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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이 뭐예요 전화번호 뭐예요" 현아가 아니라…

[프레시안 books] <구글 신은 모든 것을 알고 있다>

대학 철학 강의 중 교수님의 질문. "신을 믿습니까?" 여기엔 함정이 있다. '예', '아니오'가 답이 아니기 때문이다. 모범 답안은 "교수님이 생각하시는 신의 정의가 무엇인가요?"라고 되묻는 것이란다. 아인슈타인이 "신은 주사위를 던지지 않는다"고 했을 때, 우리는 그 신이 기독교에서 믿는 신이 아님을 알고 있다. 물리학자들이 힉스입자를 신의 입자라고 부를 때에도 신은 그 나름의 의미를 갖는다. 일부 물리학자들은 종교 냄새가 난다며 이런 표현을 무지 싫어하지만 말이다. 과연 신이란 무엇인가?

구글에 '신'이라고 치니까 첫 번째 줄에 한국어 위키가 떴다. 위키에 나온 정의는 "신앙의 대상으로서 대체로 초자연적인 능력을 가진 존재를 말한다"라고 나온다. 네이버 사전은 "종교의 대상으로 초인간적, 초자연적 위력을 가지고 인간에게 화복을 내린다고 믿어지는 존재"라고 대답해준다. 공통점을 찾자면 초자연적 능력을 가진 존재란 거다. 초자연이라고 하면 분명 과학의 한계를 벗어나는 것을 말한다. 하지만 사이비과학을 이야기하지 않을 거니까 과학이 할 수 있는 최고의 능력이라고 해석하기로 하자. 과학의 테두리 내에서 현재 가장 전지전능한 '것'은 무엇일까? 답은 이미 본문에 있다. 검색 엔진 구글이다.

무엇인가 알고 싶을 때 당신은 어떻게 하는가? 21세기의 대답: 구글에게 물어보면 된다. 왜냐하면 언제나 구글이 답을 알고 있으니까. 전지(全知)하다는 얘기다. 여기서 구글 신이라는 표현이 나오게 된다. 그렇다고 구글에게 "내 결혼 상대자는 누구인가?"라고 물으면 바로 답을 주지는 않는다. 결혼 상담, 결혼 정보 사이트만 잔뜩 늘어놓는다. 질문을 잘 해야 한다는 말이다. 즉, 우리에게 오라클을 받아낼 선지자가 필요하다는 얘기. 구글 교의 한국지부 교주라 할 만한 인물이 있으니 바로 카이스트 물리학과의 교수 정하웅이다. 최근 정하웅은 무지몽매한 한국 백성들을 위하여 광야를 떠돌며 예언을 전하기 시작했다.

▲ <구글 신은 모든 것을 알고 있다>(정하웅·김동섭·이해웅 지음, 사이언스북스 펴냄). ⓒ사이언스북스
정하웅의 강연은 물리학계에서도 전설이다. 필자도 부산대학교 물리교육과 특강 연사로 정하웅을 초청한 적이 있다. '구글 신은 모든 것을 알고 있다'라는 강연을 바로 눈앞에서 들을 수 있었는데, 정말 '개그 콘서트' 만큼이나 재미 있었다! 이런 강연을 책으로 만들어 보면 어떨까? 사이언스북스에서 기획한 '카이스트 명강' 시리즈는 이런 아이디어를 실행에 옮긴 것이다. <구글 신은 모든 것을 알고 있다>(사이언스북스 펴냄)는 카이스트 물리학과 정하웅, 이해웅 교수, 바이오 및 뇌공학과 김동섭 교수가 각각 3번씩 진행한 강연을 책으로 묶은 것이다.

이 세 사람의 강연을 관통하는 주제는 '정보'. 빅 데이터, 생명의 정보, 양자정보. 현재 이슈가 되는 정보의 세 가지 측면을 모두 다루고자 한 기획은 높은 점수를 줘도 될 거 같다. 정하웅의 글이 다른 이들의 글의 1.5배 길이인데, 이것은 그를 특별 배려해서가 아니다. 내가 아는 한 정하웅의 말이 보통 사람보다 1.5배 정도 빠르다.

정하웅의 강연은 한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다.

"세상에는 네트워크가 많은데, 항공망처럼 생겼다."

항공망의 특징은 인천, 시카고, 뉴욕과 같은 허브 공항이 있다는 것이다. 이런 공항들은 다른 수많은 공항들과 연결을 맺고 있으나, 미국 시골에 위치한 작은 공항은 몇 개의 다른 공항하고만 연결되어 있을 뿐이다. "이거 당연한 거 아닌가?"라는 생각이 드는 분들은 꼭 이 책을 보셔야 한다. 이 책의 미덕은 이런 간단한 사실로부터 얼마나 다양한 결론을 얻어낼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는 것이다. 인터넷이나 인간의 신진대사 반응계가 항공망처럼 생겼다는 것은 재미없을지 몰라도, 대한민국 국회의원들의 인적 네트워크, 사람들의 섹스 네트워크도 항공망이라는 사실에는 귀가 솔깃할 것이다.

인터넷이 항공망이라는 사실을 알기 위해서는 이 세상의 모든 웹사이트를 조사해야 한다. 즉, 네트워크를 다룬다는 것은 거대한 데이터를 다루는 문제라는 거다. 거대 데이터, 혹은 '빅 데이터'라고 부르는 것은 최근 정보과학의 화두다. 검색엔진 구글이 그들이 가진 빅 데이터로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 예를 하나 보이겠다.

"사람들은 열이 나거나 몸에 이상이 나타나면 내가 무슨 병에 걸린 건 아닌지 검색을 합니다. (…) 두통, 고열, 기침 등이 갑자기 LA 지역에서 검색어로 많이 나온다면 이것은 필시 그 지역에 독감이 돌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런 예측에 기반을 두고 구글은 지난 5년간 독감 환자수를 정확히 설명할 수 있었다. 이것은 독감 환자수를 실시간으로 모니터링 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다수의 독자들은 이것을 이용하면 돈을 벌 수 있다는 것을 바로 눈치 챘을 것이다. 특정 상품의 판매량이나 수요 등의 실시간 예측에 이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구글 신은 돈도 벌게 해준다는 말이니, 구복신앙을 추구하는 분들에게 안성맞춤이라 할만하다.

김동섭의 강연 역시 한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다.

"생명의 본질은 정보다."

이 문장에 뜨악하실 분들이 계실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 일부 물리학자들이 "우주는 정보다"라고 이야기하는 판이니 너무 놀라실 일은 아니다. 이 문장을 이해하기 위해서 생명에 대한 유물론자(대부분의 과학자는 유물론자다)의 생각을 정리해 보겠다. 생명체란 화학 기계다. 가장 중요한 화학물질은 단백질이다. 단백질은 그 자체로 생명체의 일부가 되는 한편, 생명에서 일어나는 모든 화학반응을 제어하여 필요한 모든 것을 만드는 데에 관여한다. 사람과 바퀴벌레가 다르다면 그들의 단백질이 다른 것이다. 각각의 생명체에 필요한 단백질은 설계도에 따라 정확히 조립되어야 한다. 그 설계도는 DNA라 불리는 분자에 저장된 정보다. 즉, 여러분의 몸과 몸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은 다름 아닌 DNA에 쓰인 정보에서 비롯된 것이다. 여기서 유전자가 우리를 지배한다는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홍영남·이상임 옮김, 을유문화사 펴냄)가 떠오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어찌 보면 유전자는 우리 자체다.

김동섭의 강연 부분은 모범적인 과학 대중서 방식으로 기술되어 있다. 잘 준비된 내용으로 차분히 진행되는 강의를 듣는 듯하다. 풍부한 예를 사용한다는 점에 있어 그가 대중과 호흡하는 방법을 알고 있다는 느낌이다. 1강과 2강은 생명과학 관련 대중 과학 서적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내용들이지만, 3장은 정크 DNA를 포함하여 최근 2~3년 이내의 최신 정보를 담고 있어 꽤 흥미로웠다. 우리가 이런 내용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는 다음의 글에서 명백해 보인다.

"이 모든 것이 기술적으로 가능해진다면 언제가 되었든 그 순간 맞춤형 아기는 당연히 세상에 나올 것 같습니다. 부모가 원하는 색깔의 눈이라든가 체격이라든가 피부색 등을 갖게 해주는 회사가 속속 생기겠지요."

이해웅의 양자정보 강의는 아무래도 이 책에서 가장 어려운 부분인 것 같다. 사실 그는 필자의 박사학위 지도교수님이다. 학창시절 교수님의 강의는 쉽고 명쾌하기로 소문이 났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양자정보에도 여러 세부 분야가 있지만, 강의에서는 양자암호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이야기한다. 1강에서는 현재 널리 사용되는 RSA 암호체계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나온다. 사실 이 주제는 너무 어려워서 대부분의 책에서 구렁이 담 넘어가듯이 이야기하는 것이 보통인데, 여기서는 거의 정공법에 가깝게 접근한다. 다소 어렵지만, 자세히 알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유익할 것으로 생각된다.

2강과 3강은 양자암호와 양자정보에 대한 설명이다. 모든 정보는 숫자로 표현할 수 있다. 컴퓨터에서 보는 동영상과 문서들은 사실 모두 숫자들의 집합에 불과하다. 소프트웨어 제작자들이 수학을 잘 해야 하는 이유다. 게임 만들겠다고 이 분야 뛰어들었다가 수학에 질려서 떠나는 경우도 있다. 모든 수는 이진법으로 표현할 수 있다. 모든 정보는 결국 0과 1로 나타낼 수 있다는 말이다. 예를 들어 0100100과 같이 0과 1의 배열이 특정한 정보를 나타낸다는 말이다. 이 경우 0이나 1이 들어가는 7개의 장소가 있는데, 이것을 비트라고 부른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하나의 비트에는 0 또는 1 가운데 하나만 들어갈 수 있다.

양자역학을 고려하는 순간 여기서부터 꼬이기 시작한다. 양자역학은 하나의 비트에 0과 1이 동시에 들어가는 것을 허용한다. 이것을 '큐비트'라 한다. 양자역학이 갖는 이러한 중첩 상태야말로 양자정보가 갖는 모든 기이한 성질의 근원이 된다. 중첩 상태를 이용하여 도청이 불가능한 통신, 완벽한 암호 체계, 순간이동과 같은 환상적인 아이디어를 구현할 수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부분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일반인은 많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것은 이해웅의 책임도 아니고 독자의 책임도 아니다.

"양자역학을 이해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게 이유니까.

출판사가 하나둘 문을 닫고 있는 것에 반해, '~콘서트'라는 이름의 강연장에는 자리가 없어 못 들어갈 지경이다. 이런 상황에서 인기 강연을 책으로 만들어 보자는 것은 출판사의 고육지책으로 보인다. 하지만 아무래도 책은 책으로서의 맛이 있는 법이다. 강연을 전제로 만들어진 내용을 책으로 옮겼을 때, 강연의 맛을 그대로 살리기도 어렵고 책이 되기에는 뭔가 부족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글 신은 모든 것을 알고 있다>의 시도가 좋은 결실을 거두어 새로운 장르가 성공적으로 정착하길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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