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어이없는 일이다. 밀양 송전탑 반대 주민은 이 법에 반대하고 있는데, 이 법을 '밀양 송전탑 주민 지원법'이라고 부르고 있으니 말이다.
밀양에서 송전탑에 반대하며 산속에서 노숙을 하고 식사도 거르고 추위에 떨고 있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이 법에 반대한다. 그러니 이 법은 '밀양 송전탑 주민 지원법'이 아니다. 어떻게든 공사를 밀어붙이려는 정부가 만든 '밀양 주민 탄압법'이다. 이 법 통과를 빌미로, 공사를 더욱 거세게 밀어붙이려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더 많은 밀양의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다치고, 삶터를 잃게 될 것이다. 이미 10월 1일 공사 재개 이후에 30여 명의 어르신들이 병원에 실려 갔다.
밀양 주민들은 왜 이 법에 반대하고 있을까?
밀양 주민들은 보상이 아니라 송전선 건설의 타당성 자체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이 법에서 정하고 있는 보상 규정이 시행된다고 한들, 주민들이 입는 피해가 제대로 보상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동안 평온하게 살아온 삶터가 파괴되고, 후손들이 살아갈 수 없게 되는데, 그것이 어떻게 약간의 보상으로 해결이 될 수 있는 문제냐는 것이다. 이것이 주민들의 진심이다.
그렇다면, 과연 보상이 답인가? 라는 의문에 대해 깊이 고민해 봐야 한다. 그러나 정부는 이런 고민을 회피하고 '이미 결정된 사업이니 강행하는 수밖에 없다'는 군색한 얘기만 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산업통상자원위원회를 통과한 송주법은 내용적으로도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
첫째, 아주 졸속으로 마련된 법안이다. 보상에 관한 법률을 만들려면 피해에 대한 객관적인 조사가 선행되어야 한다. 그런데 그런 것이 없다. 그나마 있는 조사 결과와도 배치된다.
초고압 송전탑으로 인한 피해에 대해 그나마 조사한 자료는 2011년에 한국토지공법학회에서 수행한 연구 결과(<송·변전 설비 건설 시 피해 범위와 적정 편입 범위 산출 및 보상 방법 연구>) 정도이다. 이 연구 결과에서는 765킬로볼트의 경우에는 최외선(가장 바깥선)으로부터 80미터, 345킬로볼트의 경우에는 최외선으로부터 20미터까지의 토지에 대해서는 지가 하락에 대한 보상이 필요하다고 제안하고 있다. 물론 주민들은 이마저도 충분치 않고, 지가 하락 등의 피해 범위는 송전선으로부터 1킬로미터가 넘는 범위까지 미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런데 어제 통과된 송주법에서는 제대로 된 근거도 제시하지 않고 33미터(765킬로볼트), 13미터(345킬로볼트)라는 자의적인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한국토지공법학회가 제안한 것보다 보상 범위를 대폭 축소한 것이다.
ⓒ하승수 |
둘째, 송주법은 위헌 소지가 많은 법률이다. 송주법은 이미 건설된 송전선은 보상 대상에서 제외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헌법 제11조가 밝히고 있는 '평등의 원칙'에 위배된다.
기존에 건설된 초고압 송전선들의 경우에도 선하지(최외선에서 3미터 이내)나 철탑 부지를 제외하고는 보상을 받지 못한 상황이다. 그러나 기존의 송전선 주변 지역 주민들도 피해를 보고 있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전자파로 인한 피해, 경관 피해, 재산 가치 하락으로 인한 피해를 고스란히 입고 있다. 암 발생자 숫자가 급격하게 늘어났다고 호소하는 마을도 있다.
그런데 송주법에서는 '재산적 보상'을 청구할 수 있는 경우를 공사 완료일 이후 2년까지로 제한하고 있다. 공사 완료후 2년이 지난 초고압 송전선은 보상 대상에서 제외하고 있는 것이다.
또 송주법에서는 765킬로볼트와 345킬로볼트 송전선은 보상 대상에 포함시킨 반면, 154킬로볼트 송전선은 보상 대상에서 제외하고 있다. 여기에 대해서도 아무런 설명이 없다. 그러나 154킬로볼트 송전선의 경우에도 피해가 상대적으로 적을 수는 있지만 피해가 있는 것은 분명하다. 따라서 154킬로볼트 송전선을 아예 보상 대상에서 제외한 것은 문제가 있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졸속적이고 위헌 소지가 많은 법률을 무리하게 통과시켰을까? 그것은 밀양 때문인 것이 분명하다. 밀양에서 송전선 건설 사업 자체의 필요성, 타당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지금까지 막무가내로 밀어붙여 온 송전선 건설 사업이 큰 저항에 부딪히자, 일단 그것을 무마하기 위해 졸속·위헌적인 법률을 통과시킨 것이다.
그러나 밀양 주민들의 얘기처럼, 지금은 보상이 아니라 송전선 건설 사업 자체에 대해 따져봐야 할 때이다.
송전선 건설과 관련된 핵심적인 문제점은 절차적 민주주의와 투명성, 그리고 객관적 검증절차가 마련되어 있지 않다는 데에 있다.
우리나라에서 송전선 건설 계획은 한국전력과 정부 관료들에 의해 입안된다. 전기위원회 같은 위원회를 거친다고 하나, 독립성이 없는 기구이다. 전기위원회 위원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임명 또는 위촉한다. 위상도 산업통상자원부에 소속된 심의 기구에 불과한 위상이다.
반면 미국만 하더라도, 연방에너지규제위원회(FERC) 및 주 정부별 공공사업규제위원회(PUC 또는 PSC)가 신규 송전선로 건설 신청을 받으면 건설이 아닌 다른 대안들(대안 선로 및 비송전선 대안)을 동시에 제시할 것을 요구하고, 이런 대안들에 대해 검토를 한다. "비송전선로 대안"에는 지역 분산형 발전, 수요 관리 등이 포함된다.
예를 들어, 주 정부 규제 기관 버지니아 주 기업규제위원회(Virginia State Corporation Commission)는 버지니아 주 행정부로부터 독립된 준 사법 기관으로서 분쟁 조정 신청을 하는 모든 버지니아 주 당사자 및 시민에게 정당한 법적 절차에 따른 분쟁 조정을 보장하며, 분쟁 해결을 지원하는 역할을 한다. 이런 위원회의 검증 과정을 거쳐, 미국에서는 장거리 765킬로볼트 송전선 건설 사업인 PATH(Potomac-Appalachian Transmission Highline) 사업이 2012년에 취소된 사례도 있다.
계획 단계를 지나 사업 추진 단계로 오면 더 문제이다. 전원개발촉진법에 따르면,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의 승인을 받으면 '국토의 이용 및 계획에 관한 법률', 도로법, 하천법, 자연공원법, 농지법, 산지관리법 등 20개 법률에 따른 인·허가를 받은 것으로 의제된다. 주민들이 말을 안 들으면 토지를 수용할 수도 있다.
이런 법조항을 악용하여 한국전력은 그동안 주민들에게 적극적으로 정보를 알리고 설득하기 보다는 형식적이고 졸속적인 주민 설명회를 거쳐 사업을 강행하기에 바빴다.
현재 문제가 되고 있는 밀양, 청도 등의 지역에서도 형식적인 주민 공청회를 거쳐 일방적으로 절차가 진행되었고, 지역 주민들의 의견은 철저하게 묵살되었다. 주민 설명회는 매우 형식적으로 진행되었고, 처음에 주민들은 초고압 송전선로가 무엇인지도 알지 못했다.
전원개발촉진법은 박정희 대통령 시절인 1978년 한국전력 등 전원 개발 사업자의 편의를 위해 만들어졌던 법으로, 악용의 소지가 많은 법이다. 이런 법이 아직도 개선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한마디로 전력 분야는 민주주의나 투명성 같은 기본적인 원칙도 지켜지지 않고 있는 분야이다. 이것을 가능하게 하는 전원개발촉진법 같은 법률을 폐지하거나 대폭 개정하고, 독립적인 기구를 통해 사업의 타당성에 대한 검증이 이루어지게 하며, 투명한 과정을 통해 정보가 공개되고 민주적인 의견 수렴이 이루어지도록 하는 것이 우선이다. 이런 조치가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보상으로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것은 사태를 더욱 악화시킬 뿐이다.
지금 논란이 되고 있는 '신고리-북경남' 765킬로볼트 송전선로만 하더라도 그 필요성이 의심스러운 사업이다. 이 765킬로볼트 송전선로는 애초에는 수도권으로 연결한다는 계획이었다. 제2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 신고리-북경남-신충북-신안성을 연결하여 신고리 핵발전소에서 생산한 전기를 수도권으로 송전한다는 계획을 수립했던 것이다. 그러나 제3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 수도권으로 송전한다는 계획이 폐기되었다. 그러면 이 시점에서 사업을 재검토했어야 한다.
그러나 한전은 765킬로볼트 송전선로의 사업 목적을 '영남 지역의 안정적인 전력 공급'으로 변경하고, 건설을 강행했다. 그러나 765킬로볼트 송전선로는 캐나다 퀘벡 주의 수력 발전소들과 미국의 북동부 지역 간을 잇는 1000킬로미터 대의 선로처럼 장거리 송전에 주로 사용되는 선로이다. 신고리에서 북경남 변전소까지 90킬로미터를 송전하면서 765킬로볼트 송전선을 건설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도 이를 밀어붙여서 막대한 재원을 낭비하고 시골 주민들에게 엄청난 고통을 안기고 있는 것이다.
이런 문제점들을 개선하지 않고 '얼치기 보상'을 한다는 것이 무슨 해법이 되겠는가?
송주법은 앞으로 예상되는 수많은 송전선 관련 분쟁에 대한 해법이 되지 못하고 국가적으로도 올바른 대안이 되지 못한다. 만약 이 법이 통과된다면, 정부와 한국전력은 6차 장기 송·배전 설비 계획에 포함된 송전선로와 변전소 건설들을 밀어붙일 것이다. 그럴 경우에 새로운 갈등이 일어날 것이 불을 보듯 훤하다.
6차 장기 송·배전 설비 계획에 따르면 동해안의 신울진(신한울) 원전에서 출발하는 765킬로볼트 송전선이 강원도와 경기도의 많은 지역들을 지나가게 된다. 여주, 이천 등이 포함된다. 이 때 일어날 사회적 갈등을 생각해 봐야 한다.
▲ 6차 장기 송·배전 설비 계획 중 일부. ⓒ한국전력 |
그렇기 때문에 지금은 송·변전 설비 건설을 강행할 것이 아니라, 발전과 송·변전 전반에 걸친 시스템을 재검토하는 것이 필요하다. 지금처럼 바닷가에 대규모 핵발전소와 석탄 화력 발전소를 건설해서 초고압 송전선과 변전소를 지어 전기를 송전하는 시스템은 지속 가능하지도 않고, 수많은 갈등과 피해를 낳을 뿐이다.
국가적으로도 전혀 이득이 되지 않는다. 제대로 보상하려면 막대한 보상 비용이 들어서 경제성이 없다. 제대로 보상하지 않고 공사를 강행하는 것은 국가가 가져야 할 최소한의 정당성과 신뢰성을 갉아먹는 일이다. 시골 주민들에게 일방적 희생을 강요하는 부정의한 일이다.
따라서 지금 필요한 것은 졸속적인 보상 법안의 제정이 아니라, 사회적 공론화이다.
정부와 한국전력은 보상 법안을 빨리 통과시키고, 송전선 공사를 빨리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것도 거짓이다. 밀양을 지나는 765킬로볼트 송전선, 그리고 그로부터 나가는 345킬로볼트 송전선은 전혀 급하지 않다. 서해안의 당진 화력 발전 단지에서 출발하려고 하는 신규 345킬로볼트 송전선을 비롯한 다른 송전선도 마찬가지이다.
이 송전선들은 수요의 측면에서 고려된 것이 아니라, 발전소 건설을 밀어붙이겠다는 공급 확대 정책에서 비롯된 것이다. 수요는 대기업들에게 공급되는 산업용 전기 요금을 현실화하고, 대공장의 자가 발전 확대를 의무화하는 방법 등을 통해 억제할 수 있다. 수요를 억제한 상태에서 송전선 건설은 급한 문제가 아니다.
정부와 한국전력은 신고리 3, 4호기 때문에 밀양 송전선 건설이 급하다고 하지만, 그것도 사실이 아니다. 신고리 3, 4호기는 시험 성적서가 위조된 핵심 부품(제어용 케이블) 문제 때문에 언제 가동될 수 있을지가 불확실한 상황이다.
서해안의 석탄 화력 발전 단지도 전면적으로 다시 검토해야 한다. 지금처럼 수도권과 대기업들이 사용하는 전기를 위해 서해안 일대와 농촌 지역 주민들에게 일방적인 피해를 강요해서는 안 된다. 온실 기체 배출 규제 등에 대비한다면, 석탄 화력 발전소를 신규로 계속 건설할 수 없다. 지금의 정책은 정말 근시안적인 정책이다. 따라서 지금은 '공사가 급하다'고 할 것이 아니다. 정부는 전력 정책 전반에 대해 시민들에게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제대로 된 토론을 해야 한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를 통과했지만, 송주법은 그냥 국회를 통과해서는 안 된다. 위헌 소지가 있는 법률이기 때문에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재검토를 해야 한다. 제대로 의견 수렴이나 검토를 하지 않은 법률이기 때문에 다시 논의를 해야 한다.
이제라도 국회는 송전선 주변 지역 주민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현재 시점에서 '껍데기뿐인 보상 법안은 문제의 해법이 아니다'라는 주민들의 외침이야말로 문제의 핵심을 짚고 있는 것이다.
'초록發光'은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와 <프레시안>이 공동으로 기획한 연재입니다.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는 이 연재를 통해서 한국 사회를 '초록의 시선'으로 읽으려 합니다. (☞바로 가기 :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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