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골탈태를 기치로 개혁 작업을 추진해온 민주당과 한나라당 개혁특위 활동이 중반전에 접어든 느낌이다. 개혁의 큰 틀은 제시됐으나 각 정파의 이해관계와 맞물려 좀처럼 진전을 못하는 양상이다. 그러나 개혁특위 활동의 결과물은 양당 정치개혁 수준의 가늠자이자 곧바로 이어질 '총선체제' 구축과 직결된다는 측면에서 주목해야 할 대목이다.
민주당은 신주류의 주도권 장악이 예상되는 가운데, 위기에 내몰린 구주류측 반발이 만만치 않다. 지도체제 개편 방안과 전당대회 시기 등을 둘러싸고 이들 세력간 신경전은 좀처럼 완화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특히 노무현 당선자가 순수집단지도체제에 대한 반대 입장을 표명하면서 이에 대한 신주류의 급가속에 제동이 걸리는 분위기다.
28일 재검표 결과 정국주도권은 물론 명분마저 빼앗긴 한나라당에게도 개혁은 지상명제다. 그러나 소장개혁파와 보수중진이 주장하는 당 개혁의 내용과 방법론은 여전히 제각각이다. 당 개혁 작업의 전권을 위임받은 개혁특위 활동은 외형상 체계를 잡아가는 듯하지만, ‘국민속으로’ 등 개혁파는 특위 중심의 개혁작업이 보수세력의 벽에 부딪혀 미봉책으로 그칠 가능성이 있다며 반발하고 있다.
각 당은 어떤 형태로든 노무현 새 정부가 출범하기 이전에 당 개혁의 큰 틀을 마련한다는 입장이어서, 설 연휴후 당 개혁 방향 및 당권을 둘러싼 논란이 본격화할 전망이다.
***민주, 지도체제ㆍ전대시기 둘러싸고 격론**
민주당 개혁특위는 지난 24일 4차 회의에서 현행 최고위원 제도를 폐지하고 시도지역별 대표를 뽑아 중앙위원회(가칭)를 구성하는 순수집단지도체제를 도입키로 잠정 합의했다. 그러나 "총선을 고려하지 않은 비현실적 방안"이라는 당내 비판이 대두되면서 결론을 유보한 상태다. 특히 노무현 당선자가 순수집단지도체제 도입에 부정적 견해를 내비치면서 현재 신주류 사이에서도 이에 대한 이견이 분분하다.
24일 발표된 개혁특위안에 따르면 당원들이 상향식으로 선출한 50여명의 지역별 대표로 가칭 중앙위원회가 구성되며 이는 집행기구 겸 의결기구로 기능한다.
중앙위 의장은 당의 법률상의 대표로 제한, 공천권과 재정권을 가진 당권은 사실상 폐지되는 반면, 원내총무가 원내전략과 정책을 결정하는 실질적 대표로 기능하게 된다. 특히 정책기능을 원내로 이관, 원내총무 산하에 두기로 했으며 의원총회를 정책에 관한 최고의결기구로 격상하는 방안 등이 포함된다.
그러나 27일 열린 5차 회의에서 개혁특위가 순수 집단지도체제 유보 방침을 밝히면서 당 지도체제 논란은 원점으로 되돌아가는 분위기다. 이는 노무현 당선자가 26일 이상수 사무총장과의 회동에서 '중앙위원회' 구성과 중앙위 의장 간선제에 대해 비판적 입장을 밝힌 것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이 자리에서 노 당선자는 "당을 대표하는 사람은 그 명칭이 대표든 중앙위 의장이든 당원의 총의를 반영하도록 직선으로 했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밝힌 것으로 이 총장이 전했다. 노 당선자는 또 "간선이나 지역별로 선출하는 경우 작은 단위에서 경쟁이 치열해져 선거가 혼탁해질 가능성이 있고 민주당이 권역별로 당세가 균등하지 않아 약세지역에서 함량 미달의 대표가 선출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지적한 것으로 알려졌다. 개혁특위 내 신주류 강경인사들의 밀이붙이기식 당 개혁에 속도조절을 당부했다는 의미다.
노 당선자의 입장 표명이 아니어도 구주류와 당권 도전을 염두에 둔 신주류 일각에서는 지속적인 당 개혁과 내년 총선을 대비하기 위해선 '강력한 리더십'이 요구된다고 주장해왔다. 이들은 현행 최고위원제도를 보완, 대표의 기능을 강화하는 단일성 집단지도체제를 선호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서는 내년 총선까지는 단일성집단지도체제로 가고 그 이후 중앙위원회 체제로 가는 방안도 대두돼 민주당 지도체제 논란은 좀처럼 합의점을 찾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개혁특위 안이 확정되는 30일 종합토론과 이를 최종적으로 인준하게 될 당무회의에서는 이와 관련된 격론이 예상된다.
한편 신주류의 ‘2단계 전대안’과 구주류의 ‘3~4월 전대안’이 팽팽하게 맞선 전당대회 시기도 합의점 찾기가 쉽지않다.
신주류측은 새 대통령 취임 전인 2월 중 전당대회를 열어 현 지도부를 대체하는 과도 지도부를 구성하고 올 하반기에 전당대회를 다시 열어 개혁 작업을 마무리하자는 쪽으로 내부 방침을 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2단계 전대안은 사실상 인적청산에 초점을 두고 있어 구주류측과의 마찰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구주류측 대부분은 2월 전당대회는 물리적으로 어려울 뿐더러 인적청산을 도모하려는 의도가 깔려있다며 ‘3~4월 전대론’을 고수하고 있다.
한편 특위는 향후 중앙당 슬림화, 상향식 공천, 재정투명화, 전자정당화 등 분야별 개혁과제에 대한 논의를 거쳐 29, 30일 종합토론을 통해 최종 개혁안을 완성할 예정이다.
***한나라, '분권형 지도체제' 잠정확정**
한나라당은 연초에 출범한 당 개혁특위를 중심으로 내달 중순까지 쇄신 방안을 마련해 확정할 방침이다. 개혁특위는 현재 총론 위주의 토론에서 탈피해 3개 분과별로 매일 회의를 갖고 당 개혁의 구체적 방안을 논의 중이다.
지도체제 개편과 관련, 현행 최고위원제도를 폐지하고 당 대표와 원내총무가 권한을 양분하는 분권형 지도체제 도입 방안을 잠정 확정했다. 인사, 재정, 공천권 등에 대한 당 대표의 권한을 대폭 축소, 의전적인 법적 대표로 국한시키는 반면, 의원총회에서 선출하는 총무가 원내사령탑으로서 국회 전략 등에 있어서 명실상부한 권한을 갖도록 하는 방안이다.
그러나 총무에게 권한이 역집중, 분권화라는 원칙과 상충된다는 지적이 있어 정책위 의장의 권한을 대폭 강화하는 방안도 함께 검토되고 있다. 이 경우 정책위 의장은 정책관련 분야에 대한 재정 인사권 등을 행사할 수 있어 당 대표, 총무와 함께 권력 3분화의 한 축을 이루게 된다. 이에 따라 3월 전당대회에서는 형식적인 당 대표 1명만을 선출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고 있다.
그러나 ‘국민속으로’, ‘미래연대’ 등 소장파 의원들이 완전한 원내정당화를 주장하며 반발하고 있어 논란이 예상된다.
이들은 차기 당 대표가 전당대회에서 경선을 통해 선출되면 어쩔 수 없이 여론의 조명을 받을 수밖에 없고 2004년 공천권 등에서 실력행사를 하게 된다는 이유로 전당대회에서의 지도부 선출을 반대하고 있다. 대신 지역별 당원대회에서 60~70명의 집행위원을 선출하고, 이들 간 호선으로 10~20여명의 상임집행위원회를 구성하자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국민속으로’는 27일 개혁특위에서 의원 및 지구당 위원장을 대상으로 개혁 방안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시하는 것과 관련, 성명을 내고 “다수의 힘을 빌어 특정한 방향으로 끌고가려는 의도가 있을 수 있다”고 반대입장을 밝혔다.
또한 한나라당의 향배에 중요한 분수령이었던 당선무효소송과 그에 따른 27일 대선 재검표 결과 의미있는 오류가 발견되지 않아 서청원 대표가 사과하는 등 당 지도부의 영향력이 급속히 약화된 것도 이들의 발언권을 높이는 계기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국민속으로'를 중심으로 일부 소장개혁파들은 처음부터 당선무효소송을 "당을 두번 죽이는 행위"라며 비판해왔다.
한편 개혁특위는 대표선출 방식으로 정당사상 최초로 ‘전당원 투표제’를 실시키로 했다. 당원명부에 등록된 당원은 누구든 대표선출 투표에 참여할 수 있는 자격을 부여하는 방식이다. 전당원 투표제로 실시되는 전당대회와 향후 당원의 효율적 관리 시스템을 확보키 위해 2월5일까지 당원명부를 작성, 제출토록 전 지구당에 지시를 내린 상태다.
개혁특위는 또 회계 투명성을 높여야 한다는 데 잠정적 합의를 도출했다. 수입은 정치자금법에 따라 항목별로 6개월마다 공개하고 지출은 기업 회계에 준하는 수준에서 외부감사를 받는 방안이 유력하다.
이 외에도 의원들의 입법 및 정책심사 능력을 높기기 위해 국회 각 상임위에 정책연구 및 심사위원을 배정하고, 당 소속의 정책연구소도 입법부 산하기관으로 등록, 운영하는 방안을 추진키로 했다.
한편 개혁특위 3분과는 선거제도 개편과 관련, 현행 소선거구제를 유지하되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를 도입하고 선거연령을 19세로 낮추는 방안을 추진키로 했다. 대통령직 인수위와 민주당 일각에서도 비슷한 방안이 제기되고 있어 채택 여부가 주목된다. 그러나 홍사덕 위원장이 "결정된 바 없다"며 공개 반박하는 등 특위 내부 합의 도출조차 아직 불투명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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