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외계 생명체 강의를 하면서 가끔씩 학생들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우리 은하 안에 지적인 능력을 갖추고 있으면서 전파 통신을 할 수 있는 외계 지적 생명체가 얼마나 되는지를 가늠해 보는 드레이크 방정식을 설명하기 전에 워밍업 삼아서 내보는 퀴즈다. 학생들은 좀 황당해하기도 하고 투덜거리기도 하면서 나름대로 추론을 해서 답을 내놓는다.
물론 나의 독창적인 질문은 아니다. 물리학자 엔리코 페르미가 학생들에게 던졌던 질문들 중 하나를 흉내 내어 본 것이다. 전 세계 해변에 있는 모래알의 수는? 까마귀는 쉬지 않고 얼마나 날 수 있을까? 시카고에는 얼마나 많은 피아노 조율사가 있을까? 이런 것들이 전향적인 '페르미 문제'로 알려져 있다. 학생들이 세상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답의 크기를 어림짐작하는 방식을 통해서 문제의 핵심에 접근하는 법을 터득하게 하기 위한 페르미의 깊은 의도가 담긴 것으로 유명하다.
"모두 어디 있지?"
아마 이 질문이 숱한 페르미의 질문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것이 아닐까 싶다.
<모두 어디 있지?>(스티븐 웹 지음, 강윤재 옮김, 한승 펴냄)는 페르미의 이 유명한 질문에 대한 다양한 해답을 모아서 엮은 책이다.
피아노 조율사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시카고에는 얼마나 많은 피아노 조율사가 있을까?"라는 페르미의 질문에 대한 스티븐 웹의 추정은 이렇다. 그는 연감을 보지 않고 페르미의 의도대로 어림짐작으로 피아노 조율사의 수를 추론해 보았다.
(1) 시카고의 인구는 약 300만 명이라고 가정하자.
(2) 피아노를 소유하고 있는 것은 개인보다는 가족이라고 가정하자. 기관에 속한 피아노는 무시하기로 하자.
(3) 평균 가족 수가 5명이라고 가정하면, 시카고에는 60만 가구가 있는 셈이다.
(4) 20가구 중 1가구가 한 대의 피아노를 소유하고 있다고 가정하자.
(5) 그러면 시카고에는 3만 대의 피아노가 있는 셈이다.
(6) 피아노 조율은 평균 1년에 한 번 한다고 가정하자.
(7) 그러면 매년 시카고에서는 피아노 조율이 3만 회씩 이루어진다.
(8) 피아노 조율사가 하루에 2대의 피아노를 조율할 수 있고 1년에 200일 일한다고 가정하자.
(9) 따라서 한 사람의 피아노 조율사는 1년에 400대의 피아노를 조율한다.
(10) 필요한 전체 조율 횟수를 충족시키기 위해서 필요한 시카고의 피아노 조율사의 수는 30,000/400=75명이다.
(11) 우리가 원하는 것은 정확한 값이 아니라 추정치이므로 최종적으로 반올림해서 100명이라는 값을 얻을 수 있다.
▲ <모두 어디 있지?>(스티븐 웹 지음, 강윤재 옮김, 한승 펴냄). ⓒ한승 |
어떤가? 그럴듯해 보이지 않는가. 여러분들도 이런 추론 과정을 따라서 서울에는 얼마나 많은 피아노 조율사가 있을지 가늠해 보시라. 몇 명인가? 인터넷을 뒤지지 말고 오로지 추정만으로 답을 찾아보시라.
1950년 여름 어느 날 페르미는 미국 로스앨러모스에서 에드워드 텔러, 허버트 요크, 그리고 에밀 코노핀스키와 함께 점심 식사를 하고 있었다. 당시 그들은 일상적인 대화를 하고 있었는데, 그 중에는 당시 범람하던 UFO 목격담에 대한 이야기도 포함되어 있었다. 대화를 하던 중에 페르미가 갑자기 "모두 어디 있지?" 하고 물었다. 모두들 그가 외계 지적 생명체의 방문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정작 페르미 자신은 "모두 어디 있지?"에 대한 페르미 식의 추론을 통한 해답을 내놓은 적이 없다. 하지만 이 문제에 흥미를 느낀 사람들이 해답을 찾기 시작했다.
"낙관주의자들이 믿고 있는 것처럼 우리은하에 많은 외계 문명이 있다고 가정해 보자. 우리 은하의 나이는 엄청나게 많기 때문에, 외계 문명이 우리 문명보다 수백만 년 또는 수십억 년 앞서 있을 수 있다. (…) 분명 외계 문명은 자신의 고향에서 우리은하로 그 영역을 확장하고자 할 것이다. 그렇지만 문제의 핵심은 기술이 고도로 발달한 외계 문명은 몇 백만 년이 지나지 않아 우리은하를 식민지로 만들 수 있다는 점이다. 그들은 이미 여기에 있어야 하는 것이다! 우리은하는 생명으로 들끓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아직까지 외계 문명이 존재한다는 어떤 증거도 얻지 못하고 있다. 질렛은 이것을 페르미 역설이라고 불렀다."
페르미 식 추론 과정을 통해서 "모두 어디 있지?"라는 문제를 따져 보니, 그들은 반드시 존재해야만 하는데 아직까지 발견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역설이 된다는 것이다. 이것이 유명한 '페르미 역설'이다.
이런 추론은 타임머신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즐겨서 쓰는 논증이기도 하다. 만약 미래인들이 타임머신을 발명했다면 그걸 타고 현재로 시간 여행을 왔을 것인데 우리는 미래인을 발견하지 못하고 있으니 타임머신은 발명되지 않을 것이라는 논리다.
물론 모든 사람이 이런 논리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모두 어디 있지?"에 대한 해석과 관점이 다양한 만큼 그동안 숱한 나름대로의 해답이 제시되었다. 스티븐 웹은 '페르미 역설'에 대한 해답을 수집하는 취미가 있었다고 한다. 그가 "모두 어디 있지?"라는 질문에 대한 해답을 모으고 해설을 덧붙인 것이 바로 <모두 어디 있지?>다.
그는 페르미 역설과 외계 생명체에 대한 다양한 해답을 아래와 같이 서로 다른 관점 별로 분류를 하고 50가지 풀이로 정리를 해서 <모두 어디 있지?>에 실어놓았다.
(1) 외계 생명체가 있다(있었다)는 생각에 기초한 대답
(2) 외계 문명이 존재하지만 우리가 아직 그들이 존재한다는 증거를 발견하지 못했다고 주장하는 대답
(3) 인류가 우주 또는 최소한 우리 은하에서 외톨이인 이유를 설명하려는 의도를 지닌 대답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거의 모든 해답이 이 책 속에 정리되어있다. 그런 면에서 내 자신의 상상력과 비교하면서 읽는 재미가 쏠쏠했다. 한편, 여러 사람들의 견해를 수집한 후 정리한 것인 만큼 조금 산만하게 편집된 느낌이 들기도 했다. 때로는 이야기가 반복되어서 좀 지루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책만큼 '페르미 역설'에 대해서 해박한 견해를 담은 책도 없다는 점에서 일단은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마지막 '풀이 50'에서 스티븐 웹은 '페르미 역설'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명확하게 밝혔다. 하지만 <모두 어디 있지?>를 읽는 내내 그의 신념에 기반 한 견해를 반복해서 들어야만 했던 것은 유감이다. '풀이 49'까지는 자신의 신념을 숨기고 객관적인 해설과 중계에만 집중하다가 '풀이 50'에서 극적으로 자신의 신념을 밝히는 전략을 썼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그랬다면 가독성도 훨씬 높아졌을 것이고 책을 읽는 긴장감도 더 했을 것이다.
"모두 어디 있지?"에 대한 스티븐 웹의 견해는 당혹스러울 정도로 단순 명확하다.
"외계인들의 부재라는 관찰 결과와 일치하면서 동시에 나의 선입견을 뒷받침해주는 유일한 선택지-나에게 설득력을 지니는 페르미 역설에 대한 유일한 해답-는 우리는 외톨이라는 것이다."
"나는 페르미 역설이 우리에게 인류가 우리 은하에서 영리하고, 지력을 지닌 유일한 종임을 말해주고 있다고 믿는다. 그렇다고 우리 은하가 불모지일 필요는 없다. 내가 그리고 있는 우리 은하는 단순 생물체는 드물지 않고, 고등 다세포 생명은 훨씬 드물지만 전혀 없을 정도는 아닌 그런 곳이다. 저 밖 우리 은하에는 수억 개의 대단히 흥미로운 생물권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오직 한 행성-지구-에만 지적 생물체가 존재한다."
"인류가 지구상의 다른 모든 종들과 심오한 차이점을 지니고 있음을 부정할 수는 없다. 우리는 홀로 언어, 높은 수준의 자의식, 도덕 관념을 지니고 있다. 우리는 특별하다. 그러나 우리의 유일성은 단순한 우연성, 진화의 맹목적이고 임의적인 더듬거림에 의해 생길 수는 없는 것인가? 글쎄, 왜 그러면 안 되는 것인가?"
결론적으로 '우리뿐'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아무도 없으니 '페르미 역설'도 해결되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왜 우리가 '특별'해야만 하고 '유일'해야만 하는지에 대해서 그의 신념에 찬 결론은 들을 수 있었지만 명확한 논리적 해답을 들을 수는 없었다.
우리가 외톨이라는 결론으로 그를 이끈 중요한 근거 중 하나는 생명이 거주할 수 있는 행성의 수가 많지 않을 것이라는 그의 강한 믿음인 것 같다.
"개인적으로 나는 드레이크 방정식의 fp항이 초기 작관주의자들이 믿었던 것보다 작은 값으로 판명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 자체로 페르미 역설에 대한 해답이 되기에는 여전히 fp항의 값이 매우 높을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이것이 신념의 영역에 남아 있을 날도 멀지 않은 것 같다. 관측천문학의 눈부신 발전에 힘입어 수년 내에 태양계 밖에 있는 행성계의 수와 형태를 분명하게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나에게는 이 역설이 마치 큰 두 수-엄청난 생명 서식 가능 지역의 수 대 엄청난 우주의 나이-의 경쟁처럼 보였다."
최근의 케플러 우주 망원경 관측 자료 분석을 토대로 외계 행성의 수는 엄청나게 많고 지구와 꼭 닮은 행성의 수도 우리 은하 안에만 수억 개에서 수조 개에 달할 것이라는 연구 결과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그 숫자는 아직 수렴 중이지만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지구형 행성이 존재하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갑자기 궁금해졌다. 2002년 <모두 어디 있지?>를 쓰던 당시의 스티븐 웹의 기대와는 달리 '생명 서식 가능 지역'에 속한 지구형 행성들이 엄청나게 많다는 관측 사실 앞에서 그는 '우리뿐'이라는 자신의 신념을 바꿀 수 있을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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