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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엔 '분노하라!', 그 다음을 알고 싶다면…

[프레시안 books] 조효제의 <인권을 찾아서>

성공회대 교수 조효제. 사회과학을 공부한 인권학자요, 저술가며 대중적 칼럼니스트지만, 예전에는 국제 앰네스티의 활동가이기도 했고, 국가인권위원회 설립 준비 기획단 위원을 지내는 등 현실 참여도 활발했다. <세계 인권 사상사>, <인권의 대전환>, <직접 행동>, <잔인한 국가 외면하는 대중>, <진보와 보수의 12가지 이념>, <평화론>, <건강과 질병의 사회학> 등 다양한 책을 번역했고, <인권의 문법>, <인권의 풍경> 등의 책을 썼다.

남들보다 많은 시간이 주어진 것도 아닌데, 이런 성취는 어떻게 가능했을까. 어쩌면 일종의 자기 학대일 수도 있는 열정적인 연구와 집필로 그를 이끈 힘은 무엇일까. 책을 낸다고 그에 맞는 금전적 보상이 주어지는 것도 아니다. 한국 연구 재단이 지배하는 학계 풍토에서는 저작, 특히 번역서가 많다고 평가를 받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왜 이토록 열정적이었을까. 조효제의 새 책 <인권을 찾아서>(한울 펴냄)를 읽으면서, 그 답에 가깝게 갈 수 있었다.

조효제는 지난해 스테판 에셀의 <분노하라>(임희근 옮김, 돌베개 펴냄)를 읽었다. 현실에 무관심하면 안 된다거나 분노하고 행동하라는 어른의 말씀이 처음일 리는 없다. 그래도 93세가 된 옛 레지스탕스의 호소는 사회적 파장을 일으켰다. '분노하라!'는 메시지에 많은 사람이 공감했고, 사람들의 공감은 <분노하라>의 판매부수로 이어졌다. <분노하라>는 2011년의 베스트셀러 중 하나였다.

▲ <인권을 찾아서>(조효제 지음, 한울 펴냄). ⓒ한울
조효제도 그랬다. 조효제는 <분노하라>를 읽고 '깊은 감명'을 받았고, '그의 호소에 감전된 듯한 충격'을 받았단다. 조효제는 충격적 감동이 불의에 대한 원초적인 거부, 그리고 원초적인 정의 관념의 옹호 때문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지금은 한 권의 책에 감전되기 쉽지 않은 시절이다. 주변엔 온통 읽어야 할 것, 봐야할 것들이 넘쳐나는 정보화 시대다. 차고 넘치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한 권의 책을 읽고 감전된 듯한 충격을 받는다? 그것도 본문 내용이 30쪽도 안 되는 소책자를 읽고!

좋다, 그렇다 치자. 예전에도 그런 일은 많았으니까.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이다. 조효제는 감전 상태의 감격을 놓치지 않았다. <분노하라>를 읽고, 세계 인권 선언을 다룬 책을 쓰겠다는 평소 생각을 곧바로 실행에 옮겼다. 지난해 상반기에 <분노하라>를 읽은 조효제는 여름 방학을 "오롯이 컴퓨터 앞에서 보내며" 새로운 책을 썼다. 조효제의 새 책 <인권을 찾아서>는 '독서-감전된 듯한 충격-결단-집필'의 단계를 거쳐 세상에 나왔다. 그래서 조효제가 스스로 밝힌 것처럼 <인권을 찾아서>는 <분노하라>를 쓴 스테판 에셀에 대한 "일종의 오마주"다. 말 뜻 그대로,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담은 헌정이다.

감전, 말처럼 쉽지 않다. 김주열, 전태일, 5월의 광주 사람들, 박종철, 이한열의 죽음에 감전되었던 사람들은 새로운 역사를 일으켰지만, 그때 사람들이 보여줬던 공감의 능력은 많이 퇴색했다. 엊그제 쌍용 자동차 대량 해고 1000일을 맞았고, 그 희생자가 21명이 되었다. '쌍용 참사'다. 그렇지만 '쌍용 참사'에 감전된 사람은 별로 없어 보인다. 이유가 없는 건 아니다. 다들 자기 자신을 건사하기도 힘든 상황이 아닌가. 각자 죽을 지경이니 옆이나 뒤를 볼 엄두가 쉽게 나지 않는 꽉 막힌 상황 아닌가. <인권을 찾아서>에서 조효제가 인용하기도 했던 소스타인 베블런의 말처럼 "고도로 조직화된 산업 사회라면 어느 곳에서든 인간의 평판이 궁극적으로 돈의 힘에 달려 있다.(12쪽)"

모든 길이 돈으로 통하고, 모든 개인의 삶도 돈 때문에 엉망진창이 된 요즘, 저 먼 나라의 아흔이 넘은 할아버지의 책을 읽고, 책이라고 하기엔 그 분량도 너무 짧은, 일종의 팸플릿을 읽고 '감전' 현상을 일으키고, 그 때문에 여름 방학과 그 이후의 시간까지 쏟아 부어 새로운 책을 내놓은 사람. 조효제는 그래서 우리에게 각별한 사람이다.

사실 모든 인권 운동은 공감에서 시작된다. 나 자신의 고통은 물론, 이웃의 고통에 대한 공감, 모두들 아프지 않았으면 하는 그 마음 말이다. 조효제는 공감 능력이 탁월한 사람이다. 그의 열정적 작업은 모두 거기서 비롯되었을 게다.

스테판 에셀에 대한 조효제의 공감이 새로운 책으로 이어진 것은 세계 인권 선언 때문이다. 내가 일하는 단체도 단체 활동의 이념적 근거를 세계 인권 선언에 둔다고 밝히고 있지만, 조효제의 표현처럼 솔직히 구닥다리 냄새가 나는 것도 사실이다. 64년이 된 옛날 문헌인데다, 법률가의 손을 거친 게 틀림없어 보이는 한국어 번역문은 그런 인상을 더 강하게 풍긴다. 구속력 있는 규약도 아니고, 그저 선언적 의미만 갖고 있는 '선언문'이 아닌가. 게다가 세계 인권 선언은 만만치 않은 비판을 받아왔다. 유엔 총회에서 공포했지만, 유엔이란 무대가 원래 오로지 자국의 이익을 관철하기 위해 혈안이 된 각국의 각축장이 아닌가. 각국의 이해가 바탕이 되었다거나, 사회권에 해당하는 권리를 너무 적게 다루고 있다는 지적도 타당하다. 세계 인권 선언 제정 당시 소련을 비롯한 6개의 사회주의 국가들이 표결에서 기권한 것은 그래서 경청할만한 비판이다. 영국과 미국의 전통이 너무 강하게 반영되었다는 것도 적절한 비판이다.

한편에선 세계 인권 선언에 대한 찬사도 쏟아진다. <인권을 찾아서>의 표지에는 세계 인권 선언을 '인권의 바이블'로 치켜 올리고 있다. 바이블, 맞다. 기독교인들의 성서가 꼭 그렇다. 성서는 2000년쯤 된 구닥다리 중의 구닥다리지만, 10억 명이 넘는 기독교인들에게 여전히 강력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그렇지만 따져보기 어려울 만큼 모순투성이기도 하다. 구약성서야 말할 것도 없고, 신약성서의 4개 복음서마저 제각각이다. 도대체 역사적 예수가 어떤 존재였는지를 알 수 없도록 훼방 놓는 책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그런데도 여전한 성서의 힘은, 성서의 밑바탕에 인간 존재에 대한 사랑과 믿음이 깔려 있고, 그게 사람들에게 위로와 용기, 그리고 희망을 주기 때문일 게다.

세계 인권 선언도 그렇다. 세계 인권 선언은 몇 가지 결점에도 불구하고, 인간 존엄성이라는 보편적 상식을 바탕에 둔 세계적 차원의 첫 번째 문헌이다. 인간과 사회에 대한 이해, 깊은 성찰과 진보를 향한 용기 있는 결단을 촉구하는 이 문헌은 그래서 여전히 전 세계 인권 운동에게는 영가의 원천이며, 개인의 삶과 세상을 바꾸는 '야전교범'의 역할도 훌륭히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훌륭하지만 구닥다리인 문헌. 여기에 친절하고 적절한 설명의 숨길을 불어 넣는다면, 거기에 내재된 힘은 진정한 '야전교범'의 역할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이다. 이건 인권 운동, 인권학계의 오래된 숙제였다. 그 오래된 숙제를 풀어낸 사람이 바로 조효제다.

<인권을 찾아서>는 '21세기형 투쟁 방식'에 맞게 치밀한 배치로 잘 짜여 있다. <인권을 찾아서>는 인권 공부를 위한 제대로 된 교재다. 꼼꼼하면서도 사람을 진심으로 배려하는 조효제의 성격이 잘 드러나는 친절한 교재다. 세계 인권 선언의 각 조항마다 친절한 설명을 하는데, 그 배치는 참으로 꼼꼼하다. 이 책은 세계 인권 선언의 탄생에 지대한 공헌을 한 르네 카생의 안내에 따라 세계 인권 선언을 그리스 신전 현관에 빗대고 있다. 세계 인권 선언이란 육중한 건축물을 '인권의 토대(제1조, 제2조)', '인권의 계단(전문)', '인권의 기둥(제3조부터 제27조까지)', '인권의 지붕(제28조부터 제30조까지)'으로 차례대로 보여주고 있다.

각 장마다 세계 인권 선언의 원문, 한국어 번역, 그리고 조문에 대한 설명과 각각의 조문을 둘러싼 논쟁거리 등을 소개한 다음, 한국적 인권 현실과의 관계도 설명해주고 있다. 뿐만 아니다. 각 조문마다 '쉬운' 영어 표현과 토론거리, 그리고 더 읽을거리까지 제시해주고 있다. 각각의 조문을 다룬 하나하나의 장이 모두 자기완결성을 갖고 있으며, 각각은 전체와 조화를 잘 이루고 있다.

70쪽이 넘는 부록도 알차다. 세계 인권 선언을 영어 원문, 한국어 공식 번역문, 그리고 중국어 공식 번역문 등 3개의 언어로 수록했다. 226개의 항목으로 된 주석은 풍부한 읽을거리와 생각할 거리를 제공해준다. 국내외 참고문헌과 인명과 용어를 나눠 편리한 '찾아보기'까지 깨알 같은 글씨로 47쪽에 걸쳐 싣고 있다. 일목요연한 부록, 더 많은 공부를 자극하는 부록이다. 정말 '친절한 효제 씨'다. 본문만이 아니라, 부록까지도 꼭 챙겨봐야 할 책이다.

<인권을 찾아서>의 특장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이 책은 쉽게 쓰였다. 고등학생 정도면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다. 그동안의 인권 책은 대체로 너무 어려웠다. 뻔한 이야기도 어렵게 쓰는 경우가 많았고, 외국의 낯설고 별 쓸모도 없는 이론을 여과 없이 소개하는 경우도 많았다. 인권을 야전교범의 수준이 아니라, 저 높고 고색창연한 성채에 가둬놓는 것 같은 책들이었다. 인권이 의미를 가지려면, 인권에 대한 책은 가능한 한 최대한 쉽게 써야 한다. 세종대왕의 한글 창제는 오늘날이라면 인권 의지의 발현으로 기억되었을 거다. 쉬운 표현을 두고도 저자가 제대로 소화를 못해서, 아니면 그저 굳어버린 관행 때문에 어렵게 표현하는 것을 배격하는 조효제의 태도야말로, 인권을 위한 지난한 투쟁의 결실로 보인다.

인권은 그동안 '전문적' 역량을 지닌 법률가들만의 전유물로 여겨져 왔다. 인권에서의 법률 중심주의는 법률로 보장되지 않는, 이를테면 양심에 따른 병역 거부권 같은 것은 보장하지 않아도 되는 것으로 치부해버리는 법 만능주의로 연결되었다. 2월 16일 현재 국회의원 총선에 출마하겠다고 예비후보로 등록한 사람 중에 변호사가 137명이나 될 정도로 법 만능주의에 물든 법률가들은 세상을 움직이는 가장 강력한 세력으로 성장했다. 조효제는 <인권을 찾아서>를 통해 법률 중심주의, 법률 만능주의의 틀과 내용을 과감히 깨버렸다. 법이 꽤나 완성도 높은 무언가라는 이상한 착각도 깨버렸다. 조효제의 남다른 시선은 세계 인권 선언 제6조 '법 앞에 인간으로 인정받을 권리'를 언급할 때 특히 잘 드러난다. 조효제는 "'법의 지배'라는 이름으로 형식적이고 자의적으로 법을 남용하거나 오용해서는 안 된다"면서 독일의 나치 정권에 의해 사법 살해당한 사람의 가족에게 보낸 사형 집행 비용 청구서를 예로 들었다.

"남편이 처형당한 것만 해도 억울한데, 처형에 든 비용까지 가족이 부담하라고 한 것이다. 그것도 법의 이름으로 말이다. 이 한 장의 서류는 우리에게 내용적으로 정의롭지 않고 인권 원칙에 부합하지 않는 법의 지배를 인정할 수 없는지를 잘 가르쳐준다."(108쪽)

그게 아니라도, 인권의 법률화를 통해 법적 이데아를 실현하겠다는 태도에 대해서도 비판하고 있다.

"인권의 법률화로 말미암아 인권은 생명력이 없는 규범체계, 항상 옳은 소리만 하는 모범생, 언제나 공자님이지만 현실적 영향력은 미미한 존재로 되어버린 측면이 적지 않다." (269쪽)

조효제가 생각하는 이 책의 독자들은 "인권에 관심 있는 청소년, 대학생, 일반 독자, 인권 운동가, 인권 공부를 시작한 대학원생, 인권을 알고 싶어 하는 언론인, 국제 기구에 진출하고자 하는 이들"이고, 특히 "인권의 진정한 의미를 찾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독서 모임에서 이 책이 토론에 유용하게 쓰이기를 희망한다"고 했다.

함께 모여 공부하는 것만으로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 그렇지만, 함께 모여 공부하지 않는다면 세상은 절대 바뀌지 않을 거다. 함께 모여서 세계 인권 선언을 공부하는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딱 그만큼씩 세상은 바뀔 것이다. 물론 그냥 세계 인권 선언만 읽어서는 안 된다. 조효제와 같은 꼼꼼하고도 친절한 안내자와 함께 읽어야 하며, 조효제의 말처럼 읽어야 한다.

"세계 인권 선언은 전체를 '통으로' 읽고 이해할 줄 알아야 한다. 그것은 인권을 제대로 알고 제대로 활용하는 표준적인 방법이다." (254쪽)

<인권을 찾아서>를 만난 것은 인권 운동가만이 아니라, 그저 한사람의 독자로서 정말 기쁜 일이다. 얼마 전 출간된 최인훈 선생의 <바다의 편지>(삼인 펴냄)와 함께 이 추운 겨울을 보내며 <인권을 찾아서>를 읽은 기쁨은 무엇에 비할 수 없이 컸다. 그래서 이 글은 조효제에 대한 오마주이기도 하다.

자, 이제 학교 교실에서, 각종 동아리와 동호회에서 이 책을 함께 읽도록 하자. 그리고 마침내 행복해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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