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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의 '우향우', 정답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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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노무현의 '우향우', 정답인가

'바람몰이 계속', '안정감 있는 후보' 기로에

우향우, 해야 하나?
민주당 대통령후보로 사실상 확정된 노무현 후보에게 던져진 첫 번째 질문은 이것이다.

불과 한달 사이에 몰아닥친 '노풍'의 위력은 그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다. 노 후보 스스로도 "비행기 타고 갑자기 올라 어지럽다"고 실토할 정도다. 속칭 전문가들은 '이미 터진 일'에 대해 '사후 설명'하느라 바쁘다. 이 글을 쓰고 있는 기자도 마찬가지다.

어쨌든 '사후 설명'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은 '기존 정치에 대한 식상함'이다. "우리 정치판, 하여튼 뭔가 변해야 한다"는 대중의 정치적 여망이 노무현이란 모멘텀을 만나 응집되고 있다는 해석이다.

그 대중적 정치여망에는 '탈권위' '반부패' '탈지역주의' '철새정치 거부' 등등의 내용이 포함된다. 또 하나 "기존 질서를 거부하고 바꿔야 한다"는 정도의 의미에서 '개혁'이며 '진보'다. ('개혁' '진보'에 따옴표를 친 이유가 있다. 양김 집권 10년을 거치면서 우리사회 개혁-반개혁, 진보-보수, 좌-우파 식의 용어사용이 너무도 혼란스러워져 이중 단 하나의 표현도 사용하기 너무 조심스러워서다.)

이러한 여망들이 '노풍'을 만들었다. 그리고 후보가 됐다.

***'내 색깔' 보다 '당 색깔' 중시**

그런데 왠지 불안하다. 이 바람이 너무 급작스러워 곧 꺼질까 두렵다. '침묵하는 다수'의 힘이 막판까지 바람을 타고 오를지, 바람을 거부할지 확신할 수 없다. 그래서 노무현은 고민한다.

고민의 흔적이 이미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 방향은 '우향우'다.

아니 이 표현이 적절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노 후보 스스로도 자신이 '좌'가 아니라고 했기 때문에 '우향우'할 필요조차 없다고 할 것이다. 맞는 말이다.

'우향우'란 표현 속에는 노 후보가 '좌'라는 규정이 내재된 듯 읽힐 우려가 있다. 하지만 결코 그런 표현은 아니다. 그저 '상대적으로 오른쪽으로 간다'는 정도의 의미다. 노 후보의 기존 위치가 어디쯤인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기존 자신의 위치에서 오른쪽으로 가기 시작한 것은 분명하단 말이다.

"말조심 하겠다"고 했다. "당과 함께 하겠다"고 했다. "이인제 고문도 곧 만나 설득하겠다"고 했다.

당 경선과정에서 노무현 자신만의 색깔을 분명하고 강하게 드러내면서 후보 자리에 올랐지만, 이제 후보가 된 이상 '내 색깔' 보다는 '당 색깔'을 중시하겠다는 분명한 의사표시다. 자신을 '급진개혁'이라고 공격한 '온건중도' 이인제와 함께 하겠다는 것은 분명 '우향우'다.

"특권층들이 자기들끼리 해먹는 풍토를 없애겠다"고 호언장담하던 노 후보가 대통령의 아들 문제에 대해서는 "아직 확실한 게 없지 않느냐"면서 매우 조심스런 자세를 보이고 있다. 집권여당 대통령 후보 예정자로서 현 정권과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하느냐는 대단히 미묘한 문제와 연계되어 있긴 하다. 하지만 어쨌든 뭔가 달라진 것처럼 보인다. 다소 궁색해 보이기도 한다.

***"후보로 확정되면 YS 찾아뵙겠다"**

"지방선거에서 패배하면 재신임을 받겠다"고 한 약속 때문인지 노 후보는 벌써부터 지방선거 진두지휘에 나섰다.

"지방선거 필승의 카드를 갖고 있다"면서 부산시장감을 물색 중이라 한다. 그런데 "후보 확정 후 곧 YS를 찾아 뵙겠다"는 얘기도 나온다. YS는 노 후보가 그토록 비판해 온 3당합당 장본인이다. '지역주의+권위주의+철새정치+부패'로 상징되는 구시대정치의 주역중 하나다.

'탈지역, 탈권위, 철새정치 거부' 등등을 무기로 후보자리에 올랐지만 지방선거 승리를 위해 자신의 무기를 버리고 구시대 정치인의 힘을 빌리겠다는 의사표시다. 역시 '우향우'다.

"미국이 불안하게 본다는 식의 기사를 쓰지 말라"는 말도 했다. "미국은 한국이라는 안정된 나라의 지도자가 바뀌는 데 대해 불안해하지 않는다. 그건 지레 생각하고 불안해하는 한국 사람들의 문제인 것 같다"고 했다.

재계 일각에서 노 후보를 위해 은밀히 뛰는 사람들이 생기고 있다는 얘기도 나돌기 시작했다. 영남권 유력기업 출신 모씨가 거론되기도 한다.

대미관계, 노사관계, 재벌문제 등에서 노 후보가 보여 주었던 그간의 태도가 일종의 불안함으로 확산되는 것을 우려하는 자세다.

***중간층 표심잡기는 선거전략의 기본**

노 후보의 이러한 자세전환은 선거전략상 기초적 상식에 속한다.

무릇 양강 대립구도에서 대통령선거는 중간층 잡기 싸움이다. 노 후보는 한쪽의 폭발적 지지로 바람을 일으켰다. 이제 그 바람을 대세로 굳히고 승리하기 위해서는 중간층을 잡아야 한다.

따라서 평소 자신의 위치에서 중간으로 이동할 수밖에 없다. 이게 바로 '우향우'다. 이런 구도에 입각할 때 향후 대선국면이 본격적으로 전개되어 갈수록 노 후보의 '우향우'는 더 심화되어 갈 것이다.

이점에서는 한나라당 경선에서 압도적 우위를 보이고 있는 이회창 후보 쪽도 마찬가지다. 노풍이 거세지자 이 후보는 '급진개혁 세력의 좌파적 정권 연장기도'라고 말했다. 노 후보를 왼쪽에 위치지우고 자신은 오른쪽임을 분명히 자임하고 나선 것이다.

하지만 이 후보 역시 대선전이 본격화되면 '좌향좌'할 수밖에 없다. 중간층을 잡아야 하기 때문이다.

아니 '좌향좌'는 이미 시작됐다. "개혁적 보수, 개방적 보수, 따뜻한 보수"로 스스로를 규정했다. "역사상 가장 깨끗하고 유능한 정부를 만들겠다"는 말을 했다. '반부패'의 상징으로 과거의 '대쪽' 이미지를 다시 살리려 할 것이다.

이처럼 노무현의 '우향우'나 이회창의 '좌향좌'나 모두 선거전략 교과서의 ABC를 그대로 실천하는 것일 뿐이다. 최근 노 후보는 교과서대로 따라하는 모범생 다운 모습을 보여줬다.

***노무현 고정지지층이 확고한가의 문제**

그러나 문제는 남는다. '노풍'과 '선거전략 교과서'가 맞느냐는 문제다.

노 후보의 '우향우'는 "한쪽(그것을 진보라 부르든 개혁이라 부르든)의 지지는 이미 확보했다"는 판단에 기초한다. "과거와 다소 달라진 행태를 보여도 어차피 그 사람들은 날 찍을 것이다. 이제 날 위험하게 보는 사람들을 내편으로 끌어들여야 한다"는 판단이 '우향우'를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과연 이 전제에 틀림이 없는가? 노 후보의 고정지지층이 그만큼 확고한가? 아직 여기에 확신이 없다.

확신이 서지 않는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그간 역대 대선의 투표행태를 볼 때 '보수-진보' 식의 노선과 성향에 따른 투표행태가 아직 정착되어 있지 못하다는 점이다. 너무도 뚜렷한 지역주의 표심에 의해 대선 결과가 좌지우지되어 왔다.

하지만 노 후보가 지금 전제하고 있는 지지기반은 바로 그 '보수-진보' 식의 노선과 성향에 따른 구분법에 근거한다. 이러한 고정지지층이 과연 확고한 것일까? 얼마나 될까? 안심하기 어렵다.

둘째 '노풍'이 한달만에 벼락치기로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그야말로 '바람몰이'다. 한달만에 3-4배로 뛰어 오른 지지율, 이것이 대통령선거일까지 계속될 수 있을까?

'바람'이 식으면 서서히 지지율이 떨어지는 것은 아닐까? 노 후보의 신선한 매력에 도취해서 흥분했던 유권자들이 다시 옛날 방식으로 돌아서는 것은 아닐까? '지역주의+보수안정회귀+반(反)DJ 정권교체'가 힘을 갖게 되는 건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다.

***'바람몰이 선거'냐 '구도싸움'이냐**

이 점이 노 후보의 딜레마다.
노 후보의 독특한 개성과 색깔을 맘껏 자랑하며 계속 바람몰이를 일으키자니 그걸 위험하다고 보는 사람이 너무도 많다. '더 안정감 있고, 더 다듬어질 것'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크다.

하지만 '노풍'의 중요 요소 가운데 하나가 바로 노무현 후보의 '거친 매력'이라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앞으로 노 후보는 자기 개성을 맘껏 뽐내야 하나, 가급적 감추어야 하나?

'좌-우' '보수-진보' 식의 구분법에서도 마찬가지다. 그간 노사관계, 재벌문제, 언론문제, 대미관계, 국가보안법 문제 등등에서 노 후보의 명쾌하고 분명한 입장표명에 매력을 느낀 사람들이 많다. 노무현의 핵심 추종자들이다. 이들이 '바람'의 진원지였다.

물론 이들은 앞으로 노 후보가 다소 달라진 모습을 보인다고 해서 다른 선택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들이 불러일으킨 '바람'의 위력은 결코 지금까지와 같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앞으로 노 후보는 각종의 정책쟁점에서 분명한 자기 입장을 명쾌히 밝혀야 하나, 아니면 다소 두루뭉술하게 넘어가야 하나?

한마디로 잘라 말해서 '거친 바람몰이'를 계속해야 하나, 아니면 '안정감 있는 후보'가 되기 위해 모습을 바꿔야 하나?

선거전략의 교과서적 지침에 의하자면 이제 노 후보는 그의 약점을 보완해야 하고 강점은 다소 감추어야 한다. 하지만 그러다 '바람'이 꺼질 때 어떻게 할 것인지 대책이 없다.

노무현 캠프와 민주당의 고민은 바로 여기에 있다. 이번 대선을 '바람몰이 선거'로 몰고 갈 것인지, 아니면 치밀한 계산에 근거한 '구도싸움'으로 끌고 갈 것인지의 선택이다. 매 사안마다 똑같은 고민이 되풀이될 것이다. 일도양단 식의 정답은 찾기 어렵다. 어느 정도 절충점을 찾긴 찾아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그 절충점이 과연 어디쯤이냐가 문제다.

후보와 주변사람들 사이의 역할분담도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결국은 노무현 후보 그 자신에 달렸다.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지켜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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