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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좋은 엄마가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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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좋은 엄마가 될 수 있을까?

[철학자의 서재] 김희경의 <마음의 집>

마흔이 넘어 아이를 선물 받아 낳고 기르자니 정말 예쁘다. 매일 우리 아가에게 엄마에게 와 줘서 고맙다고 말한다. 사실 나는 우리 아기를 만나기 전까지는 아이들을 크게 좋아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그들과 소통할 방법을 잘 몰랐고 아이가 없으니 절실히 노력할 이유도 없었다.

하지만 이제 내 생활의 가장 큰 자리를 꿰어 찬 아이 덕분에 매일 공부하는 마음으로 그를 만나고 새로 엄마로 성장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모든 엄마들이 그렇듯이 나 역시 '어떻게 하면 좋은 엄마가 될 수 있을까' 하는 문제 앞에서 오랫동안 고군분투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종종 모성애와 한없는 사랑의 이미지를 연결시키지만 현실의 엄마들은 모성애라는 가면의 폭력 가운데서 허우적대기 십상이다. 그래서 (특히 딸들의 경우) 어린 시절에 받은 상처의 가해자는 대체로 엄마들이다. 교육방성(EBS)이 방영한 다큐멘터리 <마더 쇼크>는 그것이 배려 깊은 사랑을 받아본 적 없는 이전 세대의 일반적인 대물림이라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다큐멘터리는 자식 세대가 자식을 낳고 엄마 세대와 화해에 이르는 과정을 보여준다. 근대화 과정은 먹고산다는 논리로 가장 가까운 이들 사이의 배려와 이해를 삭제 가능하다고 치부했던 것일까. 특히 한국 사회에서는 가족 구성원들의 개별성을 인정하고 자식을 인격적으로 존중하는 수고를 감당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마음의 상처를 미처 다 살피지 못한다 하더라도 모든 위해로부터 자식을 보호하려는 것은 엄마된 사람의 본능에 가까울 것이다. 더구나 우리 사회는 이미 어린 아이들과 관련한 여러 가지 사건 사고가 증명하듯이 위험 사회에 들어왔다. 우리 아이들에게 줄 수 있는 무균실은 없다.

오히려 현실은 허허벌판에서 누가 빨리 뛰나 경주시키고 그 와중에 서로 찌르고 할퀴고 자해하는 것을 내버려 두면서 잘 못 뛰면 가차 없이 차별하고 멸시한다. 그렇다. 우리 아이들은 언제나 각종 괴담이 난무하고, 대체로 그것이 진실인 무시무시한 '학교'라는 곳을 통과한다.

그러면 제도권 학교라는 지옥을 피한다고 문제가 해결될까. 우리의 학교는 한국 사회의 바로미터일 뿐인데 말이다. 아이를 사회와 격리시켜 반쪽 인간으로 살아가게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렇다면 내가 엄마로서 가질 수 있는 현실적 바람과 조력해야 할 부분은 그가 육체적으로 성장하면서 동시에 자기 마음의 크기와 넓이, 그리고 깊이를 키워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아닐까.

▲ <마음의 집>(김희경 지음, 흐미엘레프스카 그림, 창비 펴냄). ⓒ창비
<마음의 집>(김희경 지음, 흐미엘레프스카 그림, 창비 펴냄)은 아직은 타인의 마음을 공감하거나 이해하기 어려운 아이의 시선으로 마음에 대해 묻고 생각하기를 권하는 책이다. 그런데 '타인의 마음을 공감하거나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아이 시절에 국한되지 않는다. 대다수 사람들은 죽을 때까지 관계가 만드는 문제와 그로 인해 받은 상처에서 벗어나는 것이 어렵다.

이 어려운 문제를 도대체 어떻게 접근할까. 이 책은 아이들이 보는 그림책이라 거의 글이 없다. <마음의 집>은 자기 마음을 이해하고 동시에 타인의 마음에 접근하는 철학적인 과제를 그림으로 돌파한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그림의 비중이 크다. 이 책의 그림은 글 작가의 글에 단지 그림을 입힌 수준이 아니라 그림만으로도 많은 이야기를 전해주고 깊은 감응을 일으켜 아이들과 어른 모두를 사색하게 한다.

얼핏 보면 이탈리아 화가 키리코를 연상시키는 이보나 흐미엘레프스카의 그림은 그 이국적이고 신비로운 분위기 때문인지 타인의 여리고 다치기 쉬운 마음을 응시하게 하고, 그와 다르지 않은 자신의 마음을 겹치고 돌아보게 만드는 힘이 있다.

책의 처음은 "우리의 마음은 어디에 있을까?"라는 아이의 물음으로 시작한다. 아이는 자신에게서 출발해서 가까이 있는 사람들에게로 시선을 옮긴다. 말이 없는 엄마, 구석에서 혼자 노는 친구, 혼자 밥 먹는 아빠, 이제 막 태어난 동생, 시각 장애인, 대머리 교장 선생님 등. 그들은 아이에게 가까이 있지만 실제로는 멀리 있는, 아이가 다가가기 힘든 이들이다.

그러나 아이는 "(그들에게도) 마음이 있어. 그런데 마음은 잘 알 수가 없어"라며 속내를 보여주지 않는 그들과 관계 맺기 어렵지만 그들의 마음을 상상하려고 한다. 사실 알 수 없는 건 그들의 마음만이 아니지 않던가. 내 마음도 한결같지 않고 제어하기 힘든데 타인에게 쉽게 마음을 보여주지 않는다고 나무라서는 안 될 일이다. 같은 사물을 보고도 그때그때 기분이 다르고, 같은 날에도 만나는 사람에 따라 마음 상태가 다른 것이 우리 마음이기 때문이다. "마음은 도대체 무엇일까?"

쉽게 보이지도 않고, 알 듯하면 달라지는 변덕쟁이 마음을 집에 비유하니 그제야 조금씩 윤곽이 드러난다. 우리가 사는 집이 서로 다른 모양을 가지고 있듯이 마음의 집도 제각각이다. 그 집에도 문이 있다. 누구는 문을 조금 열어 두고 누구는 활짝 열지만 어떤 이는 아예 닫고 산다. 거기 있는 방은 여러 사람들이 들어갈 수 있는 넓은 방도 있고 자기 몸 하나 겨우 들어가는 좁은 방도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흐린 마음과 밝은 마음을 보는 창문, 힘든 일을 견뎌내는 동안 오르는 계단, 자기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 요리하는 부엌, 드러내지 못하는 비루한 마음들을 버릴 수 있는 화장실 등 집에 있는 건 거의 다 갖추고 있다. 거기다 우리네 집들이 그렇듯 마음의 집의 주인도 종종 바뀐다. 어떤 마음이 집을 지배하느냐에 따라 마음의 집의 분위기와 내부 구조가 달라지게 마련이다.

복합적이고 복수적인 마음들이기에 그 마음 사이의 관계 맺기는 어려울 수밖에 없고, 언제나 어떤 효율성을 기준으로 생활하는 우리는 관계의 문제를 힘들어 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우리는 손쉽게 '내 마음 같지 않다'는 말을 자주 하는가보다. 그럴 때마다 '그냥 생긴 대로 살아야지'라고 황급히 관계의 문제를 제쳐 버린다. 종종 우리는 나와 너의 다름을 강조하고 다름이 단절의 알리바이인 양 쉽게 선을 긋거나 등을 돌려버린다.

그러나 다르기 때문에 그의 마음을 내 마음대로 재단하지 말아야 하며, 다르기 때문에 내 마음의 창을 그에게 조금 더 많이 열어야 하는 수고를 져야 하는 것은 아닐까. 어쩌면 우리는 집에 대해 예의를 지키면서도 곁에 존재하는 사람들의 여린 마음에 대해서는 쉽게 무시하고 지나쳐버리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남의 집을 엿보거나 불쑥불쑥 들어가는 것을 실례라 여기지만 타인의 마음에 대해서는 우리는 종종 얼마나 폭력적인가. 문이 닫힌 집 앞에서는 무슨 이유가 있겠거니 하고 돌아서면서도 마음을 닫고 사는 이들에 대해서는 서슴지 않고 손가락질을 하기도 한다.

이런 의미에서 이 책은 뒤늦게 엄마가 된 내게 오히려 내 안의 아이를 돌아보게 해 주었다. 내 오랜 생각은 아이 가장 가까이에서 마음의 문을 활짝 열어주어야 하는 의무를 지닌 부모가 부모의 몫을 다하지 못할 때 아이는 가장 깊이, 그리고 오래 상처받는다는 것이었다. 결국 상처는 그의 마음자리가 되고, 그 사람의 정체성을 만들게 되기 때문이다.

<마음의 집>은 그 아이의 '생긴 대로'를 만드는 구체적인 영향 관계 때문에 아이를 염려하지만 동시에 이 세상에는 무수한 마음들이 있다고 아이를 위로하고 응원한다. 우리는 계속 관계 맺고 내 마음을 통로로 다른 이들을 상상하고 공감하고 다른 마음들을 만나고 배울 수 있기에 말이다.

그런 배움이 삶이라면 우리는 말이 없는 엄마를, 혼자 밥 먹는 아빠를 오래 미워하지는 않을 것이다. 어떤 이유로 인해 문을 닫아걸거나 문을 빼꼼히 열고 있는 이들, 자기도 들어가기 힘든 방에서 괴로워하는 이들의 마음을 이해하고 위로할 수 있는 마음은 또 그들 곁에서 관계 맺기를 원하고 소통하기를 바라는 우리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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