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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로 가면 한나라당은 '민정당' 될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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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이대로 가면 한나라당은 '민정당' 될 판"

<인터뷰> 부총재 사퇴한 이부영 의원의 개탄

"이대로 가면 5월9일 전당대회 이후 한나라당 모습은 과거 '민정당의 복당'이 될 것이다. 어제(18일) 총재단 회의에서도 이렇게 얘기했다."

한나라당 이부영 부총재는 19일 기자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문을 열었다.

"김덕룡, 홍사덕, 강삼재, 서청원 의원까지 경선에 안 나가겠다고 하고, 나도 나갈 수 없다. 그럼 최병렬, 양정규, 김기배, 박희태, 김정숙, 하순봉 등 뿐인데, 이게 민정당 복당이 아니고 뭐냐?"

"'87년 6월 이전으로 당의 체제, 사고방식, 가치 등 모든 것이 되돌아가는 것이다. 그런데 만약 민주당에 노무현 후보가 되면 어떻게 하려는지. 이 총재가 이런 문제를 제대로 알고나 있는지 모르겠다."

***나가자니 그렇고, 있기도 그렇고**

이회창 총재는 19일 그간의 당 내분 수습책으로 '총재권한대행체제'를 내놓았다. 이에 대해 당내 비주류와 개혁파 의원들은 즉각 "결국 당을 독점하겠다는 제왕적 발상"이라며 크게 반발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탈당하자니 정치적 환경이 간단치 않다. '신당' 바람은 박근혜, 정몽준 의원 등이 선점한 상태라 탈당을 하면 그 속에 휩쓸려 버릴 수 있다. 그렇다고 따로 또 '개혁신당'을 만들기엔 역부족이다.

그렇다고 해서 당에 머물러 있는다 해도 이 총재의 독주, 당의 과거회귀가 계속되는 한 뚜렷이 설 자리가 없다. 대선 승리조차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이 닥칠지 모른다는 게 요즘 비주류들이 느끼는 위기감이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 한나라당 개혁파 비주류의 고민이 깊어간다.

이부영 부총재의 답답한 속마음 토로가 계속된다.

***"이 총재, 참 드라이(dry)한 사람이다"**

"김덕룡 의원 같은 이는 '이런 당에 있을 수 없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개개 의원들, 지구당위원장들 입장에선 지금 6월 지방선거에 묶여 있다. 자기 밑에 사람들이 다들 단체장, 의원직에 입후보하고 경선을 치르고 있는데, 이 사람들에게 같이 당을 나가자고 할 수 없는 처지다."

이부영 부총재는 이렇게 속내를 털어 놨다.
지구당을 직접 꾸려 가는 지역구 의원의 현실적 고민이다. 지구당 '동지'들에게 함께 탈당하자고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이들을 놔두고 혼자 나가자니 인간적으로도 어려운 일이고, 또 다음 선거 치를 걱정도 크다는 얘기다.

"이 총재는 이런 사정을 알고 '그래 봐야 나가지 못한다' 하면서 밀어붙이고 있는 것이다.
앞으로 대선 치룰 때도 이렇게 밀어붙여서야 어떻게 선거운동을 할 수 있겠는가. 이렇게 해서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한다. 우리가 당에 남아 있는다 해도 이런 상황에서 선뜻 나서서 뭘 할 수 있겠는가?
이 총재, 참 드라이(dry)한 사람이다. 법이 드라이한 것이긴 해도..."

이부영 부총재는 그간의 당내 분란과정에 주위로부터 '어영부영'하는 게 아니냐는 눈총을 받으면서도 여러 차례 중재안을 내놓았었다. 집단지도체제 도입시기를 앞당기는 안을 내놨고, 박근혜 의원 탈당 이후엔 김덕룡 의원 등에게 총재경선에 나갈 것을 설득하기도 했다.
하지만 성사된 게 없다.

이번 경우에도 총재단회의 등을 통해 이 총재에게 당 안팎의 상황을 고려, 획기적인 단안을 내려 줄 것을 촉구했다. 일시적으로 받아들여지는듯 했다. 하지만 결국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참 드라이(dry)한 사람'이란 표현에는 바로 이런 과정에서 오는 이 총재 개인에 대한 섭섭함이 깊이 배어 있는 듯 했다.

기자는 "어차피 권력투쟁 아니냐"고 반문해 봤다. 권력투쟁은 드라이(dry)할 수밖에 없지 않느냐는 얘기였다.
이 부총재는 이에 대해 "권력투쟁이라 해도 지금 하는 권력투쟁은 이 총재가 위협 받아서 하는 게 아니다. 지금은 모든 걸 완전히 독점하겠다는 건데, 이건 말이 안된다"고 잘라 말했다.

***"박근혜 대통령후보 모시고 당을 할 수는 없다"**

"김덕룡 의원 같은 이가 궁지에 몰렸다. 탈당을 깊이 고민하고 있는데 지금 탈당해서 자칫 잘못하면 박근혜 대통령후보 모시고 당을 하게 생겼는데, 그래서야 되겠는가?"

"정치인은 자기 마음대로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상황에 휩쓸려 가 버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지금은 '개혁신당'을 하려 해도 박근혜 바람, 정몽준 신당론 등에 끌려갈 위험이 크다. 그렇다고 지금 민주당으로 가나?
그러니 같이 나갈 수도 없고, 곤혹스러운 처지다."

이 부총재는 이렇게 탈당을 감행하지 못하는 또 하나의 보다 중요한 원인을 밝혔다. 민주당엔 '노무현 바람', 당 바깥엔 '박근혜 바람'이 몰아쳐 한나라당 개혁파들의 설 자리가 없어진 상황, 그 상황을 적시한 것이다.

"만약 노무현씨가 민주당 후보가 되면 한나라당은 '색깔론, 계급론, 불안정' 이런 구도로 선거를 치루려 할 것인데, 이렇게 되면 한나라당내 개혁세력에게는 정말 힘든 상태가 된다. 또 노무현 후보가 확정되고 지방선거를 치룰 때 서울시장이라도 민주당이 가져가 버리면 이회창 총재는 대선에서 어려워지는 것 아니냐?"

이 부총재는 이렇게 한나라당의 앞날에 대한 불안함도 털어놨다.
선거구도는 '87년 이전 과거로 회귀하고, 결국 한나라당이 패배하고 마는 상황 말이다.

그는 그런데 말미에 묘한 한 마디를 덧붙였다.

"노무현씨가 민주당 후보로 확정되고 나면, 민주당에서도 보수적 의원들 가운데 못 견딜 사람이 있을 것이다."

듣기에 따라선 노무현 후보 확정 이후 여야를 막론한 대폭 정계개편의 가능성을 암시하는 발언이다.
특히 노무현 고문이 벌써부터 "내가 후보가 되면 정계개편을 하겠다"고 공언하고 있는 마당이라 이 부총재의 발언은 간단치 않게 들렸다.

민주당에선 보수적 의원들이 못 견디고, 한나라당에선 개혁파 의원들이 못 견디는 상황, 그런 상황이 벌어진다면 새로운 판짜기가 있을 수도 있는 것 아니냐는 생각일까?

***"고민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뭔가 되겠지..."**

부총재직을 사퇴할 것인지 물었다.

"오늘 저녁부터 여러 사람을 만나서 깊이 고민해 봐야겠다. 솔직히 한나라당 개혁파 의원들은 지금 몹시 곤혹스러운 상황에 빠졌다. 고민하는 사람이 많다. 이런 사람들이 많아지고 고민이 깊어지면 뭔가 되겠지..."

"이 총재도 지금 고민하는 사람들을 보완하지 않으면 큰 일 난다. '87년 이전으로 회귀하려는 세력만으론 정권을 잡기도 어렵고, 잡고 나서도 굉장한 어려움이 뒤따를 것이다."

"DJ 정권이 정치를 제대로 못하고, 부정부패와 국기문란이 계속되는데도 왜 한나라당이 제대로 못하는지 안타깝다. 지금 정권교체가 절체절명의 과제다. 이걸 이루려면 당이 하나로 뭉쳐야 하는데 총재가 이런 상황을 제대로 모르고 있는 듯하다."

고민중인 이부영 부총재는 이렇게 말을 맺었다.

이 부총재는 인터뷰 다음날인 20일 오전 부총재직 사퇴를 발표했다. 그의 말대로 간밤에 여러 사람을 만나 상의한 결과인듯 싶다.
그는 사퇴이유를 "김대중 정권의 부패와 실정에 따라 국민의 정권교체 열망이 비등하고 있음에도 한나라당은 별다른 노력없이 집권할 수 있다는 막연한 환상에 빠져 민심을 얻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이부영 의원의 고민은 지금 한나라당의 위기구조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보여주는 증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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