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5 재보선 종반전에 접어들면서 야당이 일방적으로 승리할 것이라는 당초 예상과 전혀 다른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서울 구로을과 동대문을 지역구에서 민주당이 미세한 차이의 백중 우세, 한나라당은 백중 열세라고 자인하는 양상이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또한 19일 한국신당 김용환 의원과 무소속 강창희 의원이 한나라당 입당을 선언할 것으로 알려져 이들의 입당선언이 이번 재보선 승패 관건의 하나인 충청권 표의 흐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정가의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이번 선거는 단순한 재보선이 아니라 내년 지방선거와 대선을 앞둔 전초전이라 할 수 있다. 말하자면 본격적인 선거판을 짜기 이전에 각 당이 민심을 실전에서 부딪쳐 보는 마지막 기회인 것이다. 게다가 DJP 공조 붕괴, JP-YS의 신당 창당 움직임 등 정가에 새로운 변화가 시작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이번 재보선의 결과, 그리고 재보선에 나타난 표의 흐름은 향후 정치권 개편 전반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분석된다.
***낮은 투표율 때문에 예측 어려워**
이번 재보선이 시작되면서 정치권에서는 대부분 한나라당이 일방적으로 낙승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용호 게이트 등 여당의 부정부패에 대한 인식, 꽁치어장 상실 및 고이즈미 방한 후유증, 남북관계의 고착화 등에 따른 전반적인 민심이반의 정황 때문이었다.
그러나 실제 선거전에 돌입한 결과 상황은 전혀 다르게 치열한 접전으로 전개되고 있다. 동대문을은 민주당이 백중우세, 한나라당이 백중열세라는데 두 당이 일치하고, 구로을은 민주당은 백중우세, 한나라당은 백중세라고 밝히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실제 투표율이다. 역대 재보선거의 평균 투표율이 30% 내외라는 점을 감안하면 여론조사는 추세만을 나타낼 뿐 실제로 믿을 수 없다는데 각 당 관계자들의 의견이 일치한다. 투표율이 30% 미만이라면 일반 주민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는 사실상 신뢰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관건은 어느 당 성향의 사람들이 실제로 투표장에 더 많이 나오느냐는 것이다. 이 점에서 두 당은 매우 고심하고 있다. 과거와 같은 여야관계라면 여당은 관권, 금권 선거로 주민들을 투표장에 동원할 수 있고, 야당은 고정 지지세력을 동원하는 것으로 대결하기 때문에 어느 정도 예측이 가능했다.
그러나 정권교체 이후 이러한 관계가 변화되었기 때문에 여야 가운데 어느 쪽이 과연 더 많은 지지층을 동원할 수 있는 지에 대해서는 예측이 어렵다. 바로 이 점이 각 당의 선거관계자들이 희망과 걱정을 오가게 만들고 있는 요인이다.
현재 한나라당은 권철현 대변인이 공개적으로 “서울 두 곳에서 열세”라고 고전을 인정하면서 정권 부정부패 의혹의 확산 등 막판 뒤집기를 위한 지지세력의 결집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민주당 역시 결과를 낙관할 수 없다면서 경계를 게을리하지 않고 있다.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투표율이 낮은 재보선의 경우에는 보통 여론조사에서 7% 이상 앞서야 어느 정도 승리를 자신할 수 있는데 현재 5%미만의 차이를 보이고 있어 결코 안심할 수 없다”고 말했다.
***중앙 정치쟁점, 지역에 잘 안 먹혀**
이 점에서 이번 선거에는 각 당의 선거전략가들을 당혹케 하는 몇 가지 중요한 점들이 드러나고 있다.
첫째는 정권교체 이후 총선과 몇 차례의 재보선에서 적용되어 왔던 선거전략과 이슈가 주민들에게 더 이상 통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간단히 말해서 그동안의 정권심판론, 즉 부정부패와 특정지역의 인사문제 등으로 정권을 공격하면서 민심 이반에 기대려는 한나라당의 전략이 한계를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반대로 지역발전과 구체적인 민생문제를 집중적으로 파고드는 여당의 전략이 어느 정도 성과를 보이고 있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이번 선거전에서 한나라당은 정권심판론으로 공격에 나섰고, 민주당은 지역발전론으로 맞서고 있다.
동대문을의 경우 민주당 허인회 후보는 ‘정치싸움 끝 지역발전 우선’을 캐치프레이즈로 들고 나오면서 선거구내 각 지역별로 세분화된 발전전략을 제시하고 있다.
반면 한나라당의 홍준표 후보는 이에 대해 정권심판을 내세우며 현 정권의 실정, 특히 이용호 게이트를 겨냥하여 ‘모래시계 검사’의 이미지를 부각시키고 있다.
그러나 지역의 분위기는 이러한 대결이 접전을 벌이고 있으나 자세히 보면 허 후보에게 약간 높은 점수를 주고 있는 분위기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홍 후보가 똑똑하긴 하지만, 부지런하고 일 잘할 사람은 허 후보’라는 것이다.
이러한 분위기의 이면에는 허 후보가 오랜 동안 지역기반을 다지면서 지역발전을 위해 구석구석을 누벼왔다는 점이 가장 크게 작용하고 있다.
이에 비해 홍 후보는 9월10일에야 뒤늦게 공천을 받아 지역사정에 상대적으로 어둡고 전임 위원장으로부터 당 조직을 인계받는데 상당한 시간을 소요했다. 실제로 홍 후보는 합동연설회에서 지역발전을 공약했다가 그 공약 가운데 하나가 이미 허 후보 측의 제안으로 시행되고 있다는 것을 뒤늦게 알고 당황했다고 한다.
***조직적 표밭관리와 지역발전론 위력적**
“유리한 정국이므로 민주당 공천을 보고 천천히 하겠다. 후보공천을 서두르지 않아도 된다”는 한나라당의 여유가 선거전을 더욱 어렵게 만든 한 이유가 된 셈이다.
구로을의 경우는 이러한 상황에 인물론이 겹쳐 있다는 평가이다. 일단 외견상으로는 동대문을과 반대로 한나라당 이승철 후보가 터줏대감 격이고 민주당 김한길 후보가 도전하는 양상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이곳도 이승철 후보의 정권심판론과 김한길 후보의 지역발전론이 대척점을 형성하고 있다. 그리고 지역발전론이 우세를 점하고 있다.
김한길 후보는 신도시 프로젝트 등 지역발전 전략을 적극 제시하고 있고, 힘 있는 정치인이라는 인물론을 가미하고 있다. 반면에 이승철 후보는 정권심판론을 주로 제시하는 바람에 오히려 지역구의 터줏대감이라는 강점을 살리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상황을 종합해 보면 이번 재보선에서는 중앙정치의 이슈가 의외로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중앙정치의 흐름에 매우 민감한 서울지역에서는 의외의 현상이라 할 수 있다.
이를 확대해석해 국민들이 지금 국회에서 여야간에 벌어지고 있는 ‘폭로와 의혹정치’에 염증을 느껴 더 이상 귀를 기울이지 않고 있다는 정치불신론을 제기하는 사람들도 있다.
사실상 주민들의 관심이 아주 낮다고 한다. 합동연설회도 별로 열기가 없고 일상사에 바쁘기 때문에 별다른 반응이 없다는 것이다. ‘합동연설회장 청중은 지역주민 절반, 각 당의 선거관계자 절반’이라는 농담처럼 정치무관심이 팽배한 점이 중요한 포인트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이를 확인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어쨌든 이번 선거는 아직까지는 중앙정치의 이슈가 바람을 일으키지 않고 있는 가운데 여당의 화려하고 정교한 홍보전이 야당의 구태의연한 정권심판론에 비해 우세를 점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충청표의 흐름, 최대 관심**
여기에서 또 한 가지 주목되는 점은 이른바 충청표의 향방과 관련, DJP공조 붕괴 이후에도 충청표의 여권이탈 현상이 두드러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현재 동대문을의 경우 충청표가 16% 정도로 추산되고 있고 구로을은 호남에 이어 두 번째로 많다.
자민련은 동대문의 경우에는 한나라당에 표를 몰아준다는 의미에서 후보를 공천하지 않았고, 구로을의 경우는 여권표 분산을 노려 후보를 공천했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선거전에서 충청표의 뚜렷한 결집방향이 드러나지 않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 점에서 자민련은 자민련대로 캐스팅보트에 필요한 만큼의 지지도가 확인되지 않아 고민이다. 그리고 한나라당은 충청표의 이탈에 대한 필요성을 더욱 절실하게 느끼고 있다. 당초 연말쯤으로 예정되어 있던 김용환 의원과 강창희 의원의 한나라당 입당선언이 전격 앞당겨진 것도 이러한 배경으로 분석된다.
이러한 상황 때문에 정치권에서는 이번 재보선결과가 각 당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이번에 확인된 민심은 현재 급속히 진행되고 있는 정계개편의 방향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만약 한나라당이 서울 2곳에서 패배할 경우 가장 먼저 공천책임론이 대두되고, 이회창 대세론에 타격을 입힐 것으로 보인다. 한나라당 자체에서는 ‘자만심에 의한 안일한 공천이 이번 선거를 망쳤다’는 여론이 많은 만큼 향후 이회창 총재의 지도력과 당내 주류를 비판하는 비주류의 목소리가 커질 것은 자명하다. 또한 지금 당내에서 한창인 보수-개혁 논쟁도 가열될 것이다.
***선거결과, 3당과 정계개편론 모두에 영향 커**
이 점에서는 민주당도 마찬가지다. 민주당은 이번 선거 결과와 관계없이 내부 권력투쟁이 가시화할 것이라는 것이 대체적인 관측이다. 권노갑-한화갑, 양갑의 싸움이 점차 주류와 비주류 연대의 싸움으로 본격화할 것이라는 전망이 그것이다. 게다가 선거에 패배한다면 권력투쟁의 시기는 앞당겨질 공산이 크다.
이 때문에 당지도부는 올 연말이나 내년 초쯤에 또 다시 당정체제를 개편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관측된다. 지방선거를 치루고 차기 후보를 선출하는 과정을 잡음 없이 관리하여 이탈자를 막으려면 어차피 현 체제로는 어렵기 때문이다.
이러한 민주당과 한나라당의 사정과 달리 가장 다급하게 된 것은 자민련이다. 자민련은 이번 재보선에서 별다른 역할을 하지 못함으로써 향후 정계개편에서 자칫하면 종속변수로 전락할 우려가 크다. 또 김용환.강창희 두 의원의 입당으로 한나라당의 자민련 해체 전략이 노출된 만큼 향후 분명한 비전을 보여주지 못한다면 당의 유지가 어렵다는 위기감이 급속히 확산될 수도 있다. 따라서 JP는 신당 창당을 서두를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YS-JP의 신당추진 역시 선거결과에 영향을 크게 받을 것으로 보인다. 이번 선거에서 한나라당이 절대적으로 유리한 여론의 지원을 업고도 득표에 실패한다면 그것은 YS가 주장하는 대로 한나라당이 민심을 제대로 대변하지 못한다는 것을 입증하는 셈이 된다.
반면 한나라당이 압승을 거둔다면, 그리고 표분석 결과 충청표가 여권을 이탈 한나라당 쪽으로 결집된 것으로 드러난다면 신당에 대한 회의론이 커져 추진력을 잃게 될 수도 있다.
이처럼 이번 재보선 결과는 한나라, 민주, 자민련, 더 나아가 각종의 정계개편 움직임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특정 지역에 국한된 재보선이라는 점, 그리고 (투표율이 낮게 나온다면) 전체 민의를 대변한 선거결과가 아니라는 해석 등으로 선거결과의 영향을 낮게 평가하려는 목소리도 물론 나올 수 있다.
하지만 그보다는 이번 선거결과를 각자의 다음 행보를 위한 계기로 삼으려는 세력들이 더 많다. 정기국회의 대정부질문 조차 재보선 선거전으로 바꿔 놓을 만큼 각당이 사활을 걸고 선거전에 임하는 까닭은 바로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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