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기전투기(F-X) 심사작업을 미국 보잉사에게 유리하게 하라는 외압이 있었다는 주장을 제기한 후 구속된 조주형(50. 공사23기) 대령에 대한 1차 공판이 22일 충남 논산 계룡대 공군본부 보통군사법원에서 열렸다.
조 대령은 모두진술을 통해 자신은 "지난 3월초 가격도 비싸고 조건도 나쁜 F-15K를 선택하기 위해 부당한 방법까지 동원하는 국방부의 잘못을 지적한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어 93년부터 지난 4월까지 10년간 자신이 차기전투기사업에 참여한 과정을 설명하며, 경쟁과정에 다른 업체들은 절충교역 등에 적극적으로 임했으나 유독 미국만은 "경쟁을 무시하고 마치 한국이 미국에 주문생산하는 것으로 인식하여 성능을 높이라고 하면 추가비용을 내라는 식"으로 오만한 태도로 협상에 임했다고 밝혔다.
조 대령은 또 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 "스스로 힘없다고 고개를 숙이는 일부 지도층에 크게 실망했다"고 국방부 등의 저자세 협상태도를 비판하기도 했다.
군 검찰은 조 대령이 라팔의 제조사인 프랑스 다쏘사의 대리인 이모씨에게 경쟁기종의 가격등 기밀을 누설하고, 7차례에 걸쳐 1천1백만원의 금품을 수수한 사실을 들어 이 돈이 직무와 상관없는 단순한 용돈차원이었는지를 추궁했다.
이에 대해 조 대령은 이씨에게 전한 내용은 이미 언론에서 공개된 사항이었고, 언론에 외압을 폭로한 이유는 공군의 전투력 향상과 국가의 세금을 절감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주장했다.
조 대령의 변호인단도 "돈을 받은 사실만 부각하여 양심선언의 본질을 흐리게 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하며 차기 전투기사업에 미국측의 집요한 외압이 있었음을 주장했다.
조 대령의 변호인단은 공판직후 낸 보도자료를 통해 "미 공군참모총장이 한국 공군참모총장에게 서한을 보내 F-15K의 구매를 강력히 요청하는 서한을 보냈으며 본드 상원의원 등이 F-15K 구매를 위해 주미 한국대사관에 압력을 행사한 것에 대해 조 대령이 비망록을 작성했다"고 주장했다.
조 대령은 차기전투기 사업과 관련된 외압설을 모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제기한 직후, 프랑스 다쏘사의 한국에이전트인 C사에 군사기밀을 알려주고 뇌물을 받은 혐의로 지난달 16일 구속됐었다.
***조주형 대령 모두진술서 전문**
재판장님, 저는 대한민국의 공군으로서 자부심과 긍지를 가지고 공군과 우리나라의 발전을 위해 봉사해왔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재판장님과 검찰관, 판사님들 모두가 공군과 나라를 사랑하듯이 저 역시 누구보다도 공군을 사랑하고 있고 앞으로도 사랑할 것입니다.
국방부는 지난 4월 19일 F-15K를 F-X 사업의 계약 대상 기종으로 결정, 발표하였습니다. 그리고 4월 30일 국방장관께서는 보잉사의 제리 데니얼스 사장을 만나 F-15K의 가격을, 경쟁 기종이었던 라팔 가격 이하로 내릴 것과 절충교역 비율의 상향 조정 및 미 정부 차원의 장기 후속지원 보장 등을 요구하였으며, 이런 내용이 추가협상에서 이루어지지 않으면 사업 추진이 어려울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장관께서는 또한 "국회나 국민들이 보잉사가 최종 가격 입찰 과정에서의 가격인상을 납득하지 못한다"고 하시며 국민들이 납득할 만한 수준까지 가격이 낮아져야 한다고 강조함으로써 이제 보잉사는 2억불 이상을 인하했다고 발표했습니다.
제가 지금 이 자리에 나와 있는 것도 이와 똑같은 이유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국방부는 F-15K로 결정한 후에 잘못된 부분을 인정하고 고치려 했던 것이고, 저는 지난 3월 초 가격도 비싸고 조건도 나쁜 F-15K를 선택하기 위해 부당한 방법까지 동원하는 국방부의 잘못을 지적했던 것입니다.
제가 군에 들어와 봉사한지 32년 째 됩니다. 군인의 본분은 나라를 지키고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F-X 사업의 경쟁과정에서 나타난 것처럼 가격과 조건이 불리한 F-15K를 선택하는 것은 막대한 국민의 혈세를 낭비하는 것이며, 국민의 재산을 빼앗기는 결과라고 판단했기 때문에 군인의 본분을 다하고 국민된 도리로서 국방부의 불공정한 처사를 밝힐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이런 내용을 언론에 밝힌 이후 저는 기무사에 연행되어 조사를 받게 되었습니다. 군인으로서 사전 허락 없이 언론기관에 말을 했다는 군인 복무규율 위반과 한겨레신문에 보도된, 군사기밀 유출의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된 것이 이유였습니다.
앞에서 진술한 바와 같이 국방부가 뒤늦게나마 후속조치를 취한 것은 선정과정상의 문제가 있었다는 것을 국방부 스스로가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문제점을 지적한 저에 대해 사실의 진위 여부가 아니라 사건의 본질과는 관계없는, 조사과정에서 불거진 사항을 가지고 저는 이 법정에 서 있습니다.
사람은 완벽하지 못하기 때문에 누구나 과오를 저지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저는 사건의 본질을 중심으로 충분한 검토와 판단이 이 재판에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우리가 얼마나 심혈을 기울여 F-X 사업을 준비해왔고 어떠한 진행과정을 겪었는지 간단히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제가 F-X 사업에 참여하기 시작한 것이 1993년부터이므로 벌써 10년째가 됩니다. 공군이라면 누구나 과거 KFP 사업의 기종 결정 과정에서 발생했던 엄청난 일을 기억할 것입니다. 그 때는 현역 공군 참모총장님께서 권력다툼에 희생되셨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F-X 항공기의 작전 요구 성능을 만드는 과정부터 신중을 기했으며, 합참에 소요를 건의하고 국방중기계획에의 반영도 추진하였습니다. 그러나 전력증강 사업의 주도권을 가지고 있는 국방부의 육군들은 갖은 핑계를 만들어 F-X 사업 추진을 지연시키려 했기 때문에 저는 개인적으로 언론을 동원하여 F-X 사업을 추진하려고 애를 썼습니다. 어떻게든 말 그대로 차세대 전투기를 도입함으로써 멋지고 강한 공군을 이룩하여 후손들에게 물려주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노력은 결실을 맺었고 드디어 '99년 6월 F-X 사업의 공개 설명회가 개최되었으며, 저는 총장님으로부터 시험평가팀장을 임명받았습니다.
저는 많은 선배님들의 조언을 받으며 분야별 전문가들로 시험평가팀을 조직하였으며, 제가 공군생활을 통해 얻은 모든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F-X 사업 추진 과정 전체를 설계하였습니다. 시험평가팀들은 각각 자기 분야의 최고 전문가라는 자부심과, 이번에는 진정한 우리 공군이 바라는 차세대 전투기를 획득하여 공군을 한 단계 끌어올려야 한다는 막중한 책임감, 사명감으로 혼신의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시험평가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국방부 훈령의 개정에 따라 협상을 동시에 추진하기 위해 우리 팀은 사업에 관련된 모든 것을 준비했습니다. '00년 4월 통합 RFP(Request for Prorosal, 주문요청서)가 대상 업체들에게 배포될 때 저는 그들에게 절충교역은 규정상의 30%보다 올려서 60∼70% 이상 제안할 것과 모든 소프트웨어를 제공하고 시험평가를 최대한 지원하도록 요구하였습니다.
저는 또한 사업착수년도 예산 확보를 위해 기획예산처에도 사업설명을 실시했으며, 관련 부서가 유기적으로 협력하도록 협조체제를 다졌고, 국내 항공업체와 국방과학연구소의 의견도 수렴했습니다. 그 때까지만 해도 어느 부서 하나 한미관계를 들먹이며 특정 기종을 지원하는 의견은 없었습니다.
해외 시험평가 중에 처음으로 부닥친 문제는 당시 우리의 요구에 딱 맞는 장비가 하나도 없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우리의 조건을 충족하려면 새로운 기능들을 추가해야 했으므로 가격은 높아질 수밖에 없었고, 부분적으로는 시뮬레이터나 기술 자료에 근거하여 성능을 평가해야 했습니다.
다음으로 곤란한 문제는 미국을 제외한 다른 나라들이 우리나라를 믿지 못한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즉 "한국은 어차피 미국 장비 살 것이 뻔한데 우리는 들러리 아니냐"는 냉소를 보내는데, 팀장인 저는 이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진땀을 빼야 했습니다. 심지어 러시아는 자기들의 기술을 훔쳐보기 위해 온 것으로 오해까지 했습니다.
점차 우리 팀이 강조한 사업의 공정성과 투명성을 그들이 이해하기 시작했고, 공개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최고의 성능과 최저가격, 그리고 최대의 절충교역을 제안하라는 요구를 받아들여 모든 업체들이 적극적으로 접근해 왔습니다.
그러나 미국의 태도는 달랐습니다. 경쟁이라는 것을 무시하고 마치 한국이 미국에 주문 생산하는 것으로 인식하여 성능을 높이라고 하면 추가비용을 내라는 식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팀은 미국에 대해서는 좀 더 강경하게 밀어붙였고, 미 국방성에 최신 장비 및 기능 제공을 요구하는 편지도 보냈습니다. 이러한 요구가 효과가 있어 지금까지는 미 의회가 한국에 대해 제공을 거부했던 기능과 새로운 무장까지 받아낼 수 있었는데, 레이더의 표적식별 기능으로 표적 항공기의 명칭을 화면에 나타내는 NCTR 능력, 아직 개발 단계에 있는 단거리 공대공 미사일 AIM-9X, 그리고 장거리 공대지 미사일 SLAM-ER 등입니다.
2001년 3월 말 시험평가결과 보고서를 마무리하는 회의에서는 시험평가요원들의 개인의견을 발표할 기회가 있었는데, 젊은 장교들 모두가 한결같이 가장 성능 좋은 항공기가 결정되었으면 좋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밝혔습니다. 국방부에 요약보고 후, 일부 수정사항을 개별적으로 추가 보고하는 과정에서 공군 지휘부의 몇 분도 솔직하게 "공군의 미래를 위해서는 차세대 전투기여야 한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진정으로 공군을 위한 길이 무엇인가를 심각하게 고민하였습니다.
그러나 협상이 계속되고 시간이 흐름에 따라 국방부 수뇌부는 목표를 정해놓고 그 방향으로 몰고 가는 듯한 인상을 주었습니다. 어느 한쪽을 비호하게 되면 경쟁체제는 무너지고, 그 업체로부터는 가격을 인하하기도 어렵고 더 좋은 조건을 받아내는 것도 어려워지므로 결국 공군이 모든 부담을 떠 안게 됩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저는 모든 대상업체에게 기회 있을 때마다 경쟁심을 유발시키고 가격을 내릴 것과 기술이전을 많이 하도록 수없이 요구했습니다. 그래서 국방부가 최종기종결정을 할 때는, 어떤 기종이라도 선택의 명분이 뚜렷하여 탈락한 업체는 물론 국민들도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특히 가격 면에서는 SU-35를 제외하고 미국이 유럽 기종보다 5억불 이상 낮았으므로, 경쟁력도 있고 선택의 명분도 충분하리라 여겼지만, 절충교역에서는 우리의 요구를 겨우 충족하는 수준에 머물렀습니다.
경쟁상태에서 경쟁력이 떨어지는 업체가 고자세를 보인다는 것은 어딘가 믿는 구석이 있구나 하는 의심을 하게 됩니다. 미국의 오만함은 최종가격 입찰과정에서 전보다 가격을 올려서 제출하는 결과를 빚었습니다. 사업 추진 과정에서 국방부가 초지일관 경쟁을 강조하고, 보다 현명하게 대처했다면 F-15K로 결정하는데 국민들로부터 비난도 덜 받고 추가협상에서 요란할 필요도 없었을 것입니다.
이제 추가 협상도 끝났고 대통령님의 재가를 받으면 계약이 이행되겠지만 F-15K 운영과정에서 불가피하게 해야 되는 레이더의 성능개량이나 막대한 운영비는 걱정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이 모든 것을 우리 국민이 부담해야 되니까요.
공군은 앞으로도 추진해야 할 대형의 전력증강 사업들이 있습니다. F-X 사업에서는 과거 KFP사업과 유사하게 공군의 의지보다는 국방부 의지에 끌려왔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추진해야 하는 사업에서는 공군이 힘없다고 끌려가지 말고 공군의 미래와 나라를 위해 신념을 가지고 공군 의지대로 추진할 것을 진심으로 바랍니다.
F-X 사업을 추진하면서 저는 약소국의 비애를 느끼기보다 스스로 힘없다고 고개를 숙이는 일부 지도층에 크게 실망했습니다. 언론에 수없이 보도된 것처럼 우리나라의 F-X 사업에 대해 미국은 대통령부터 국무부, 국방부, 의회 및 주한미군까지 전방위 압력과 홍보를 했습니다. 그들은 성능이 우수하다거나 가격이 저렴하다는 말은 거의 하지 않고, 연합 작전이나 상호운용성만을 내세웠습니다.
이 사업에서 그들의 요구가 관철되었으므로 앞으로 있을 우리 군의 무기도입사업에서도 어떠한 현상이 벌어질지 쉽게 예상이 됩니다. 그러나 F-X 사업의 결과가 앞으로도 많이 있을 한미간의 대화에서 한국의 입지를 약화시키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저는 반미를 주장하지는 않습니다. 저는 우리나라가 진정한 우방으로서, 상호방위조약을 맺은 동등한 국가로서 존중받을 수 있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우리는 해마다 한미동맹을 강화한다고 하는데, 지난 50년 가까이 유지돼 온 한미동맹이 약해져서 전쟁의 위협이 커지고 평화가 지켜지지 못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같은 민족인 북한의 위협이 전보다 한층 강화되었습니까?
F-X 사업과 같이 전력을 증강하는 것은 방위력을 키워 평화를 지키기 위한 것이며, 우리가 꿈에도 바라는 것은 한반도의 통일과 항구적 평화입니다. 우리 정부의 대북 정책은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추진되어 왔다고 보지만 미국의 대북 강경 정책은 우리 국민에게 불안감을 주고 있고, 한반도의 평화유지와도 거리감이 있으며, F-X 기종결정에도 영향을 주었음이 분명합니다.
여러 가지 정치적 상황을 고려하여 F-15K로 결정할 수밖에 없는 것이 국방부의 입장이었을 것으로 보지만, 이것이 민족의 자존심을 버리고 강자에 대한 굴종이라고 믿고 싶지는 않습니다.
제가 문제를 일으켰기 때문에 추가협상에서 그나마 2억불 이상의 가격 인하를 유도할 수 있었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추가협상에서 더 많은 것을 받아냈어야 했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또한 이러한 국방부의 추가협상 노력이 후일을 대비한 명분 쌓기가 아니고 진심으로 그렇게 인정하고 추진했기를 바랍니다.
재판장님, 저는 F-X 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사명감을 가지고 나라와 공군만을 생각하며 노력해왔고, 기밀을 누설했다든가 특정업체를 돕는 행위는 아무것도 한 것이 없습니다. 저는 공정하게 모든 업체를 대상으로 우리의 요구사항을 강조했고, 가격인하를 위해 애를 썼을 뿐입니다.
이러한 저의 애국심과 사명감이 저의 부끄러운 부분을 가릴 수도 없겠지만, 그것 때문에 진정으로 나라와 공군을 위해 바쳐진 노력이 쓰레기처럼 취급당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재판과정에서 진실이 밝혀지기만을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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