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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대한민국 '이것' 없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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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대한민국 '이것' 없이 안 된다!

[김민웅 칼럼] '책 읽는 나라'를 만들자

1. 책의 위기, 문명의 위기

21세기 국가 경쟁력은 지식 기반의 견고함에 달려 있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분명하다. 오늘날 세계 경제의 추진력은 과학기술의 발전만이 아니라 이를 보다 선도적으로 이끌어나가는 인문적/사회과학적 상상력이라는 점은 이론의 여지가 없게 되었다. 모든 과학기술은 바로 이 상상력을 현실화시키는 것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이다. 소소한 주방기구에서부터 교통수단과 도시 건설의 방식에 이르기까지 새로운 상상력을 발휘하는 곳에서 새로운 발상과 방식이 창출된다.

그런데 사실 이것은 최근에 들어서서 비로소 생겨난 현상이 아니라, 인류 역사의 발전 과정을 봐도 입증이 되는 대목이다. 지식이 왕성하게 교류되고, 논쟁을 통해 공유되는 도시와 국가는 거의 모든 분야에서 주도권을 확보하기 마련이다. 가령 유럽사 1000년의 세월 동안 지중해의 중심에 섰던 수상 도시 베네치아는 바로 그러한 상상력의 산물이기도 하다. 건축과 예술, 과학과 기술만이 아니라 정신사적 흐름을 만들어 내는데 있어서도 이러한 원칙은 그 어디에서나 적용된다.

따라서 지식기반을 튼튼하게 만드는 것은 다만 경제적 목표나 과학기술의 문제에만 한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우리가 정치와 경제의 발전을 희망하고 과학기술이 보다 진화되기를 바라는 것은 무엇보다도 인간다운 삶을 살아내기 위한 사회를 일구기 위해서다. 인간의 존엄성을 지켜내고 인간관계의 아름다움을 길러내는 것은 오랜 시간의 교육적 훈련과 사회적 성찰의 축적에서 나온다. 이것이 "생각하는 힘을 가진 사회의 근본적 동력"을 만들어내는 근거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그러한 지식과 성찰을 담아낸 책의 문화가 얼마나 뿌리 깊고 광범위하게 그 사회의 기초를 형성하고 있는 가로 압축된다. 한 사회의 품질은 여기서 결판이 난다. 책은 인간의 역사에서 매우 오랜 동안 말로 전해져오던 문명의 수준을 획기적으로 넘어선 위대한 인류사적 발명품이 아닌가. 그러므로 지식과 경험, 역사와 문화가 문자로 전달되는 책의 가치가 소멸되는 순간부터 문명은 위기에 처한다. 자신을 전달할 수 있는 매체의 실종과, 새로운 방식으로 재창출을 할 수 있는 수단을 갖지 못하게 되기 때문이다.

2. 우리의 현실은 어떤가?

그렇다면 우리의 현실은 어떤가?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교육의 가치는 강조되고 있으나, 안타깝게도 그 교육의 본바탕인 지식기반 자체에 관심과 주목도는 대단히 약하다. 열매는 속히 구하고자 하나, 그 열매의 뿌리가 어떻게 되고 있는지는 모르고 있는 것과 다르지 않다. 이런 상태가 지속되면, 교육의 실질적인 내용은 빈곤해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것은 당연하게도 우리 사회 전반에 걸친 문명사적 위기로 연결되고 만다.

보다 깊게 사고하는 힘, 다양한 분야의 지식에 대한 노출, 장기적 전망을 하는 지적 끈질김, 오랜 시간 동안 축적해서 이루는 지식의 거대한 체계, 사상과 이념의 발전과정에 대한 통찰, 인류 문명사가 쌓아온 자산에 대한 흡수 능력의 신장 등을 비롯해서 한 시대가 도달할 수 있는 최고 수준의 지적 성취를 당대의 활력으로 만드는 것은 책의 문화가 어떤 역량을 가지고 있는가에 달려 있다.

그리고 그 역량은 그 사회의 출판문화가 좌우한다. 바로 이 출판문화가 지금 질식 상태에 놓여 있다. 지식 생태계의 창출에 중대한 위협이 가해지고 있는 것이다. 출판계는 누구나 잘 알고 있다시피 지금 좋은 책을 낼 수 있는 형편이 되지 못한다. 따로 통계를 내지 않아도, 일차적으로 책의 시장 가치를 정상화시킬 수 있는 구조가 무너져 출판 시장은 내용 경쟁이 아닌 가격 경쟁을 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양질의 책을 확대 재생산해낼 수 있는 산업기반의 동요가 목격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무엇보다도 지식의 공적 가치를 시장의 요구에 따라 결정해버리는 구조가 혁파되지 못한 결과이다. 결국 이러한 상황에서는 다수의 출판사들을 희생시키고 자본력이 강한 출판사의 독점적 시장 지배라고 할 수 있는 "소품종 다량판매"라는 현상이 주도하고, "다품종 소생산"이라는 지식 생태계의 다양성이 붕괴되고 마는 사태를 가져왔다. 더군다나 책이 탄생한 직후 사망 신고까지 걸리는 시간은 날로 짧아지고 있고 그 수는 기하급수적이다. 지식과 종이가 엄청나게 낭비되고 있는 것이다.

결국 책의 질로 승부하는 출판문화가 아니라 책 제작 이외의 비용을 엄청나게 쏟아 붓는 마케팅에 의존하는 출판 시장의 구조가 만들어진다. 새로운 상상력과 의욕을 가지고 출판 시장에 뛰어들 수 있는 출판인의 등장은 이로써 점차 기대하기 어렵다. 그것은 지식 기반 자체의 품질을 지속적으로 떨어뜨릴 뿐이며 그 피해는 고스란히 독서대중에게 돌아간다. 책은 상품이기는 하지만, 공적 가치를 지닌 상품의 특성을 가지는 경우가 보다 다수라는 점에서 출판 시장의 공적 토대를 만드는 일은 그야말로 시급한 것이다. 따라서 도서 정가제 실현은 출판 산업의 중요한 요구이자 기본 요건의 구성을 위한 작업일 수 있지만, 그것은 시장의 구조에서 탈피하지 못하는 방식이라는 점에서 본질적 한계를 지닌다. 그걸 넘는 해법이 필요해지고 있는 것이다.

시장의 역학에만 의존하는 지식 창출의 구조는 그 사회가 근본적으로 요구하는 지식을 기획하거나 만들고 유통시킬 수 없게 한다. 진지한 출간 기획, 깊이 있는 지식 체계의 구성은 당장의 이윤 창출과 직결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러다보면 우리는 탁월한 저술가를 길러내는 일도 힘들어지고 수준 높은 독서 공동체도 출현하기 쉽지 않은 상황에 처하게 되며, 다양한 분야에 대한 전문적 출판의 집중력이 약해질 수밖에 없다. 이것은 지식 커뮤니티 전반의 위기를 가져오는 일이다.

출판과 함께 유기적 연관구조를 가져야 할 도서관은 또 어떤가? 여기에는 좋은 책이 아니라 싸고 대중적인 책을 중심으로 양적 기준에 맞춰 채워 넣어지고 있다. 좋은 책을 판별하고 이것이 사회적 생존력을 갖도록 해야 할 도서관에서 도리어 지식 생태계의 미래가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서점에서 시장의 운동 법칙 때문에 사라진 책들, 또는 출판 비용이 높게 들어 쉽게 출판하기 어렵거나 가격이 비싸 개인이 구입할 수 없는 책, 장기간 소장의 가치가 높은 책, 희귀본, 도서관의 특성화로 전문화할 수 있는 책들을 보기 어렵다. 도서관이 이러한 책들을 구입하는 노력을 지속적으로 기울인다고 한다면 출판문화의 현실과 특징은 변모할 수 있다. 그러나 도서관과 출판 구조는 서로 분리되어 있는 형편이다.

이것은 도서관의 책임으로 국한시켜 질타되어야 할 바라기보다는, 도서관의 역할과 재원에 대한 사회적, 정책적 인식에 문제가 있는 것이며 특히 사서의 역할을 대출과 책 정리 일꾼이라는 차원으로 격하시키고 있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다. 지식 지도를 그려내는 전문 지식인으로서의 사서와 그 역할이 중심에 놓이는 도서관이라는 위상을 만들어내는 일이 빈 공간으로 남아 있는 것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출판 산업과 도서관의 유기적 관계를 만들어 내는 일은 거의 불가능하고 상호 자극과 촉진의 역할을 나누어 맡는 일도 어렵다. 도서관이 출판 산업 장외의 편집 기획자의 기능을 할 수 있는 구조적 여지가 없는 것이다.

원칙적으로 보자면 도서관은 공적 기능을 하는 반면, 출판 시장은 사적 자본의 요구에 충실한 간격을 메울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현실은 도서관이 시장의 법칙에 따라 자신을 만들어가고 있으며 출판문화는 도리어 공적 기능의 관철을 절감하는 모순에 처해 있다. 책의 공적 가치를 중심으로 출판과 도서관이 서로 연대, 또는 융합적 기능을 확보하는 일이 가로 막히고 있다.

뿐만 아니라 대형 서점(대형 인터넷 서점을 포함) 위주의 출판 시장은 중소 규모의 서점 폐쇄라는 현실을 만들어 내고 있다. 이것은 기본적으로 책의 유통과 관련해서 모세혈관이 닫혀 버리거나 없어지는 상황을 만들고 있다. 생산은 유통 과정을 통해 소비가 될 때 완성된다. 그런 점에서 보자면, 출판 시장의 유통 구조가 심각한 왜곡 또는 파손이라는 현실에 직면하고 있는 것이다.

유통 구조의 이와 같은 환경은 책과 독자 사이의 관계망을 허무는 일이며, (인터넷 서점이 있다고 해도 모두가 이를 사용하는 것이 아니니만큼) 작은 마을, 또는 지방도시에서 원하는 책의 일상적 접근성을 제한하거나 저지되는 결과를 가져온다. 이것은 해당 현장의 지식문화 수준을 낙후하게 하고 책에 대한 정보 자체가 한정되는 지식 생태계를 만들고 만다. 대형 유통 관계망이 서적 판매망을 대대적으로 흡수하면서 그나마 살아남은 서점은 학습서 판매경로로 그 역할이 축소되거나 존망의 위기에 처하고 있는 중이다.

이렇게 보자면, 출판과 관련된 "제작-유통-소비"의 관계망이 근본적 변혁이 있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이것은 어느 한 분야의 요구를 담아내는 정책으로 풀릴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출판-도서관-서점의 관계망을 유기적으로 재정비하는 원칙과 정책이 절실함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책방 '길담서원' 풍경(본 사진은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 없습니다). ⓒ프레시안(최형락)


3. 무엇을 해결하면 되는가?

그렇다면 무엇을 어떻게 해결하면 되겠는가?

사실 한국의 지식 커뮤니티 각 분야는 지난 시기, 개별적인 단위에서 이러한 위기를 지속적으로 알리고 문제를 제기해왔다. 하지만 그러한 노력은 국가적 우선순위에서 밀려나 적극적이고 구체적인 반응을 얻어내는데 성공하지 못했다. 결국 지식 커뮤니티 전체의 유기적 연대와 문제 제기, 그리고 정책 제안을 통해서만이 이 위기를 일차적으로 돌파할 수 있다는 인식에 이르렀다고 할 수 있다.

여기서 확인되는 제1의 원칙은 "책"은 "공적 가치를 지닌 상품"이라는 2중의 성격을 지닌 존재라는 점이다. 상품에 방점을 둘 경우, 시장의 구조 안에서 출판 산업의 문제를 해결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공적 가치를 지닌 문화라고 한다면 다른 접근이 요구된다. 더군다나 교육이 공적 가치를 지닌 정책의 범주에 있다고 한다면, 그 교육의 기반이 되는 지식산업은 당연히 공적 성격을 중심에 놓고 사고하는 것이 마땅하다. 책의 시장에서의 위치는 이러한 공적 성격의 보조적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보자면, 출판 산업은 다른 시장의 상품과는 다른 기준과 방식에 의해 생산되고 유통되며, 사회적 공유의 대상이 되도록 해야 한다. 이것은 출판문화의 발전과 지식기반의 총체적 진화라는 점에서 핵심적 원칙이다. 이것에 대한 우리 사회의 합의가 존재할 때 출판은 지식기반의 인프라 구축과 관련해서 국가적 수준과 규모의 비중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출판문화 또는 출판 산업은 정치, 경제, 문화, 사회, 교육 등의 범주로 묶을 경우 그 중에 문화라는 한 영역으로 구별되는 것이 아니라 이 모든 것을 선도하는 중심에 놓이는 가치창출의 핵심으로 인식되어야 한다.

이런 인식 위에서만이 비로소 우리는, 출판의 사회적 가치를 재평가하고 책을 상품인 동시에 "공적 재화"로 받아들여 우리 사회 전반에 누구에게나 접근성 높은 유기적 유통체제를 만드는 일을 국가적으로 정책화할 수 있게 된다. 그것은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실현될 수 있다.

우선, 출판 산업에 대한 재정 지원 정책을 마련하고 세제관련 법안을 통해 문화가치 창출의 부담을 덜어주는 것이다. 여기서 재정 지원이라는 것은 사회적으로 또는 역사적으로 필요한 책의 제작, 저술, 번역 등과 관련한 작업이 될 때 의미가 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출판시장의 가격 기준 정책을 정리하고 도서관에서의 책 구입에 대한 기준의 질적 변화를 꾀하며 이를 위한 예산이 확보되도록 하는 것이다. 이에 더하여 전문 출판기획자 양성을 위한 기금을 조성, 이들이 한국사회의 중요한 지식인 집단으로 기능할 수 있도록 해주는 일이다.

도서관의 경우에도 장서 평가의 기준을 변화시켜 질적 수준을 높이며, 출판시장에 대한 장외 편집·기획의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 이것은 사서의 역량과 기능을 지식 지도 기획자로서의 전문 지식인으로 만들어가는 일이며 이러한 힘이 출판 산업과 유기적으로 결합되어 갈 때 지식 생태계는 다양하게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현재 도서관은 대출 기능을 중심으로 일부 문화 교육 프로그램을 장착하고 있으나, 지식 안내자로서의 역할을 맡고 있다고 보기는 어려우며 우리 사회에 필요한 출판 기획을 위한 교육과 훈련은 거의 부재하다고 할 수 있다. 또한, 각 단위의 도서관이 상호 유기적 체계를 갖춘 관계망도 갖고 있지 못해 서적 정보의 공유나 대차방식의 교류도 원만하지 않고, 독서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일 역시 지역에 따라 편차가 심해 이를 교정하고 수준을 상향 평준화하는 노력이 절실한 상황이다.

서점의 경우가 가장 풀기 어려운 문제라고 할 수 있는데, 서점의 건물 임대료 지원을 비롯해서 면세 혜택을 확대하고 서점의 특성화를 지원하는 동시에 책 마을 만들기에 서점이 기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자치단체 단위에서 추진하는 방안을 고려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책 마을 만들기의 사례는 외국의 경우 여러 가지 보기가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우리의 실정에 맞게 추진해나간다면 일정한 성과와 문화적 사건이 될 수 있다. 서적 구입과 관련해서도 도서관과 서점에 일정한 차별화와, 대형서점의 독점체제로 인해 붕괴된 서점 망을 지역 단위로 복구하는 정책적 지원이 요구된다. 서점과 도서관이 지역에서 책과 관련한 문화프로그램을 공유하면서 책 읽는 공동체 만들기 작업을 함께 수행해나간다면, 이 또한 공생의 활로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제안의 핵심은 "출판-도서관-서점의 관계망"을 어떻게 공적 차원에서 유기적으로 결합시켜나갈 수 있을 것인가에 있다. 또한 이 관계망의 결합에 재정과 기획, 프로그램의 공유가 어떻게 가능할 것인가를 놓고 고민하는 일이 필요하다.

그런데 이 모든 유기적 관계망 복구에는 반드시 교육이 함께 연합되어야 할 것이다. 이것은 사람이 태어나기 전 태교의 지점에서부터 노년이 되기까지의 평생학습 체계로 연결되어 책으로 교육하고 성장하는 사회를 목표로 할 때 가능해질 것이다. 이미 우리는 평생 학습 사회로 진입했고, 각 단위에서 여러 종류의 평생 학습 프로그램을 비롯해 제도 교육과 함께 시민대학의 형태로 지식기반의 확충이 이루어지고 있다. 따라서 "출판-도서-서점의 관계망"은 교육과 만나 다이아몬드 형의 입체적 관계를 구축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를 총체적으로 관장해나가면서 각 분야의 동력을 자생화시킬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어디까지 국가의 책임이다. 책을 통한 지식의 공적 가치를 확대하는 것은 국가가 아니고서는 총괄적 기획을 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한 까닭에 지난 해 12월, '책 읽는 나라 만들기 국민연대'는 차기 정부의 대통령 직속으로 "지식창출 융합 위원회"와 같은 것을 구성해서, 출판과 도서관, 서점, 저술가(학자/전문가)와 교육을 망라하는 전반적 독서 공동체 육성을 위한 국가적 두뇌 기구의 설치를 제안한 바 있다. 이것은 정부의 담당 세력이 누구이든 간에 관계없이 국가 발전을 위해 반드시 생각해봐야 할 사안이 아닌가 한다.

4. 결론

한 사회의 발전에는 그 사회가 가진 지적 역량이 어떤 수준인가도 판별된다. 그래서 지식 기반의 구축은 그래서 모든 문명의 주체들이 진력을 다해온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책을 기획하고 제작하며 유통하고 학습, 보존하며 그에 기초하여 또 다른 지식체계를 창출하는 일은 어느 사회, 어느 역사에서나 지식 커뮤니티 전반의 역할이고 책임이었다. 이것은 그 사회의 공공적 기능인 동시에, 지식의 습득과 이를 심화 발전시키는 작업은 그 사회 구성원의 기본권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본권은 시장의 논리에 좌우될 수 없다.

"책의 위기"가 절감되어가고 있고, 인간을 먼저 생각하는 보다 품격 있는 사회를 지향하는 에너지가 위축되어가고 있는 때에, 이러한 현실은 이제 정면으로 타개해나가야 할 상황이 되었다. 이것은 단지 출판 영역에 한 하거나 또는 도서관이나 서점 내지는 교육이라는 어느 한 분야의 임무가 아니라, 국가 전체의 중심에 놓여할 과제라고 하겠다. 그렇지 못하면, 우리는 지금과 같은 출판문화의 와해 상황을 저지하지 못한 채 중대한 문명적 위기에 봉착하기 때문이다.

책은 출판과 독서 시장, 교육과 도서관, 영화를 비롯한 예술 분야 등의 차원만이 아니라 보다 질적 수준이 높은 평생 학습 사회를 만드는 기초이자, 창조 산업(Creative Industry)의 기둥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 사회의 인문주의적 발전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미래형 지식산업의 근간을 세우는 중심에는 책에 대한 사회적 열정과 에너지를 최우선의 순위에 놓는 작업이 요구된다. 그런 의미에서 거듭 강조하거니와, 지식 사회의 기반 구축을 하는 작업은 분과정책인 문화 또는 교육 정책이 아닌 국가의 기본 정책이라는 각성이 필요한 것이다. 따라서 관련 분야에 대한 예산 지원이나 증액, 또는 부서의 설치 수준을 넘어서서 미래형 지식사회를 위한 융합적 기획과 정책 추진을 국가의 중심에 놓아야 한다.

이러한 정책의 근본 기조가 마련된다면 출판과 책 판매, 도서관의 질과 양에서의 성장, 이와 유기적으로 결합하는 평생 학습 사회 만들기를 비롯해서 저술가들의 저작 활동과 지식산업의 전반적 발전이 총체적 동력을 얻게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이는 우리 사회의 질적 도약을 가져오는 근본 정책의 수립이기도 하며, 지적 자산을 확대 심화하는 장기적인 국가 발전 모델의 실천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렇게 책을 읽고 함께 성장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은 "대한민국은 <책 읽는 나라>"라고 정부 차원에서 선언하고 이를 위해 정부와 시민사회의 새로운 협치(Governance) 모델을 강구하는 일이다.

이 글은 지난 1월 30일 출판문화산업 진흥원 토론회에서 발표된 김민웅 교수의 발제문입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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