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들은 채식이 '명백히' 고통을 느끼는 종인 다른 동물을 인간과 '똑같이' 대접하려는 노력의 시작이자, 환경 노동 인권 등 수많은 문제를 낳는 공장 축산을 거부하는 저항이라고 생각합니다. 더 나아가 채식은 일상에서 지구의 생태계를 지키는 실천으로 인식됩니다. 채식이 단순한 개인의 식생활이 아니라 일종의 사회 운동으로 받아들여지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그런데 최근에 이런 통념에 반기를 드는 책이 한 권 나왔습니다. 제목부터 도발적입니다. <채식의 배신>(김희정 옮김, 부키 펴냄). 더구나 저자 리어 키스는 살코기뿐만 아니라 우유, 달걀 등 모든 동물성 먹을거리를 거부하는 '비건(vegan)''으로 20년간 살았습니다. 배신한 채식주의자가 옛 동지를 강하게 비판하는 책을 낸 것입니다.
당연히 이 책을 둘러싼 논란도 뜨겁습니다. 미국은 물론이고 한국의 서점에서도 별 표는 극과 극으로 갈립니다. 특히 일상생활에서 여러 가지 불편을 감수하며 묵묵히 채식을 실천하던 이들의 반발이 격렬합니다. 개인의 일기를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키스의 채식에 대한 거친 고백과 날선 비판도 이런 반응을 부추깁니다.
'프레시안 books'가 이 책의 내용을 꼼꼼히 살펴보고 옥석을 가려보기로 했습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책에 실린 여러 주장은 옳고 그름을 떠나서 채식을 고민하는 이들뿐만 아니라 먹을거리를 고민하는 시민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생각해볼 만한 내용입니다. 왜냐하면 먹을거리 없이 인류는 단 며칠도 살아남을 수 없으니까요.
이 책의 내용을 살피고자 오랜만에 돼지 '소크라테스'를 다시 불렀습니다. 소크라테스는 구제역 파동이 한창이던 2010년 11월 경상북도 안동에서 생매장됐다가 극적으로 탈출에 성공한 바로 그 돼지입니다. 경상북도 모처에서 야생 생활에 적응한 소크라테스는 2년 전에 비해서 훨씬 건강해 보였습니다. (☞관련 기사 : 생매장에서 구사일생 살아난 돼지의 음울한 예언)
ⓒ프레시안(손문상) |
동물의 세 가지 삶
프레시안 : 오랜만입니다. 2011년 2월에 만났으니 2년 만이군요.
소크라테스 : 그렇군요. 그런데 조용히 살고 있는 나를 왜 세상에 불러낸 거요?
프레시안 : 안부도 궁금하고, 같이 얘기해 보고 싶은 책도 한 권 나와서요. <채식의 배신>이라는…. 원래 제목은 "채식의 신화(The Vegetarian Myth)"입니다만.
소크라테스 : 채식의 배신? 신화? 제목만 보면 채식하지 말고 육식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얘기네요. 인간들 입속으로 들어갈 운명으로 태어나, 생매장당하기 직전에 구사일생으로 탈출한 내게 소·돼지를 즐기자는 책을 들이밀며 찾아왔단 말이오? 혹시 기자(記者)와 정자(精子)의 공통점이 뭔지 아시오?
프레시안 : 오래된 농담이잖아요. 인간이 될 확률이 수억 분의 1도 안 된다는 얘기를 하려고요?
소크라테스 : 아네요. 보아 하니 댁도 인간이 되긴 그른 것 같소. 하긴 내가 2년 전 당한 처지를 염두에 두면 인간이 뭐 별 건가 싶긴 하지만. 그래, 얘기나 들어봅시다.
프레시안 : 우선 근황이 궁금합니다. 구제역 파동이 한창이던 2010년 11월 경상북도 안동의 생매장 현장에서 탈출한 지 벌써 2년이 지났습니다. 야생 돼지의 평균 수명은 15~20년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식용 돼지는 20개월 이전에 도축당하잖아요. 그러니 축사에서 애초 태어났을 때의 예정된 수명보다 벌써 1년 이상 더 산 셈입니다. 건강은 어떻습니까?
소크라테스 : 사실 생매장 현장에서 탈출해 경상북도 인근의 산속으로 피신할 때만 해도 고작 몇 개월을 버티지 못할 거라 생각했습니다. 우선 항생제로 범벅이 된 내 몸의 면역 체계가 야생 생활을 견딜 수 있을지가 의심스러웠어요. 사료에 길들여진 입맛도 걱정이었고요. 고생스럽긴 하지만 그래도 아직까지는 비교적 건강한 편입니다.
프레시안 : 다른 동물과의 관계는 어떤가요?
소크라테스 : 처음에는 호랑이 없는 산속에서 무서울 게 뭔가, 했어요. 그런데 거참…. 요즘은 담비 녀석들 때문에 여간 골치가 아픈 게 아닙니다. 이놈들이 서너 마리씩 무리 지어서 공격해대면 당해낼 재간이 없거든. 하는 짓이 꼭 인간들 같아. (웃음) 멧돼지 동료들이 여럿 사냥 당하는 것도 지켜봤어요. 담비만 빼놓고는 큰 골칫거리는 없어요.
프레시안 : 호랑이 사라진 남한 생태계의 최고 포식자가 담비라더니, 사실이었네요. 그나저나 후회는 없습니까? 최근에 영화(<라이프 오브 파이>)로도 만들어진 얀 마텔의 원작 소설 <파이 이야기>(공경희 옮김, 작가정신 펴냄)를 보면 동물원을 놓고서 이런 질문을 던집니다. '과연 동물원의 동물이 야생의 동물과 비교했을 때 불행한가?'
▲ <파이 이야기>(얀 마텔 지음, 공경희 옮김, 작가정신 펴냄). ⓒ작가정신 |
(…) 갇혔다는 느낌은 더더욱 없다. 오히려 주인이 된 기분을 느끼며, 동물원 안에서도 야생 그대로 행동한다. 침범 받으면 사력을 다해 영역을 지킨다. 그렇게 동물원에 가두는 것이 야생으로 사는 것보다 객관적으로 더 나을 것도 나쁠 것도 없다. 동물의 욕구만 충족된다면, 대자연이든 인공 환경이든 영역은 기정사실이 되어버린다.
(…) 동물이 지성이 있어 선택할 수 있다면, 동물원의 삶을 선택할 거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 생각할 나름이다. 고급 호텔에서 무료로 룸서비스를 해주고 무제한으로 치료를 받을 수 있는 쪽을 택하겠는가? 아니면 돌봐줄 사람 하나 없는 노숙자가 되겠는가? 하지만 동물에겐 그런 분별력이 없다. 본성의 범위 안에서 갖고 있는 것으로 살 뿐. (<파이 이야기>, 31~32쪽)
소크라테스 : 나하고는 상관없는 얘기지 않소? 동물원에서의 삶은 언감생심이지. 저번에도 이 잘린 꼬리를 보여줬잖아요? 축사에서 '돼지답게' 살지 못해 스트레스를 받은 돼지는 서로의 꼬리를 물어서 끊곤 해요. 이런 행동을 막고자 인간들이 하는 짓이라는 게, 태어나자마자 돼지 꼬리를 잘라 버리는 겁니다. 긴 말 않겠소. 이 돼지 꼬리가 나의 답변입니다.
채식=건강, 그 때 그 때 달라요!
▲ <채식의 배신>(리어 키스 지음, 김희정 옮김, 부키 펴냄). ⓒ부키 |
소크라테스 : 배교자의 책이군요. 채식주의자의 반발이 장난 아니겠네요. 어느 집단이든지 이탈자의 목소리는 불편한 법이잖아요. (웃음)
프레시안 : 맞아요. 아마존(amazon.com)은 물론이고 국내 서점의 별점도 다섯 개에서 한 개까지 극과 극입니다. 특히 별 한 개를 주는 이들의 반응은 극단적이에요. (웃음) 그런데 정작 책을 꼼꼼히 읽어보면, 그런 반응은 과합니다. 이 책의 주장은, 약간 거칠기는 하지만, 한국의 생태주의자들 그러니까 <녹색평론> 독자나 혹은 녹색당 지지자의 문제의식과 통하거든요.
소크라테스 : 그 얘기는 차차 들어봅시다. 우선 키스가 채식을 그만둔 가장 큰 이유는 뭡니까?
프레시안 : 키스는 채식의 영양학적인 문제점을 책의 맨 뒤에 배치해 놓고 있습니다만, 제가 보기에는 그가 채식을 그만둔 데는 건강상의 이유가 가장 큰 것 같아요. 사실 채식을 실천하는 분들이나 혹은 채식에 호감을 가지는 분들이라면, 이 책의 3부(영양학적 이유의 채식주의가 놓치는 것들)는 꼭 읽어보면 좋겠어요.
소크라테스 : 그거 흥미롭군요. 채식 타령하는 인간들이 겉으로는 "동물 사랑" "동물 해방"을 외칩니다만, 자신의 건강을 지키려는 게 중요한 목적이라는 건 공공연한 사실이잖소.
프레시안 : 실제로 채식주의자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이 "채식=건강"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육류 중심의 서양 식단이 대세가 되면서, 예전에 비해서 육류 섭취가 크게 늘어나고 그에 따른 여러 가지 건강의 부작용의 나타난 건 사실이에요. 그러니 육류 섭취를 줄이는 방향 자체는 맞아요. 하지만 과연 채식만 하면 건강할지를 놓고는 따져볼 부분이 많습니다.
저자 키스만 해도 그래요. 그는 20년간 비건으로 살면서 끊임없이 거식증과 같은 식이 장애를 겪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채식과 식이 장애의 상관관계를 보여 주는 많은 연구 결과가 있어요. 예를 들어 이런 식입니다. 채식을 하는 10대가 고기를 먹는 10대에 비해서 다이어트를 할 가능성이 두 배 높고, 억지로 구토할 가능성도 네 배 높습니다.
이 책에도 나오지만, 채식하는 여성의 경우 식이 장애의 비율이 높을 뿐만 아니라 채식을 하지 않는 여성에 비해서 우울증도 많습니다. 이런 연구 결과는 균형 잡기의 필요성을 역설합니다. 대다수 사람에게 육류 소비를 줄이는 일은 건강에 도움이 됩니다. 하지만 채식, 특히 극단적인 채식은 특정 세대나 개인에게는 심각한 문제가 될 수도 있어요.
소크라테스 : 거기서도 나는 인간의 독선과 오만을 봅니다. 인간은 항상 자신의 경험을 절대시해요. 한 쪽에서는 채식했더니 건강이 좋아진 자신의 경험을 얘기하고, 다른 쪽에서는 이 책의 저자처럼 채식했더니 건강이 망가진 자신의 경험을 말합니다. 그런 주장의 밑에는 자신의 경험이 타인에게도 그대로 통하리라는 믿음이 깔려 있어요.
프레시안 : 정확한 지적입니다. 성장기의 영·유아나 또 청소년의 경우에는 동물성 단백질이나 동물성 지방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육류 섭취뿐만 아니라 술, 담배 등에 찌들 때로 찌든 성인의 몸에 채식 식단이 좋다고 해서, 그걸 그대로 성장기 영·유아나 청소년에게 강요하다가는 낭패를 볼 수가 있어요.
개인별 차이를 일별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비만, 심혈관 질환 등에 대한 많은 연구는 공통적으로 유전, 그러니까 개인별 특성이 이런 질환의 발현에 중요하다고 지적하고 있어요. 그러니 특정 개인의 건강에 채식 신단이 좋다고 해서 다른 개인의 건강에도 그러리란 법은 없습니다. 사실 이 책의 저자처럼 채식을 해서 오히려 건강이 나빠진 경우는 주변에서도 굉장히 많이 볼 수 있어요.
소크라테스 : 그런데 콩이 있잖아요? 채식주의자에게는 보물 같은 존재 아닙니까?
프레시안 : 이 책에서도 특별히 6장('만병통치약' 콩의 진실)을 콩에 할애하고 있습니다. 채식주의자를 비롯한 많은 이들이 6장을 읽으면 불편한 마음이 들 거예요. 하지만 이 장은 의사, 한의사를 포함한 전통, 현대 의학 모두 지지할 만한 내용입니다. 사실 전통 음식에서 콩이 차지하는 위치만 봐도 알 수 있지요.
소크라테스 : 콩은 부식이지 주식이 아니잖소.
프레시안 : 맞아요. 전통적으로 콩을 많이 섭취해온 한국, 일본의 음식 문화를 보세요. 콩 요리의 대부분은 된장, 낫토처럼 한 번 삶는 것도 모자라 또 발효를 합니다. 왜일까요? 바로 콩 특히 메주콩이나 검정콩을 곧바로 섭취했을 때의 폐해가 만만치 않기 때문이죠. 대표적인 게 콩 속에 들어 있는 소화 억제 물질입니다.
콩에는 췌장에서 나오는 단백질 소화 효소(트립신)의 억제 인자가 들어 있어요. 콩을 먹었을 때 소화가 안 되고 속이 더부룩한 경우가 있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옛사람이 콩을 삶고 또 발효해서 섭취한 데는 다 이유가 있는 셈입니다. 수천 년간 섭취해 콩에 익숙해진 아시아와는 사정이 다른 미국, 유럽의 경우에는 더욱더 조심할 필요가 있지요.
이 책에서는 콩 속에 들어 있는 식물성 호르몬 에스트로겐의 위험도 언급합니다. 콩의 식물성 에스트로겐은 남성 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의 수준을 낮추고, 따라서 성욕을 억제하는 역할을 합니다. 한창 2차 성징이 나타나는 10대의 청소년이 이런 식물성 에스트로겐을 과다 복용하면 부작용이 생길 가능성도 큽니다.
소크라테스 : 동양의 승려들이 두부를 좋아하는데 다 이유가 있었군요? (웃음)
프레시안 : 완두, 강낭콩, 팥 등에는 소화 효소 억제 인자나 에스트로겐이 거의 없어서 비교적 안심하고 먹어도 됩니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그것은 쌀과 곁들여 먹는 부식일 뿐이죠.
채식으로 지구를 지켜? 착각하지 마세요!
소크라테스 : 사실 채식은 인간 본성을 거스르는 거죠. 왜냐하면, 아주 오랫동안 인간은 육식과 채식을 같이 하는 잡식 동물로 진화해 왔으니까요. 그런 점에서 육식 과잉도, 채식 과잉도 건강에 여러 문제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인간과 식성이 가장 비슷한 잡식 동물인 돼지 입장에서 하는 말입니다.
그나저나 저자 키스가 정치적인 이유로도 채식을 반대하는 건 선뜻 이해가 안 되는군. 급진적인 환경 운동가라면서 육식의 폐해를 모른단 말이오?
2006년 전 세계에서 생산한 곡물 20억 톤(t) 중에서 3분의 1 이상이 소, 돼지, 닭과 같은 동물의 먹이로 쓰였습니다. 이 추세대로라면 2050년이 되면 세계 육류 소비가 4억6000만 톤으로 두 배를 넘고, 그러면 사료용 곡물을 무려 10억 톤이나 더 생산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게 가능하겠소? 중국 등의 식생활 변화를 생각하면 상황은 더 나빠질 수 있어요.
내가 겪은 끔찍한 현실은 어떻고요. 공장 같은 축사에서 지금 이 순간에도 얼마나 많은 소, 돼지, 닭이 고통을 겪고 있는지 아시오? 그 부메랑은 고스란히 인간에게 돌아갈 거요.
▲ <가축이 행복해야 인간이 건강하다>(박상표 지음, 개마고원 펴냄). ⓒ개마고원 |
그런데 이 모든 내용을 저자 키스도 공유하고 있습니다. 이 책의 저자는 '육식을 거부하는 것만으로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게 불가능하다'는 불편한 진실을 채식주의자를 비롯한 사람들이 직시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입니다. 키스가 보기에, 상당수 채식주의자는 마치 채식만 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리라는 착각에 빠져 있다는 거예요.
소크라테스 : 그건 상당히 설득력이 있는 얘기네요. 나 역시 몇 가지 불편했던 대목이 있거든요. 채식주의에 열광하는 이들의 상당수는 개, 고양이와 같은 동물 애호가일 가능성이 큽니다. 그런데 미국에 사는 고양이 9400만 마리가 하루에 먹어치우는 고기의 양이 얼마나 되는지 아시오? 무려 5400톤입니다(고양이 한 마리당 약 57그램).
매일 닭 300만 마리가 고양이 뱃속으로 들어갑니다. 인도인 한 사람이 고작 1년에 5.4킬로그램의 고기에 만족할 때, 미국 고양이 한 마리는 연간 약 21킬로그램의 고기를 먹어요. 이 정도면 고양이 팔자가 돼지 팔자는 물론이고 사람 팔자보다 낫지요. 그런데 그 고양이 주인은 채식주의에 열광하지요. (웃음)
프레시안 : 키스가 채식주의자를 비판하는 맥락도 비슷합니다. 사려 깊지 못한 채식주의자 중에는 유기농 채식 식단을 짜느라 미국, 오스트레일리아 등에서 건너온 곡물, 과일 등을 고집합니다. 심지어 '바른 먹거리'를 내세우는 한 기업은 국내의 유기농 콩 수요를 핑계 삼아 중국의 만주에 농장을 조성해 콩을 재배합니다. 그 콩으로 만든 '유기농 콩두부'를 국내의 채식주의자들이 사먹죠.
이들은 끼니마다 채식을 하면서 자신의 건강은 물론이고 지구도 지킨다고 만족스러워합니다. 하지만 진실은 정반대죠. 유기농 곡물, 과일, 채소가 배나 비행기로 물 건너 올 때 태우는 석유는 어떻습니까?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온실 기체나 오염 물질을 염두에 두면 이들이야말로 자기 건강만 챙기는 이기주의자들이죠. 정말로 통합적인 사고가 절실한 지점이죠!
더구나 미국, 오스트레일리아, 러시아, 브라질, 캐나다 등에서 밀, 쌀, 콩, 옥수수, 사탕수수 등을 대량 재배하면서 생기는 폐해는 정말로 심각합니다. 저자가 특히 분노하는 대목은 바로 이 지점입니다. 우선 곡물을 대량 재배할 농토를 만들고자 열대우림을 포함한 엄청난 양의 숲이 파괴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논밭이 지속 가능한 것도 아니에요. 농기계가 흙(표토)을 뒤엎고 또 화학 비료가 지력을 훼손하면서 발행하는 심각한 토양 유실로 매년 막대한 농지가 황무지로 변하고 있습니다. 농업용수로 이용되는 지하수 고갈도 심각한 문제죠. 쌀, 밀, 옥수수 농사 때문에 세계 곳곳에서 지하수가 바닥을 드러내고 있어요.
키스는 채식주의자의 상당수가 채식만을 내세우면서 바로 이런 심각한 문제에는 눈을 감아버린다는 거죠. 전 세계의 종자, 농약, 먹을거리 시장을 쥐락펴락하는 전 세계의 농업 기업이 대형 할인점을 통해서 공급하는 각종 곡물, 과일, 채소 등을 소비하면서 마치 '지구를 지키고' 있다는 착각에 빠져 있는 건 아니냐고 묻는 겁니다.
소크라테스 : 정확한 지적이네요. 사실 내가 늘 궁금한 것도 그런 부분이었어요. 채식주의자를 비롯한 도시에 사는 인간들 대부분은 자신의 먹을거리에는 신경을 곤두세우면서 정작 농부들이 어떻게 그런 먹을거리를 생산하는지 더 나아가 그들의 처지가 어떤지를 놓고는 무관심하거든요.
프레시안 : 맞습니다. 한 가지 경험을 얘기해 볼게요. 한 지방 도시에서 채식 운동을 시작하는 행사를 한다기에 취재차 가본 적이 있어요. 그런데 정작 채식 얘기는 넘치는데, 그런 채식 식단에 오를 먹을거리를 어디서 어떻게 생산할지를 놓고는 전혀 얘기가 없는 거예요. 이런 식의 채식 운동은 큰일나겠다, 싶었지요.
아까도 얘기했지만, 채식주의자만 많아지면 뭐합니까? 채식 식단에 오를 쌀, 콩과 제철 채소, 제철 과일을 생산하는 지역 농민이 몰락하면 어떻게 하게요? 모조리 외국에서 수입하는 수밖에 없어요. 이미 우리 식탁에 오르는 채소, 과일의 상당수가 중국이나 미국 등에서 물 건너 온 거잖아요.
물론 국내의 채식주의자 중에도 생활협동조합을 통해서 혹은 지역 농민과의 직거래를 통해서 먹을거리를 구매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이들로서는 이런 얘기가 부당한 비판으로 들릴 거예요. 그런 맥락에서 <채식의 배신>에 나오는 저자의 채식주의자 비판 역시 뜬금없이 들리겠지요. 하지만 그런 이들은 전체 채식주의자 중에서 극소수일 뿐이죠.
우리나라도 <채식의 배신>에서 경고하는 모습대로 갈 가능성이 큽니다. 국내의 채식주의자 중 상당수는 이마트, 롯데마트, 홈플러스 등의 대형 할인점에서 먹을거리를 구매할 거예요. 요즘엔 대형 할인점에서 유기농, 친환경 매대를 만들어 놓고서 팔잖아요. 그런 먹을거리 중 일부는 수입한 걸 테고요. 저라도 그런 채식은 반대입니다!
채식이 아닌 지역 먹을거리가 희망!
소크라테스 : 그런데 <채식의 배신>의 저자가 내놓는 대안은 뭔가요? 보니까 이 사람은 쌀농사, 밀농사와 같은 일년생 단일 경작에 엄청난 거부감을 가지고 있는 것 같은데.
프레시안 : 이 책의 가장 큰 약점이 그 부분입니다. 이 책의 저자는 지금 현재의 농업에는 희망이 없다고 단언합니다. 농업 특히 쌀농사와 같은 일년생 단일 경작에 대한 증오를 감추지 않아요. 그러고 나서 농업에 희망이 없으니, 그 농업의 산물인 곡물에 의존하는 채식도 지속 가능하지 못하다고 목소리를 높입니다. 그런데 과연 그런가요?
미국은 소농 한 가구의 재배 면적이 120헥타르 정도입니다. 우리나라 소농 한 가구의 재배 면적 약 1.5헥타르의 거의 80배나 됩니다. 이 정도 규모에서 쌀농사, 밀농사를 지으면 당연히 농기계, 농약, 화학 비료에 의존할 수밖에 없지요. 미국의 맥락에서는 저자가 농업에 회의를 느끼는 게 당연합니다.
하지만 아시아나 유럽의 상대적으로 농업 규모가 작은 나라로 눈길을 돌려보면 상황이 다릅니다. 키스는 부정합니다만, 평균 1헥타르 정도의 농지에서는 일년생 단일 경작을 하면서도 충분히 다양한 실험이 가능합니다. 한국에서도 유기 농업에 기반을 둔 여러 가지 대안 농법을 고민하는 농부들이 많고, 그들이 생산한 먹을거리가 생활협동조합 혹은 직거래 등을 통해서 소비자를 만나잖아요.
소크라테스 : 미국이 아닌 유럽이나 아시아에서 농민 운동이 활발한 것도 그렇게 맥락이 다른 탓도 있을 거예요. 그런데 듣고 보면 저자의 주장이 엉뚱한 것도 아니네요. 왜냐하면 전 세계육지의 3분의 2는 애초 쌀, 밀과 같은 일년생 단일 경작을 하기에는 적합하지 못한 곳이잖아요? 그런 땅에 억지로 쌀농사, 밀농사를 지으려다 보니 땅을 엎고, 지하수를 고갈시키는 거 아닙니까?
여기서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무네요. 저자 키스도 자신을 "농사꾼"이라고 소개하는 것 같던데. 이 사람이 생각하는 농업의 미래는 뭔가요?
▲ <잡식동물의 딜레마>(마이클 폴란 지음, 조윤정 옮김, 다른세상 펴냄). ⓒ다른세상 |
미국 동부 연안의 버지니아 주에 위치한 폴리페이스 농장은 약 40헥타르(약 12만 평)의 목초지가 약 180헥타르의 숲과 어우러진 곳입니다. 이곳에서 샐러틴은 닭, 소, 칠면조, 토끼, 돼지 등의 동물과 토마토, 딸기, 건초 등의 식물을 키웁니다. 이곳에서는 말 그대로 식물(풀)과 동물(가축)이 상호 작용을 하면서 먹을거리를 생산합니다.
소가 풀(건초)을 먹고 똥을 싸면, 풀어놓은 닭들이 소똥 속의 유충, 벌레, 기생충을 잡아먹거나 소가 먹고 남긴 잔풀을 뜯어먹어요. 그리고 닭은 품질 좋은 달걀을 생산하지요. 이곳에서는 연간 18톤의 쇠고기, 13톤의 돼지고기, 1만 마리의 영계, 1200마리의 칠면조, 1000마리의 토끼, 42만 개의 달걀을 생산합니다.
놀라운 일은 이 과정에서 목초지가 손상되기는커녕 오히려 더욱더 비옥해진다는 거예요. 키스가 폴리페이스 농장을 주목하는 것도 이 때문이죠. 그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지구의 대지(표토)를 훼손하지 않고도 매년 엄청난 먹을거리를 생산하니까요. 그리고 그 먹을거리의 대부분은 동물성이고요. 그의 입장에서는 채식이 희망이 아니라 육식이 희망인 셈입니다.
소크라테스 : 미국 북동부와 같은 자연환경에서는 일년생 단일 경작 대신에 폴리페이스 농장처럼 운영하면 먹을거리를 생산하면서도 대지를 지킬 수 있다는 거군요. 그렇게 생산한 먹을거리의 대부분이 동물성인데, 굳이 왜 (건강에도 심각한 문제를 일으킬 수 있는) 채식을 고집할 필요가 있느냐, 이런 얘기죠? 그런데 그 폴리페이스 농장에서 돼지의 삶은 어떤가요?
프레시안 : 물론 이 농장의 돼지도 고기가 될 운명입니다. 하지만 그곳에서는 돼지 꼬리를 자르는 것과 같은 야만적인 짓은 하지 않아요. 왜냐하면 돼지가 스트레스 받을 일이 거의 없거든요. 돼지는 최대한 안락한 환경에서 생활하다가 때가 되면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거지요. 물론 도살 과정도 다른 곳과는 비교할 수 없이 인간적이고요. 어때요? 가보고 싶습니까?
소크라테스 : (단호하게) 싫습니다.
그나저나 이제 대충 키스가 <채식의 배신>을 통해서 하고자 하는 얘기가 드러나는군요. 채식만을 강요하기에는 건강을 해칠 위험도 클 뿐만 아니라, 그 자체로도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거죠? 결국은 지역의 환경에 최적화된 다양한 모습의 지속 가능한 소규모 농업을 찾을 수밖에 없는데, 채식은 그 선택지로 동물 사육을 배제하니 바람직한 대안이 아니라는 거군요.
일종의 채식이 아닌 동물성 먹을거리와 식물성 먹을거리를 아우르는 지역 먹을거리가 대안이라는 주장으로 요약하면 되나요?
사람이 사람을 생매장하는 세상?
프레시안 : 맞습니다. 그런데 결론이 좀 불편하지 않나요? 결국 돼지고기도 맛있게 먹자는 얘기잖아요.
소크라테스 : 나는 인간처럼 속이 좁지는 않아요. 사실 '동물 해방' 이런 주장을 하는 피터 싱어와 같은 이들의 철학은 그야말로 지극히 인간 중심적이거든요. 예를 들어, 싱어는 고통의 유무를 놓고서 모든 것을 판별하자고 하잖아요? 그런데 그 고통도 결국 인간이 기준이잖아요. 도대체 식물이 고통을 느낄 수 있는지 없는지 사람이 무슨 수로 판단을 한다는 말이오?
그런 점에서 나는 한국에서도 서양 철학의 전통에 서 있는 이들이 은근 슬쩍 채식주의를 거론하는 게 썩 마뜩치 않아요. 싱어와 같은 인간 중심주의를 비판 의식 없이 수용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거든요. 그런 점에서 나는 동양 철학의 전통에 서 있는 김세서리아의 다음과 같은 지적이 훨씬 더 와 닿습니다.
"유교나 불교에서 생태계 문제는 먹고 먹히는 논리로 설명되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를 먹이며 서로를 살리는 상생의 관계 안에 놓여 있다. 만물은 한 몸이기 때문에 인간은 다른 사물의 고통을 느낄 줄 알고 하나의 기(氣)로 이루어져 있기에 동물, 식물은 인간을 먹이고 병을 치료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이 동물, 식물을 먹을 수 없다는 논의로 치닫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한 몸이기 때문에 서로에게 먹이고 치료하는 감응, 사랑, 상생의 관계가 된다." (<철학자의 서재 2>(알렙 펴냄), 359쪽)
프레시안 : 자연 속에서 살더니 진짜 철학자가 된 것 같습니다. (웃음)
소크라테스 : 천만에요. 원래부터 속 좁은 인간보다는 내가 좀 더 나았던 듯싶은데? 그런데 아까부터 드는 의문이 있군요. 폴리페이스 농장과 같은 방식의 대안 농업으로 이 많은 인간 그리고 그 못지않게 많은 곡물과 고기를 축내는 개, 고양이 등이 목숨을 부지할 수 있을까요? 채식이든 육식이든 잡식이든 피할 수 없는 질문일 것 같은데.
프레시안 : 네, 결국 그 질문이 나오는군요. 키스는 인구를 획기적으로 줄여야 한다고 생각하죠. 그 방법밖에 없다고요. 그런 점에서 본인은 아기를 정말 좋아하지만, 안 낳기로 결심을 했다죠? 사실 저 역시 같은 맥락에서 '저출산' 타령이 썩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사실 지구가 수용하기에는 너무 인구가 많은 건 사실이니까요. 돼지 입장에서 어떻습니까?
소크라테스 : 나야 일관된 입장이 있잖소. 소, 돼지를 생매장한 것처럼 결국 어느 시점이 지나면 인간이 자기들끼리 치고받는 시점이 올 거라고. 지금 남북의 전쟁광들이 핵폭탄을 가지고 으르렁대는 것도 그런 사정 아니겠소? 또 모르지. 극한에는 소, 돼지처럼 인간들이 여러 가지 방식의 경계 짓기를 통해서 자신의 이웃을 생매장하는 상황이 올지도…. 계급, 인종, 종교, 국적 심지어 나이가 될 수도 있겠군.
프레시안 : 설마, 그 지경까지야 되겠습니까?
소크라테스 : 항상 인간은 상상 그 이하의 바닥을 보여 왔으니까요. 그나저나 그 시점까지는 내가 두 눈 부릅뜨고 살아남아야겠구먼. 나도 역시 항상 꿈꾸던 상황이 있으니까요.
프레시안 : 어떤?
소크라테스 : 글쎄, 입맛 다시는 게 안 보이나요. 꼭 사람만 돼지를 먹으란 법이 있나? 하하하.
이 인터뷰는 최근에 나온 <채식의 배신>을 읽고 든 단상을 돼지와의 가상 대화 형식으로 꾸며본 것입니다. 하지만 소크라테스와 같은 탈출 돼지가 전국 곳곳에 있을 가능성은 충분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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