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네가 어디에 있든, "인간은 정말 혐오스러워!"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네가 어디에 있든, "인간은 정말 혐오스러워!"

[금정연의 '요설'] 조너선 스위프트의 <걸리버 여행기>③

☞금정연의 '요설' 지난 호 바로 가기 : 걸리버 여행기② '큰 남자'였던 그, 거대한 가슴을 보고 놀란 사연?

<제10장>
어느 때보다 다양한 것들을 접하는 걸리버의 모험이 펼쳐진다. 걸리버는 그 모든 것에서 혐오스러운 인류의 모습을 본다.


"도대체 누가, 또 무엇이 나로 하여금 내 인생의 정상적인 진로를 폭파하게 만들었단 말인가? 혹시 그것은 장차 내게 유리하게 작용하게끔 되어 있는 어떤 이점을 덧붙여서, 다시 나를 본래의 인생 궤도로 되돌아오게 하려는, 내 자신이 꾸민 하나의 술책 내지 교묘한 우회로가 아니었을까? 그것도 아니라면, 내가 취한 결정이 내가 소속하고 있는 사회집단과 나와의 공존 불가능성을 예고하고 있었단 말인가? 그래서 그 결과로 나는 기어코 그 사회와 점점 더 격리된 상태에서밖에 살지 못하게 운명 지어져 있었단 말인가?" (<슬픈 열대>(레비스트로스 지음, 박옥줄 옮김, 한길사 펴냄) 675쪽)

하지만 걸리버는 묻지 않는다. 원망하지도 않는다. 아무런 의심도 없이 묵묵히 운명을 받아들일 뿐이다. 그 결정이 한 집안의 가장이나 외과의사로서 마땅히 걸어야 할 인생의 정상적인 진로를 폭파한다고 해도, 나아가 그가 속한 사회로부터 그를 영원히 격리시켜 다시는 섞이지 못하게 만든다고 해도.

그는 말한다. "항해를 하면서 지금까지 겪었던 불행한 과거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가보지 못한 세상을 다시 알고 싶은 욕망도 솟아올랐다." 유일한 장애는 아내의 반대다. "그러나 아이들에게 앞으로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는 전망 때문에 아내도 마침내 허락했다." 세 문장 만에 상황은 종료되고, 그는 세 번째 항해를 떠난다. 그의 나이 마흔넷. 집으로 돌아온 지 고작 두 달하고 열흘이 지난 후였다.

이번에 그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해적이었다. 배가 나포되고, 그는 조그만 보트에 실려 망망대해를 표류하는 신세가 된다. 하지만 걱정할 필요는 없다. 우리가 읽고 있는 것은 걸리버 여행기이고, 그것은 그가 살아남아 자신의 고난을 기록했다는 뜻이니까. 마침 해적선을 만나기 전에 주변 관측을 해둔 상태였다. 표류한지 불과 세 시간이 지나기도 전에 걸리버는 가까운 섬에 닻을 내린다.

그렇지만 그 섬은 걸리버의 모험에 어울리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바위로 가득 찬 작은 무인도다. 소인도 거인도 없고, 프라이데이 또한 없다(그는 걸리버가 도착하기 20여 년 전에 로빈슨 크루소와 함께 섬을 탈출했다. 같은 섬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익숙한 비탄에 잠긴 걸리버. 외진 곳에서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최후는 또 얼마나 비참할지를 생각하며 그는 버림받은 개처럼 해변을 쏘다닌다. 그렇다고 무작정 집을 나선 그를 비난할 필요는 없다. 아무려나 마흔넷이다. 집을 나서지 않더라도 충분히 서러울 나이다. 눈물이 차올라서 고개를 드는 걸리버. 그리고 바로 그 순간, 그는 새로운 모험을 발견한다.

"그때 갑자기 해가 가려졌다. 구름이 해를 가리는 것과는 아주 다른 기분이었다. 나는 고개를 돌렸다. 나와 태양 사이에 있는 무엇인가 커다란 불투명체가 이 섬을 향해 다가오고 있는 것을 보았다. 3킬로미터 정도의 높이로 떠 있었으며, 6~7분 동안이나 태양을 가렸다." (<걸리버 여행기>(신현철 옮김, 문학수첩 펴냄) 197쪽)

▲ <걸리버 여행기>(조너선 스위프트 지음, 신현철 옮김, 문학수첩 펴냄). ⓒ문학수첩
하지만 걸리버는 놀라지 않는다. 그저 낡은 모자와 손수건을 흔들 뿐. 과연 그는 하늘을 나는 섬의 사람들에게 발견되어 스스로의 목숨을 구한다. 산전수전, 아니 '소인거인' 모두 겪은 아저씨다운 듬직함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천공의 섬, 라퓨타의 사람들은 어딘지 괴상한 모습이었다. 삐뚤어진 고개에 한쪽 눈은 아래로, 다른 쪽은 위로 올라가 있었으며, 해와 달 그리고 별들의 그림이 다양한 악기들과 함께 수놓인 옷을 입고 있었다. 그들은 바람 주머니를 들고 있는 시종들과 함께 다녔는데, 언제나 깊은 사색에 잠겨 있기 때문에 시종들이 항상 옆을 따라다니며 바람 주머니로 그들을 깨워야 했던 것이다. 시종이 없을 때는 외출을 삼갔다. "절벽이 나타나면 떨어지고, 기둥마다 머리를 부딪치며, 거리에서 다른 사람들을 밀치거나 혹은 다른 사람에게 밀려서 하수구에 떨어지는 위험에 아무런 대책도 없었"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국왕에게 불려간 걸리버. 그는 사색에 잠겨 있는 왕과 짧은 대화를 나눈 뒤, 융숭한 식사를 대접받는다. 두 개의 코스로 이루어진 식사였다. 어쩌면 걸리버는 이 맛에 여행을 끊지 못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첫 번째 코스에는 정삼각형으로 자른 양의 어깨 고기와 마름모꼴로 자른 쇠고기 그리고 동그란 푸딩이 나왔다. 두 번째 코스에는 날개와 다리를 함께 묶어서 바이올린 모양처럼 구워 낸 두 마리의 오리와, 플루트와 오보에를 닮은 소시지와 푸딩 그리고 하프 모양으로 만든 송아지의 가슴 고기가 나왔다." (204쪽)

라퓨타인들은 수학과 음악을 사랑했다. 아니, 수학과 음악만 생각했다. 음식만 도형이나 악기를 본떠 만드는 것이 아니었다. 여자의 아름다움을 칭찬할 때에도 사다리꼴, 원, 평행사변형, 타원 및 그 밖의 기하학 용어나 음악에서 빌려 온 용어로 표현했다. 반면 그들의 집은 어떤 벽에도 직각이 없을 만큼 매우 조잡했는데, 실용 기하학은 천박한 것이라고 경멸했기 때문이다. 요컨대 그들은 수학과 음악을 제외한 모든 것에 서툴렀고, 쩔쩔맸다. 참 피곤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언제나 비합리적이었으며, 올바른 의견을 갖는 경우란 거의 드물었다. 상상력이나 공상, 발명 같은 단어는 그들에게 있어 낯설 뿐 아니라, 그런 뜻을 나타내는 말조차 없었다. 그들의 정신이나 마음은 수학과 음악에 모두 갇혀 있는 것이었다." (207쪽)

한편 그들은 점성술을 믿었고, 뉴스와 정치에 대해 떠들기를 좋아했다. 끊임없이 공무를 수행하며 국가의 일에 대해 판단을 내리고, 정당의 견해를 철저하고 열정적으로 논박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수학과 음악이 아니지 않는가? 걸리버는 이렇게 덧붙인다. "내가 알고 있던 유럽의 대부분의 수학자들에게서 그러한 기질을 본적이 있다. (…) 자신과 아무런 관계가 없는 일에 더욱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잘난 체하기를 좋아하는 사람들로부터 이러한 성질이 나왔다고 생각한다." 나와 내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을 향하지 않을 때, 대부분의 조롱은 즐겁게 마련이지만, 그다지 공감은 가지 않는 설명이다.

혹시 수학자에게 사랑하는 여인을 빼앗기기라도 했던 걸까? 지금까지 역설과 반어에 의지해왔던 스위프트다. 그가 우습게 바라보던 소인들의 행태가 실은 우리의 모습이요, 거인왕에게 피력했던 인류의 위대함이 실은 인류의 수치였다는 식으로. 하지만 이번에는 다르다. 그에 의하면 라퓨타의 남자들은, 그러니까 수학자들은, 혹은 음악가들은, 그밖에 스위프트가 염두에 둔 많은 이들은, 불안에 싸여 마음의 평화를 한순간도 누리지 못하는 겁쟁이다.

"그들이 아침에 이웃을 만나면 처음으로 묻는 것이 태양의 상태였다. 태양이 지거나 뜰 때의 모습은 어떠했으며, 다가오는 혜성과의 충돌을 피할 수 있는 희망은 있을까 하는 것들이었다. 그들은 유령이나 귀신에 대한 무서운 이야기를 듣기 좋아하는 나이 어린 소년들이 이야기를 열심히 듣고 나서는 겁이 나서 혼자 침대로 가지 못하는 기분으로 이러한 대화를 나누었다." (208쪽)

반면 여자들은 활기에 넘쳤고, 남편을 멸시했으며, 다른 곳에서 온 사람들을 좋아했다. 섬 아래에 있는 땅의 많은 도시에서 공무나 사적인 일들을 해결하기 위해 라퓨타에 와 있는 이방인은 언제나 많았던 것이다.

"그들은 하늘을 나는 섬의 남자들과 같은 재능이 없었기 때문에 멸시를 받고 있었다. 이들 가운데에서 여자들은 자신과 정을 통할 사람을 찾는다. 이들은 언제나 안심을 하고 안전하게 행동을 했다. 남편이 언제나 사색에 잠겨 있기 때문에, 남편 앞에서도 정부와 함께 무척 다정하게 행동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남편에게 종이와 도구가 들려 있고, 두드리는 시종이 곁에 있으면 그러지 못했다." (209쪽)

교훈은 분명하다. 현실에 발을 붙이지 못한 남자들은 여자들의 사랑을 받을 자격이 없다는 것. 그러니 아직도 '재능 있는' 남자에게 매력을 느끼는 젊은 여성분들이라면 걸리버의 말에 귀를 기울이시길. 그의 '재능'은 어디에도 쓸모가 없으며, 설령 그를 사랑한다고 한들 그 '재능'이 당신 것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걸리버는 한 귀부인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녀는 총리대신인 남편을 버리고 땅으로 내려가 몇 달 동안이나 돌아오지 않았다. 수소문 끝에 형편없는 음식점에서 누더기를 걸치고 있던 여자를 찾아냈는데, 입고 있던 옷은 늙고 병든 어느 남자를 돌보기 위해 저당 잡혔다고 했다. 심지어 병든 남자는 귀부인을 매일 구타하기까지 했다. 그럼에도 그녀는 좀처럼 총리대신에게 돌아오려 하지 않는다. 총리대신은 조금도 비난하는 기색 없이 부드럽게 아내를 맞이하지만, 그녀는 꾀를 부려 집안의 보석을 모두 가지고 다시 그 남자에게로 돌아간다. 그리고 다시는 발견되지 않는다. 걸리버는 이렇게 덧붙인다.

"이것은 아주 멀리 있는 나라의 이야기로 들리기보다는 유럽이나 영국에서의 이야기로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독자들은 여자들의 변덕이 어떤 지역이나 국가에 한정된 것이 아니며,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것보다도 더욱 보편적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210쪽)

물론 이 일화에도 사랑 때문에 고민하는 젊은 남성들이 귀를 기울일만한 구석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구태여 그것을 설명할 생각이 없다. 왜 내가 그래야 한단 말인가? 나는 여성들의 미움을 살만한 어떤 일도 하고 싶지 않다.

그러니 진부한 배신과 번식의 이야기는 이쯤에서 마치기로 하자. 문제는 스위프트의 태도다. 분변에 대한 집착에도 불구하고, 1부와 2부의 이야기에는 하나의 목표가 있다. 현실 정치에 대한 비판. 그것이 비록 영국계 아일랜드인으로서 그 자신이 품었던 정치적 열망과 좌절, 그리하여 생겨난 원한에서 비롯한 것이라고 한들 무슨 상관이랴.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우리 시대의 수많은 '논객'들을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인지도 모른다. 조지 오웰은 스위프트가 "당대 진보정당의 우매함에 심사가 뒤틀려 토리주의자가 되어버린 셈인 사람"(어라, 혹시 내가 아는 사람인가?)이라며 그의 소설이 '정치적으로 공정하지 않다'고 투덜대기도 했지만, 어쨌거나 스위프트는 멋진 솜씨로 기억할 만한 이야기를 썼고 그것으로 족한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정리하고 넘어가기에 이어지는 3부의 이야기는 어딘가 께름하다. 라퓨타에 싫증을 느낀 걸리버는 국왕에게 부탁해 땅에 있는 도시 래가도에 가게 된다. 그곳에서 그는 누더기를 걸친 거지들과, 이상하게 지어진 채 허물어가는 집, 제대로 경작하지 않아 잡초가 가득 핀 논밭을 본다. 의아한 얼굴의 걸리버에게 한때 래가도의 총독이었으나, 대신들의 음모로 자리에서 물러나 지금은 걸리버를 안내하고 있는 무노디가 설명한다.

지금으로부터 40년 전, 라퓨타를 방문한 사람들이 있었다. 5개월간 머무르며 수학에 대한 지식을 아주 조금 배운 그들은 기분이 몹시 들뜬 채 돌아왔다. 그들은 이제까지 땅 위에서 해오던 모든 일들을 부정하고 예술과 과학, 언어 그리고 기술을 새로운 기반 위에 올려놓을 계획을 세웠다. 계획을 실행하기 위해 그들은 아카데미를 세웠는데, 그들의 들뜬 기분은 전 국민을 사로잡았다. 아카데미의 교수들은 농업과 건축의 새로운 법칙과 방법 그리고 제조업을 위한 새로운 기구와 도구를 고안하는 일을 했다. 한 사람이 열 사람의 일을 할 수 있고, 궁전을 일주일 안에 새로 지을 수도 있으며, 어느 때든 원하는 계절에 과일을 열리게 하는 기술을 연구하는 것이었다. 물론 그 모든 계획 가운데 어느 하나도 완성된 것은 없고, 그러는 동안 나라 전체는 아주 비참할 정도로 황폐해졌지만, 사람들은 연구 계획을 포기하기는커녕, 오히려 더욱 열렬히 연구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모험심이 강하지 않은 무노디는 몇 명의 귀족들과 함께 과거의 생활 습관을 고수하고 있지만, 지금 그들은 "예술의 적으로, 반국가적인 인간으로, 국가의 총체적인 개선에 앞서 자신의 안락과 게으름을 피우는 자들로 멸시와 냉대를 받"고 있다.

걸리버는 아카데미를 방문한다. 500개가 넘는 방에서 연구원들이 저마다의 작업에 골몰하는 곳이다. 누군가는 오이에서 태양 광선을 추출해 내는 계획을 8년 동안 연구했다. 누군가는 인간의 대변을 다시 원래의 음식으로 되돌리는 일을 연구했다. 얼음에 열을 가해 화약으로 만드는 일에 골몰하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지붕부터 시작해 차차 아래로 내려와 기초를 만드는 새로운 건축법을 고안하는 독창적인 건축가도 있었다. 태어나면서부터 장님이었던 또 다른 연구자는 자기처럼 장님인 제자 몇 명을 데리고, 화가들을 위해 색을 섞었다. 쟁기와 가축 그리고 노동력에 드는 비용을 절약하기 위해 돼지로 밭을 가는 방법을 연구하는 연구자도 있었다. 참고로 그 방법은 다음과 같다.

1. 4000제곱미터 정도의 땅에 15센티미터 간격으로 20센티미터 깊이에 적당한 양의 도토리, 대추, 밤 등 돼지들이 좋아하는 먹이를 묻어 둔다. 2. 600마리 이상의 돼지를 그곳에 몰아넣고 기다린다. 실험은 아직 성공하지 못했지만 "이 방법의 발견이 위대한 진보를 이룩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은 아무도 의심하지 않았다."

스위프트는 이 아카데미의 놀라운 업적을 무려 십팔 쪽에 걸쳐 설명한다. 과학과 예술, 정치와 사회, 언어에 이르기까지 온갖 분야의 기괴한 실험들을 늘어놓는다. 물론 그 모든 연구가 쓸모없는 것은 아니었다. 이를테면 이런 연구를 보라.

"일반 국민의 불평에 따르면, 국왕의 대신들은 모두 기억력이 짧고 무엇이든 쉽게 잊어버리는 병에 걸려 있었다. 그 의사는 총리대신을 만나는 사람들에게 자기가 할 이야기는 아주 간단하고 쉬운 말로 하고, 물러나올 때는 그 대신의 코를 비틀거나 배를 힘껏 걷어차거나 대신의 티눈을 밟거나 해서 감정을 상하도록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양 쪽의 귀를 세 번 잡아당기거나 다리를 핀으로 찌르거나 팔을 꼬집어 멍들게 해서 들은 이야기를 잊어버리지 않게 하라고 권고했다. 다시 접견할 때마다 그 일이 처리될 때까지 이러한 동작을 반복하라는 것이었다." (241쪽)

(누군가 이 연구를 계승한다면 나는 그를 후원할 의향이 있음을 밝혀둔다.)

래가도의 아카데미를 둘러보며 당대의 학자들을 조롱한 걸리버는 글럽덥드립을 향한다. '마법사의 섬'이라는 이름을 가진 이웃의 작은 섬이었다. 그곳의 총독은 마법을 이용, 죽은 자를 불러내 자신의 시종으로 삼고 있었다. 걸리버는 매일 그곳을 찾아가 총독에게 부탁해 수많은 인물들을 만난다. 알렉산더와 한니발, 시저와 브루투스, 호머와 아리스토텔레스, 데카르트와 가상디 그리고 위대한 혈통을 가졌다고 알려진 왕과 그 조상들에 이르기까지 지치지도 않았다. 그는 그 만남을 이렇게 정리한다.

"특히 나는 현대사에 대해 많은 메스꺼움을 느꼈다. 지난 100년간 국왕들의 궁중에 있었던 저명한 인사들을 엄격하게 조사한 결과, 어떻게 매춘부와 같은 작가들이 엉터리 글을 써서 사람들을 잘못 인도했는가를 발견한 것이다.

즉 전쟁에서 가장 영예로운 공적은 겁쟁이들의 것으로 만들고, 가장 현명한 조언을 바보들이 했던 것으로 바꾸었으며, 아첨하는 사람들에게는 성실을, 조국을 팔아먹은 매국노에게는 진실을 부여했던 것이다. 대신들이 부패한 재판관에게 주었던 뇌물 때문에 그리고 한 정당의 악의 때문에 결백하고 능력 있는 많은 사람들이 사형을 당하거나 추방되었다. 얼마나 많은 악당들이 명예와 세력과 권위와 풍요로움이 보장되는 자리에 올랐으며, 궁중에서의 각료회의 그리고 상원의회의 움직임이나 사건들이 얼마나 많은 포주와 창녀, 뚜쟁이, 아첨꾼, 익살스러운 광대에 의해 도전을 받았는지 모른다. 세계의 위대한 사업이나 혁명 그리고 여러 사람들의 성공이 형편없는 사건 때문에 생겼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나는 인간의 지혜와 성실성에 대해 무척이나 경멸했다." (255쪽)


걸리버는 타락한 인류의 현실에 경악하며 영국의 중류층 농민을 불러달라고 요청한다. 역사 속의 유명 인물들과 달리 소박한 미덕을 지니고 있는 그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걸리버는 개탄한다.

"살아 있는 사람과 죽은 사람을 비교할 때, 진심으로 감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사람들의 순수하고 천성적인 성품이 지금에 와서 그들의 손자들에 의해 돈 몇 푼에 팔리고 있었다. 투표권을 팔고 선거를 조작함으로써, 모든 악과 부패를 배워서 익혔던 것이다." (258쪽)

여기서 질문. 만약 총독이 미래에서 사람을 부를 수 있었다면, 이를테면 우리를 불렀다면, 걸리버는 뭐라고 했을까?

다음으로 걸리버가 향한 곳은 럭낵이다. 일본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나라로, 그곳에서 일본으로 가는 배편을 구해 영국으로 가려는 계획이었다. 그곳에서도 물론 걸리버는 궁정에 들른다. 조지 오웰은 이를 두고 "3부에서는 1부에서와 상당히 비슷하나, 주로 궁정인들이나 학자들하고만 어울리기 때문에 신분이 상승하기라도 한 듯하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고 비꼬고 있는데, 이것은 너무 지나친 비난이다. 우리의 걸리버에게도 작은 보상이 필요한 것이다. 물론 이런 것도 보상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인지는 조금 생각해봐야겠지만.

"우리는 노새를 타고 갈 수 있었다. 내가 떠나기 한나절 전에 전령을 보내서 미리 기별을 했다. 그리고 럭낵의 관례대로 내가 '국왕이 발을 두는 곳에 있는 먼지를 핥을 수 있는 영광'을 갖기에 적당한 날짜와 시간을 알려달라고 했다. 나는 이러한 관례가 단순한 형식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아주 중요한 문제와 관련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틀이 지난 다음 국왕을 만나게 되었을 때, 나는 배를 땅에 대고 기어가면서 바닥을 핥아야 했다. 하지만 내가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바닥은 깨끗하게 치워져 있었다. 이것은 높은 신분에게만 허용되는 아주 특별한 처분이었다." (261쪽)


그곳에서 그는 "외국인들, 특히 국왕의 후원을 받고 있는 외국인에게는 더욱 친절한"(요즘 식으로 말하자면 "엉덩이를 만질 때도 피부색을 따지는") 동부국가들의 민족성 덕에 좋은 대접을 받는다. 높으신 분들과 어울리는 걸리버. 그는 그들에게서 영원히 죽지 않는 불멸의 존재인 스트럴드블럭에 대해 듣게 된다. 잠시 동안 불사의 꿈에 젖어 이런저런 공상을 하기도 한다. 영원한 삶이란 얼마나 매력적인가! 하지만 그들은 그런 걸리버를 비웃으며 스트럴드블럭의 실상에 대해 말해준다.

"스트럴드블럭이 80세에 이르렀을 때, 그들은 노망이 나거나 조금씩 어리석어질 뿐만 아니라 죽지 않음으로 생기는 무서운 절망을 갖게 된다. 그들은 고집이 세고, 불평을 많이 하고, 욕심이 많고, 언제나 침울하고, 허영심이 많고, 수다스럽고, 남을 사랑할 줄도 모르며, 손자보다 아랫대의 후손들에게는 어떠한 애정도 주지 않는다. 그들은 시기와 이루어질 수 없는 욕망으로 가득 차 있다.

그들이 주로 질투하는 것은 젊은 사람들의 행동과 나이 든 사람들의 죽음이었다. 젊은 사람들의 행동을 바라보면서 그들은 모든 쾌락으로부터 자신들이 제외되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장례식을 볼 때마다 자신들이 갈 수 없는 영원한 안식처로 죽은 사람들이 떠나는 것을 보고 매우 한탄했다. 그들은 젊은 시절이나 중년에 배우고 관찰한 것 이외에는 잘 기억하지 못하며, 기억한다고 할지라도 매우 불완전하다. 어떤 사건에 대한 확실한 내용을 알기 위해서는 그들의 기억력에 의존하느니 차라리 일반적인 전설에 의지하는 것이 훨씬 나을 것이다." (270쪽)


여기서 굳이 스트럴드블럭의 모습을 묘사함으로써 독자들의 밥맛을 떨어뜨릴 필요는 없으리라(걸리버는 "여자는 남자보다 더욱 추했다"고 말했다). 그러니 이번에도 역시 걸리버는 그 모든 것을 보았고, 살아남아 집으로 돌아왔다고 말하는 것으로 만족하기로 하자. 1710년 4월 10일 그는 영국에 도착했고, 그는 "5년 6개월 만에 다시 고국의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고 말하고 있지만, 실은 4년 6개월이라는 사실 또한 덧붙인다. 이것이 문학수첩 번역본의 오류인지, 조너선 스위프트의 오류인지는 확인하지 못했다. 하기야 4년이건 5년이건 무슨 상관이랴. 어차피 얼마 못가 또 다시 항해를 떠날 것이 뻔한데.

하늘을 나는 섬과 인접 국가로의 여행은 브롭딩낵 국왕이 그의 마음에 싹틔운 인간 혐오를 더욱 자라게 했고, 그는 자신의 운명을 확인하기 위해서라도("그래서 그 결과로 나는 기어코 그 사회와 점점 더 격리된 상태에서밖에 살지 못하게 운명 지어져 있었단 말인가?") 다시 한 번 항해를 떠나야만 한다.

그리고 그것이 그의 마지막 항해가 될 것이었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