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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디스트, 홈리스…예술가 자아 완성의 끝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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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디스트, 홈리스…예술가 자아 완성의 끝은?

[親Book] 임준근의 <예술가처럼 자아를 확장하는 법>

그러니까 지금도 피우고 있는 담배처럼, 좋을 게 없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계속해서 읽게 되는 종류의 책들이 있다. 책장 한 구석을 차지하고 있는 그 책들을 가만히 보고 있노라면 쓴웃음이 난다.

그들이 약속한 바에 따르면 나는 지금쯤 예술이 된 일상에서 뼛속까지 내려가 마르지 않는 창의성의 바다를 고래(혹은 스누피)와 함께 멋대로 항해하며 나를 유혹하는 생각들을 거장처럼 써대는 아티스트 웨이를 걷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막간 퀴즈 : 위 문장에는 모두 몇 권의 책이 숨어 있을까요? 각각의 제목들을 나열해 보세요.) 물론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나는 골머리를 앓으며 이 글을 쓰는 중이다.

르네 지라르의 표현을 빌리자면 '선망, 질투 그리고 무력한 증오'의 컬렉션이라 할 만한 이 목록에 최근 추가된 책은 임근준의 <예술가처럼 자아를 확장하는 법>(책읽는수요일 펴냄)이다. 물론 죄책감이 없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호흡이 가빠지고 손이 떨리며 자꾸만 불안해지는 금단 증상을 도저히 극복할 수 없었다…고 말하면 물론 거짓말이고, 숙련된 동작으로 책을 장바구니에 담은 후 주문 버튼을 누르는 또 하나의 나를 도무지 막을 수가 없었다. '예술가'로도 모자라 '자아'에 '확장'이라니, 읽지 않을 도리가 없는 것이다. 당장 읽어야 할 책들이 아무리 산더미처럼 쌓였다고 해도, 언제나 담배 한 대 태울 시간쯤은 있는 법. 일종의 '길티 플레져'인 셈이다.

▲ <예술가처럼 자아를 확장하는 법>(임근준 지음, 책읽는수요일 펴냄). ⓒ책읽는수요일
그렇다고 커다란 기대를 한 건 아니었다. 담배가 그저 담배인 것처럼, 책 또한 책일 뿐이라는 사실 정도는 알 나이가 되었으니까. 하지만 막상 도착한 책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흥미진진했다. 심지어 잠깐 훑어볼 생각으로 넘기기 시작한 책장을 멈출 수 없어 약속 시간에 늦기도 했다. 유명한 예술가들의 일화도 흥미로웠지만, 서문에서부터 빛을 발하는 신랄하며 경쾌한 문체가 눈길을 잡고 놓아주지 않았던 것이다.

저자 임근준은 남다른 자아를 지닌 예술가들의 삶을 통해 다양한 '에고 트립'의 기술을 소개한다. 각 장의 제목이기도 한 열 세 가지의 기술은 다음과 같다. 가출, 선지자 노릇, 생과 사를 넘나들기, 벗은 남자의 양물 과시, 벗은 여자의 음문 과시, 몸 부리기, 절정의 순간에 그만두기, 잡기술 상 : 체중 조절에서 일기까지, 잡기술 하 : 디바 행세에서 낙서까지, 정체성 놀이, (만방에 과시하는) 사랑, 역사 희롱, 자기 풍자.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기술에서부터 절로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기술까지, 실로 넓고도 깊은 에고 트립의 세계라 하겠다. 소개하고 있는 예술가들의 면면도 무척이나 다양해서 화가나 뮤지션과 같은 전통적인 예술가에서 코미디언과 폭식가, 포르노 배우에 이르기까지 시대와 장르를 가리지 않는다.

하지만 그런 다양함은 동시에 이 책의 약점이기도 하다. 한정된 지면에 많은 이야기를 싣다 보니 에피소드의 단순 나열에 그친 느낌이 없지 않은 것이다. 물론 에고 트립이라는 독특한 주제를, 다양한 일화들을 통해 흡인력 있는 문체로 풀어낸 저자의 노고를 무시할 생각은 없다. 그렇지만 자신감 넘치는 어투로 '평가', '강요', '폭로' 같은 자극적인 단어를 늘어놓으며 독자의 기대감을 한껏 부풀렸던 서문의 야심을 생각할 때, 그 결과물은 아쉬운 게 사실이다. 서문의 호언장담과는 반대로 저자는 각각의 에고 트립에 별다른 평가를 내리지 않고, 독자에게 어떤 선택도 강요하지 않으며, 폭로라기보단 유려한 문체로 해박한 지식을 과시하는 쪽에 가깝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프레시안 books' 55호에 실린 반이정의 서평이 자세하게 지적하고 있다.) (☞관련 기사 : 21세기 예술가의 조건? '또라이' 스펙!)

무엇보다 가장 큰 단점은, 저자가 들려주는 에고 트립의 기술들이 우리가 발붙이고 있는 현실에서는 도무지 실현 불가능한 것처럼 느껴진다는 사실이다. 적어도 내 기준에는 그렇다. 가출을 하기에는 너무 나이를 먹어 버렸고, 선지자 행세를 하기엔 원천 기술(?)이 부족하며, 생과 사를 넘나드는 건 내 뜻대로 할 수 없는 일이니까. 그렇다고 바바리를 입고 양물을 자랑할 수도, 없는 음문을 만들 수도 없는 노릇이다. 언젠가의 백남준처럼 넥타이에 먹물을 묻혀 종이에 선을 긋는 퍼포먼스 정도는 할 수도 있겠지. 그래 봐야 TV 쇼 '스타킹'에나 나가는 게 고작이겠지만(실제로 몇 해 전 '온몸 서예의 달인'이 출연하기도 했다). 심지어 이제 강호동도 없는 쇼에!

물론 그들은 남다른 자아를 가진 예술가들이고, 에고 트립을 통해 한 시대를 풍미한 인물들이다. 누구나 따라할 수 있었다면 애초에 그런 위치에 오르지도 못했을 것이다. 저자가 말하고 싶은 것 또한 그들이 행한 에고 트립을 수동적으로 따라하는 것에 있지는 않을 터. 아마도 그는, 사회가 만들어 놓은 규범에 갇혀 답답한 삶을 살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자기 자신의 즐거움을 위해서라도, 상상력을 적극적으로 사용하라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그렇지만 저자가 나열하는 에고 트립의 기술들과 우리의 현실 사이에는 분명 넘기 힘든 거리감이 존재한다. 그리고 그것은 이내 고색창연한 '낭만적 예술가' 론으로 다시금 우리를 인도한다. 동시에 우리는 '선망, 질투 그리고 무력한 증오'라는 감정들로 돌아가는 것이다. 예술가들은 모호하고도 특별한 존재들이고, 우리들 대부분은 그런 에고 트립을 단행할 깜냥이 없으니 정신 차리고 생업에나 종사해야겠다(그렇지만 난 그 생업이 무척이나 싫다), 라는, 너무 익숙해서 차라리 편안한 불평. 만약 이 책이 출판사 보도 자료에서 말하듯 기존의 자기 계발서를 풍자하는 '메타-자기 계발서'라면 바로 이런 의미에서일 것이다.

어쩌면 내가 너무 빡빡하게 굴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나 아닌 다른 이들은 우리의 일상과 에고 트립의 세계 사이의 '목숨을 건 도약'을 손쉽게 해낼지도 모르고, 이 책을 양분삼아 거대한 자아로 무장한 에고 트립의 달인들이 쏟아질지도 모를 일이다. 평균 신장이 자라는 것처럼 평균 자아 크기도 부쩍 커진 세상이 이미 눈앞에 도래했는지도(이 책의 논의와는 별개로 이것은 진실인 것 같다). 그렇다면 많은 이들이 확장된 자아로 무장한 세계는 어떤 모습일까? 상상력의 모험과 첨단의 예술이 넘실대며 개개인의 삶 자체가 예술로 꽃피는 아름다운 세상?

글쎄, 꼭 그럴 것 같지는 않다. <예술가처럼 자아를 확장하는 법>의 저자 또한 서문에서 밝히고 있듯, 자아의 팽창과 반비례해 주체 내에서 타인의 자리는 그만큼 줄어들게 마련. 임근준은 이렇게 말한다.

<예술가처럼 자아를 확장하는 법>은 (…) 기성 예술가들의 지긋지긋한 자기중심적 사고방식이나 황당할 정도로 심대한 자아의 연원을 추적함으로써, 언제 어떻게 어째서 그 지경이 됐는지 알아보는 책이고, 빈약한 자아를 소유한 젊은이들에겐 자아 확장의 다양한 방도를 제시함으로써, 선량한 인간의 삶이냐 극악한 이무기의 삶이냐 하는 흑백의 선택을 강요하는 책이다. (9쪽)

그리고 여기, 비대한 자아의 '지긋지긋한 자기중심적 사고방식' 혹은 '극악한 이무기의 삶'을 완벽하게 체현하는 인물이 있다. 바로 무라카미 류의 <우울과 부드러움의 이야기>에 등장하는 '에고 트립의 달인' 야자키다.

뮤지컬 프로듀서로 성공적인 커리어를 이어가던 마흔한 살의 야자키는 온갖 종류의 마약과 술, 피·가학적 성행위에 몰두하는 새디스트('몸 부리기')다. 자신의 노예라고 생각했던 레이코에게 버림받은 그는, 뮤지컬 오디션에 참가한 여성 댄서를 호텔로 불러 가학적인 행위로 모욕을 주기도 하고('잡기술 하 : 디바 행세에서 낙서까지') 이런저런 일탈과 에고 트립을 통해 상실을 극복하려 몸부림치지만 결국 모든 것을 놓아버린 채 뉴욕에서 홈리스 생활을 하게 된다('가출'). 그곳에서 칼을 든 미치광이 부부에게 쫓기는 등의 여러 수모를 당한 그는('생과 사를 넘나들기'), 한 홈리스 친구의 자살을 계기로 몇 년 간의 홈리스 생활을 청산하고 다시금 쇼 비즈니스의 세계로 복귀한다.

이런 야자키의 복귀 인터뷰를 맡게 된 미치코는 상류층 가정에서 자라 좋은 대학을 졸업한 스물아홉의 인텔리. 처음에는 야자키의 비대한 자아에 불쾌감을 느끼던 그녀였지만(그녀는 그가 자의식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건 곧 "자의식의 과잉이나 분열을 일으키지 아니하고 자아를 통일시키고 확립하는 일" 즉, 자아 확립을 뜻한다. 거대한 자아의 확립!), 인터뷰가 진행되면서 그의 기묘한 분위기에 본능적인 끌림을 느낀다. 야자키가 자신의 여성 편력에서부터('만방에 과시하는 사랑') 레이코와 나누었던 가학적인 섹스(그녀와의 섹스의 핵심은 '절정의 순간에 그만두기')에 이르기까지 가식 없는 소탈한 태도로('자기 풍자') 과거를 차례차례 털어 놓을수록 그녀의 욕망은 걷잡을 수 없이 커져만 간다. 그리고 마침내 사랑에 몸을 맡긴 그녀에게, 야자키는 그녀가 결코 알지 못했던 미지의 세계를 약속하는 '선지자'가 된다.

이 소설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페이지에서 열기가 뿜어져 나올 듯 에로틱한 몇몇 장면들을 제외하면) 소설의 마지막 즈음에 있는 야자키와 미치코의 대화다. 소설의 제목이자(원제가 바로 'Melancholia'다) 야자키를 설명하는 핵심 키워드인 '우울'에 대해 미치코가 묻는 장면이다.

우울이 좋다는 말이에요?
"만약 그 우울에 충실감이 있는 경우에는 좋아할지도 몰라, 옛날부터 큰일을 마쳤을 때는 그런 것이 있었지, 우울하고 뭔가 덜 찬 듯한 상태가, 단지 나는 오해를 하고 있었을 뿐이라는 기분도 들어, 레이코에 대해."
오해?
"나는 타인에게는 인격 같은 게 없다고 생각하는 구석이 있거든."
그렇게 말하고 야자키가 웃었다. 정말 즐거운 듯한 웃음은 물론 아니고, 어쩔 수 없다는 쓸쓸한 웃음도 아니었다.
(…) 좀 심한 말이네요.
"업신여긴 게 아냐, 반대라구, 존경하고 있던 거야, 굉장하잖아, 인격이 없다니…." (224쪽)


그러니까 그 남자는 자신의 거대한 자아에 시달리는 탓에 타인에 대해서는 티스푼만큼의 이해도 갖지 못했던 것이다. 그리고 거대한 자아는 마치 거대한 행성이 그렇듯, 거대하다는 이유만으로 다른 사람들을 끌어들인다. 결국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익숙한 지옥과 세부를 바꾼 불행뿐이라는 암시로 소설은 막을 내린다. 결국 비대한 자아들이 넘치는 세상의 모습 또한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그러고 보니 아직 읽진 못했지만 이런 주제의 인문서가 얼마 전에 출간된 모양이다. 제목은 <자아 폭발>(우태영 옮김, 다른세상 펴냄).

인터넷 서점 알라딘의 책 소개를 보면 "'지난 6000년 동안 인류는 일종의 집단적 정신병을 앓아 왔다'고 주장하는 책. 저자 스티브 테일러는 우선 현재 인류의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이 수정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인류의 역사를 '자아 폭발' 이전과 이후의 시기로 구분한다. 그는 '자아 폭발'을 '타락'이라고 지칭하며 '인류의 역사가 지속적으로 진보한 것이 아니라 퇴보의 길을 걸어왔다'고 말한다"고 하는데, 굳이 400쪽이 넘는 책을 읽지 않더라도 르네 지라르가 <낭만적 거짓과 소설적 진실>(김치수·송의경 옮김, 한길사 펴냄)에 쓴 한 문장이면 이 책을 요약하기에 충분할 것 같다.

모든 사람은 자신만이 홀로 지옥에 있다고 생각하는데, 바로 그런 생각이야말로 지옥이다. (108쪽)

아무려나. 지옥이 어쨌건 나와 무슨 상관이랴. 아직도 이 난삽한 글을 끝낼 방법을 찾지 못한 나는 다시 한 개비의 담배에 불을 붙일 뿐이다. 마치 그게 내가 아는 에고 트립의 전부라는 듯, 좋을 게 없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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