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은 13일 대북 4천억원 지원 의혹 등 현정부의 '7대 의혹'을 노무현 당선자의 취임 전에 처리하지 않을 경우 대통령직 인수법안 등의 처리를 연기하는 방안을 검토키로 했다. 한나라당은 또 지난 10일 양당 총무회담 합의를 깨고 금감위원장을 인사청문회 대상에 포함시키는 개정안을 독자적으로 제출키로 했다.
한나라당의 이같은 잇딴 약속파기는 대미관계 긴장, 재계와의 갈등 심화 등 최근 노 당선자에게 불리한 상황전개를 활용해 정국의 헤게모니를 재탈환하겠다는 계산에 따른 것으로 보여져, 앞으로 상당한 정치적 진통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이같은 한나라당 공세가 비난여론을 자초할 경우 '인위적 정계개편'이라는 역풍에 직면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7대의혹 해결해야 노정권에 협력"**
서청원 대표는 13일 최고위원회의에서 "`DJ 정권' 7대 의혹에 대해선 어떤 일이 있어도 반드시 밝혀져야 한다"면서 "의혹규명을 위한 국정조사와 특검 등을 실시할 때 노무현 정권에 협력할 것은 협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규택 원내총무도 "4천억원 지원 의혹 등이 현정부에서 청산, 해결해야 노무현 당선자 취임시 야당과 허니문이 계속될 것"이라며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경우 인수법안 처리를 위한 22일 본회의를 얼마든지 연기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에 앞서 지난 12일 박종희 대변인도 "4천억원 대북지원설과 국가정보원 도청의혹 및 공적자금 비리 등 7대 의혹 사건은 김대중 민주당 정권의 비리를 청산하기 위해선 물론 차기 정권의 원활한 출범을 위해서라도 반드시 규명돼야 한다"고 촉구했다. 박 대변인은 논평에서 "노 당선자가 현 정권의 의혹을 덮으려 한다면 차기 정부에 대한 우리 당의 협조를 기대하기 힘들 것이며 국민적 저항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나라당이 주장하는 현 정부 7대 의혹사건은 ▲안정남 국세청장 비리사건 ▲백궁정자지구 용도변경 및 파크뷰 특혜분양 사건 ▲나라종금 퇴출저지로비 사건 ▲조풍언게이트 ▲공적자금 비리 ▲4천억 대북 뒷거래 사건 ▲국정원 불법도청 사건 등이다.
***한나라당의 말바꾸기,"금감위원장도 인사청문회 해야…"**
한나라당은 이와 별도로 이번주초 인사청문 대상에 금감위원장을 포함시키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개정안을 마련, 국회에 독자적으로 제출키로 했다.
당 정치개혁특위 홍사덕 위원장은 12일 기자간담회에서 "민주, 한나라 양당 총무가 인사청문회법과 국회법 등을 오는 22일 개정키로 했으므로 그 이전에 특위 자체안을 국회에 제출할 계획"이라면서 "당의 총의가 담긴 이회창 후보의 공약은 빅5에 대한 인사청문회였던 만큼 이를 토대로 개정안을 마련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민주당이 금감위원장 포함에 소극적이지만, 원내 과반인 1백51석을 가진 제1당으로서 이 문제를 주도하지 못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고 덧붙여 이에 대한 강한 의지를 표했다.
그러나 민주당은 지난해말 국회 정치개혁특위와 지난 10일 여야 총무회담을 통해 '빅4(국정원장, 검찰총장, 경찰청장, 국세청장)에 대해서만 인사청문회를 실시키로 이미 합의한 사항을 한나라당이 뒤집은 데 대해 크게 분개하는 분위기다.
민주당 김재두 부대변인은 12일 "한나라당이 독자적인 인사청문회법을 제출하기로 한 것은 구태정치의 부활을 예고하는 것"이라며 "여야 합의를 깨고 뒤늦게 인사청문회를 '빅5'로 확대하자고 뒷북을 치고 있다"고 비난했다.
이처럼 여론이 험악해지자 한나라당은 이날 서청원대표 주재로 최고위원회의를 열어 당.정치개혁특위 홍사덕 공동위원장이 인사청문 대상에 금감위원장까지 포함시켜야 한다고 제의한데 대해 "여야 의원들이 참여하는 국회 정개특위에서 이미 '빅4'로 하기로 합의했고, 한나라당 당론도 '빅4'였던 만큼 '빅4'로 하는게 옳다"며 빅5 요구를 백지화했다.
***"한나라당, 인위적 정계개편 역풍 자초할 수도"**
정가 일각에서는 한나라당의 이같은 잇딴 약속 파기가 단순한 정치공세 이상의 의미를 갖는 게 아니냐는 강한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최근 노 당선자에게 장애로 작용하고 있는 북핵사태에 따른 대미관계 악화 가능성, 경제개혁을 둘러싼 재계와의 갈등 등 여러 요인을 볼 때 노무현 새 정부를 초기에 흔들 수도 있다는 상황 판단에 따른 게 아니냐는 해석이다.
정가의 한 소식통은 "최근 북핵 문제를 둘러싸고 미국과 갈등이 계속되고 있는 데다가 경제개혁을 둘러싸고 전경련 등과의 갈등이 심화되자 한나라당내 일각에서는 '밀월 기간 없이도 곧바로 노무현 정부를 흔들어 무력화시킬 수 있는 게 아니냐'는 기대가 부풀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한나라당내 분위기를 전하며 "최근 서청원 대표의 '좌파 정권' 발언에 이은 잇따른 약속파기는 이같은 시나리오에 기초한 게 아니냐는 의구심을 떨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만약 한나라당이 곧바로 '노무현 흔들기'에 들어갈 경우 정국은 상당한 혼미상태에 돌입할 가능성이 높다"며 "이럴 경우 국민의 비난여론을 자초하면서 한나라당은 거꾸로 정계 개편을 자초하는 위험에 직면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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