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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에게 개혁에 참여할 수 있는 무기 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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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국민에게 개혁에 참여할 수 있는 무기 줘야"

<박원순 변호사> 盧당선자에게 바라는 개혁의 방향

“노무현 당선자가 그나마도 개혁적인 정부를 구상하고 있기 때문에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노 당선자가 온전히 모든 개혁을 다 이룰 수 있다고는 보지 않는다.”

일주일 뒤 출범을 앞둔 노무현 정부를 바라보는 ‘아름다운 재단’ 박원순 상임이사의 시선은 기대반, 의심반이었다.

‘아름다운 가게’, ‘아름다운 재단’을 통해 기부운동에만 몰두하고 싶다는 게 솔직한 심경이라지만, 시민운동의 거목인 박 이사는 최근에도 여야 의원들과 함께 정치개혁추진 범국민협의회(가칭) 활동을 펼치는 등 활발한 정치개혁 운동에 나서고 있다. 지금 이 시기가 우리나라의 미래를 결정지을 중차대한 시점이라는 판단에서다.

15일 오후, 토요일이라 더욱 북적이는 ‘아름다운 가게’ 사무실에서 박 이사를 만나 변화된 정치 환경과 현재 시민운동이 처한 좌표를 바라보는 그의 견해를 들어봤다.

***“개혁을 위한 일관된 컨셉이 부족하다”**

최근 노 당선자를 비롯한 여권의 개혁논의에 대해 박 이사는 “개혁을 위한 일관된 컨셉과 우선순위 설정이 부족한 상태에서 아이디어 차원에서 개혁 프로그램이 쏟아지고 있다”고 비판했다. 박 이사는 “집권 초기에는 5년 동안의 개혁 플랜을 제대로 정리하고 체계화시키는 것이 필요하다”면서 “개혁을 지속적으로 점검하고 조정하고 평가해서 다시 재조정하는 컨트롤 타워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를 위한 제도적 장치로 그는 “청와대의 대통령 비서실 기능과 자문 기능을 재조정하는 기구로서 개혁을 총체적으로 관리하는 기구가 있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박 이사는 또 노무현 정부가 “시민단체가 제안하는 여러 정책을 수용한다 하더라도 반드시 잘 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며 “부패문제만 하더라도 김대중 정부의 잘못을 보고도 (노 당선자가) 공직비리조사처 공약을 사실상 철회했고 청와대에 사정팀을 두겠다고 한다”고 꼬집었다.

또한 노 당선자가 “시민단체가 형식적 균형주의에 맞춰 독 깬 사람도 꿀밤 한대, 접시 깬 사람도 꿀밤 한대 식이었다”고 말한 대목과 관련, 박 이사는 “집권여당이 그릇을 하나 깬 것은 권력을 잡고 있는 책임이 크기 때문에 야당이 독을 깬 것보다 더한 비판을 받아야 한다”며 “노 당선자가 아직도 그런 생각을 가지고 직무를 수행한다면 실수할 가능성이 상당히 크다”고 지적했다.

***“국민들에게 개혁에 참여할 수 있는 무기를 줘야…”**

노무현 정부에서의 시민단체의 역할에 대해선 “시민단체의 정책은 수용될 수 있으되 그 과정에 인적인 유착은 있을 수 없다”고 분명한 선을 그었다.

새 정부에 시민단체 출신 인사들이 중용될 것이라는 관측에 대해서도 “지금 참여하고 계신 분들이 시민단체에서 상근직을 가졌다거나 상징성을 가질만한 분들은 아니라고 본다”며 “일부 언론이 시민단체의 위상을 흔들려고 하는 것”이라고 일축했다.

박 이사는 또 “노무현 정부가 참여정부라고 하지만 고립화된 개인개인이 참여하기는 어렵다. 결국은 시민단체를 통한 참여를 의미하는 것”이라며 “정부가 개혁을 하려들지 말고 국민들에게 개혁에 참여할 수 있는 무기를 줘야 한다”고 말했다. 예컨대 증권 집단소송제 도입 등을 통해 소비자로서의 권한을 부여하면 “기업을 감시하는 효과가 높아져 저절로 생산성이 향상된다”면서 “이런 것이 전 국민을 개혁의 주체로 만드는 비법”이라고 말했다.

***“대북송금 해법, 진상조사가 우선”**

박 이사는 작금에 논란이 되고 있는 대북송금사건과 관련해서는, “외교를 비롯해서 비밀리에 수행돼야 할 부분이 전혀 없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중요한 정책은 기본적으로 공개되고 의회에서 논의돼야 하는 것”이라며 “법치주의 사회에서 법을 어긴다는 것은 있을 수 없고 그것을 통치행위라는 이름으로 합리화시킬 수 없다”고 말했다.

대북송금 사태의 해법에 대해선 “특검은 기소를 전제로 하는 것이니까 좀 그렇고, 국정조사를 하면 여야가 매일 싸움만 하고 진상조사는 제대로 못할 수 있다”고 반대 입장을 밝힌 뒤 “여야 국회의원과 제3의 인사들까지 포함하는 진상조사단을 꾸려서 일단 진실을 드러내도록 하고 그 후에 국익을 평가해 처벌이 필요한지 여부를 결정하는 수순이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다음은 15일 오후 아름다운 가게 사무실에서 1시간동안 진행된 박원순 변호사 인터뷰 전문.

***“우리 사회에 투기적이지 않은 것이 뭐가 있나”**

프레시안 : 요즘 '아름다운 가게'에 대한 인지도가 많이 높아진 것 같다. 시민들 호응도 좋은 것 같고.
박원순 : 사람들의 잠재적 욕구가 있는 것 같다. 내가 영국에 살 때 벼룩시장이 열리는 곳에 가보면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쇼핑센터 가면 좋긴 하지만 막상 사기는 망설여지지 않나. 물건과 사람을 분리하는 경향이 있어 그렇지 않나 싶다. 그에 반해 아름다운 가게는 물건은 헌 물건이고 누군가 쓰던 물건이지만, 그 물건에는 삶의 진한 체취나 역사가 묻어난다. 그런 점이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것 같다. 재활용센터나 중고가게는 너무 지저분하거나 물건이 제한돼서 사람들이 가도 살 것이 없다. 우리는 다양하게 매일 바뀌니까 인기가 있는 것 같다.

프레시안 : 물건을 사고싶어 하는 분들은 많은 것 같은데, 기증을 하는 분들의 참여는 어떤가. 처음엔 주로 유명인사 기증품들로 홍보가 돼서….
박원순 : 많이 좋아졌다. 이젠 물건 사러온 분들도 자기 집에 안 쓰는 물건을 갖다 놓고 사간다. 그리고 전국에서 계속해서 택배로 보내주기도 한다. 가게 운영하시던 분들이 업종 전환할 때 보내준 물건들은 새것이 많다. ‘아름다운 가게’가 늘어나면 새로운 공급처가 많아져야 하겠지만 지금으로서는 잘 돼가지 않을까 생각한다. 다만 겉으로는 아름다운 가게이지만 일하는 사람들은 실제로 노가다다. 추운 겨울에도 밖에서 일한다. 아름다운 일을 하려면 뒤에서 아름답지 못하게 고생해야 하는가보다.(웃음)

프레시안 : 올해 안에 20호까지 개점 목표를 가지고 있다던데.
박원순 : 처음이 언제나 힘든 것 아닌가. 지금 3호점도 준비중이다. 잘 되리라고 생각한다.

프레시안 : 엉뚱한 얘기지만 요즘 로또 열풍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아름다운 돈벌기, 혹은 아름다운 돈쓰기와는 사뭇 다른 현상으로 보여져 묻는 말이다.
박원순 : 도박에 대한 열망은 인간의 본질적 요소 중의 하나인 것 같다. 우리나라는 오히려 그런 것이 금기시 되다보니 오히려 호기심이 폭발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자연스럽게 그런 것을 엔터테인먼트로 만들어 줄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물론 도박에 몰두해서 패가망신하는 등 지나친 것이 문제이지, 사람들이 일상생활 속에 재미삼아 하는 것을 너무 문제삼는 것이 오히려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 같다. 우리가 사회를 좀 더 건강하게 만들어 가면 저절로 사라질 것으로 생각한다.

따지고 보면 우리 사회에 투기적이지 않은 것이 뭐가 있나. 자본시장 자체가 투기적이지 않나. 소액주주 운동을 해 보니까 소액주주들이 그 회사를 정말 건강하게 키워서 그 과실을 따려는 데 목적이 있는 게 아니라 그냥 단기적인 이익에 집착하는 경향이 강하다. 그런 것도 완전히 투기 아닌가. 건전한 생각을 가졌다면 주주로서 그 회사를 감시하는데 참여해야하지 않나. 총회 때 보면 기념품만 받고 총회장에는 올라오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 식으로는 건전한 금융시장, 건전한 기업, 건전한 경제가 만들어 질 수가 없는 것이다. 온 사회 전체가 정당한 노동에 대한 정당한 수입이 보장되지 않는 투기적 사회니까 로또 같은 것도 비정상적으로 생겨난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사회를 정상화시키면 그런 부분들도 정상화되리라고 생각한다.

프레시안 : 앞으로 집중하고자 하는 계획도 아름다운 재단 쪽에 실려있는 듯 한데.
박원순 : 아름다운 재단과 아름다운 가게에 집중하고 싶다. 참여연대는 어느정도 체계가 돼 있으니까 후배들이 알아서 잘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재단이 돈 많이 벌고, 가게도 많이 확장했으면 좋겠다.(웃음)

***“개혁 플랜의 체계화가 시급”**

프레시안 : 요즘 돌아가는 시국 얘기 좀 하자. 대선 이후 개혁이라는 말을 참 많이 한다. 그러나 정치권에서 진행되는 개혁의 실상을 보면 개혁의 본류는 잃어버리고 지엽말단적으로 흐르고 있는 경향이 있는데.
박원순 : 개혁이라는 게 특별한 일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일신 우일신’이라는 말처럼 매일 개혁하는 게 아니겠나. 개인에게나 집단, 조직, 국사사회에 있어서나 개혁은 일상화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개혁이라는 것이 노무현 당선자가 나왔기 때문에 개혁이 되는 것이 아니라, 이회창 후보가 됐더라도 개혁은 불가피한 것이었다고 본다. 개혁은 필연적인 것이다. 다만 개혁을 못하는 쪽은 정체하거나 쇠퇴하는 것이고 개혁을 잘 이뤄내는 쪽은 발전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사회의 개혁이라는 것은 일제시대부터 내려오는 권위주의와 전근대성, 봉건성, 비민주성, 비인간성들을 제거하고 보다 인간적이고 민주적이고 상식적인 사회로 가는 것이다. 그 과도기에 아직도 우리사회가 있다고 생각한다. 노태우 정권이 문민적 외양을 띄고 있었지만 군부의 연장선 아니었나. 김영삼 대통령 때도 부분적 개혁이 있었지만 여전히 한계가 있었다. 마찬가지로 지금도 개혁이 지속적으로 이뤄지는 단계라고 생각한다.

노 당선자가 그나마도 개혁적인 정부를 구상하고 있기 때문에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노무현 당선자가 온전히 모든 개혁을 다 이룰 수 있다고는 보지 않는다. 지금 보면 너무 파편적이고 무질서한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개혁을 위한 일관된 컨셉과 우선순위와 단계가 정해지고 치밀한 개혁구상과 청사진이 꾸며지지 못한 상태로 아이디어 차원에서 마구 나오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걱정도 든다. 그런 것을 제대로 감시하고 일정하게 견인을 해 내는 것이 시민사회의 역할이라고 보여진다. 노무현 정부 이후에도 적어도 한 두 텀 정도의 개혁 정부가 더 나와야 뒤쳐진 전근대성, 비합리주의, 반민주성, 비인간적 사회가 바뀌는데 성공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개혁은 초반기에 강력히 밀어붙여야**

프레시안 : 개혁의 총체적 플랜이 없다는 말로 이해하겠다.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라든가 새정부가 설정해야 할 개혁의 우선순위에 대한 조언을 하자면 어떤가.
박원순 : 노무현 당선자가 집권을 전제로 체계적인 구상을 정리했다고 보기는 어렵지 않나. 게다가 집권과정에서 역할을 했던 정치세력이 준비를 했다고 보여지지도 않는다. 인수위의 두달여 과정 밖에 없었다.

따라서 집권 초기에는 5년 동안의 개혁 플랜을 제대로 정리하고 체계화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그런 다음에도 개혁을 지속적으로 점검하고 조정하고 평가해서 다시 재조정하는 컨트롤 타워가 필요하다. 여태까지의 개혁은 대통령이 일방적으로 개혁안을 발표하는 수준이었지 정교하게 체계화된 개혁이 이뤄진 적은 없었다. 그런 면에서 청와대의 대통령 비서실 기능과 자문 기능을 재조정하는 기구로서, 개혁을 총체적으로 관리하는 기구가 있어야 하는 게 아닌가하는 생각이다.

프레시안 : 하지만 노무현 정부의 집권 초반기가 순탄치만은 않을 것 같다. 아무래도 북핵 문제나 대북송금 사건같은 당면 현안이 걸림돌로 작용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박원순 : 우리사회는 복잡다난한 사회다. 정권에게 아무 부담이 없는 깔끔한 상황이 만들어질 수는 없다. 집권기간 내내 어떤 문제 건 있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미국처럼 일종의 허니문 기간같은 것도 있기 어렵다. 문제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점을 당연시 해야한다. 오히려 그런 문제들을 말끔하게 잘 처리하는 과정에서 초반기의 문제해결 능력이나 대처능력을 갖춰나갈 수 있는 것이다. 어쩌면 김대중 정부에서 이뤄진 대북 송금 문제는 새 정부의 향방이나 어떻게 운영해 나가야 할 지에 좋은 교훈이 되리라고 생각한다.

개혁정책은 초반기에 강력히 밀어붙여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다른 정치적 세력에 대한 억압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지금 요구되는 리더십은 개혁 드라이브를 세련되게 끌고 가느냐이다. 지난번에 노 당선자가 야당을 방문한 것 등은 좋은 시도로 보여진다. 서청원 당시 한나라당 대표도 좋게 얘기하지 않았나. 가는 말이 고우면 오는 말 고울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 여야는 정책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공유되는 부분이 더 많다. 오늘 아침에도 박희태 대표권한대행이 남북의 특수성이 있다는 점을 부인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 문제에 관한 솔직담백한 견해의 교류가 있고 모두 논의하고, 국민에게도 알리고 호소하면서 분위기와 절차를 가져가면 야당도 반대만 하겠느냐는 생각이다. 물론 야당이 뒷다리 잡을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정치라는 것이 그런 부분을 대화로 풀어가는 것 아니겠나. 그런 모습을 국민들에게 보여야 지지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대북 송금 해법, 진상조사가 우선**

프레시안 : 대북 송금문제를 어떻게 보나. 실정법을 위반한 절차상의 하자가 있지만 남북관계의 발전이라는 내용적 성과도 부인할 수 없는데.
박원순 : 논란이 있을 때는 언제나 원칙으로 되돌아가서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기본적으로 우리는 법치주의 사회다. 통치행위라는 것은 과거 전제정부 시절에나 있을 수 있는 이론이다. 물론 외교를 비롯해서 비밀리에 수행돼야 할 부분이 전혀 없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중요한 정책은 기본적으로 공개되고 의회에서 논의돼야 하는 것이다. 만약 대북송금 문제가 밝혀져서 안될 문제였다면, 국회 차원에서는 논의가 됐어야 하는 것 아닌가. 물론 그랬다면 한나라당이 순순히 허용했겠냐고 할 수 있지만, 앞서 말했듯이 그렇기 때문에 설득이 필요한 것이다.

법치주의 사회에서 법을 어긴다는 것은 있을 수 없고, 그것을 통치행위라는 이름으로 합리화시킬 수 없다고 생각한다. 물론 북한에 대한 지원의 필요성은 1백% 인정한다. 독일의 경우도 실제로는 평화를 산 것이다. 통일은 결과적으로 온 것이다. 그런 점에서 남북문제도 북한이 어려울 때 더욱 지원을 해야 평화도 이뤄지고 통일의 분위기도 무르익는 것이지, 엄격한 상호주의로 나간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

하지만 그런 필요성은 인정해도 비밀리에 이뤄질 수는 없는 것이다. 한나라당이 상호주의를 주장해왔지만 만약에 김대중 대통령이 야당과 처음부터 협력하고 대화했다면 이렇게까지는 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모든 것은 불신과 대화의 부족 때문에 첨예해 지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이회창 후보의 상호주의 견해도 나중에는 상당부분 바뀌지 않았나. 처음부터 김 대통령이 그랬다면 야당도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프레시안 : 김 대통령이 이 문제에 대해서 직접 해명을 했는데, 야당과 국민들은 전적으로 수긍하는 분위기는 아니다. 어떻게 해결돼야 하겠나.
박원순 : 이 단계에 와서는 참 어려운 문제다. 국민들 일부나 야당은 사실 자체에 대한 의구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것을 보여주는 과정이 무언가 더 있었으면 좋겠다. 특검은 기소를 전제로 하는 것이니까 좀 그렇다. 국정조사를 하면 여야가 매일 싸움만 하고 진상 조사는 제대로 못할 수 있다. 그렇다면 여야 국회의원과 제3의 인사들까지 포함하는 진상조사단을 꾸려서 일단 진실을 드러내도록 하고 그 후에 국익을 평가해 처벌이 필요한지 여부를 결정하는 수순이 됐으면 어떤가 하는 생각이다. 특검이나 검찰 조사 이전에 그런 진상을 조사할 수 있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본다.

프레시안 : 여권에서는 정치적 타결로 마무리되는 것이 국익의 차원에서 바람직하다고 하는데.
박원순 : 여야의 정치적 타결이 그냥 되지는 않을 것 같고, 국민들로서도 진상을 아는 것이 필요하니까 진실에 대한 객관적이고 공정한 진상조사가 선행돼야 한다고 본다.

***“정치권, 기존의 생각과 관행을 바꿔야…”**

프레시안 : 정치개혁추진 범국민협의회(가칭)에 참여하는 것으로 안다. 최근 정치개혁에 대한 토론회에도 몇 차례 참여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정치권 상황을 실제로 느낀 바는 어떤가.
박원순 : 우리가 그동안 정치개혁과 관련해서 많은 아이디어를 냈다. 그런 것이 지금가지 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래서 이제 우리가 바깥에서만 얘기하지 말고 정치인들과 함께 해보자는 취지에서 시작했다. 얼마간 해보니까 역시나 정당차원에서는 힘들더라. 그래서 동의하는 의원들만 같이 하자고 했다. 지금까지 그런 활동이 없었다. 지금까지는 시민단체가 일방적으로만 주장했지 여야 정치인을 다 모아서 해 낸 것은 처음이다. 이제 참여하는 의원들이 60~70명 된다. 그런데 이게 언론에 잘못 보도돼서 정계개편을 위한 뭔가가 아니냐고들 하는데 그랬다면 내가 들어갈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큰 욕심은 내지 말아야 하겠다. 국민대토론회 두세번 해서 아이디어를 모아내고 공유하는 과정을 거쳐서 기어코 반대하는 것은 안되더라도 온 국민이 동의할만한 안을 하나 만들어 내면 상당한 의미가 있지 않겠나.

프레시안 : 각 당에서 독자적으로 추진되는 정치개혁 논의는 어떻게 보나.
박원순 : 민주당은 안이 이미 나와있고 개인적으로는 한나라당 개혁특위에 가서도 얘기를 한 적 있다. 어느 당이건 진통과 혼란이 있을 것이다. 이해관계가 있고 기존의 생각과 관행을 바꾸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니까 어렵다. 그런 부분에도 시민단체의 압력이 필요할 것이다.

***“정책은 수용될 수 있으되 인적 유착은 없을 것”**

프레시안 : 노무현 당선자가 시민단체와의 관계를 상당히 강조한다. 일각에서는 이를 두고 밀월관계에 대한 우려를 하기도 한다.
박원순 : 글쎄. 밀월관계가 뭘 의미하는지 잘 모르겠다. 노 당선자가 친 NGO적인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은 분명한 것 같다. 노 당선자가 개혁적인 정책을 밀고 나가려면 개혁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는 우군을 확보하는 것이 좋지 않겠나. 그런 면에서 노 당선자의 입장에서는 시민단체들이 매력적으로 보일 것이다. 함께 가려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그러나 아이러니컬하게도 시민단체 입장에서 보면, 친 NGO적이고 개혁적 주장들을 쉽게 수용하는 정부라면 한편으로는 굉장히 부담스러운 것이다. 시민단체들의 요구를 다 받아들이면 시민단체들이 할 일이 없어진다. 시민단체는 비개혁적인 정부와 싸우는 것이 모양이 나고 존재가치가 더 빛나는 것 아니겠나. 그렇다고 비개혁적인 정부가 들어서는 것이 좋은 일은 아니다. 사회 발전을 위해서는 개혁적 정부가 들어서는 것이 좋다. 그런 것이 야당 입장에서 보면 시민단체가 여당과 친밀한 관계를 형성하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하지만 어느 정부가 시민단체가 주장하는 것만큼 온전히 개혁 요구를 추진해 나가겠나. 나는 절대로 그렇지 않을 것으로 본다. 따라서 끊임없는 견제와 견인과 감시가 늘 필요한 것이다.

프레시안 : 시민단체의 협조를 요청한 것이겠지만, 노 당선자는 시민단체가 너무 세세한 면까지 비판하는 것이 아니냐고 했다. 잘잘못을 가리는데 형평성을 기계적으로 적용한다고도 했다.
박원순 : 그릇하나 깬 것하고 독 하나를 깬 것하고 똑같이 취급하는 것이 서운하다는 취지의 말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민주당은 그릇을 깬 것이고 한나라당은 독을 깬 것인데 양비론적으로 다루는 것은 어긋나지 않느냐는 말이다. 그때 내가 사회를 보고 있었는데 이런 말을 했다. 집권 여당과 야당은 차이가 있다. 집권여당이 그릇을 하나 깬 것은 권력을 잡고 있는 책임이 크기 때문에 야당이 독을 깬 것보다 더한 비판을 받아야 한다고 했다. 비판에 있어서는 엄정할 수밖에 없지 않냐는 것이다. 만약 노무현 당선자가 아직도 그런 생각을 가지고 직무를 수행한다면 실수할 가능성이 상당히 크다고 생각한다. 어떻게 집권여당이 야당과 같나. 그래선 안되겠지만, 야당은 때로 무책임한 주장도 할 수 있겠지만 집권여당은 차원이 다른 것이다.

프레시안 : 일각에서는 김대중 정부 초기에 시민단체가 비판과 견제 역할을 제대로 못한 것이 결과적으로 아들 비리 등 안 좋은 방향으로 흐르도록 내버려둔 게 아니냐는 책임론도 있다.
박원순 : 나는 꼭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 부분이 있었다면 시민단체마다 성격이 다르기 때문이다. 시민단체 일반을 뭉뚱그려 얘기하는 것은 온당치 못하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분명히 제2건국위 할 때도 반대했고 아무도 안들어갔다. 민화협에도 참여연대는 들어가지 않았다. 사소한 정부 위원회에도 들어가지 않은 단체들이 많이 있다. 우린 개혁통신을 통해서 끊임없이 비판하고 아들 비리가 터졌을 때도 강하게 비판했다. 할 수 있는 일은 다 했다고 생각한다. 시민단체 전반으로 일반화할 비판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시민단체가 김대중 정부와 유착한 근거를 대라면 없다.

낙선운동을 예로 들면, 한나라당에서는 홍위병으로 몰아붙였는데 시민단체가 정부와 무슨 관계를 가졌다는 근거는 아무것도 없었다. 부패 문제만 하더라도 부패방지법 제정하라고 얼마나 끊임없이 요구했나. 우리 간사들이 며칠 밤을 세우면서 싸웠다. 근거없는 비판은 많은 시민단체들에게 굉장한 상처를 준다고 생각한다. 비판하려면 정확하게 팩트를 가지고 해야 한다.

프레시안 : 새정부에 시민단체 출신 인사들이 대거 중용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면서 밀월관계에 대한 의구심이 더욱 커지는 것 같다.
박원순 : 그것도 일부 언론의 과잉 보도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인수위에 누가 가있나. 학자 몇 사람 간 것이다. 그 사람들은 전문가 그룹이다. 자기 지식을 파는 것이다. 지금 참여하고 계신 분들이 시민단체에서 상근직을 가졌다거나 상징성을 가질만한 분들은 아니라고 본다. 그런 분들이 새정부에서 어떤 역할을 맡는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무슨 얘기를 할 수 없는 노릇이다.

실제로 그것을 부정적으로만 볼 것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만약 현직 사무처장이나 과거에 시민단체의 대표적인 역할을 했던 사람이 들어간다면 좀 문제가 있을 것이다. 비난받아도 맞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지금 가 계신 분들은 한시적으로 직책을 맡았기 때문에 시민단체가 위상을 훼손할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일부 언론이 시민단체의 위상을 흔들려고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다.

프레시안 : 노무현 정부에서 시민단체가 해야할 역할과 선을 그어야 할 부분은 무엇이라고 보나.
박원순 : 노무현 정부에서 내세우고 있는 주장이나 정책 중에 참여연대에서 주장했던 것이 참 많다. 복지부분, 재벌개혁, 사회개혁, 정치개혁 등 많은 부분에서 그렇다. 예컨대 경실련이 주장한 토지공개념이나 금융실명제 등은 참 신선한 주장이어서 YS 정부가 받아들이지 않았나. 참여연대도 마찬가지다. 부패방지법, 소액주주운동, 집단소송법, 납세자 소송법 등을 많이 했다. 그런 부분이 일부 DJ 정부에서 받아들여졌고, 노무현 정부에서 훨씬 많이 받아들여지리라고 보는데, 다만 정책은 수용될 수 있으되 그 과정에 인적인 유착은 있을 수 없다.

정책이 받아들여지는 과정에서 참여연대 같은 선도적인 운동을 하는 단체들에게는 위기가 올 수밖에 없다고 본다. 위기란 것은 아젠다 세팅, 즉 사회에 대한 정책적 제안들이 고갈되면 그 단체는 아무리 잘 해도 쇠퇴의 길을 걷게 돼 있다는 것이다. 농담삼아 후배들에게 이런 얘기를 한다. 새로운 아젠다를 만들어내는 싱크탱크 역할을 하던지, 아니면 깃발을 내리고 해산하던지 둘 중의 하나라는 농담같은 얘기를 했다. 극단적이긴 하지만 그런 생각을 선도적인 운동을 하는 단체들은 가져야 한다.

하지만 이 정부가 참여연대의 여러 주장들을 수용한다 하더라도 반드시 잘 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부패문제만 하더라도 김대중 정부의 잘못을 보고도 공직비리조사처 공약을 사실상 철회했고 청와대에 사정팀을 두겠다고 한다. 이것은 아니라고 본다. 부패방지를 위한 새로운 시스템을 만들 고민이 있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는 이미 우리가 비판하지 않을 수 없는 부분이 생겨나고 있다.

***“전 국민을 개혁의 주체로 만들어야…”**

프레시안 : 김대중 정부 5년동안은 시민단체가 발전해 온 시기라는 평가가 많다. 김대중 정부 시절의 시민운동의 역할에 대한 평가를 한다면.
박원순 : 영향력이 커진 부분은 분명히 있다고 본다. 그러나 그것은 전지구적 현상이다. 왜냐하면 시민단체들이 공익적 사안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필연적으로 뉴스밸류가 높을 수밖에 없고 국민들의 관심이 높아지고 성장할 수밖에 없다. 미국에서도 의회에 다양한 로비 그룹이 있지만 시민단체들의 로비력과 파워가 늘어나고 있다. 전세계적으로 봐도 월드뱅크나 WTO 회의하면 수만명의 시민단체 회원들이 모이지 않나. 그것은 전지구적 현상임을 말해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한국의 경우의 특색은 민주화 운동의 경험이 있기 때문에 시민단체에도 운동성, 투쟁성이 강하다는 것이다. 유기적 네트워크도 상대적으로 잘 돼있다. 낙선운동이 전국적으로 활성화된 것도 그렇지 않나. 하지만 김대중 정부라서 성장했다기 보다는 세계적인 추세라고 생각한다.

노무현 정부도 참여정부라고 하지만 고립화된 개인 개인이 참여하기는 어렵다. 결국은 시민단체들을 통한 참여를 의미하는 것이다. 진정으로 개혁을 하고자 한다면 정부가 개혁을 하지말고 국민들에게 개혁에 참여할 수 있는 무기를 줘야 한다. 납세자로서, 소비자로서, 주주로서, 혹은 유권자로서의 다양한 권한을 국민들에게 부여하면 투명성과 책임성이 확보된다. 예컨대 소비자로서 집단소송제와 제조물 책임법을 주면 기업의 제품을 감시하는 효과가 훨씬 높아져 저절로 생산성이 향상되게 돼 있다. 주주로서의 권한을 향상시켜 주면 저절로 기업의 지배구조와 권력 남용이 방지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것이 전 국민을 개혁의 주체로 만드는 비법이다. 이미 서양사회에서는 많이 발전돼 온 제도들이다.

프레시안 : 하지만 일각에서는 시민단체의 문턱 넘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 여전히 시민들의 참여가 부족하다는 비판으로 이해된다.
박원순 : 다른 나라에서는 참여를 많이 하고 있나. 일본에서는 우리같은 정치적 시민단체들이 거의 없다. 미국은 퍼블릭시티즌 같은 것이 있지만 상당히 힘들다고 한다. 몇십만명의 회원이 있는데 그 회원을 가입시키기 위해 일년에 1백만불 이상의 홍보비를 투입하는 실정이다. 그런데도 한 번 회비를 낸 사람이 다음 해에 회원이 될 가능성은 30%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다. 우리사회만 시민들의 참여가 저조하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아시아 어느 지역을 가봐도 한국 NGO만큼 활발한 곳이 없다.

그런 것도 지난 80년대의 운동의 경험의 소산이라고 생각한다. 그 시절의 경험을 공유한 분들이 지금은 사회의 각 분야에 진출해서 이제 시민운동에 참여해주고 있다. 그런 것이 우리사회 변화의 동력이 되고 있다고 본다. 참여연대 하면서 그런 부분에서 너무나 희망적인 것을 발견했다. 한달에 그분들이 1만원씩 낸 돈이 8천~9천만원이나 된다는 것은 꿈같은 일 아닌가. 박봉을 견디면서 일하는 간사들, 또 지식인으로서의 책임을 가지고 헌신적으로 활동하는 지식인 그룹들의 책임감과 도덕성이 시민단체를 이끌어오고 있다. 이런 것은 다른 나라에서는 발견할 수 없는 부분이다.

시민없는 시민운동이라는 몇몇 언론의 논리는 시민들 참여도 없으면서 과도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의 담론으로 활용하고 있다. 물론 시민들이 많이 참여해주면 좋겠지만 선도적 운동을 하는 단체들은 언제나 외롭고 힘들 수밖에 없다.

일본의 경우에는 지방분권이 잘 돼 있어서 지역운동이나 생협이 잘 운영되고 있다. 지금까지 우리 사회는 정치가 모든 사회적 병폐를 해결하는데 병목 역할을 해왔기 때문에 모든 시민단체들도 정치 부분에 집중해왔다. 환경운동조차도 정책을 중심으로 해왔다. 정치를 바꿔야 뭐가 달라져도 달라질 수 있으니까 그랬다. 그런 부분이 차츰 해결돼 가면 생활운동이 자동적으로 늘어날 것이다. 우리들도 의도적으로 그런 노력을 기울여서 시민운동을 좀 더 풍성하게 만들 것이다. 아름다운 가게만 봐도 완전한 생활운동 아닌가. 그런 과정에서 시민들이 차츰 생활 영역으로 올 것이고 지금도 그렇게 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부족하지만 생협 인구들도 많이 늘고 있다. 재정상황도 조금씩 개선되고 있다고 들었다. 너무 부정적으로만 보지 말아달라.

프레시안 : 추진하는 많은 활동에 성과 있기를 빈다.
박원순 : 개인적으로 프레시안을 관심있게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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