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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판 베이브루스' 이영민 등 야구공로자 10명 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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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판 베이브루스' 이영민 등 야구공로자 10명 선정

[프레시안 스포츠]이영민 타격상의 발자취

한국야구위원회, 대한야구협회가 구성한 야구 1백주년 공로상 선정위원회가 21일 초창기 야구보급과 발전에 공헌한 10명의 공로자를 선정했다. '한국야구의 아버지'인 질레트를 비롯해 '한국판 베이브 루스' 이영민, '인천야구의 대부' 김선웅 등이 주인공이다.

***한국의 야구왕 이영민**

한국야구 1백주년 공로상 선정위원회(신현철 등 9명)가 선정한 공로패 수상자는 금철, 김선웅, 김영조, 박현덕, 유억겸, 이영민, 이원용, 이효, 질레트, 허성 씨다.

이들 중 1958년 이래 매년 최고의 고교야구 타자에게 주는 '이영민 타격상'으로 잘 알려진 이영민은 장타력에다 빠른 발을 갖춰 투포수 등 전포지션을 소화했던 국내야구 초창기의 최고 인기스타였다.

이영민은 일제강점기하에 있던 1932년 메이저리그 올스타팀이 일본에 방문했을 때 일본대표팀에 속할 정도로 실력을 인정받았던 인물이다. 1928년 6월8일 경성운동장(현 동대문운동장)에서 열린 경성의전(일본팀)과의 제1회 정기전에서 이영민은 개장이후 국내선수 첫 홈런을 뽑아내기도 했다. 베이브 루스가 1920년대 경제공황에 빠져있던 미국인들에게 가공할만한 홈런포로 희망을 안겨줬다면 이영민은 야구로 일본인들 앞에서 한국의 자존심을 세웠던 셈이다.

***이영민 타격상의 발자취**

대한야구협회는 1957년 이영민 타격상을 제정해 전국대회에서 최고타율을 기록한 고교선수에게 지금까지 이 상을 수여하고 있다. 이영민 타격상을 수상한 대표적 인물은 백인천, 최관수, 이광환, 정현발, 김일권, 이만수, 김건우, 김경기 등이다.

프로야구 원년 '꿈의 타율' 4할을 기록했던 백인천은 1959년 경동고 재학시절 최고타자의 영예를 누렸고 전 군산상고 감독으로 널리 알려진 최관수(당시 동산고)는 이듬해 이영민 타격상의 주인공이 됐다. 1972년 황금사자기 결승에서 9회말 역전승을 일구며 '역전의 명수'라는 별명을 얻은 군산상고와 최관수 감독의 일화는 <고교결전 자 지금부터야>라는 제목으로 영화화될 만큼 유명하다.

야구계의 진정한 스승으로 통하는 최관수 감독은 고된 훈련을 이기지 못하고 이탈한 선수들에게 "너희들을 잘못 가르친 내 잘못이니 나를 방망이로 쳐라"는 말로써 군산상고 선수들의 단합을 이뤄낸 일화는 지금까지도 야구팬들의 가슴속에 남아있다.

프로야구 첫 홈런의 주인공이자 프로야구에서 유일하게 타격 3관왕을 기록한 '헐크포' 이만수도 1977년 이영민 타격상을 수상한 바 있으며 지난 해에는 유신고의 3년생 투수 최정(현 SK와이번스)이 최고의 자리에 올라섰다.

***제2의 이영민, 김영조도 야구공로자 10인에 이름올려**

선수시절 제2의 이영민으로 불린 김영조는 60년대 실업야구 장기 페넌트레이스를 만드는 등 아마야구 발전에 큰 공헌을 했고 김선웅, 박현덕은 각각 인천야구의 양대산맥인 인천고와 동산고의 감독으로 오랫동안 재직하면서 숱한 스타들을 배출시켰다.

일본인팀 경성의전과 정기전을 펼치며 한국야구의 자존심을 세웠던 연희전문의 학감이었던 유억겸도 한국야구 10명의 공로자에 이름을 올렸다. 또한 진보적 색체가 강한 자유신문의 기자로서 전국중등학교야구대회를 제안해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는 청룡기대회가 탄생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던 금철도 공로자에 포함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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