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영구 신임 국정원장 임명을 계기로 청와대와 한나라당의 대립이 극으로 치닫고 있다. 25일 노무현 대통령이 고 원장에 대한 임명장 수여식을 강행한 데 대해, 한나라당은 고 원장에 대한 해임권고 결의안과 인사청문회법 개정을 추진키로 하는 등 강력대응을 선언하고 나섰다. 청와대는 그러나 고원장에 이어 서동만 교수까지 국정원 기조실장으로 임명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등 단호한 '정면돌파'의지를 보이고 있다.
***정형근,"盧가 오기 부리는 것"**
박희태 권한대행은 26일 "잘못된 대통령의 국회관을 교정하기 위한 정치투쟁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노대통령으로부터 "국정원이 권력의 시녀때 행세하던 사람"이라고 직격탄을 맞은 정형근 의원은 "대통령이 서동구 KBS 사장 임명의 무산과 재보선 패배에 따라 여기서 밀려서는 안된다는 판단 때문에 오기를 부리는 것"이라며 "이제 대통령과 국회의 허니문은 끝났다"고 주장했다.
노 대통령이 25일 고영구 국정원장 임명을 강행한데 대한 거대 야당의 '선전포고'인 셈이다.
25일 열린 한나라당 긴급 의원총회에서도 "대통령 탄핵"발언까지 나올 정도로 노 대통령에 대한 성토의 목소리가 높았다.
안택수 의원은 "헌법 제65조에는 대통령이 직무집행에 있어 헌법이나 법률을 위반한 때에는 탄핵소추를 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며 "이념적으로 문제가 많은 고씨를 국정원장에 임명한 것은 자율과 조화를 바탕으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더욱 확고히 해야 한다는 헌법조항을 위배한 것으로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를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종희 대변인은 의원총회 직후 "대통령의 현 시국인식과 국회를 바라보는 인식에 중대한 문제가 있기 때문에 5월 임시국회를 소집하겠다"며 "법안 심사 및 정부 예산 처리를 거부하는 등 원내 투쟁을 강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대통령의 비대한 권한을 제지하고 인사청문회에서 나타난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한 법안을 마련할 것"이라며 "고영구 국정원장에 대한 '해임권고 결의안'을 제출할 것"이라고 밝혔다.
예산안 처리와 관련, 그는 "민생문제 등 시급한 문제에 대해선 심의를 통해 처리하겠지만, 대통령의 공약은 의결해주지 않거나 대폭 삭감시키겠다"고 말했다.
***인사청문회법 개정 추진 방침**
이같은 한나라당의 강경 대응은 재보선 승리를 계기로 청와대와 본격적인 정치대결을 벌이겠다는 의도로 풀이돼 주목된다. 그러나 당 지도부의 강경기조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홍준표 의원은 25일 "국정원장 임명을 예산 문제와 연계한다는 것은 과잉대응이며 바람직하지 않다"며 지도부의 움직임에 제동을 걸었다. 그는 영남권 일부 중진 사이에서 제기된 대통령 탄핵 검토론에 대해서도 "국회의원의 말도 무거워야 한다"면서 "대통령 탄핵문제를 그렇게 쉽게 꺼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그동안 여당과 창구역할을 맡아온 이규택 총무도 26일 오전 MBC 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에 출연, "추경이나 민생법안과 연계시킬 생각은 없다"고 말했다. 이 총무는 그러나 "이른바 빅4의 경우 국회가 인준하는 것은 위헌이지만 가부의견을 넣는 것은 위헌이 아니다"면서 "가부의견 표시도 임명 여부에 대한 법적 구속력은 없으나 현행 제도와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고 말해 인사청문회법 개정에 대한 의지를 확인했다.
이와 관련, 한나라당은 '대통령이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국회 의사를 존중해야 한다'는 규정의 삽입을 검토, 5월 임시국회 소집을 통해 대통령 권한을 견제하는 쪽으로 인사청문회법 개정을 추진할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 서동만 교수도 기조실장 임명 기류**
이같은 한나라당의 강경기류에 대해 청와대는 이미 예상했던 반응이라며 강력한 '정면돌파' 의지를 밝히고 있다.
문재인 민정수석은 25일 국회 정보위에서 고영구 국정원장과 함께 사상검증 공세를 받았던 서동만 상지대교수에 대해 "서교수는 장점이 많은 사람이다"며 그를 국정원 기조실장에 내정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고영구 국정원장도 24일 문재인 수석에게 전화를 걸어 "서교수에 대해 신뢰를 갖고 있으며 높게 평가하고 있다"며 서교수와 함께 국정원을 개혁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한때 서동만 교수를 배제할 수밖에 없는 게 아니냐는 입장을 비쳤던 문희상 대통령비서실장도 25일 국회 운영위에서 "서교수를 내정한 사실은 없지만 후보군에서 제외되지 않았다"며 "임명이 될 수도 있고 안될 수도 있다"고 한걸음 발을 뒤로 뺐다.
청와대의 이같은 기류는 노 대통령이 '정면돌파'를 결심한 데 따른 반응으로 알려지고 있다.
청와대 기류를 감지한 민주당도 "거대야당의 오만과 월권이 도를 넘었다"면서 한나라당을 강력 비판하고 나섰다.
이평수 수석부대변인은 논평에서 "한나라당이 상생과 신뢰정치의 상징인 특검법 재협상 약속을 어긴 데 이어 급기야 거대 다수당의 힘만으로 인사청문회법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공언하고 나선 것은 산적한 국내외적 현안을 도외시한 전형적인 국정농단의 작태"라고 비난했다. 그는 "한나라당이 구시대의 냉전적 잣대로 국정을 농단하고 취임 갓 2개월된 대통령에 대해 탄핵 운운하면 나라의 미래를 걱정하는 국민으로부터 냉소를 받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장전형 부대변인은 "한나라당이 새정부가 출범하자마자 외교, 문화, 행자, 법무장관에 이어 국정원장 임명마저 극렬하게 반대하는 것은 지나치다"며 "더욱이 대통령의 인사권을 제한하는 입법과 대통령 탄핵까지 주장하는 야당의 행태는 국민에게 `의회독재'를 하고 있다는 인상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정가에서는 노대통령의 단호한 정면돌파 의지를 계기로 개혁신당을 만들려는 여권의 정계개편 시도가 본격화되는 등 앞으로 정치권에 일대 지각변동이 일어날 것으로 내다보며, 귀추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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