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시안>은 안철수 후보가 출마 선언을 하고 본격적인 대선 행보에 박차를 가하는 지금 이 글 중 일부를 공개합니다. '안철수의 생각'과 '안철수의 행보'를 여러 시선으로 독해한 이들의 글이 독자 여러분이 '대통령 후보' 안철수를 판단하는데 도움이 되리라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 바랍니다. <편집자>
안철수가 20, 30대를 만난 자리에서 가장 많이 하는 말이 '미안하다'라는 것은 세간에 잘 알려져 있다. 그러한 공감을 젊은이들이 진실로 받아들였는지 모르지만, 그가 젊은 20, 30대—청년 세대—에게 많은 지지를 받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한 지지와 함께 2012년 대선에서 안철수는 청년 세대를 대변할 수 있는 대통령이 될 수 있을까?
적어도 여론 조사에서 안철수는 청년을 지지 기반으로 하는 준비된 대통령 후보라고 할 수 있다. 한 언론의 지난 7월 조사에 의하면, 안철수와 박근혜의 양자 대결에서 안철수는 20대 73.1퍼센트와 23.4퍼센트, 30대 62.7퍼센트와 28.2퍼센트의 지지율 차이로 압도적인 우위를 보여줬다.
2012년 대선, 우리는 안철수를 모른다
청년 세대가 다른 야권 후보와 비교하여 유독 안철수에게 보내는 지지의 의미는 무엇일까? 이즈음에서 사실 우리는 안철수에 대해 아는 바가 없다는 사실에 대면하게 된다. 그가 본격적으로 대중에 그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것이 작년 서울시장 선거였고 대부분의 언론 보도는 (그가 원했든 원하지 않았든) 대선 후보 지지율과 함께 출마 여부에 대한 것이었으므로 안철수에 대한 우리의 무지는 용서받을 만하다. 또한, 역대 대선에서의 제3후보와 달리 여전히 그가 무소속이라는 점은 가장 차별성을 갖는 지점이기도 하다.
우리 대부분은 그의 지지율과 무관하게 <안철수의 생각>(김영사 펴냄)을 통해서야 '안철수'를 일독할 수 있었음을 고백해야 한다. 사실 보통의 유권자가 안철수에 대해 무지하다는 것은 다른 후보에 대한 무지와 같은 정도의 크기일 뿐이다. 그러나 그 무지가 더 당혹스러운 것은 여전히 그가 제1당인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에 대항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야권 대선 후보라는 사실에서 비롯된다. 그를 제외한 다른 대선 후보들은 자신의 '정당'을 통해 자신을 드러내고, 후보로서의 선출 과정을 거친다는 점에서 안철수와는 가늠할 수 없는 차이가 있다.
한편,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가 20, 30대의 친구가 될 수 없는 이유는 비교적 명확해 보인다. 그동안 한나라당(새누리당)은 20대에게는 반값 등록금 대선 공약을 지키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7퍼센트의 경제 성장률로 일자리를 늘리겠다는 약속을 어겼고, 30대에게는 생활에서 중요한 문제였던 무상 급식에 반대했으며 4대 강 사업을 통해 국가 재정을 낭비하여, 주거나 보육 정책에 상대적으로 소홀했기 때문이다. 합리적인 정치적 선택을 하는 20, 30대 유권자들이 최소한 박근혜를 지지하지 않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자, 이 조건에서 안철수가 20, 30대의 지지와 함께 대통령이 된다면 그들을 위한 좋은 정책을 펴고 좋은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인가?
안철수가 만난 청년들
▲ <안철수를 생각한다>(프레시안 기획, 알렙 펴냄). ⓒ알렙 |
다만 안철수에 대한 어떤 의구심은 그가 청년 세대에게 그렇게 말하게 된 계기 혹은 과정에서 비롯된다. 아마도 그는 책이나 언론 보도, 그가 몸담고 있던 대학을 통해 청년들을 만나왔고, 그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았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청춘 콘서트'를 수년간 진행하면서 나름의 소통을 해왔던 것 같다. 그런데, 그의 생활과 '청춘 콘서트'를 진행하면서 만나게 된 '청년'들은 과연 어떤 이들이었을까?
그의 '청춘 콘서트'는 혹시 중산층 자녀들과의 '정제된 만남'은 아니었을까? 말하자면, 콘서트나 그의 수업에 함께한 청년들은 비록 취업 지망생이나 졸업생인 미취업자라고 할지라도 나름의 주거 시설과 함께 생계에 지장을 받지 않을 만한 조건을 갖고 있는 자들이 아닌가. 이러한 가정보다 더 본질적인 문제는, 안철수가 청년 세대들에게 미안함을 느끼게 된 계기가 그의 주변에 '실재하는 청년들'이 그에게 그렇게 직접 말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니라 그의 간접 체험들의 누적에서 시작되었다는 사실이다.
CEO나 대학원장으로서의 안철수라면, 그 정도의 체험만으로도 그는 훌륭하게 사회적 발언을 할 수 있다. 그러나 그가 일반적인 수준의 이해에 머무는 CEO가 아니라, 그들을 대변하는 정치인이라면 그들에 대한 다른 수준의 이해와 함께 그들과의 어떤 협의나 간접적인 강제가 필요하게 된다. 즉, 안철수가 그 집단을 위해 일하는 '정치인'이 되기 위해서는 단순한 '이해'에서 나아가 그들의 이해를 강력하게 대변하지 않으면 안 되게 만들 유인이 존재해야만 하고, 그것은 '실재하는 청년들'이 그 주변에 존재할 때에만 가능한 것이다. 사실 그것은 모든 정치인에게 해당되는 말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정치인에게는 그들이 대변할 집단에 대한 일반적인 이해가 구체적이고 강렬한 정치적인 이해로 비약될 때에만 그들을 위해 제대로 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안철수 후보가 선거에서 해야 할 일
안철수 개인을 기준으로 청년 세대에 대한 이해와 공감 수준이 다른 정치인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높다는 점은 재론할 필요가 없다. 다만, 그가 대통령이 된다고 가정할 때, 그의 '선의'만을 믿어서는 안 되는 것 역시 명확하다. 정치는 선한 의지만 있으면 좋은 결과를 낼 수 있는 무색투명한 과정이 아니다. 정치의 장은 온갖 야합과 권력 투쟁이 난무하는 가운데 반대파와의 합의를 통해 자원을 배분하는 어떤 과정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단순하고 선한 의지보다 더 필요한 것은, 좋은 결과를 가능하지 못하게 하는 어떤 구조나 장치를 제압할 수 있는 '힘'이다. 재벌 개혁 또는 경제 민주화에 대한 선한 의지로 가득 찼던 (그리고 지금도 다시 그 슬로건을 다시 외치는) 민주당-노무현 정권이 삼성경제연구소의 보고서를 국정 기조에 반영하게 된 과정 역시 그 '힘'이 부족한 결과가 아닌가.
그렇다면, 저 난관을 뛰어넘을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인가? 지금 안철수의 관점에서 말하면 그것은 <안철수의 생각>에 담긴 매끈함과 단호함이 아니라,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 여러 집단이 캠페인에 투입되고 그에 따라 '생각'을 강제로 전환할 수 있는 '실재하는 힘'이 바로 그것이다. 다른 한편, 캠프를 위해 일할 수 있는 집단과 단체를 얼마나 많이 유능하게 조직할 수 있는지에 따라 선거 과정이 재편되어야 바람직한 것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결국 대선 후보는 많은 '자기편들'에게 '신세'를 질 수밖에 없는 과정이고, 이 과정이 청년 세대를 위해 집권 후에도 일할 수 있도록 만드는 거의 유일한 길이다.
그래서 20, 30대가 다른 세대와 비교되는 자기들의 요구가 있다면, 그것은 안철수의 선의에만 기대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대통령 선거에서 청년 세대의 요구를 강제하고 견인할 수 있는 어떤 '힘'으로만 그의 주변에 남을 수 있다. 요컨대 청년들이 믿을 수 있는 건 <안철수의 생각>이 아니라, 그를 구성하게 하는 그들의 조직이다.
한편, 안철수가 청년 세대에게 느끼는 미안함으로 그들을 위한 어떤 선의의 일을 하기 위한 마음을 갖기 시작했다면 그는 많은 신세를 질 각오를 해야만 한다. 그러나 <안철수의 생각>을 통해 엿볼 수 있는 안철수는 누구에게도 신세 지지 않는 중립자이자 선지자로서의 대통령 후보를 그리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의 생각은 정권 말 측근 비리에 대한 해결책으로 '여러 사람에게 특별히 신세 진 일이 없는 사람이 인사권자가 되어 능력에 따라 적합한 사람들을 적재적소에서 일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말하거나, 지난 정권이 '신세를 졌거나 친한 사람들을 집중적으로 쓰다 보니 부적합한 인물들에게 중요한 역할이 주어져 많은 문제가 생겼'다고 강조하고 있는 점에서 드러난다.
혹시 안철수는 '정치'를 지나치게 순결한 어떤 '집행'으로 보고 있는 것은 아닌가? 서울시장을 정치가 아닌 행정이라고 이해했다면, 대통령은 어떠한가? 안철수는 저 높은 곳에서 고고한 편에 서서 옳은 결단을 내리고 청년 세대를 비롯한 국민들의 이해를 대변하는 대통령이 되려는 것인가? 그러나, 안철수가 기대하는 중립적인 대통령이 되기 위해서는 그 선거 과정에서 자기 이해와 주장을 관철시키기 위한 집단과 단체의 조직 없이 성공할 수 없으며, 그가 기대하는 순결한 대통령은 가능할 수도 없고 바람직하지도 않다. 변호사 강지원이 대통령 후보 출마 선언을 하면서 슬로건으로 내건 '정책 중심 선거 운동(매니페스토)'은 안철수의 대통령상과 묘하게 중첩된다.
정치면 단신으로 짧게 처리된 강지원의 갑작스런 출마 선언은, 안철수의 출마 선언과 어떤 차이가 있을까? 두 '후보'의 질적인 차이는 지지율 이외에 없는 것 아닌가. 강조하자면, 안철수가 <무릎팍도사>와 <힐링 캠프>에 출연했던 점 이외에 강지원과 다른 차이가 있다는 점을 유권자에게 증명하는 방법은 매니페스토가 아니라 자신을 강제하게 될 집단의 참여와 요구를 스스로 조직하는 것이다.
안철수의 '생각'은 여전히 모호하다
언론의 빈번한 노출에도 불구하고 안철수는 대선 80일을 남겨둔 시점에서 대선 후보들 중 발언 빈도가 가장 낮은 후보이자 가장 높은 지지율을 기록하는 '이색적인' 후보로 등장하고 있다. 이른바 제3후보인 이인제, 정몽준, 문국현 등과 비교할 때에도 그의 등장은 가장 지연된 출정이라 할 수 있겠다.
그래서인지 여전히 안철수는 '이미지'로만 존재한다. 그를 이해하기 위해서 <안철수의 생각>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다만 안철수를 읽어내기에 <안철수의 생각>은 너무 매끈하게 다듬어져 있고 그 매끈함은 동시에 모호함을 동반한다. 많은 이들이 지적하듯이 <안철수의 생각>은 '정책 방향'의 대강을 제시해주고 있을 뿐이다.
이를테면, 청년 세대들의 최대 현안이자 지금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모순이라 할 수 있는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 <안철수의 생각>은 이렇게 말한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에 덧붙여 같은 차원에서 "단기적 이익이 조금 줄더라도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을 철폐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비정규직 고용이 회사 입장에서 노동 유연성 확보의 장점이 있으니 "정규직보다 더 많은 돈을 주고 일을 시켜야" 한다고도 한다.
어떤가? 안철수의 '생각'이 제대로 실현된다면 우리 사회에서 비정규직은 줄어들거나 사라질 수 있을까? 새누리당과 박근혜 후보 역시 지난 총선 이후(실현 가능성과 의지와는 별개로) 비정규직을 줄여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남는 문제는 '어떻게'가 되어야 할 테지만, 안철수는 <안철수의 생각> 이외에 다른 어떤 곳에서도 그 구체적인 방법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고 있다.
우리 사회의 비극적인 사건인 용산 참사와 쌍용자동차 사태에 대해서도 그는 "정말 가슴 아픈 일"이며, "정리 해고가 남용되지 않도록 제도적으로 보완할 부분들을 정비하고 정리 해고가 불가피한 경우에는 기업들이 취업 알선, 재교육 등에 최선을 다하도록 의무화하는 방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정리한다. 동일 노동 동일 임금이나 중소기업 인센티브 제도, 공공기관의 솔선수범은 해법의 방향이 될 수는 있겠지만, 대책이 될 수는 없다.
비정규직과 노동에 대해서 말할 때, 보다 근본적이고 구체적인 대책은 노조 조직률이 10퍼센트 남짓에 불과한 노동의 현실에서 출발해야만 할 것이고 그들의 구체적인 조건과 함께 하지 않는다면 <안철수의 생각>은 수사에 불과해질 뿐이다. 안철수에게 노동 없는 민주주의에 대한 문제의식이 아쉬운 지점이기도 하다.
<안철수의 생각>의 모호하면서도 매끈한 정리는 그래서 공허해진다. 그것은 인터뷰어의 문제도, 그에 답하는 안철수의 문제도 아니다. 그것은 본디 안철수가 지금 발 딛고 서 있는 그 지점을 반영한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2012년, 5년 후의 실패를 준비하자
안철수가 2012년 대선에서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고 가정해 보자. 안철수의 정부는 2017년 대다수의 서민들을 위한 좋은 정부로 남아 있을 수 있을까? 최소한 비루한 청년들에게 어떤 희망을 남길 수는 있는 걸까? 거칠게 답을 하자면, 지금 한국에 안철수가 아니라 그 누가 와도 획기적으로 청년들의 현실을 바꿔내지는 못할 것 같다.
2012년 한국의 사회 경제적 조건을 기반으로 어떤 뛰어난 대통령이 등장하더라도 그의 5년 임기 동안 실업률이 급속히 낮아지고 경제 성장률은 높아지며, 정치 사회적인 환경이 개선될 수 없을 것이라는 전망이 더 현실적이다.
2004년 탄핵에서 돌아온 노무현 대통령은 열린우리당과 함께 17대 국회의 과반으로 임기를 (다시) 시작했다. 그의 강렬한 의지에도 불구하고 열린우리당이 설정한 4대 개혁 입법은 누더기가 되어 겨우 통과하거나 실패했고, 국민들의 생활과 경제적 조건은 더욱 악화되었다. 과반 의석을 보유한 민주당을 기반으로 하고도 노무현이 실패했다면, 의회에 기반을 두지 못한 무소속 안철수는 어떻게 그들과 함께 일하고 자신의 '생각'을 펼칠 것인지에 대해서 다른 해답을 갖고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에 대한 전망은 부정적이다. 그는 오직 자신이 중립적인 입장에서 여야를 불문하고 '소통을 잘할 수 있다'고 반복하고 있을 뿐이다.
나는 좋은 대통령이 현실에서 갖는 힘, 그리고 한국 정치의 역동성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대통령은 5년의 집권 기간 동안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해 주고, 임기 동안 많은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 그러나 그 변화의 방향과는 별개로 특히 안철수가 대통령이 된다면 '절제된 기대'를 가지고 그를 바라볼 필요가 있겠다. (안철수가 당선된다고 하더라도) 여러 이유로 제3후보-대통령은 실패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보기 때문이다. 제3후보는 제도화되지 못한 야당의 실패와 맞물려 돌아가는 톱니바퀴다. 새누리당은 노무현의 발목을 잡았던 그때보다 더 강해져 있고, 민주당은 오히려 그 반대인 것이 현실이다.
어쩌면 지금 우리에게는 2012년의 실패와 5년 후의 실패만이 예비된 것은 아닐까. 다시 거칠게 결론을 내자면, 안철수의 출마 선언과 곧 펼쳐질 민주당과의 단일화 과정에서 우리가 준비해야 할 것은 다시 '정당'으로 수렴하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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