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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름달의 눈물 "현대차 잔혹사, 그 진실을 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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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름달의 눈물 "현대차 잔혹사, 그 진실을 아십니까?"

[그들과 우리의 '슬픈 추석'] 박점규의 <25일>

나는 정규직 사무직 노동자로 추석을 앞두고 <25일>(박점규 지음, 레디앙 펴냄)을 읽는다. 나는 달을 보고 아름답다 여길 줄 알고 가족을 사무치게 그리워 할 줄도 안다. '우리 회사는 비정규직을 모조리 정규직으로 전환해, 좋은 회사지?' 라고 자랑하고 다닌 적이 있고 반값 등록금 투쟁과 희망버스를 지지한다.

하지만 나는 신분증을 받지 못해 출입증으로 회사에 출근한 적이 없고 7년 동안 매일 문짝 떼는 일만 하고 살지도 않았다. 네 인생은 비합법이란 말을 들어본 적이 없고 나가란 말을 들은 적은 있어도 '넌 우리 직원이 아니야' 이런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억울함이 뼈에 사무쳐서 '나는 도대체 누구지?'라고 물어본 적이 없었으며 자동차 바퀴 하나 갈아 끼울 줄 모르면서 매일 자동차 바퀴를 끼우는 사람의 노동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없다. 그런 내가 <25일>을 울면서 읽는다.

<25일>은 2010년 11월 15일부터 12월 9일까지 현대 자동차 비정규직 울산 공장 점거 투쟁을 기록한 다큐멘터리이다. 25일 동안 무슨 일이 일어났었던가? 11월 15일은 무슨 날이었을까? 2010년 7월 22일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고대하던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2년 이상 근무한 현대자동차 사내 하청 노동자는 불법 파견이므로 정규직이란 것이다.

▲ <25일>(박점규 지음, 레디앙 펴냄). ⓒ레디앙
그 대법원 판결이 나온 이후 많은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에 가입했다. 현대자동차의 많은 공장에서 왼쪽 바퀴는 정규직이 오른쪽 바뀌는 비정규직이 끼운다. 그러면서도 비정규직의 월급은 정규직의 절반이고 자녀의 대학 등록금도 지원 받지 못한다. 자신이 만든 차를 살 때 정규직은 2000만 원까지 할인 받지만 비정규직은 한 푼도 받지 못한다.

그래서 비정규직은 노동조합에 가입했다. 그 때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얼마나 기뻤을까? 경제 위기를 이유로 신차 생산을 이유로 자동화를 이유로 언제 쫓겨날지 모르는 채 두려움에 떨며 일하던 사람들이 아닌가? 그간의 울분, 서러움, 비관, 슬픔 이런 것들을 이제야 조금이라도 위로 받는가 보다 하고 생각했을 것이다.

세상에 누가 원해서 비정규직이 되었겠는가? 대학에 다니고 직업 교육을 받을 때 비정규직이 꿈인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사원증 대신 출입증을 달고 출근하는 그 우울한 매일 매일을 누가 자존감을 잃지 않고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그런데 현대자동차는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지 않았다. '아니, 정몽구는 대법원 판결을 맘대로 무시해도 되나?' 비정규직은 분통이 터졌다. 그것이 11월 15일까지의 상황이다.

나는 비정규직들이 하나로 뭉친 그 첫 날 밤이 신비롭다. '조합원은 모두 제 1공장으로 모이세요' 하는 말을 듣고 자발적으로 올라간 사람들의 용기와 희망이 궁금하다.

이제 마르크스가 말한 혁명 주체인 프롤레타리아는 존재하지 않는다. 대신 비정규직이 존재한다. 비정규직은 자신의 노동을 당당하게 사랑할 수 없고 노동을 통해 한 인간으로 고양될 수도 없고 자신이 중요하거나 쓸모 있는 사람이라 생각하기 어렵고 사회를 바꿀 주체라고는 더더구나 생각할 수 없고 자신이 대체 불가능한 고유한 인간이라고 생각할 수도 없다.

쓸쓸함과 초라함을 누르며 하루하루 그냥 살아가거나 분노하거나 우울해하는 것이 비정규직의 인생일 수 있다. 누구라도 아무나 언제든 자신을 대신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미래에 대해선 불안함으로 가득 찬 사람들이 순종과 경쟁과 복종에 뛰어드는 대신에 어떻게 연대할 수 있었을까? 그들은 대체 뭘 원했기에 하나로 뭉쳤던가?

25일 동안 울산 현대자동차 제1공장 점거 노동자들이 느꼈던 희열, 흥분, 두려움, 혼돈, 좌절, 수치심, 분노, 억울함, 아쉬움이 이 책을 통해 고스란히 전해진다. 25일은 흔들림 없는 시간이 아니었다. 자본은 연대하는데 노동자들은 왜 연대하지 못하는가? 그들은 "행님요, 행님요!" 정규직들을 부르며 끝없이 연대를 호소하고 동지와 먹을 것을 애타게 기다렸다. "노동자는 한 명도 해고하지 못한다. 한 명도 공장 밖으로 나가지 못한다" 하고 외쳤던 전주 공장의 이야기를 기억한다.

그 와중에도 귀여운 장난꾸러기 같은 밤들이 존재한다. 회사가 1공장의 전기를 끊자 전기공들이 나섰다. 용역들이 들어올 경우를 대비해 창문마다 철조망을 설치할 때는 용접공들이 나섰다. 몇 번 불꽃이 튀자 철조망이 만들어졌다. 회사가 단수 조치를 취하자 배관공이 등장한다. 어느 조합원은 공장 안에 파이프를 땜질해 멋진 마이크 스탠드를 만들었다.

회사가 음식물 반입을 금지하자 조합원들이 가슴에서 등까지 김밥을 두르고 청테이프로 동여매고 그 위에 잠바를 입고 농성장에 들어서기도 했다. 가슴에서 등까지 20여 개 되는 김밥을 둘러맨 조합원들이 테이프를 떼어내며 김밥을 내려놓을 때 서로 서로 농담과 덕담을 주고받았다. 고생이 많으시지요. 김밥 복대네요.

아름다운 연대의 순간도 있고 처절한 배신의 순간도 있었다. 믿기 어려운 피 터지는 폭력이 있었고 분열이 있었다. 이 25일 기간에 한 비정규직 조합원이 분신을 시도했다. 황인화였다. 그는 10년간 '스타렉스'를 만들었다. 어머니의 병환으로 농성장에 들어가지 못하자 그는 무척 미안해하며 몸에 시너를 붓고 분신을 시도했다. 그 때 조합원들은 눈물을 멈추지 못하고 이런 글을 썼다. "우리 꼭 승리해서 사원증 가지고 면회 갑시다". 그 황인화가 병실에서 보낸 편지 내용은 이렇다.

"우리 힘으로 정규직이 되었다는 자부심을 가집시다. (…) 저도 꼭 나아서 현장에서 일하고 싶고 정규직 명찰을 달고 일하고 싶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안전하고 품질 좋은 차, 세계 최고의 명품 자동차 회사를 함께 만들어 나가고 싶습니다." (11월 29일 병상에서 황인화)

그는 무엇을 위해 희생했던가? 황인화는 왜 다시 회사로 돌아가고 싶어 했던 것일까? 그 25일간 점거했던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꿈도 황인화처럼 사원증을 달고 일하는 것이었다. 황인화의 이 꿈은 85호 크레인 위에서 김진숙이 외친 말과 같았다.

"저는 우리 조합원들이 혁명적 투지로 무장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지키고자 하는 게 아닙니다. 저녁이면 땀 냄새 풍기며 집에 돌아가 새끼들 끼고 저녁 먹고 여러분들이 오늘까지 누려왔던 그 소박한 일상들을 지켜내고 싶은 것뿐입니다."

그러니 비정규직이 출입증이 아닌 사원증을 달고 일하는 회사는 이미 우리가 알고 있는, 오로지 눈이 핑핑 도는 경제 논리로만 움직이는 회사는 아닐 것이다. 그러나 그런 변화만이 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미 많은 부분 인간성을 상실한 우리들이 삶이라고 할 만한 것을 누릴 유일한 길일 것이다. 그 25일간 대화가 있었고 토론이 있었고 눈물과 웃음, 번민이 있었다. 새로운 도덕과 새로운 삶을 꿈꿔봤다. 그들은 이미 내면화되어 버린 복종과 체념에서 벗어나길 원했고 당당해지길 원했다.

ⓒ프레시안

올 추석도 많은 비정규직들의 지친 어깨 위로 달이 뜰 것이다. 그러나 우리들은 모르는 척 한다. 비정규직의 문제는 직업과 연봉의 문제이기만 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재수가 없어서 우연히 비정규직이 되어버린 사람들의 딱한 문제가 아니란 것도.

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단 한 명도 노동의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다. 이제 일을 하면서 행복을 맛보는 사람들의 수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왜 일을 하면서 행복하지 않을까 물어본 적이 있는 사람들은 누구나 비정규직의 문제에 대해 함께 고민해 봐야 한다. 일을 하고 인간적으로 자긍심을 갖고 행복하게 사는 문제는 우리 모두의 문제이기 때문에 그렇다.

25일간의 이 싸움은 반드시 다시 시작될 것이다. 그리고 그래야만 한다. 나락에 떨어진 것 같은 인간일지라도 끝없이 인간이길 요구하는 것만이 결국은 우리 모두의 희망이기 때문에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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