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우리당과 청와대는 11일, 전날 문희상 의장이 제안한 '8.15 대사면'의 대상에 불법대선자금 등으로 구속ㆍ기소된 정치인들의 포함 가능성을 열어두고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일고 있다.
특히 지난 5월 석가탄신일을 맞아 단행됐던 특별사면에 당시 노무현 대통령 측근인 강금원 창신섬유 회장이 포함된 것과 관련, 대통령 사면권 행사 자체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던 한나라당 등 야당들은 이번 정치인 사면 소식에는 "우리가 나서서 주장하지는 않겠다"며 여론의 눈치만 살피고 있다.
***우리당 "은전을 베풀다 보면 정치인도 검토 가능"**
여당과 청와대는 광복 60주년을 맞아 국민통합을 위해 대대적인 사면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당 '대사면 태스크포스팀(TFT)'의 한 위원은 이날 <프레시안>과의 통화에서 "기본적인 사면의 방향은 일시적인 과오를 저질러 생계에 지장을 받거나 사회 활동에 장애를 받는 서민들과 중소기업인들에게 과감하게 은전을 베풀어 생활에 불편함이 없도록 하자는 것"이라면서 "큰 폭의 은전을 베풀다 보면 정치인과 공직자도 함께 검토할 수 있다"고 정치인의 포함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았다.
김만수 청와대 대변인도 오후 브리핑에서 '8.15 사면'과 관련해 "특별히 정해진 입장은 없다"며 "당에서 건의한 것처럼 '8.15 사면'이 국민통합이라는 측면에서 결실이 있다면 검토해볼 수 있다. 그러나 일반 사면과 정치인 사면으로 나눠 검토하지는 않았다"고 밝혔다. 원론적인 입장이지만, 정치인 사면을 배제한 것은 아니다.
'8.15 사면'의 대상 정치인으로 여권에선 정대철, 이상수 전의원과 이재정 민주평통수석부의장, 노 대통령의 측근인 안희정씨, 여택수 최도술 전 청와대 비서관 등이 대상자로 거론된다.
한나라당 쪽에선 최근 가석방된 김영일 전의원, 서정우 변호사와 서청원 전대표, 신경식 최돈웅 전의원이 거론된다.
***한나라 "우리가 나서서 주장하지는 않을 것"**
한나라당은 공식적으론 정치인 사면에 부정적 입장을 취하고 있지만, 당내 인사가 여럿 연루돼 있는 만큼 드러내놓고 반대를 하기엔 곤혹스러운 기류가 감지된다.
전여옥 대변인은 정치인 사면에 대한 찬ㆍ반을 묻는 질문에 "원칙을 지킨다"는 말로 답을 대신했다.
전 대변인은 정치인 사면에 대해 "불법대선자금에 연루된 정치인들에 대해 가슴은 아프지만, 정략적으로 접근해선 안된다"며 "누굴 빼주고 말고 하는 식으로 여당과 물밑협상을 하는 일은 절대로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 중진의원도 <프레시안>과의 통화에서 "합리성과, 신중성, 형평성"을 사면의 원칙으로 거론하면서 정치인 사면에 대한 입장과 관련해서는 "언급하지 않겠다"고 입을 닫았다.
당 관계자는 "우리가 나서서 사면을 주장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드러내놓고 정치인 사면을 주장하기에는 여론의 눈치가 보이지만, 여권이 사면을 적극 추진하면 암묵적 동의하겠다는 뉘앙스다.
***민주 "공개적인 언급은 안하기로", 민노 "정치인 사면 반대"**
민주당에서도 비슷한 기류가 감지된다. 유종필 대변인은 "정치인 사면에 대한 국민의 여론이 따가운 것이 사실"이라면서도 "하지만 무조건 비판만 할 수는 없고, 전체적으로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이 혼재해 있다"고 말했다. 그는 "당에서도 의견이 혼재해 있어 공식 논평은 하지 않기로 했다"고 말했다.
상대적으로 불법대선자금에서 자유로운 민주노동당만 정치인 사면에 공개적으로 반대 입장을 밝혔다.
민노당 천영세 의원단대표는 평화방송 라디오프로그램 <열린세상오늘 장성민입니다>에 출연해 "민생사범과 서민 범죄에 대해 사면을 통해 국민 대화합으로 가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불법 대선자금을 수수한 정치인과 부패한 재계인사를 포함시키는 것은 적절치 않다"며 "그것은 오히려 국민통합이 아니라 서민들의 박탈감과 상실감을 가중시킬 수 있다"고 밝혔다.
***야당, 사면법 개정안 발의 후 6월 임시국회에선 방치**
정치인 사면에 대해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원칙적 입장'은 지난 5월 석가탄신일 특별사면 단행 때 두 당이 보여준 모습과는 대조적이다.
당시 강금원 창신섬유 회장이 특별사면 대상에 포함된 것과 관련,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강도 높게 비판하면서 대통령의 사면권을 제한하는 사면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하기까지 했다. 한나라당 이성권 의원은 당시 사면법 개정안을 제출하면서 "사면이 지나치게 자주 행사되고 원칙과 기준이 불분명해 사법권 침해가 일어나는 등 삼권분립 원칙을 어기고 있다"고 밝혔다. 이 의원은 개정안에서 형 확정 이후 1년이 초과하지 않은 사람을 특별사면 할 때는 국회 동의를 얻도록 했다.
한나라당 심재철 의원도 개정안을 발의해 선거법 및 정치자금법에 관련된 정치인의 경우 사면심사위원회의 4분의 3 이상의 찬성을 받아야 사면대상에 포함시키도록 했다.
한편 민주노동당 노회찬 의원과 민주당 이낙연 의원은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정치인은 원천적으로 특사 대상에 포함시킬 수 없도록 하는 개정안을 제출해 놓은 상태다.
그러나 야당에서 사면법 개정안을 무려 5개나 발의해 놓았지만 6월 임시국회에선 전혀 논의가 되지 않았다. 5월 석탄일 특사 당시 광복 60주년을 맞아 대대적 사면이 있을 것이란 전망이 이미 문희상 의장 등을 통해 언급되는 등 정치인 사면은 예견된 상태였다.
이에 대해 참여연대 의정감시센터 이지현 간사는 <프레시안>과의 전화통화에서 "지난 5월 특별사면 당시 야당이 한 목소리로 대통령 특사를 강도높게 비판하면서 사면법 개정안을 내놓더니 지난 6월 임시국회에서 전혀 논의하지 않고 방치했다"며 "이번 8.15 사면에서 정치적 이해를 챙겨보겠다는 속셈이 아니었는지 의문이 든다"고 비판했다.
이 간사는 "지난 석탄일에 단행된 불법대선자금과 관련된 경제인들에 대한 사면이 아무 명분이 없었듯이 정치인들에 대한 사면은 '법 앞에 평등'이라는 원칙에 어긋나며 오히려 사회통합을 저해하는 행위"라고 강도 높게 비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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