를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고, 눈에 확 들어오는 총리감도 없는데다 후임 총리를 지명하더라도 국회 인사청문회 통과가 쉽지 않은 상황이기 때문이다.

현재 후임 총리 후보로 김병준 청와대 정책실장, 전윤철 감사원장, 한덕수 경제부총리 등 비정치인 관료 출신이 거명되고 있다. 노 대통령이 택한 방법은 방정식을 단순화한 것으로 보인다. 이해찬 전 총리를 통해 커진 총리의 정치적 비중을 낮추면 총리 인선 문제의 중요성도 덩달아 낮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노대통령, '애매한' 총리 위상 정치적으로 활용해 와**

이런 일이 가능한 것은 선출되지 않은 행정권력인 국무총리의 위상이 애매한 데에서 온다.

한국의 총리는 헌법상 국무위원의 임명제청권과 해임건의권을 갖고 있고 대통령 유고 시에는 대통령 직을 권한대행 하도록 돼 있다. 그래서 총리는 흔히 '일인지하 만인지상(一人之下 萬人之上)'으로 비유되지만 정권의 '2인자'로 기능한 적은 거의 없었다. 오히려 대통령의 연설문이나 대독하는 '얼굴 마담' 정도로 여겨져 온 게 사실이다.

노 대통령은 이같은 총리의 '애매한' 위상을 정치적으로 잘 활용해 왔다. 노 대통령이 초대 총리로 고건 전 총리를 발탁한 것은 보수기득권 세력의 지지를 받지 못한 약체정권이 지지기반을 확대하기 위해 택한 카드였다. 당시 노 대통령은 '몽돌(대통령)과 받침대(총리)'의 비유를 들어 '개혁 대통령'과 '안정 총리' 구도를 내세웠다.

2004년 4월 총선에서 '노무현 신당'인 열린우리당이 과반이 넘는 152석을 차지하면서 탄핵심판을 거쳐 업무에 화려하게 복귀한 자신감으로 노 대통령이 처음 꺼내든 노림수는 '김혁규 총리론'이었다. 한나라당 출신인 김혁규 의원을 총리에 앉혀 지역구도를 극복해야 한다는 게 노 대통령이 내세운 명분이었다. 그러나 '김혁규 카드'는 야당뿐 아니라 여당 내에서도 반발이 거세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 뒤 노 대통령이 대안으로 고른 게 이해찬 전 총리였다. 당시 노 대통령은 이 전 총리를 지명하면서 '일하는 총리' '개혁형 총리'로 자리매김했다. '개혁 대통령'과 '개혁 총리'의 결합이 가져온 효과는 대통령에게 집중되던 야당과 보수언론의 공격을 총리에게 분산되도록 했다. 노 대통령이 분권형 국정운영체제를 도입해 일상적 국정운영을 맡겼다지만, 이는 정책 집행 과정을 총리가 관리하도록 하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국민들이 총리의 권한이 강화된 것처럼 인식하는 이유는 이 전 총리가 '정치하는 총리'였기 때문이다.

***이해찬, '분권형'이 아니라 '일체형' 총리**

말하자면, 이 전 총리는 한나라당과 관계에서 최일선에서 대통령의 대리전을 치르는 '무사'였던 것이다. 이 전 총리는 또 한나라당과 '전쟁'을 통해 얻은 '전투력'을 바탕으로 여당과 정부 관료들도 적절히 통제할 수 있었다.

대통령의 의중을 여당과 야당, 그리고 행정 부처에 정확하게 전달하고 이에 기반해 권한을 행사하는 이 전 총리는 이런 점에서 '분권형 총리'가 아니라 '일체형 총리'였다고도 할 수 있다. 노 대통령이 지난 17일 여야 5당 원내대표 초청 만찬간담회에서 이 전 총리를 '칼 총리'라고 하면서 "여러분에게 불편했을지 몰라도 대통령에게 편한 총리였다"고 밝힌 것도 이 때문이다.

노 대통령은 후임 총리도 분권형 기조를 유지할 수 있는 인사를 기용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전 총리의 경우에 비춰볼 때 이 역시 자신의 의중을 잘 파악하는 '일체형 총리'에 적합한 인사를 기용하겠다는 의미로 풀이해 볼 수 있다. 노 대통령은 지난 17일 만찬에서 "(국정운영) 지지도가 낮은데 서로 손발이 안 맞으면 어려워질 수 있다"며 "정치적 중립을 지킬테니 코드(인사)로 갈 수 있도록 도와 달라"고 여야 대표들에게 부탁한 것은 바로 그런 해석을 뒷받침한다.

그런 점에서, 후임 총리는 겉으로는 '책임형 총리' '분권형 총리'로 명명되겠지만 사실상 이 전 총리와 달리 독자적 정치력을 갖지 못한 '관리형 총리'로 기능할 것으로 보인다.

***아직 '이명박'은 과거 '이회창'이 아니다**

'분권형 총리'로 포장된 '관리형 총리'는 노 대통령이 이 시점에서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카드인지도 모른다. 이 전 총리처럼 충성심과 정치력을 동시에 가진 총리감을 찾는 게 쉽지 않고, 설사 찾는다 해도 여소야대 국회에서 인사청문회를 무사히 통과하리란 보장이 없다. 자칫 김대중 정권 말기의 장상 전 총리서리, 장대환 전 총리서리의 사례처럼 인사청문회를 통과하지 못할 경우 '레임덕'의 계기가 될 수도 있다.

그렇다고 지금은 노 대통령이 후임 총리 인선에 정치적 승부를 걸어야 할 상황도 아니다. 5.31 지방선거를 앞두고 있는 시점에서 국회는 급속하게 선거 체제로 재편되고 있다. 후임 총리가 비교적 무난한 인물이 될 경우 큰 정치적 쟁점이 되지 않을 전망이다.

더군다나 강력한 차기 대권 주자도 부각되지 않은 상태라 노 대통령이 '조급증'을 보일 이유가 없다. 현재 차기 대권주자 중 한나라당의 이명박 서울시장이 선호도 1위를 기록하고 있지만 '이명박 대세론'을 형성할 정도는 아니다. 2002년 대선을 앞두고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가 가졌던 정치적 영향력과는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이다. 때마침 '황제 테니스 의혹'이 터져 이명박 시장을 곤혹스럽게 하고 있다. 오는 9월 실시될 예정인 행자부의 서울시 종합감사 등 여권의 '이명박 흔들기'는 앞으로도 계속될 전망이다.

강력한 차기 주자가 없기는 여권에서도 마찬가지다. 이번 이해찬 전 총리 거취 문제로 정동영 열린우리당 의장이 '힘'을 받았다고 하지만 여전히 한 자리수 지지율에 불과하다. 지방선거 기간 중 여당이 노 대통령에게 반기를 들기도 힘들다. 자칫 여권 내 자중지란으로 비칠 경우 자멸의 길이기 때문이다. 노 대통령은 지난 17일 여야 원내대표단 만친간담회에서 "배신의 정치가 될 우려가 있다"며 탈당 가능성을 일축했다.

노 대통령은 금주 중으로 '관리형 총리'를 임명해 정치권을 지방선거 체제로 빠르게 전환시키면서 그 스스로 국정에 전념하는 모습을 보여줄 전망이다. 야당과의 관계에서도 '화해의 제스처'를 취할 것으로 보인다. 노 대통령은 양극화 해소,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제2차 남북정상회담 등 크고 비중 있는, 또 야당에서도 전면적으로 반기를 들기 힘든, 이슈들을 제기하면서 정국의 흐름을 주도하려 할 것이다.

하지만 '관리형 총리'의 문제는 '만일의 사태'에 효과적으로 대응하는 게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야당의 정치적 공격이 대통령에게 집중될 위험이 상존한다는 것이다. 노 대통령이 이 전 총리에 대해 "대통령에겐 편한 총리였다"며 끝까지 아쉬움을 표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노 대통령이 위기의 상황에서 비교적 편한 선택이기는 하되 사실은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어 마지 못해 꺼내 든 '관리형 총리'의 카드가 불가피하게 부딪칠 수밖에 없는 한계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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