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선거사상 처음 실시된 대선 재검표 결과, 당락을 뒤엎을 만한 의미있는 오차가 발견되지 않아 당선무효소송을 제기한 한나라당이 궁지로 내몰렸다.
중앙선관위와 대법원에 따르면 "당락에 영향을 미치는 정도의 집계 오류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며 "후보자간 혼표도 나오지 않고 있어 일부에서 주장한 개표기 조작도 근거없는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고 밝혔다.
재검표는 이날 오후 10시부터 전국 80개 개표구, 1천4백만9천3백11장의 투표용지를 대상으로 실시됐다. 80%가 재검표된 오후 6시 현재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의 득표수는 당초 개표시 집계에 비해 1백87표 줄었으며 민주당 노무현 후보 지지표는 3백18표 각각 줄었다. 무효표는 62표, 판정 보류표는 4백58표로 각각 집계됐다. 돌발상황이 발생하지 않는한 당락이 뒤바뀔 가능성은 희박한 것으로 관측된다. 재검표 결과 12만표 정도의 오류가 발생해야 산술적으로 당락이 뒤바뀔 수 있다.
이에 따라 한나라당이 제기한 당선무효소송은 기각 쪽으로 결론날 것으로 보인다. 현행 공직선거 및 선거부정관리법 제224조에 따르면 선거에 관한 규정 위반이 있더라도 선거결과에 영향을 미쳤다고 인정되는 경우에만 당선무효를 판결할 수 있도록 규정돼 있기 때문이다.
***궁지에 몰린 한나라당**
이날 오전까지만해도 '혹시나' 하는 기대를 걸었던 한나라당은 집계 오류가 발견되지 않자 낙담하는 분위기가 역력했다.
재검표가 진행되는 도중 이주영 상황실장은 "당선무효소송을 제기했지만 개표조작에 대한 확증을 갖고 시작한 것은 아니었다"고 한발 뺀 뒤 "수작업이 확인이 안됨에 따라 이를 검증하기 위해 소송을 냈던 것"이라며 '전자개표기의 신뢰성 검증'을 재검표의 명분으로 강조했다.
그러나 한나라당이 주장한 후보자간 표가 섞이는 '혼표' 사례도 발견되지 않아 전자개표기의 신뢰도와 분류능력에 큰 하자가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따라 서청원 대표는 조만간 결과에 승복하고 새정부 국정운영에 적극 협력한다는 내용의 기자회견을 갖고 이번 당선무효소송 건을 취하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당 안팎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소송을 감행한 한나라당 지도부의 정치적 오판은 두고두고 '선거불복'이라는 멍에로 작용할 가능성이 커졌다. 더욱이 이 사건이 '새정부 발목잡기'의 전형으로 비쳐지면서 노무현 당선자와 인수위에 대한 한나라당의 공세는 당분간 수위조정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한편 인터넷상에 유포된 출처불명의 전자개표 조작설을 근거로 성급하게 소송을 제기했던 지도부를 겨냥한 개혁파들의 거센 질책도 예상된다. 일부 소장개혁파 의원들은 지도부의 소송제기 결정에 대해 "당을 두 번 죽이는 자살행위"라며 강력하게 반대해왔다.
***민주, "그동안의 혼란 사과해야…"**
민주당은 한나라당에 대해 "두번의 패배를 자초했다", "21세기의 한복판에서 연출된 19세기형 코미디의 압권"이라며 맹공을 퍼부었다. 재검표 결과 개표조작의 단서도, 전자개표기의 문제점도 발견되지 않음에 따라 이 같은 민주당의 고강도 공세는 예정된 수순이었다.
이상수 사무총장 등 당직자들은 이날 오후 별다른 문제가 발견되지 않았다는 중간점검 결과를 보고받고 "이미 지방선거에서 검증된 전자개표를 의심하는 황당한 주장이었다"며 예견된 결과라는 반응을 보였다.
이 총장은 "더이상의 재검표를 재판부에서도 얘기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사실상 사건이 종결될 것"이라며 "한나라당은 그동안의 혼란을 야기한 책임을 지고 사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문석호 대변인도 재검표 도중 논평을 내고 "한나라당은 재검표 요구에 따른 국가위신 추락, 국론분열, 예산낭비, 국민 기만에 대하여 응분의 책임을 지는 성의있는 조치를 국민과 역사앞에 보여줘야 한다"고 비난했다.
문 대변인은 이어 "한나라당 스스로 국정발목잡기식의 구태정치를 청산하고 정정당당한 정책대결과 결과에 대한 깨끗한 승복을 통하여 새로운 정치문화를 만들어가는데 동참할 것"을 촉구했다.
김재두 부대변인도 논평을 내고 "한나라당은 이회창 전 총재가 대선에서 패하여 깨끗하게 승복하고 정계를 은퇴했음에도 재검표 운운하며 선거무효소송을 내는 등 두 번의 패배를 자초했다"고 비난했다.
김 부대변인은 이어 "한나라당은 전매특허가 되어버린 아니면 말고식 정치, 꼼수 정치, 발목잡기 등 낡은 정치를 청산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면서 "20세기 낡은 구태에서 벗어나 정당개혁 뿐만 아니라 열린 마음으로 정치개혁에 동참하라"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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