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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끊임없는 개발계획…끊임없는 투기 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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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정부 끊임없는 개발계획…끊임없는 투기 욕구"

<기자의 눈> "투기 이익 위해선 못할 일이 없다"

***"1만원 하던 고향 땅값이 30만 원이 넘어요"**

인천 부평구 38평짜리 아파트에 살고 있는 50대 가정주부 이모 씨. 남매를 둔 이 씨는 최근 자녀들이 모두 취직해 시간적, 정신적, 경제적 여유가 생기면서 지난 6월 친정이 있는 충청북도 영동군 용화면에 땅을 사둘까 생각하기 시작했다.

큰 돈은 아니었지만, 몇천만 원이라도 은행에 넣어두느니 고향에 땅 얼마 정도 갖고 있으면 좋겠다는 평범한 생각도 있었지만, 내(川) 하나 건너 마주보고 있는 전라북도 무주군 설천면 일대에 '태권도 공원'이 유치되면서 땅을 사두면 값이 오를 것이라는 생각이 더 컸다. '땅 사서 돈 좀 벌었다'는 주변 사람들 말도 언제부터인가 귓가에 맴돌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 씨는 지난 7월 친정에 내려가는 김에 '부동산'에 들러 땅값 시세를 알아보고 벌어진 입을 다물 수 없었다. 덕유산과 민주지산 사이에 갖혀 오지 중의 오지로 평당 1만 원을 넘기기 힘들었던 용화 땅이 설천과 인접한 도로변 목 좋은 곳은 이미 30만 원을 훌쩍 뛰어 넘고 있었다.

정작 태권도 공원이 들어설 예정인 전북 무주군 설천면 청량리·소천리·두길리 일대는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묶여 위장전입을 해야 하는 등 토지 구매 자격이 까다롭기 때문에 거래가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지만, 내 하나 건너에 있는 용화면 일대는 아무런 규제가 없기 때문에 땅을 보기 위해 찾는 외지인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부동산 업자가 확보한 매물은 있었다. 이 씨가 찾아간 부동산 업자는 "설천 초입에 땅이 있으니 과감하게 투자해라. 휴게소·주유속 적지다. 지금 안 사면 태권도 공원 완공될 때까지 절대 땅 안 나온다. 그렇다고 내려와서 주유소를 하라는 것은 아니다"라며 "지금 사둬서 공원 완공될 때 쯤은 땅값이 지금보다 3배는 오를 테니 그 때 팔면 된다. 토지 매입부터 팔 때까지 모두 대행해주겠다"고 유혹했다.

'평당 100만원, 3억5000만원'이라는 말에 덜컥 겁이 난 이 씨에게 업자는 대출까지 알선해주겠다고 유혹했다. 이 씨는 결국 평범한 가정주부로 돌아왔지만, 부동산 업자는 다른 손님을 상대하느라 옷 자락 한번 잡지 않았다.

이 업자는 토지거래허가제 강화와 위장전입 단속을 피하기 위해 '어디 딴 데 가서 말하지 말라'는 전제로 현지 거주민에게 토지 매입 대금을 빌려주고 시세차익을 나눠 갖는 방식까지 제안했다고 한다. 부재지주(비거주자) 양도세율 60%도 무용지물이다. 이 정도면 투자의 수준을 넘어 투기임이 분명하지만, 국세청의 토지 매입 자금 세무조사를 엄포하고 있지만 자료만 안 남기면 된다며 호언장담했다고 한다.

***"몇 억 씩 남겨먹는 장사에 위장전입 정도야"**

지난 30일 인천지방경찰청은 313명의 부동산 투기사범을 무더기로 적발했다. 인천 송도.청라 경제자유구역 주변의 토지거래허가구역에 위장전입해 토지를 매입한 투기사범이 80명이었고, 영종도 인천국제공항 주변의 공항도시 개발예정지역 아파트의 분양권을 노리고 위장전입한 투기사범이 233명이었다.

멀리 경남 진주에서 치과의원 원장이 친구집에 위장전입해 3억1000만 원짜리 땅을 샀고, 공무원들도 친구 딸 집에까지 위장전입하며 땅을 샀다. 인천에 아는 사람이 없어도 문제될 건 없었다. 위장전입할 집을 알선하는 부동산 업자가 있었음은 물론이다. 부동산 업자는 경찰 단속 정보까지 제공하고 수수료를 챙겨 구속됐따. 이런 전방위 '작전'과 '투기욕구'에 '토지거래허가구역'도 무용지물이었다.

영종도의 경우 더욱 가관이다. 이번에 적발된 투기사범들은 대부분 2003년 이후 영종도 지역의 소규모 빌라를 매입한 사람들이다. 개발이 실시된다 하더라도 '건물보상' 외에는 받을 수가 없다. 사업계획 승인고시일 1년 전인 2002년 8월11일 이전부터 거주하고 있던 현지인만이 '이주자 택지 또는 주택특별공급' 보상대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개발업자에게 속아 분양권도 받지 못하는 빌라를 사들였다. 게다가 이 중 일부는 분양권을 받지 못하는 것을 알면서도 '집단민원' 등 실력행사를 하면 분양권을 받을 수 있다는 판단을 하고 있었다고 한다. 부동산 투기의 실익과 이에 대한 욕구가 이미 제도적 규제틀을 뛰어 넘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다.

또한 이러한 부동산 투기 자금을 유치하기 위해 개발업자들이 거주 효율이 떨어짐에도 불구하고 가격 부담이 적은 10평 안팎의 소형 빌라들을 집중적으로 건축했다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이번 단속을 위해 인천 경찰은 지난 5월초부터 3개월 동안 주민등록 변동 내역을 조회하는 것은 물론, 소유자가 실제로 거주하는지 알아보기 위해 매수 희망자로 위장해 가가호호 방문하는 것은 물론 주변 주민 방문 조사, 전기요금 변동 추이까지 살펴보는 등 상당한 발품과 공을 들였다는 설명이다. 이는 역으로 이 정도의 발품을 들이지 않고서는 투기 세력을 적발할 수 없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번 단속에서 모든 투기사범이 걸려들었다고 볼 수 없다. "개발업자들과 이른바 '기획 부동산'이라 불리는 진짜 투기꾼들은 이미 땅값 올려 팔아 먹고 손을 털었고, 막차를 탄 멋 모르는 사람들만 걸려들었다"는 후문이다. 게다가 앞서 언급한 현지인과 공모한 투기에는 어떠한 규제 대책도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규제는 곧 풀립니다"**

다시 돌아가 충북 영동 용화면과 전북 무주 설천면. '8.31 정부 부동산 대책' 이후 변화를 알아보기 위해 현지민에게 전화를 걸어봤다. 그에 따르면 부동산 업자는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지금은 무주군이 태권도공원 부지 확보를 위해 대상 지역을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묶어 놨지만, 산 속의 공원 부지만 매입하면 나머지 구역은 토지거래허가구역 풀게 돼 있습니다. 지금 일단 사 두고 나중에 규제 풀린 뒤 팔면 됩니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토지거래허가구역'이 조만간 풀릴 것"이라는 근거 없는 믿음을 유포하고 있었다.

주위를 둘러보면 부동산 투기로 돈을 번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그것도 단기간에 수 천에서 수 억 원까지 번 모습을 보면 누구나 종잣돈 마련해 부동산 투기를 하고 싶은 욕구를 느끼게 한다. 근로의욕 상실은 물론 상대적 박탈감마저 갖게 된다. 그렇게 부동산 투기는 전국민이 '위장전입' 정도는 우습게 여길 정도로 각종 탈법과 편법을 낳고, 개발 담당 공무원까지 버젓이 시골에 계신 아버지 명의를 빌려 투기에 나서게 하고 있다.

인천 경찰이 3개월이 넘도록 발품을 파는 노고를 들이지 않았다면 지금도 위장전입자들은 버젓이 앉아 부동산 사이트의 시세란을 보며 땅값이 오르기를 기다리거나, 분양권을 얻기 위한 집단행동을 계획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적발되지 않은 수많은 영종도가 전국에 얼마나 산재해 있는지 솔직히 가늠키 어렵다.

거여 지역의 한 부동산 업자에 따르면 '강남 아줌마 부대'가 있다고 한다. 이들은 막대한 자금력을 이용해 표적 지역을 정한 뒤 주가조작하는 것처럼 자기들끼리 거래하며 땅값을 올리고 빠지는 방식으로 시세차익을 챙긴다고 한다. 그리고 그들의 주요 표적 지역은 정부가 개발 계획도를 그리고 있는 지역들이 대부분이고 심지어 자신들이 직접 개발계획 지역을 예상해 '장난'을 치기도 한다고 한다. 거여 지역도 이들이 이미 한 차례 쓸고 지나가 부동산 가격이 상당히 오른 상태라는 것. 이들이 지금도 버젓이 활동하는 것을 보면 규제와 단속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인사 청탁하면 패가망신 시키겠다"던 노무현 대통령이었다. 하지만 "부동산 투기 하면 패가망신 시키겠다"는 각오로 '투기 신화'의 거품을 걷어내겠다는 의지가 부족했던 것은 아닌가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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