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5 재보선이 끝나자 한나라당과 자민련의 정책공조가 가시화되고 있다. 이에 따라 DJP 공조를 통해 여당이 추진해왔던 개혁정책 가운데 논란이 되었던 정책들이 국회에서 재론되고 일부는 백지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 경우 이른바 '개혁입법의 후퇴'에 대한 시민단체와 관련 이익단체, 그리고 민주당 등의 반발이 거세질 것으로 보여 귀추가 주목된다.
지난 25일 한나라당 김만제 정책위의장과 자민련 정우택 정책위의장은 회동을 갖고 앞으로 두 당간의 공동관심 정책에 대해서는 사안별로 공조를 취하기로 했다.
두 당의 정책위의장은 특히 한나라당이 반대하고 자민련도 소극적 입장을 보였던 논란의 정책들에 대해서는 ‘잘못된 정책’이라는 인식을 같이하고 백지화 또는 개정하기로 의견을 모은 것으로 알려졌다.
두 당은 우선 국민건강보험법 개정안을 통과시키기로 합의했다. 이 개정안은 직장가입자와 지역가입자의 재정을 통합한다는 건강보험 재정통합안을 백지화시키는 내용이다. 한나라당은 지난 26일 국회 보건복지위 전체회의에 이 개정안을 전격 상정했다.
건강보험 재정통합안은 직장의보와 지역의보의 재정을 내년 1월1일부터 통합한다는 안으로 지난 99년 2월 여야 합의로 국회본회의를 통과했다.
그러나 이 안이 통과된 후 자영업자의 소득파악률이 낮아 직장인들과의 형평성이 어긋난다는 위헌 논란 등 반발이 끊이지 않았다. 현재 의료보험료의 적용기준이 되는 소득이 직장인은 100% 파악되는 반면에 지역의보 가입자인 자영업자들에 대한 소득파악률은 절반 가량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반발이 거세지자 정부는 지난 6월 내년부터 법적 통합은 하되 재정계정은 5년간 분리 운영한다는 방침을 정했다. 실질적인 통합을 유보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나라당은 이는 편법이라며 의보재정을 분리하는 개정안을 6개월전에 제출했고, 지난 26일 보건복지위에 전격 상정한 것이다.
***방송위원회법, 남북교류협력법, 교원정년 관련법도 개정**
이와 함께 한나라당은 방송위원의 각 당 지분을 조정하는 방송위원회법, 교사의 정년을 62세에서 63세로 올리는 교원정년 관련법, 일정규모 이상의 남북교류사업은 국회의 심의를 거치도록 하는 남북교류협력 관련법안 등 자민련이 제안한 법안에 대해서도 지지하기로 했다.
두 당은 또 앞으로 의약분업 등에 대해서도 개선안을 상정하고 이번 정기국회에서 예산심의안에 대해서도 체계적인 공조을 취하기로 합의했다.
현재의 국회의석 분포로 보아 두 당의 연합의석이 151석으로 과반수를 훨씬 초과하기 때문에 두 당간에 합의된 법안들은 국회통과가 가능하다.
이렇게 될 경우 민주당은 매우 곤혹스러운 상황에 처하게 된다. 특히 건강보험 통합, 교원정년 관련법 등은 여당이 개혁정책의 일환으로 추진한 것이어서 한-자 공조를 통해 백지화될 경우 여당이 가장 내세우는 개혁의 성과를 원점으로 돌리는 결과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민주당 이미경 제3정조위원장은 29일 한나라당과 자민련이 추진하고 있는 방송법과 건강보험법 개정안에 대해 정부 정책의 일관성과 신뢰성을 훼손하려는 의도로 규정하고 적극 반박했다.
또한 이 사안들은 과거 입법과정에서 시민단체와 관련 이익단체들이 얽혀 무수한 논란을 거듭해 온 사안들이며, 국민생활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쟁점들이어서, 이 법안들이 백지화하거나 개정되는 경우 각 당과 시민단체 등 국회 내외에서 또 한번의 논란이 벌어질 가능성이 높다.
***'힘자랑용 정치적 시위' 아니냐는 지적**
따라서 이러한 쟁점 법안들에 대한 한나라당과 자민련의 백지화 내지 환원 입장이 과연 제대로 된 여론수렴 과정을 거친 것인지, 또한 충분한 후속 대책들이 준비되고 있는지 반드시 짚어져야 할 것이라는 목소리가 높다.
충분한 여론수렴과정을 거치지 않고, 또한 후속대책 준비도 없이 이미 시행중인, 혹은 준비중인 쟁점들을 되돌린다면 10.25 재보선 뒤 야권의 과반수 이상 의석을 과시하기 위한 '힘자랑용 정치적 시위'가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될 수 있는 것이다.
당초 건강보험 통합문제는 농어민 단체와 지역의보 조합, 한국노총 등 관련단체들이 각각의 이해관계에 따라 찬반 양론으로 갈라졌고, 의약분업 사태와 맞물려 큰 논란을 빚어 왔다. 이러한 와중에 여야 영수회담에서 여야가 합의 통과시키기로 합의해 일단 매듭지어진 것이 또 다시 원점으로 돌아갈 경우 논란이 다시 촉발되어 혼란을 가중시킬 우려가 크다는 것이다.
또 교육개혁의 차원에서 65세인 교사의 정년을 62세로 낮춘 것을 다시 개정해 63세로 올리는 문제도 다시 한번 정책혼란과 논란을 초래할 것이라는 지적이 있다.
이미 수많은 논란 끝에 이미 2만2천여명의 교원이 교단을 떠났고 내년과 후년에 2만3천여명의 교원을 충원하는 정책을 집행키로 한 마당에 자칫하면 본질을 흐린 채 교직원들의 인기에만 영합하는 법안이 되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남북교류협력 법안에 대해서도 여당과 진보적 시민단체들은 벌써부터 남북교류를 위축시키려는 보수적 입법이라고 공격하고 있다.
방송위원회법의 경우는 야당공조의 목표가 훨씬 분명히 드러나 보인다. 대통령 추천 몫을 없애고 전원 국회 추천으로 바꾸게 될 경우 현재 여야 5:4(민주 5, 한나라 2, 자민련 2)의 구성이 즉각 4:5(민주 4, 한나라 4, 자민련 1)로 뒤바뀌게 된다.
그야말로 수적 우위에 바탕을 둔 자기 몫 챙기기인 셈이다. 이렇게 되면 정치권으로부터 중립적이어야 할 방송위원회가 매번 여야 의석 분포의 변화에 따라 휘둘리게 된다.
***충분한 여론수렴과 후속대책 준비 필요**
이처럼 건강보험 통합, 교원정년, 남북교류협력, 방송위원회 모두 해당 영역에서 충분한 여론수렴을 거쳐 후속대책을 마련해야 할 복잡한 사안들이다. 현재가 과연 개혁적인 것인지, 아니면 되돌리는 것이 바람직한 것인지 관련 전문가들과 이해 당사자들 조차 견해가 대립되고 있다.
이러한 쟁점들에 대해 한나라당-자민련 공조가 단순한 정치적 힘과시용으로만 밀어부친다면 국가경제와 국민생활에 미칠 악영향이 매우 클 것이라는 우려가 높다. 특히 내년 선거가 다가올수록 여야의 복잡한 정치적 이해관계가 얽혀 이러한 혼란은 더욱 가중될 가능성도 크다.
재보선 이후 국정개혁에 협력하겠다는 여야 지도부의 입장 표명이 향후 어떤 내용으로 구체화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한편 이러한 한-자 정책공조에 대해서 자민련측은 29일 경제, 민생현안을 협의하기 위한 여야정책협의회를 구성하자고 촉구하며 ‘한나라당 및 민주당과는 사안별로 선택적 공조를 해나가겠다’는 입장을 피력, 한나라당과의 일방적 공조라는 해석을 경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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