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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공주'가 정말 대선 후보 될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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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공주'가 정말 대선 후보 될 줄이야!

[프레시안 books] 김종철의 <박근혜 바로 보기>

짧은 글 지어내서 먹고 사는 한국의 경박한 언론 기술자와 지식 기술자들이 박근혜에게 "선거의 여왕"이라는 칭호를 붙여줬을 때 나는 별 생각 없이 그냥 웃고 넘겼다. 박근혜가 대통령 감으로 거론되기 시작하던 시절에도 나는 어이없는 실소를 흘리고 넘어갔다. 박정희의 공과에 관한 논란은 접어두고, 어쨌든 전두환에게 항거해서 1987년 체제를 만들어낸 이 나라 국민이 박정희의 딸을 대통령으로 받아들일 리는 없다고 봤기 때문이다.

지금 돌아보면 참으로 순진한 생각이었다. 사실, 순진하다기보다는 당시만 해도 내가 현실 정치판과는 한 막음 떨어진 주제들을 연구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나 같은 책상물림이 무슨 순진한 착각에 빠져 있었거나 말거나, 박근혜는 2007년부터는 유력한 대통령 후보의 반열에 올랐다. 그리고 그 해에 이명박에게 경선에서 패배한 덕분에 지금은 의기양양 "대세"를 부르짖으며 마치 대통령이라도 다 된 듯, 전제적인 권력을 이명박과 나눠서 휘두르고 있다.

그에게 "공주"라는 직함을 붙여준 사람도 아마 박정희 왕조의 상속권을 함축하는 뜻으로 그러지는 않았을 것이다. 모르긴 몰라도 풍자나 익살로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어느새 해학은 사라지고 그에게 붙은 "공주"라는 별칭은 박정희의 딸이라는 뜻이 아니라, 이방원의 아들 세종 임금, 나폴레옹 1세의 조카 루이 나폴레옹 황제, 헨리 8세의 딸 엘리자베스 1세 여왕과 동급이라는 왜곡된 정치의식을 확대 재생산하고 있다.

대한민국 인구 5000만 가운데 민주주의를 교육받은 시민이 아마도 3000만은 되지 않겠나 싶지만, 나 같은 딸깍발이가 무슨 생각을 하든지 말든지 930만 명에 달하는 유권자는 이 공주마마께서 민주주의 체제의 대통령으로 등극해서 어린 백성을 어여삐 여겨달라고 믿는 모양이다. 더욱 황당한 사태는 북한 김일성 왕조의 3세 군주 김정은 이름 석 자 뒤에 욕설을 대놓고 붙이지 못하면 김 씨 세습제에 찬성하는 것과 같다는 견강부회에 동조하는 사람들이 거의 모두 저 930만 명에 속한다는 사실이다.

박정희가 죽고 잠시 세인의 눈길에서 비켜나 있다가 1998년에 국회의원으로 당선된 이후만 보면, 박근혜는 승승장구 운이 좋았던 것 같다. 말을 몇 마디 안 해도 언론이 줄곧 관심을 기울여 주니까, "원칙"이니 "신뢰"니 "민생"이니 짧은 음절의 단어 몇 개만 가지고 이미지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본인이야 알든 모르든 엄청난 행운이었던 것이 틀림없다.

그의 언행에 대해 캐물어 보려는 시도가 간헐적으로 없지는 않았지만 박근혜는 늘 조용한 묵살로 대응해 왔고, 그를 지지하는 900만 명의 유권자는 그런 묵살조차 "공주마마의 권위"로 칭송하며 받아들였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혹독한 검증을 더 이상 피할 수가 없다. 김종철의 <박근혜 바로보기>(프레스바이플 펴냄)는 공론장에서 박근혜에 대한 검증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는 신호탄에 해당한다.

이 책은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 <박근혜 바로 보기>(김종철 지음, 프레스바이플 펴냄). ⓒ프레스바이플
첫 번째 부분은 박정희라는 인물 그리고 박정희 체제의 성격에 관한 이야기이다. 박정희는 입신을 위해 몸부림치던 시절 생존을 위해 배신을 밥 먹듯이 했던 인물이다. 법을 사람 잡는 구실로 악용하면서도 그것을 "국가의 목적"이라는 핑계로 정당화할 만큼 자기성찰의 의무를 외면했던 권력의 화신이었다. 박근혜를 지지하는 900만 명에게는 이것이 용납될지 몰라도 나머지 4000만 명에게는 어떻게 비칠지 12월 선거 결과로 나타날 것이다.

객관적으로 볼 때 박정희는 박근혜에게 유산이면서 동시에 부채이다. 자신을 지지하는 사람들에게만 둘러싸여 있다 보니, 지금까지 박근혜는 박정희를 유산으로만 여겨온 것으로 보인다. 민감하기 짝이 없는 5·16에 관한 얘기를 최근에 공세적으로 꺼낸 것을 보면 틀림없다. 그랬다가 바로 역풍이 몰려오는 듯 보이자, 특유의 생존 본능이 발동해서, 역사 논쟁 그만두고 민생 챙기자고 말을 돌리려는 것을 보면, 박정희가 자기에게 어떤 짐을 물려주고 갔는지 이제는 슬슬 감지하기 싫어도 해야 할 것이다. 유권자들, 특히 젊은 유권자들이라면, 김종철이 짧게 정리한 박정희의 실체를 읽음으로써 한국 현대 정치사의 주요 흐름을 대강은 이해할 수 있겠다.

두 번째 부분은 박근혜에 관한 이야기이다. 사실 박근혜 위에 덧씌워진 "신뢰와 원칙"이라는 포장은 내용이 없다는 점에서 "모든 국민이 정직했으면 좋겠다"고 한 이건희의 요언(妖言)이나 "도덕적으로 완벽한 정권"이라고 한 이명박의 망어(妄語)에 절대 뒤지지 않는다. 김종철이 간단하게 대목별로 정리한 박근혜의 과거 행적을 보면 인기에 영합하는 이미지 관리를 통해 철저하게 권력을 지향해 온 궤적이 확인된다. 부녀지간에 기회주의가 얼마나 닮았는지를 극명하게 느낄 수 있다.

세 번째 부분은 새누리당의 뿌리와 실체를 다룬다. 정치판이 워낙 무상하게 급변하다 보니, 지식인들부터 자본의 논리에 휩쓸려서 역사에 기울이는 관심이 줄어들다보니, 새누리당이 박정희의 민주공화당, 전두환의 민주정의당, 노태우의 민주자유당, 김영삼의 신한국당에 뿌리를 둔 사생아라는 사실을 망각했거나 아예 모르는 사람이 많다. 신한국당이 한나라당으로 이름을 왜 바꿔야 했는지, 그러고도 왜 "차떼기당"으로 전락했는지, 그 때문에 박근혜가 왜 천막당사라는 쇼를 벌이면서 동정표를 구걸했는지, 그걸로 모자라 다시 "새누리당"으로 이름을 왜 바꿔달아야만 했는지, 지저분한 역사가 이 책에 간단하게 정리되어 있다.

정치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대개는 아는 내용이 이 책에는 담겨 있다. 그러나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도 여기 담긴 모든 내용을 잘 알지는 못할 것이다. 따라서 곁에 두고 기억력을 되살리는 참고 자료로 권할 만하다. 정치에 관심이 비교적 없었던 사람이라면 12월 선거에 임하기 전에 이 책은 꼭 읽어볼 필요가 있다.

이번 선거에서는 어쩔 수 없이 5·16 쿠데타와 박정희 체제의 성격에 관해 역사 논쟁이 불붙을 수밖에 없다. 외신을 인용할 필요도 없이, 박정희의 딸이 민주화된 대한민국에서 대통령으로 당선된다는 사태는 가상만 해봐도 이 나라 역사의 물줄기를 180도로 바꿀 수 있는 중대사이기 때문이다.

낙선한 이회창도 당선한 이명박도 1200만 표를 넘지 못했다. 노무현만이 그것도 10년 전에 1200만 표를 넘었다. 박근혜는 4·11 총선에서 930만 표를 얻었을 뿐이다. 유권자 수도 10년 전이나 5년 전보다 늘었기 때문에, 이번 선거에서는 누구든 1200만 표를 훌쩍 넘어야 당선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고정표보다는 부동층의 향배가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점이다. 투표를 왜 하는지 궁금한 사람들, 누구를 지지해야 할지 맘을 정하기 어려운 사람들이 이 책을 읽으면 궁금증을 풀고 맘을 정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맘을 이미 정한 사람들이라도, 주변의 부동층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면 주권자의 건강한 선택을 내리는 데 크게 기여하게 될 것이다.

다른 일은 다 접어두더라도, 박근혜가 "불쌍하다"는 이유 아닌 이유 때문에 신성한 투표권을 낭비하는 무지한 백성들이 우리 모두의 운명을 파멸의 구렁텅이에 집어넣는 사태만은 적어도 막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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