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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를 폐기해야 건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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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를 폐기해야 건강하다!"

[철학자의 서재] 마르크스의 <자본>

<자본>을 읽는다는 것은?

카를 마르크스의 <자본>을 읽는다는 것은 경이롭고 흥미진진한 일이다. 자본주의 사회가 시작된 이래 마르크스가 <자본>에서 한 것보다 더 명쾌하게 자본주의 사회에서 건강 문제의 기원을 밝힌 이가 있을까?

<자본> 1권 서문에서 "현대 사회의 경제적 운동 법칙을 발견"하여 한 사회 발전의 진통을 단축시키고 경감시키려는 목적으로 <자본>을 썼다고 밝혔듯이, 마르크스는 사회를 하나의 유기체로 바라보면서 사회의 운동 법칙을 발견하고자 했다. 이렇게 볼 때 마르크스가 <자본>에서 그 사회의 구성원인 유기체의 건강 문제를 주의 깊게 관찰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 것이다.

마르크스는 무엇보다도 자본주의적 생산 양식이 인류 생명력의 근원을 뿌리째 흔들어 놓은 것에 대해 경악한다. 마르크스는 <자본>에서 "역사적으로 볼 때 바로 어제 태어났을 뿐인 자본주의 생산이 얼마나 급속하고 확고하게 인민의 생명력의 근원을 장악했는가!"라고 말하면서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가 계급에 의한 자본 축적 과정이 얼마나 인류의 노동력과 생명력을 소진시켰고, 생산력의 발전에 따른 인류의 생명력의 연장과 발전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되는지에 대해 기술하고 있다.

자본주의 사회는 모든 것을 상품화한다! 심지어 유해 식품과 의료까지도!

▲ <자본>(I-1, 카를 마르크스 지음, 강신준 옮김, 길 펴냄.) ⓒ길
마르크스는 <자본>의 첫 장에서 이미 "자본주의적 생산 양식이 지배하는 사회의 부는 상품의 방대한 집적으로 나타나며 개개의 상품은 이러한 부의 기본 형태로 나타난다"고 했다. 자본가 계급에게 상품 생산의 궁극적 목적은 상품을 생산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잉여 가치를 자본가가 독차지하여 자본으로 축적하는 것이므로 자본 즉 화폐로 전환할 수 있는 것이면 무엇이든 상품으로 만드는 것이다. 자본가 계급이 자본을 축적하려는 욕구는 "자본의 내재적 충동"이므로 어떤 것에 의해서도 제어가 안 된다. 자본가 계급이 상품을 생산할 것인가 아닌가를 결정하는 것은 오직 그 상품을 생산해서 잉여 가치를 낼 수 있느냐 없느냐에 의해 좌우될 것이다.

따라서 자본가 계급은 소비자들이 그 상품을 통해서 어떤 영향을 받을지는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인류의 먹을거리가 상품으로 등장하게 된 이래 얼마나 많은 유해 물질이 범람하는가? 불량 식품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곳이 초등학교 앞에 있는 구멍가게들이다. 빨강, 파랑, 노랑, 가지각색, 오색, 색색으로 물들여진 사탕이며 과자들은 아이들을 유혹하는 불량 상품이었다. 그 오색 사탕이라도 하나 집어서 첨가물이 표시된 부분을 살펴보라! 황색, 적색 등 수많은 색소가 들어간다. 자본가 계급의 유혹이다. 자본가들은 상품 생산을 통해서 잉여 가치를 획득하고 자본 축적을 위해 어린아이들의 순수한 동심까지도 이용하려드는 것이다. 최근에 와서는 그 색소들이 발암 물질이었다는 것이 속속들이 밝혀지고 있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불량 식품으로 위조 상품들은 얼마나 많은가? 톱밥 섞인 고춧가루, 뉘와 모래 섞은 쌀, 위조 계란, 위조 양주 등은 마르크스 시대에도 있었던 위조 상품들이다. 현대 사회로 올수록 유해 식품은 점점 더 잔혹해진다. 유해 식품의 잔혹사가 자본주의 사회의 역사이다.

대표적인 예로 광우병의 원인 요인인 변형된 프리온과, 신생아 사망을 유발시킨 멜라민은 둘 다 자본가 계급, 즉 "인격화된 자본"이 만들어낸 탐욕의 산물이다. 광우병의 원인인 프리온 단백질은 끓여도 분해되지 않고 인체에 흡수되면 뇌 세포에 가서 박혀서 뇌 세포 전체에 상흔을 내어 뇌를 스펀지처럼 만들어 버린다. 이 프리온은 어머니의 젖을 통해서도 이동될 수 있어 어머니로부터 아이에게로 수직 감염이 이루어진다. 인류 재앙이 재생산되는 것이다. 우유 속에 들어 있는 멜라민도 플라스틱 조각이 인체에 들어가 분해되지 않고 신장 등 모든 조직에 침착하여 소아 사망을 유발한다.

또 대부분의 자본주의 국가들은 농산물에 발암성 농약이 사용되는 것을 그대로 방치함으로써 인류 대부분의 먹을거리를 발암성 물질로 오염되게 만들고 있다. 유해 물질이 인체에 미치는 악영향은 점점 커지고 규모도 확산되고 있다. 유통의 발달로 이제 광우병 쇠고기가 전 세계를 돌아다니고 있는 것이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는 마르크스 말처럼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조차도 위조될 형편이다."

또 이렇게 "상품의 방대한 집적"으로 나타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자본주적 생산 양식의 생산과 소비 과정에서 엄청난 양의 유해 물질과 폐기물을 만들어내는데, 이러한 산업 폐기물들이 자연 환경을 훼손시키고 인간의 삶을 덮쳐서 인간의 삶을 송두리째 피폐화시키고 있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도 자본주의적 생산 과정이 자연 환경을 파괴하고, 자연의 하나인 인류를 황폐화시키는 사례들은 이루 헤아릴 수 없는데, 그 대표적인 한 사례가 1970년대 박정희 정부가 '새마을운동'을 추진하면서 농촌 대부분의 가옥을 석면 슬레이트 지붕으로 바꾸게 한 일이었다. 최근에 자본가 계급에 의한 직접적인 환경 파괴의 사례는 삼성 자본이 고가의 아파트를 건설할 때 석면 시멘트를 사용한 것, 2007년 12월 삼성 자본이 태안반도에 원유를 유출한 것 등을 들 수 있다.

유해 식품의 상품화와 유해한 산업 폐기물들은 인간에 대한 자본의 착취 그 자체이다. 자본주의하에서 자본가 계급의 인간 착취에는 법도 그 효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의료 자체도 상품화되었다. 의료·제약 생산물, 의료 서비스의 상품화를 살펴보자. 의료는 노동력 유지를 위해서 필요한 부분이므로 노동자의 노동력을 상품으로 구입한 자본가 계급은 노동자의 노동력 유지에 필요한 모든 의료를 제공해 주어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이를 제공하지 않고 있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의료 상품화의 근원은 자본가 계급이 노동자들의 노동력 유지비에 필요한 비용을 노동자들에게 임금으로 지불하지 않고 그들 자신들의 잉여 가치의 부분으로 돌려 사유하는 데 있다.

의료의 상품화는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자본가 계급이 노동력 재생산을 위한 유지비 중의 하나인 의료비를 제공하지 않고 노동자 개인에게 노동력 유지의 책임을 전가하고 있는 데서 바로 의료 상품화의 근거가 나오는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는 상품 생산 사회이므로 노동자들 개개인이 의료를 책임져야 하는 상황이 되자 의료가 바로 상품이 되어 그들 앞에 나타나게 된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의료 상품화의 주체는 생산 수단을 가지고 있는 개인 의사나 병원 자본가들일 것이다. 병원에서 행해지는 모든 서비스가 가격이라는 꼬리표를 붙은 상품으로 전환된다. 그러면 이들 의사와 자본가들이 의료 서비스를 상품으로 제공함으로써 얻게 되는 이윤은 어디서 오는 것인가? 의료 상품에 대한 비용은 노동자들이 그들의 노동력 상품을 자본가 계급에게 팔고 대신 그것을 유지할 비용, 예를 들자면 의·식·주에 지불할 비용으로 받은 임금 부분에서 이전된 것이다. 의료 서비스는 상품화되었어도 그 자체가 가치를 창조하지는 않는다. 유통 과정에서 발생하는 이윤이 바로 생산직 노동자들이 만들어 놓은 잉여 가치의 일부인 것과 마찬가지로 의료 서비스의 비용은 생산직 노동자들이 만들어 놓은 가치의 일부분인 임금의 일부와 노동자들이 만들어 놓은 가치 중에서 이미 자본가 계급에게 넘어가 버린 잉여 가치의 일부가 병원 자본가들이나 개인 의원 의사들에게 이전된 것이다. 그러므로 병원의 자본가들과 의사들이 의료 서비스라는 상품을 통해서 생산 과정에서 발생한 가치와 잉여 가치의 일부를 의료 상품화의 이윤으로 더 많이 이전시키기 위해 의료 상품화를 더욱 진행할수록 즉 의료 서비스 상품의 가격을 올리고 의료 서비스를 남발할수록 노동자들은 그들의 임금 부분에서 의료에 지불해야 할 부분을 감당하지 못하게 되면서 자신들의 노동력도 유지하지 못한 채 삶이 황폐화되어 버리는 것이다.

한편,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의료 서비스의 상품화와 함께 의료 산업도 상품화되었다. 의료 산업이 시장화되어 의료 기기, 약품 등 모든 의료 시설이 상품화되었다. 특히 제약 회사나 의료 기기 산업은 이미 거대한 초국적 거대 자본이 되어 독점적 경쟁을 하면서 엄청난 이윤을 가져가고 있다. 한국에서도 백혈병의 치료제 글리벡이 천문학적인 독점 가격으로 형성되어 일반 노동자들이 구입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고 있다. 의료 산업은 이미 초국적 기업으로 이윤을 획득할 수 있는 곳이면 어디든 간다. 이러한 초국적 제약 산업은 자본주의 발전 수준이 낮은 국가들의 의료의 발전을 억제하고 있으며 그 지역 노동자들의 호주머니를 강탈해가고 있다.

그러면 이제 의료 상품화가 노동자 계급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의료가 상품화되어 의료비가 노동자들의 임금보다도 훨씬 높은 비용으로 매겨지는 경우에 개개의 노동자들이 이러한 고가의 상품화된 의료 서비스를 제공받지 못하여 질병을 치료하지 못하게 되므로 건강이 악화될 것이고, 결국 자신이 가지고 있는 유일한 상품인 노동력을 유지하지 못하게 되어 노동력의 재생산 능력을 소실 당하므로 노동자로서의 역할마저 박탈당하게 된다. 또한 의료의 상품화는 의료 서비스의 남용과 의료이용의 불평등과 건강 불평등의 한 요인이 되고 있다.

잉여 가치의 생산 과정에서 발생하는 노동자 건강 황폐화

자본가들의 끝없는 탐욕은 노동자들의 죽음을 부른다. 자본주의적 노동 과정은 잉여 가치 생산 과정이고 가치 증식의 과정인데, 이 과정은 바로 인간의 노동력을 착취하는 과정이고 노동자의 건강이 황폐화되는 과정이다. 노동력 착취와 건강 악화는 동전의 양면이다. 자본가 계급은 노동자의 노동력을 착취하여 잉여 가치의 생산 즉 절대적·상대적 잉여 가치의 생산을 증대시키는데, 이 잉여 가치의 생산 과정이 바로 노동자들에게는 노동 강도가 강화되는 과정이고 노동력이 소모되는 과정이며 건강이 황폐화되는 과정인 것이다.

그러면 잉여 가치의 생산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공장의 비밀의 문을 열고 들어가 보자. 우선 절대적 잉여 가치 증대 기전을 살펴보면, 자본가 계급은 공장을 스물네 시간 가동시키면서 노동자들에게는 스물네 시간 맞교대제, 열두 시간 맞교대제나 잔업과 주말 노동 등을 통하여 노동자들의 육체가 허용하는 한계를 넘어서까지 노동을 강요한다.

한국에서는 자본주의적 생산 과정이 도입된 이래 수십 년간 스물네 시간 맞교대제나 열두 시간 맞교대제가 시행되었으며, 지금도 전체 노동자의 15~40퍼센트가 야간 노동을 하고 있고 그 중 약 66퍼센트가 2조 2교대 열두 시간 주야 맞교대를 하고 있다. 주야 맞교대의 가장 대표적인 공장들은 1970년대 중반에 들어섰던 자동차 부품 및 완성체 조립 공장으로 자본가들은 이들 공장에서 약 40년이 넘도록 12시간 주야 맞교대를 시행하고 있어 그 공장에서 청년기와 장년기를 보낸 노동자들은 일생을 야간 노동을 하면서 보내다가 건강이 악화되어 공장 밖으로 내몰렸거나 20년 이상 야간 노동을 하느라 건강 악화에 시달리고 있다.

야간 노동을 포함한 교대제는 2008년 국제암기구(IARC)에 의해 발암 물질이라고 규정되어 있으며, 최근 많은 연구도 야간 노동으로 인한 인체의 스물네 시간 생체 주기의 파괴가 노화 즉 생명 단축과도 연계가 있음을 밝혀내고 있다. 한국의 노동자들은 그들의 신체가 고갈되는 것이 이제 한계에 도달했다는 것을 온몸으로 느끼고 있는데, 2002년 기아자동차, 2003년 현대자동차 노동자들은 이미 야간 노동 폐지와 주간 연속 2교대를 주장했고, 2011년 5월에는 유성기업 노동자들이 "밤에는 잠 좀 자자!"라고 하면서 본격적인 대자본 투쟁을 통하여 야간 노동의 문제를 전국에 알리고 있다.

한편, 상대적 잉여 가치 증대 기전을 보면, 자동차 공장이나 반도체 공장 등에서는 로봇이 인간이 담당해야 할 생산을 상당 정도로 대신하면서 노동자들은 다른 부서로 전환 배치되어 여전히 자동화되기 이전과 같은 강도 높은 정신적·육체적 노동에 시달리고 있다. KT와 같은 네트워크 서비스 분야 노동자들이 기술 발전과 자동화로 인해 대거 구조 조정을 당했고 남아있는 노동자들도 노동 강도 강화에 시달리고 있다. KT는 2007년 이래 지난 5년간 약 74명이 사망했다. 2011년 한 해 동안에도 15명이 자살하거나 돌연사로 사망했다. 사망 원인으로는 심혈관계 질환이 가장 높았는데, 그 이유는 구조 조정과 고강도의 업무 때문이다. KT는 민영화 이후 약 10년간 4만4000명 중에서 1만3000명의 노동자를 해고했는데, 이 구조 조정에서 살아남은 노동자들은 고강도 업무와 언제 해고될지 모르는 두려움에 극심한 스트레스로 인하여 자살, 심혈관 질환에 의한 사망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한편, 자본의 유통 산업에서 노동자들은 "거대한 상업 자본의 일개미"가 되어 산업 자본가로부터 상업 자본가에게로 잉여 가치를 이전시켜주는 역할을 하지만 정작 값싼 임금을 받으면서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고 있다. 백화점, 대형 할인점 등 상품이 쌓여있는 유통 시장에서 노동자들은 저임금과 장시간의 노동, 단순 반복적인 업무, 하루 종일 서서 일해야 하는 육체 노동과 소비자의 감정을 맞추어야 하는 정신 노동에 시달림으로써 대인 서비스 근무과정에서 겪는 정신과 육체의 황폐화를 겪고 있다.

자본가 계급은 과학기술 혁명의 열매를 오직 자신들만을 위해서 사유함으로써 자본의 축적을 강화해 나가고 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자동차 공장이나 반도체 공장인데 자동화 등 과학기술 혁명의 발달로 인한 모든 혜택은 자본가들이 다 가져가고, 노동자들에게 돌아오는 것은 야간 노동을 포함한 장시간의 노동, 보다 빽빽해진 작업 속도 그리고 첨단 과학기술의 원료로 쓰이는 발암 물질뿐이다.

또 자본가 계급은 사회화된 생산력의 또 하나의 부분인 사회적 분업과 협업 과정을 자본주의적으로 이용함으로써 잉여 가치 증대와 자본 축적을 강화해 나가고 있다. 자본가 계급은 사회적 분업을 자본주의적으로 이용함으로써 구상과 실현의 분리를 통하여 노동의 동인과 노동 자체의 통일을 파괴시킨다. 즉, 노동에는 구상과 실현이 통일되어 있는데, 자본가 계급은 이 구상과 실현을 분리시킴으로써 노동자를 불구로 만들어버리고 인간을 뿌리째 손상시킨다. 이제 노동자들은 스스로 구상하고 실현할 수 있는 인간의 노동력을 손상당하고, 정신 노동과 육체 노동의 분리를 겪게 되고 인간의 전체 몸 중에서도 일부분만 사용하게 되는 불구적인 노동으로 편제된다. 이렇듯 자본주의적 분업은 인류를 자본주의적 인간으로 파편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또 자본가 계급은 자본주의적 협업 과정을 작업 현장 통제의 한 방편으로 이용하면서, 노동자들의 협업 과정을 통해 발현되는 노동의 사회화가 노동자 계급에게 미칠 혁명적인 파급 효과를 억압하고 그들만의 잉여 가치를 채우기에 급급하다.

자본주의적 축적의 일반 법칙과 인류의 불건강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이 축적될수록 노동자 착취가 고도화되고 노동자 계급의 건강이 악화되고 있다. 마르크스는 자본이 축적되면서 노동자의 절대적인 수가 증가하고 노동 생산성이 커질수록 상대적 과잉 인구가 그만큼 많아져서 노동자 계급의 극빈층과 산업 예비군이 커져서 빈곤이 축적되어가는 과정을 자본주의적 축적의 절대적 일반 법칙이라고 정의하였다.

마르크스가 <자본>을 썼던 시대보다 자본의 축적이 심화되는 현대 자본주의 사회로 올수록 인류의 불건강의 문제가 심화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첫째, 과학기술 혁명으로 노동자들이 더 하향화되면서 초래된 불건강의 문제일 것이다. 과학기술 혁명으로 생산력이 발전했지만, 인간의 노동력의 가치는 오히려 기계의 가치보다 더 낮아져서 기계를 사용하는 것보다 인간의 노동력을 사용하는 것이 생산비를 더 줄일 수 있어 열악한 일에 인간이 투입되고 있다. 자본가 계급은 기계와 인간의 경쟁 구도를 만들어내고, 가장 열악한 일에 인간의 노동력을 낭비하고 있는 것이다. 과학기술이 발전된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자들은 더 열악한 일을 하고 있으며 더 많은 종류의 발암 물질에 노출되고 있다.

국제암기구(IARC)에서 정한 1급 발암 물질을 취급하는 노동자들은 거의 대부분 단순 노무직이거나 일용직 노동자들이다. 한국에서 노동자들에게 가장 많이 노출되어 있는 발암 물질중의 하나인 석면을 예로 들어 보면, 1970~80년대 새마을운동으로 농촌 가옥들을 석면 슬레이트 지붕으로 바꿀 때 석면에 노출되었던 이들은 바로 건설 노동자들이었다. 한국 정부는 2008년에 와서야 석면 사용을 금지했지만 그 이후에도 자본가 계급과 국가 권력은 석면이 함유된 슬레이트 지붕과 건물을 철거하거나 석면이 함유된 선박의 해체 작업에 기계를 사용할 때보다 비용이 덜 드는 값싼 노동력을 투입하고 있다. 석면 섬유는 한 오라기라도 인체에 들어가면 용해되지 않고 조직 반응을 일으켜 폐암, 중피종암 등을 일으키는 치명적인 발암 물질인데 자본가 계급은 그 돈 몇 푼을 아끼려고 노동자들을 석면분진 속으로 몰아넣는 것이다. 또 유리규산, 다환방향족탄화수소(PAHs)등에 가장 많이 노출되는 노동자들은 건설 노동자들과 제조업 노동자들이다. 니켈, 크롬에 노출되는 노동자들은 영세 하청 업체 도금 작업 노동자들이다. 그 외에도 디젤 가스는 운수 노동자들에게 그리고 미네랄오일은 영세 금속가공 노동자들에게 고폭로원이며, 타이어 제조 공장과 같은 고무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에게는 공장 전체가 발암 물질이며, 도장 노동자들에게도 도장 노동 그 자체가 발암 물질인 것이다.

또 여성 노동자와 청소년 노동자들은 상대적 과잉 인구로 하위 편제(編制)되면서 대거 현대적 의미의 "봉사자 계급"으로 전락되어가고 있다. 여성 노동자들은 자본주의가 발전해 갈수록 병원의 간병 노동, 식당의 주방일, 대인 서비스, 보육, 가정부, 파출부, 요양 보호사 등 한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온전히 자신의 노동력을 다 바쳐야 하는 대인 서비스업으로 전락하고 있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 오면서 자본주의 사회는 여성을 대하는 데 있어서 하나의 모순, 즉 여성을 어머니 또는 모성으로써 미화하면서도 산업 현장에서는 때때로 남성 노동자들보다도 더 열악한 노동 조건의 일에 투입하는 모순을 심화시키고 있다. 청소년 노동자들은 자본주의가 발전해 갈수록 꿈도 펴보지 못한 채 서비스 봉사자 계급으로 전락하고 있다.

둘째, 자본가 계급과 국가 권력은 비정규직 노동자 고용을 합법화하면서 노동자들의 임금을 절반으로 낮추어 노동력 가치를 상대적으로 저하시키고 있으며 노동 강도를 강화하고 노동자끼리의 경쟁을 심화시키고 있다. 최근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증대는 자본의 착취의 고도화로, 노동력의 가치가 저하되어가는 과정이며 이 과정에서 노동자들의 건강이 악화되어가는 과정인 것이다.

셋째, 자본 축적이 심화될수록 자본주의의 근본 모순인 사회적 생산력의 발달과 사적 소유 관계의 모순이 끊임없이 충돌하여 외화되는 경제 공황의 시기에 많은 노동자들의 건강이 황폐화되고 있다. 공황의 시기는 자본가 계급이 자본의 가치 증식, 즉 노동자들로부터 더 이상 잉여 노동을 착취할 수 없는 상태인 과잉 생산의 상태에 이르게 되는 시기이며, 이 시기는 바로 자본의 위기인데, 자본가 계급이 그들의 위기를 노동자 계급에게 전가시킴에 따라, 많은 노동자들이 구조 조정·해고의 칼날에 의해 상대적 과잉 인구로 밀려나 실업 상태로 거리로 내몰리고 급격한 건강의 황폐화를 겪는다. 이러한 상대적 과잉 인구의 증가는 오히려 공장 안에 있는 노동자들에게 몇 배의 노동 강도를 증대시키는 기제가 된다. 결과적으로 인구의 대다수가 비참한 노동 상태로 전락하게 되고, 실업, 가난, 물질적 결핍에 몰리게 된다. 한국에서 경제 공황의 시기 이후 자살이 급격하게 증가하고 있다. 인구 10만 명당 자살률이 1991년에 9.1명에서 점진적으로 증가하다가 1998년 경제 공황 이후 19.9명으로 대폭 상승하였고 이후 2002년 이후 경제가 악화되면서 계속 증가하여 2005년에 26.1명으로 계속 증가했다. 한편 자살률이 가장 높은 집단은 무직·가사·학생 등 비경제 활동 인구가 가장 많고 직업 중에서는 단순 노무직 종사자가 가장 높다.

2008년 경제 공황 이후에도 노동자들의 사망이 이어지고 있다. 최근에 경제 공황이 깊어지면서 자본가 계급의 위기 전가가 노동자 계급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던 곳이 바로 쌍용자동차 공장이다. 사측의 정리 해고에 맞서서 "해고는 살인이다"라는 구호를 내걸고 2009년 77일간의 옥쇄 파업을 했던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은 사측의 기만과 해고된 이후 극심한 생활고로 인해 육체적·정신적 고통을 겪어야 했고, 그들의 동지들 중에 21명이 자살, 심근경색, 뇌출혈 등으로 사망하는 또 하나의 고통을 당하고 있다.

그러나 이 어려움에도 굴하지 않고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은 다시 투쟁의 전선에 나서고 있다. 한국에서도 2009년 쌍용노동자들의 대투쟁은 공황 시기에 자본의 위기 전가에 대응하여 자본의 정리 해고에 맞서 노동자들이 지도부와 함께 결의하여 타협하지 않고 끝까지 싸웠다는 데 그 의의가 있다. 2011년에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의 투쟁에 온 국민이 희망 버스가 되어 김진숙 동지가 있는 굴뚝 위로 '새처럼' 날아갔던 것처럼, 2012년에 들어서는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의 투쟁에 함께하는 희망 뚜벅이, 희망 텐트로 이어지고 있다.

인류의 불건강에 대한 해결책은 자본주의 착취 관계를 없애는 것!

자본주의 사회에서 건강 문제에 대한 사적 유물론자의 처방으로서 마르크스는 노동자 착취의 종식을 주장하였다. 착취를 없앤 사회는 어떤 사회가 되겠는가? 마르크스는 <자본>에서 자본주의 사회 운동의 법칙을 제시하고 있을 뿐 아니라 새로운 사회의 상을 제시하고 있다. 우리는 낡은 사회 관계 속에서 새로운 사회의 맹아를 발견할 수 있다.

우선 마르크스는 노동을 "인간과 자연 사이에 이루어지는 하나의 과정", 즉, 인간과 자연 사이의 신진대사라고 봄으로써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가치 증식 과정, 즉 자본의 축적 과정으로서의 노동과 대비시킨다. 이렇게 자본주의 사회의 노동에 두 가지 측면 즉 구체적 노동과 추상적 노동이 존재한다고 하는 마르크스의 발견은 인류가 이 두 가지 모순의 극복을 통해 가치 증식 과정이 중심인 자본주의적 노동을 벗어던지고 진정한 인간과 자연 사이의 신진대사를 만끽하게 되는 날을 맞이하게 된다는 희망의 메시지가 아닌가?

둘째, 마르크스는 자본주의의 근본 모순, 즉 사회적 생산력의 발달과 그에 조응하지 못하는 사적 소유 관계의 모순의 해소는 낡은 생산 관계를 철폐하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인류의 불건강을 비롯하여 자본가 계급에 의한 사적 소유를 향한 욕구가 만들어낸 모든 부작용들은 사적 소유 관계를 끊어냄으로써 해결될 수 있다. 불건강의 근원적 해결을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사적 소유 관계가 철폐되어야 한다.

셋째, 마르크스는 <자본>에서 자본주의적 착취 관계가 사라질 때 비로소 인류가 "자유인들의 연합체"로 서로 마주보게 될 것이라고 보고 있다. 인간은 자연의 법칙을 이해하고 이를 따라서 인간의 발전을 도모해 나갈 때 비로소 자유로워지는 것이다. 마르크스는 자연과의 신진대사를 합리적으로 규제하여 집단적인 통제 하에 둠으로써 인간에게 가장 적합한 조건하에서 신진 대사를 수행하는 상태를 필연의 왕국이라고 했으며 "이 필연의 왕국을 넘어서야만 진정한 자유의 왕국―즉 인간의 힘을 목적 그 자체로서 발전시키는 것―이 시작된다"고 보았으며 "자유의 왕국은 필연의 왕국을 그 토대로 하여야만 개화될 수 있는 것이다"라고 보았다. 인간이 이러한 자유로운 상태에 있게 될 때, 타인을 위해 일하는 것이 나의 발전에 도움이 되는 발전된 사회로 더욱 전진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마르크스의 <자본>을 통하여 노동자 계급의 불건강의 본질이 사회적 생산력의 발달과 낡은 사적 소유 관계의 모순에 있고 이 자본주의의 모순의 해결은 노동자 계급과 자본가 계급의 낡은 생산 관계, 즉 자본가 계급이 노동자 계급을 착취하는 낡은 착취 구조를 끊어내는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인류 건강의 측면에서 볼 때, 이 낡은 착취 구조를 철폐하는 것이야말로 얼마나 큰 인류의 구원인가? 마르크스는 <자본>에서 이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노동자의 건강 문제는 자본가 계급과 노동자 계급이라는 대립물의 통일과 투쟁의 과정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건강의 문제는 자본주의의 근본 모순인 사회적 생산력의 발전과 사적 생산 관계의 모순을 통해서 발현되고 있으며, 노동자의 건강 문제에도 노동자와 자본가의 관계가 대립물로서 존재하고 있다. 모순을 해결하는 방법은 대립물의 투쟁 속에서 부정의 부정의 법칙을 통하여 나가는 것이라고 볼 때, 인류의 불건강의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모순의 해결 방법은 바로 자본가 계급의 사적 소유를 철폐하고 노동자 계급과 자본가 계급의 착취 관계를 철폐하는 것이다. 자본가 계급은 "인격화된 자본"으로서 잉여 가치의 착취를 그들의 역사적 임무로 자임하고 있기 때문에, 그 대립물인 노동자 계급만이 대립물의 투쟁, 즉 인간에 의한 착취로부터 인간의 해방을 위한 투쟁을 통해서 이 자본주의의 착취 관계의 쇠사슬을 끊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인류의 불건강의 심화는 어떻게 극복될 수 있는가? 바로 자본주의 사회에서 근본 모순이 해결될 때, 즉 생산의 사회화와 사적 소유 관계의 모순, 즉 "생산 수단의 집중과 노동의 사회화는 마침내 그 자본주의적 외피와 양립할 수 없는 점에 도달"할 때, 비로소 자본주의적 외피는 파열될 것이며, 사적 소유가 철폐될 때 비로소 인류는 진정한 자유를 얻을 것이며, 인간은 자연과 더불어 건강한 삶을 영위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바로 이때 인류는 사회의 구조적인 모순에 의해서 야기되는 불건강을 극복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이렇듯 마르크스는 <자본> 전체에서 혁명을 말하고 있다.

글을 마치며

우리는 마르크스의 <자본>을 통해서 자본주의 사회의 착취 관계가 인류의 건강에 미치는 해악이 얼마나 큰가를 알게 되었다. 자본자 계급의 노동자 계급에 대한 착취는 노동자 계급의 불건강뿐 아니라 인류 전체에 대한 불건강을 낳고 있다. 자본주의 사회가 만들어내는 불건강의 문제는 자본이 축적될수록 점점 심화되고 있다. 최근 들어 산업 재해나 근골격계 질환 등뿐 아니라 직업성 암 발생이 증가하는 경향을 볼 때 자본주의 사회의 축적 구조가 심화될수록 인류의 불건강은 더욱 악화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아무리 "웰빙"을 외쳐대더라도 착취 관계가 해결되지 않으면 인류의 건강 문제는 본질적으로 해결될 수 없다.

현 사회에서 인류의 불건강 문제의 해결책을 생각해 볼 때, 우리는 자본주의 사회 내에서 안주하면서 건강이 개선되는 상태만을 바라지 않으며, 자본주의 사회 구조를 안착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자본주의 사회의 복지 정책을 바라지 않는다. 우리는 이미 자본주의 사회 내에서 싹트는 새로운 사회의 맹아를 발견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의 투쟁은 단지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고통과 절망의 표출이 아니라, 새로운 사회에 대한 우리의 열망의 표출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불건강을 없애려는 노력은 다시금 노동자 계급과 민중들의 계급 투쟁을 통해서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노동자 계급은 자본주의 사회 생산력의 사회적 발달과 생산 관계의 모순이 새로운 사회의 생산 관계로 이행할 수밖에 없는 역사적 필연성을 더욱 앞당기기 위해 지금 이 순간도 끊임없이 운동하고 있다. 인류의 건강은 노동자 계급과 민중들의 투쟁으로써 획득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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