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적 경제 성장으로 아주 중요한 문제인 가난을 퇴치한 사람들이 지금보다 더 성장하면 그런 문제들도 해결될 것이고, 나아가 더 살기 좋은 사회가 올 것이라고 확신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과연 더 성장하면 모든 문제가 다 해결될 것인가? 그리고 더 성장하기 위해서는 경쟁을 더욱 강화해야 할 것인가?
혹시 경쟁의 강화가 해결책이 아니라 바로 그 자체가 문제는 아닐까? 혹독한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하여 남보다 더 열심히 해야 하는 것이 과연 정답일까? 혹시 공작이 별 소용없는 꼬리 경쟁에 많은 것을 투자하듯이 낭비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새 연재 '공작의 꼬리 경쟁'은 바로 이런 질문에 답한다.
서상철 캐나다 윈저 대학 교수(경제학)는 과도한 경쟁 강화가 한국 사회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고, 지금 한국 사회가 직면한 여러 문제들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연재 '공작의 꼬리 경쟁'을 통해서 살핀다. 서상철 교수는 1957년 서울에서 태어나 미국 로체스터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전공은 사회 선택 이론이다. 독자들의 많은 관심 부탁한다. <편집자>
▲ 수컷 공작은 암컷을 차지하기 위한 경쟁에서 길고 아름다운 꼬리를 키운다. 그러나 그 긴 꼬리는 암컷의 배우자 결정 외에는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거추장스럽고, 다른 동물의 공격에서 방해만 되는 낭비다. ⓒepetads.com |
들어가는 글
몇 년 전 연구차 캐나다에 1년 동안 방문교수로 계신 분과 얘기할 기회가 있었다. 아이들이 고등학교와 중학교에 다니고 있는데 캐나다 학교에 잘 적응하며 학교에 잘 다닌다고 했다. 그런데 문제는 아이들이 한국에 돌아가 학교 다니기를 싫어한다는 것이었다. 아이들이 한국에 들어가서 고생할 것을 생각하면 애들이 원하는 대로 캐나다에서 학교를 다니게 하고 싶지만, 아이 둘을 캐나다의 학교에 보내는데 따르는 여러 가지 부담으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오랜만에 대학 동기 여럿과 며칠 동안 같이 산행할 기회가 있었다. 산행하는 동안 대학 졸업 후 처음 보는 한 친구와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가 일에 대한 얘기를 하게 되었다. 그는 어느 큰 회사의 자회사 사장으로 일하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동료가 자살을 했다는 충격적 사실에 대해 얘기했다. 그 자살한 사람은 자신이 속한 회사의 또 다른 자회사의 월급 사장이었다. 자살의 자세한 원인은 모른다고 했지만, 그의 추측으로는 일의 스트레스 때문일 것이라고 했으며, 비슷한 일을 하는 자신도 많은 스트레스에 시달린다고 했다.
자살률과 경제 성장
한국에서 학교가기 싫어하는 아이 그리고 자살한 사장의 고통은 그들에게만 국한된 개별적 사건들일까, 아니면 사회 전반의 문제를 반영하는 것일까? 왜 한국의 아이들은 한국에서 학교 다니기를 싫어하고, 언어와 문화가 다르고, 친구도 없어 적응에 어려운 외국 학교를 더 선호할까? 그리고 한국의 직장인들은 왜 그렇게 강도 높은 스트레스에 시달릴까?
한국에서 학교를 다니기 싫어하는 아이와 자살하는 직장인이 보여주는 고통은 서로 깊은 연관이 있으며 현재 한국 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심각한 문제의 한 단면을 나타낸다. 그 문제는 기러기 아빠 현상, 또는 자살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1위(세계 2위)와 같은 현상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중산층 붕괴나 명품 소비의 증가 등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한국은 빠른 속도로 변화해가고 있다. 과거 40여 년 동안 한국 경제는 크게 성장했으며, 국민소득도 몇 배로 증가했다. 물질적인 생활도 많이 윤택해졌다. 과거에는 소유할 꿈조차 꿀 수 없는 많은 것들을 소유할 수 있게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자가용을 소유하고, 외국제 고가품도 소비하고, 골프와 같은 레저도 즐긴다. 이러한 물질적 풍요를 가져온 경제 성장의 원인으로 경쟁을 지목하며, 더 높은 성장을 위해서는 더욱 더 경쟁해야 한다고 한다.
한국은 서구의 여러 나라와 달리 가난과 굶주림의 아픈 기억을 갖고 있는 세대와 초고속 경제 성장으로 물질적 풍요와 행복을 경험한 세대를 동시에 갖고 있는 나라이다. 성장의 주역을 담당한 사람들의 희생이 컸으며, 그에 따른 비용 역시 컸지만, 보상 역시 대단한 것이었다. 한국이 얻은 성장의 가장 큰 혜택은 빈곤으로부터 해방된 것이다. 이러한 경험은 경제 성장을 더욱 더 강조하게 만들었다. 특히 미래 세대가 더 풍요롭고 더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는 더 높은 경제 성장을 해야 한다는 믿음이 전반적으로 깊게 뿌리 내리게 되었다.
성장과 소득 차등화는 필연적인 관계인가
성장의 추구와 함께 경쟁 논리가 강화된다. 현재 한국 사회는 경쟁 논리 만연과 강화가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특히 1997년 외환 위기 이후에 경제적 대변혁을 겪게 되고, 외부로부터 강압적으로 시장 위주의 논리가 도입되고, 경쟁은 더욱 더 강화되었다. 강화된 경쟁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사람들은 더욱 경쟁력으로 무장하고, 그 결과 사회는 더욱 더 경쟁적으로 변해간다.
시장주의자들은 경쟁 강화를 위해서 소득 차등화가 강화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차등화는 일을 열심히 하는 동기를 제공하며, 그러한 동기가 성장의 동력이라는 것이다. 그들의 주장대로 현재 한국은 봉급 격차도 많이 벌어졌고, 부자와 가난한 사람들의 격차 또한 크게 벌어지는 차등화 강화가 이루어졌다. 소득 격차가 벌어짐에 따라 그에 따른 서열 역시 확대된다. 그리고 소득의 격차는 소비의 격차로 나타난다. 소득과 소비의 서열 경쟁은 소득의 격차가 벌어질수록 심각해진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동차 크기에 따라 그 사람의 지위를 알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자동차는 서열의 상징이기도 한 것이다. 이제 음식, 따뜻한 옷, 또는 잠잘 수 있는 공간 등 우리의 삶에 필요한 소비를 넘어서 지위를 결정하는 소비가 중시된다. 고급 자동차, 큰 아파트, 명품 등의 소비를 지위 소비(서열 소비, 위치 소비)라 하는데, 소득 격차가 큰 사회일수록 그 비중이 증가한다.
소득이 불평등한 사회일수록 서열이 확대되고, 지위와 소비 경쟁이 더욱 심화된다. 이러한 경쟁에서 낙오되지 않으려면 더 열심히 공부하고, 더 많이 일해야 한다. 문제는 나만 열심히 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열심히 하니, 낙오되지 않으려면 나는 더 열심히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부모는 다른 아이들보다 좀 더 일찍 영어를 가르쳐야 하고, 좀 더 공부를 하도록 채찍질해야 한다. 그리고 직장에서는 더 열심히 일해야 하고, 시간이 나면 다른 능력을 하나라도 더 개발해야 한다.
경쟁으로 우리는 무엇을 얻을까?
많은 연구 결과들은 소득이 불평등해질수록 사람들은 심한 경쟁에 시달려서 정신적으로 불안해지며, 서로를 신뢰하지 않으며, 수명이 낮아지고, 자살률이 높아지고, 범죄율이 높아지는 등의 현상이 나타남을 보여준다. 과연 소득의 차등화와 그를 통한 경쟁 강화로 우리가 무엇을 얻고 있으며, 그에 따른 사회 비용으로 우리는 무엇을 얼마나 지불하고 있는가?
경쟁 강화로 얻는 이익만큼 우리가 그 대가로 무엇을 지불하고 있는지도 중요하다. 경쟁 강화가 효율과 성장이라는 이익과 그에 따른 물질적 풍요를 제공한다면, 그에 따른 비용은 무엇일까? 그 비용을 고려하지 않는 것은 수학 등식에서 한 쪽 면만을 보고 답을 내는 것과 마찬가지로 위험한 것이다. 시장주의자들은 경쟁 강화가 얼마나 사회에 이로운 것인지에 대하여 말하지만, 그 사회가 지불해야 하는 비용에 대해서는 말이 없다.
아이들은 입시 경쟁으로 동심을 빼앗기고, 어떤 아이들은 외국이나 서울에서 공부하기 위해 가족이 떨어져 살아야 하고, 직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하는 생존경쟁으로 스트레스 받아야 하고, 시간이 나면 이직을 위해서 다시 공부해야 하고, 아이들과 또는 부부가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을 내기가 힘든 삶이 우리가 지불하는 비용이다. 이러한 비용은 시장에서 거래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돈이라는 단위로 표시되지 않는 사회가 지불하는 비용인 것이다.
청소년 자살률이 2009년 전년도 대비 약 50% 상승했다. 청소년뿐만 아니라 한국의 자살률은 OECD 국가 중 제일 높다. 더욱 놀라운 것은 자살률의 증가 추세다. 한국은 10여 년 동안에 자살 증가율이 경제 성장을 능가하여 급속히 늘어났다. 자살은 한 인간이 또는 그 사회가 지불하는 최대의 대가라고 할 수 있다.
자살은 예전부터 있어 왔으며, 실제 자살하는 사람의 수는 소수며, 또 유럽의 살기 좋다는 나라를 포함해도 자살 없는 나라는 없으니, 한국의 자살률 역시 크게 문제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왜냐하면, 자살률의 증가는 자살하는 사람에게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고, 그 사회 일반인들의 스트레스나 우울증 등 전반적 정신 건강의 악화를 나타내기 때문이다. 자살률 증가 뒤에는 자살을 시도한 사람, 자살을 생각할 정도로 정신적으로 고통 받는 사람, 그리고 일반적으로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들의 증가를 뜻한다. 극한 경쟁으로 인하여 많은 사회 비용을 지불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공작의 꼬리 경쟁
경쟁이 심해지면서 나타나는 희생자는 패자만이 아니라, 오히려 패자가 될까 두려워하는 승자들을 포함한 다수의 보통 사람들이 그 희생자다. 그들은 바닥으로 떨어질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항상 안고 살아가야 한다. 그러한 두려움을 벗어나는 방법으로 자신을 더 경쟁적으로 만들며, 자신의 아이들 역시 더 경쟁적으로 만들기 위해 모든 것을 바치지만, 경쟁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이제 한국은 모두를 피해자로 만드는 과도한 경쟁 상황에 처해있다.
과도한 경쟁의 예로 공작새들의 꼬리 경쟁을 들 수 있다. 수컷 공작은 암컷을 차지하기 위한 경쟁에서 길고 아름다운 꼬리를 키운다. 그러나 그 긴 꼬리는 암컷의 배우자 결정 외에는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거추장스럽고, 다른 동물의 공격에서 방해만 되는 낭비다.
한 사회의 경쟁의 도가 지나치면, 공작과 같이 경쟁을 위한 경쟁으로 그 낭비가 효용을 능가할 수 있다. 현재 한국은 극단적 경쟁 때문에 해가 득보다 오히려 큰 상황으로 볼 수 있다. 경쟁이 우리에게 더 필요하다는 주장은 공작 꼬리 경쟁과 같은 바보들의 경쟁을 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극심한 경쟁은 사회 전체에 불행을 초래하고 경제 발전에 오히려 해가 될 수 있다. 극단적 경쟁을 정당화시키는 경제성장의 추구로 일인당 국민소득이 올라가고, 그 결과 우리 모두가 행복해 질 거라고 믿는다. 하지만 소득이 어느 정도 이상이 되면 소득 상승은 행복 상승에 별로 효과가 없다.
성장의 기대가 키워온 희망은 그럴듯하지만 과도하면 성장에 대한 망상을 초래할 수 있다. '성장 망상증'에 의한 장밋빛 미래의 기대나 의존은 허구라는 것을 알아차리는 순간, 그리고 성장 자체가 목적이 될 수 없으며 그것을 이루기 위해 사람들이 점점 더 불행해진다는 현실을 직시하는 순간, 진짜 희망이 보일 것이다. 소득 수준이 어느 정도 이상 되면 절대소득보다는 오히려 상대소득, 또는 소득의 불균형 정도가 사람들의 행복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 우리가 행복을 위해 강조해야 할 것들은 성장, 차등화 강화, 경쟁 강화가 아니라 분배, 평등화 강화, 경쟁 약화이다. 이제 앞뒤 안 보고 서두르는 성장이 아니라 주위도 돌아보는 성장을 해야 한다.
상대소득에 주목하라
한국의 여러 사회 상황을 고려할 때, 한국은 이미 경쟁의 정도가 한계에 이르렀다. 이러한 상태에서는 경쟁의 강도를 증가시키려 하면 성장률보다는 그에 따른 사회 비용 증가율이 더 빠르게 상승하게 된다. 좀 더 성장해서 얻는 이익보다는 성장을 위해 지불하는 사회 비용이 더 커진다는 것이다.
이제는 상대빈곤으로 인한 문제들의 해결을 위해 상대소득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절대소득 증가에 전력투구하기보다는 상대소득에 신경을 써서 소득 불균형 문제를 해결함으로 더 큰 성과를 거둘 수 있다. 사회적 의견 수렴이 쉽지는 않을 것이나, 소득 불균형 문제의 해결은 사회의 약자를 위한다기보다 오히려 다수의 보통 사람이나 강자를 위해서, 특히 미래 세대를 위해서 필요한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 가능할 것이다.
한국은 안정된 사회 그리고 건강하고 행복한 사회로 갈 것인가, 아니면 그 반대로 서로 질투하고 경쟁하는 불안하고 불행한 사회로 갈 것인가의 기로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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