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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명수의 '첫 문장', 미래의 작가(님)를 홀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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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명수의 '첫 문장', 미래의 작가(님)를 홀리다?

[금정연의 '서서비행'] <첫 문장 못 쓰는 남자>

프랑스 문학 가운데 가장 유명한 첫 문장을 둘 꼽으라면 그것은 분명히 "오늘, 엄마가 죽었다"와 "오랫동안 나는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일 것이다. 굴드는 그 문장들을 하나씩 큰 소리로 여러 번 되풀이해 발음해보았다. 그 문장들은 언뜻 보기에는 별로 신통할 게 없다. 하지만 그 문장들의 단순함 그 자체가 진정한 천재성을 드러내고 있다는 것은 확실히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 문장들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서부터, 우리는 그 각각의 문장들이 앞으로 전개될 그 걸작의 내용과 꼭 들어맞게 의도적으로 구상된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베르나르 키리니, <첫 문장 못 쓰는 남자>(윤미연 옮김, 문학동네 펴냄) 10쪽)

베르나르 키리니의 단편 '첫 문장 못 쓰는 남자'의 주인공 피에르 굴드는 제목 그대로 첫 문장을 쓰지 못하는 작가다. 정확하게 말하면 작가 지망생(혹은 '작가(진)')이라고 해야겠지만. 마침내 작가가 되기로, 수년 전부터 구상해왔던 책을 쓰기로 마음먹는 순간, 그는 자신이 첫 문장을 쓸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가 앞으로 써나가게 될 모든 것은 바로 그 첫 문장에서 비롯될" 것이라는 중압감에 허투루 시작할 수가 없는 것이다. 언젠가 데카르트가 말했던 것처럼, "토대가 무너지면 그 위에 세워진 것도 저절로 무너질 것"임을 믿고 있는 굴드는 완벽한 첫 문장을 찾느라 좀처럼 책을 시작하지 못한다.

그런 경우에 작가 지망생이 찾을 수 있는 최선의 해결책을 굴드 또한 찾는다. 좋아하는 작가들의 첫 문장을 살펴보는 일이다. 그는 카뮈의 <이방인>("오늘, 엄마가 죽었다")과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오랫동안 나는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를 시작으로 무질, 조이스, 포크너, 포이스, 로렌스, 오웰, 셀린, 되블린의 첫 문장들을 찾아보지만 별다른 도움을 얻진 못한다. 위대한 작가들이 위대한 첫 문장을 쓸 수 있었던 이유는 그들이 위대했기 때문이라는 평범한 깨달음을 얻었을 뿐. 아마 작가 지망생이 찾을 수 있는 최선의 해결책이란 결국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해결책이라는 (여전히 쓸모없는) 깨달음을 얻기도 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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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 문장 못 쓰는 남자>(베르나르 키리니 지음, 윤미연 옮김, 문학동네 펴냄). ⓒ문학동네
실의에 빠진 그는 "완벽한 첫 문장, 그가 아주 오래전부터 찾아 헤매던 문장이 마치 못된 오리처럼 그를 비웃고 있는 것 같은 느낌"에 시달린다. 못된 오리는 그가 구제불능의 애송이라는 사실을, 위대한 작가들의 발끝에도 미치지 못하는 미미한 존재라는 사실을 끊임없이 상기시키지만 그는 인정할 수 없다. 위대한 작가가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할 수 없는 게 아니라, 자신이 형편없는 첫 문장을 쓰게 된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다. 작가 지망생의 딜레마.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저 홀로 고전을 찾아 읽다 눈만 높아진, 무분별한 독서의 폐해다. (반대로 그가 책을 읽지 않았다면 책을 쓸 생각은 애당초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독서의 진정한 폐해다.)

굴드는 각종 인용이나 패러디("오늘 엄마가 죽었다. 그렇지만 변함없이 나는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로 시작하는 방법을 생각해보지만 마음에 들지 않는다. 어쩐지 비겁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그는 작가 지망생들이 종종(실은 언제나) 작품 대신 만들어내는 문제 속에 갇혔고, 출구는 좀처럼 보이지 않았다.

보통의 작가 지망생들처럼 술과 담배, 늦잠과 자기 비하, SNS 등으로 시간을 보내는 대신 그는 고심을 거듭했고, 획기적인 해결책을 찾아낸다. 그는 생각한다. "완벽한 첫 문장을 찾는데 실패했다고? 까짓것, 문제 될 것 없다! 그렇다면 두 번째 문장부터 시작하면 되는 거다." 유레카! 제 아무리 콜럼버스라도 깜짝 놀라 달걀을 쓰러트리고 말았을 거다. 발상의 전환에 성공한 굴드는 열에 들뜬 채 자신의 책을 쓰기 시작한다. 바로 이런 두 번째 문장과 함께.

"(…) 바로 그 때문에 나는 거기서 멈추었다." (16쪽)

그는 뿌듯한 마음으로 자신의 두 번째 문장을 바라보지만,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닫기까지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는 않았다. 괄호와 말줄임표로 첫 문장 딜레마를 피해간다 하더라도, 책을 펼친 독자에게는 두 번째 문장이 첫 문장이 될 것이고, 그것은 굴드가 원하는 바가 아니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그것이 두 번째 문장이라는 사실을 책머리에 일러둘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럴 경우 바로 그 일러두기가 책의 실제적인 첫 문장이 될 테고", 물론, 그 문장은 하나도 아름답지 않기 때문이다.

보통의 작가 지망생들처럼 허기와 숙취, 불면과 불안, 비문학적인 사회에 대한 저주 등으로 시간을 보내는 대신 고민을 멈추지 않았던 굴드는 좀 더 획기적인 해결책을 찾아낸다. 두 번째 문장을 첫 문장으로 생각한다면, 두 번째 문장도 괄호로 처리하면 된다! 세 번째 문장이 첫 문장이 된다면 그 또한 괄호로 처리하리라. 그렇다면 네 번째와 다섯 번째 문장도 괄호로 처리하지 못할 이유는 또 뭐냐? 그는 작가 지망생답지 않은 호탕함으로 새로운 작품을 써내려갔고, 하루가 채 지나기도 전에 책을 완성하다. 괄호와 말줄임표로 이루어진("(…) (…) (…) (…) (…) (…) … (…)") 그의 첫 번째 책을.

그는 자랑스러움에 취해 그것을 두 번 되풀이해 읽고 나서 지쳐 쓰러졌다. 그렇게 해서 굴드는 한 권의 소설을 써낸 작가가 되었다. 첫 문장을 시작할 수 없어서 결국 아무 내용도 쓰지 못한 소설의 작가. (17쪽)

본문에는 나오지 않지만 굴드는 다시 한 번 깨달았을 것이다. 작가 지망생이 찾을 수 있는 획기적인 해결책이란 대부분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해결책이라는 사실을.

만약 이야기가 이렇게 끝났다면 나는 이 글을 쓰지 않았을 것이다. 대신 가련한 피에르 굴드와 재치 있지만 결국 그뿐인 이야기를 쓴 베르나르 키리니, 무엇보다 나 자신을 위해 눈물을 흘렸겠지. 그리고 좀처럼 가시지 않는 피로와 보일러를 틀어도 도무지 따듯해지지 않는 방, 꼬박꼬박 청구되는 각종 공과금과 도둑처럼 찾아온 마감 따위를 생각하며 시간을 보냈으리라. 하지만 (고맙게도!) 베르나르 키리니는 멈추지 않는다.

단편의 후반부에서 키리니는 노년에 접어든 굴드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첫 문장에 대한 무시무시한 두려움에 길들여졌고, 그래서 진짜 책들을 써낼 수 있"게 된, 나아가 "존경받는 작가, 유럽 전역에 알려진 유명 작가"가 된 굴드가 생의 말년에 봉착한 새로운 딜레마에 대해서. 그것은 젊은 굴드가 해결해야 했던 문제를 고스란히 뒤집어 놓은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 결말을 이 자리에 밝힘으로써 키리니의 노고를 무시할 생각은 없다.) 키리니는 세심한 솜씨로 이야기의 균형을 맞췄고, 자칫 작가 지망생들의 씁쓸한 술자리 농담에 지나지 않았을 이야기를 글쓰기의 근본 문제에 대한 질문으로, 멋진 작품으로 만들어냈다. 모두에게 좋은 일이다.

하지만 나는 속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완벽한 첫 문장을 찾아 몇 년 동안이나 술과 담배, 늦잠과 자기 비하, SNS 등으로 시간을 보낸 사람의 한 명으로서, 나도 모르게 그의 이야기에 스스로를 이입하고 말았던 것이다. 눈물을 닦으며(언젠가 말했지만 눈물을 흘리며 책을 읽는 일은 힘든, 정말 더럽게 힘든 일이다) 피에르 굴드의 익숙한 시행착오를 좇던 내가 기대한 결말은 이런 것이 아니었다. 나는 그가 '정신 차리고' 생업에 복귀하거나, '정신 못 차리고' 불행을 찾아 떠나거나, 실질적인 '해결책'을 찾아내기를 바랐다. 물론 그것이 우스운 일이라는 걸 나 또한 안다. 독서의 폐해를 독서로 극복하려 하다니, 정말이지 바보 같은 일이다.

심란해진 나는 내가 좋아하는 작가들의 책을 뒤져 그들의 첫 문장을 살펴본다. 정영문("어쩌면 나는 처음에 개구리에 관한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볼라뇨("내장(內腸) 사실주의에 동참하지 않겠느냐는 친절한 제안을 받았다."), 부코스키("쉰 살이고, 여자와 잠을 같이 잔 지 4년도 넘었을 때였다."), 브라우티건("워터멜론 슈가에서는 여러 가지 일들이 다시, 또 다시 행해졌다."), 챈들러("10월 중순 오전 열한시 경이었다."), 김승옥("오늘 아침에도 그는 설사기 때문에 일찍 잠이 깨었다.")…. 심란함은, 물론, 좀처럼 가시질 않는다(나는 새삼 '가시질'이라는 표현의 묘함을 생각한다. 내 생각에 이것은 높임말이다). 아무리 허기와 숙취, 불면과 불안, 비문학적인 사회에 대한 저주로 시간을 보낸다 해도 가시지 않을 심란함(님)이라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다.

*

여기까지 쓴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밥을 차린다. 허기라도 채우고 보자는 생각이 든 것이다. TV에서는 언젠가의 무한도전이 방영 중이다. A형 간염에 걸린 박명수를 위해 무한도전 멤버들이 소원을 들어준다는 '소원을 말해 봐' 특집. 병상에 누워 있던 박명수가 뜬금없이 자서전을 쓸 테니 받아 적으라고 말한다. 황당해하는 유재석과 노홍철을 무시한 채, 박명수는 책의 첫 문장을 구술하기 시작한다. 그건 이런 문장이었다.

"1970년 8월 27일 군산 모 동네에서 A형이 혈액형이다."

숟가락을 내려놓은 나는, 무언가에 홀린 듯 그 문장을 큰 소리로 여러 번 되풀이해 발음해본다. 그 문장은 언뜻 보기에는 별로 신통할 게 없다. 하지만 그 문장의 단순함 그 자체가 진정한 천재성을 드러내고 있다는 것은 확실히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 문장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서부터, 나는 그 문장이 앞으로 전개될 그 걸작의 내용과 꼭 들어맞게 의도적으로 구상된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내가 익히 알고 있는 그 짧은 자서전의 마지막을 박명수는 이렇게 구술한다.

"이 세상을 살고 있는 자기의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젊은이들이여. 늦었다고 생각할 때는 진짜 너무 늦었다. 늦었다고 생각할 땐 너무 늦은 거다. 그러니 지금 시작하라."(박명수, <맨발에서 2인자까지>)

어느덧 신춘문예의 계절이다. 이 땅의 모든 작가 지망생들에게 이 글을 바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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