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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 평화상 수상자 "중국이 틀리니 미국이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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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 평화상 수상자 "중국이 틀리니 미국이 옳다!"

[프레시안 books] 류샤오보의 <류샤오보 중국을 말하다>

2010년 12월 10일. 세계인권선언 기념일, 인권의 날에 진행된 노벨 평화상 시상식은 감동적이었다. 시상식의 주인공 류사오보는 그 자리에 없었다. 류사오보는 중국 당국에 의해 '국가 정권 전복 선동죄'로 기소되어 법원에서 11년형을 선고받았다. 랴오닝 성의 한 감옥에 수감 중인 류사오보는 물론, 그의 가족도 시상식에 참석할 수 없었다.

노벨위원회는 빈 의자를 두고 시상식을 진행했다. 빈 의자에 놓인 상장과 메달은 중국의 인권 현실을 보여주는 가장 극적인 장면이 되었다. 중국 당국은 류사오보의 노벨 평화상 수상에 대해 "중국의 범법자에게 노벨 평화상을 주는 것은 노벨상 정신에 위배된다"는 말부터 "내정 간섭", "정치극", "냉전 시대 사고의 산물" 같은 말들을 쏟아냈다.

그 와중에 노벨 평화상에 견준다며 '공자 평화상'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세계 주요 2개국(G2)으로 꼽히는 대국치고는 너무 옹졸했다. 중국 당국의 반발은 류사오보의 노벨 평화상 수상의 극적 효과를 높여주는 역할을 했을 뿐이다. 그 감동이 채 가시기도 전에 한국에서 그의 책이 한 권 나왔다.

(사)한국물가정보의 지식갤러리가 펴낸 <류사오보 중국을 말하다>(김지은 옮김)는 2011년 1월 20일 발행되었다. 책을 통해 류사오보를 만날 수 있게 된 것은 반가운 일이다. 류사오보는 노벨 평화상 수상 이전에도 인권운동가로 명성이 높은 사람이었다. 미국 대학에서 교수로 지내다가 톈안먼 민주화 운동이 일어나자, 곧바로 귀국해 시위를 벌였고, 이 때문에 시작된 수감 생활은 벌써 네 번째다.

책의 말미에 적힌 법원의 판결문은 류사오보의 죄가 무엇인지 정확히 알려주고 있다.

"국가 정권과 사회주의 제도의 전복을 목적으로 정보를 다양한 지역에 빠르게 전송하고 사회적 파장이 크며 대중의 주목을 쉽게 받을 수 있다는 인터넷의 특징을 이용해서 자신이 저술한 글을 인터넷 사이트에 실었다. 이러한 방식으로 류사오보는 중국의 정권과 사회주의 제도를 비방하고 전복을 선동했다."

▲ <류샤오보 중국을 말하다>(류샤오보 지음, 김지은 옮김, 지식갤러리 펴냄). ⓒ지식갤러리
그래서 11년형이란다. 중국 당국 입장에서 볼 때, 류사오보가 성가신 존재였고, 어쩌면 그들의 주장대로 체제 안정을 위협하는 불온한 존재였을지 모르지만, 그는 오로지 말과 글로만 싸워왔다. 누구도 해치지 않았고 어떤 폭력도 쓰지 않았다. 그래도 가혹한 형사 처벌의 대상이 되었다.

말과 글은 묘한 힘이 있다. 혹세무민하고 공산당을 중심으로 한 기득권 세력만을 위한 체제 유지를 위한 신통한 수단이 되기도 하지만, 체제를 위협하는 혁명의 도화선이 되기도 한다. 그게 무서워서였을까. 프랑스 혁명의 진원이 되었던 바스티유 감옥 재소자 중 3분의 1은 출판과 관련된 사람들이었다. 작가나 신문 업자만이 아니라, 인쇄공, 제본 업자, 서적 행상인까지 잡아들였다. 볼테르도 바스티유에서의 고초를 피해갈 수 없었다.

봉건 왕조 시대의 왕권이 계몽주의자를 잡아가뒀던 것과 중국 당국이 류사오보를 가두는 것은 꼭 닮았다. 300년의 시간이 지났고, 한쪽은 봉건 왕조이고, 다른 한쪽은 봉건제는 물론 자본제를 넘어 공산주의로 가는 길을 열겠다는 공산당이 집권하는 '인민공화국'이라는 것이 다를 뿐이다. 그 차이 때문에 류사오보의 구금은 더 야만스럽고, 더 끔찍한 인권 침해다.

1949년 건국 이래, 중국 혁명의 빛나는 위업을 계승한다는 중국 공산당의 실체가 겨우 이 정도였다. 미국의 영향을 많이 받은 한 자유주의자의 인터넷 활동이 그렇게까지 무서웠을까. '공산당'의 엘리트들이 부르봉 왕가 수준의 야만을 저지르게 할 정도로 자신들의 체제에 자신이 없었을까. 그런 식의 졸렬한 선택이 성공하는 사례는 별로 없다.

중국 당국은 류사오보의 입에 재갈을 물리고, 가족들에게까지 감당하기 어려운 고통을 주었다. 감옥에 갇혀 노벨 평화상 시상식 참석은 물론, 최소한의 의사 표현조차 금지 당했지만, 류사오보는 이전보다 훨씬 더 위협적인 존재가 되어 가고 있다.

류사오보가 11년형을 선고받을 정도로 위험한 사람인지도 의문이다. 이 책을 통해 생각의 일단을 드러낸 류사오보는 중국이 틀리니 미국이 옳다는 식의 이분법적 사고에서 맴돌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현실의 중국을 극복하는 과정의 고단함 때문인지, 아니면 미국의 일면에만 너무 깊이 빠져든 탓인지 모르겠지만, 중국과 미국, 둘 중의 하나만을 선택해야 한다는 식의 생각은 냉전적 사고에서 비롯된 인식의 오류이기 쉽다.

서구 중심주의, 특히 미국 편향에서 벗어나 좀 더 넓은 안목으로까지 나아가지 못한 것은 책을 읽는 내내 아쉬웠다. 물론 핍박받는 운동가에게 좀 더 넓은 안목을 요구하는 것은 결례가 될지도 모른다. 목숨 걸고 투쟁하는 운동가의 약간 거친 언사나 투쟁 대상에 대한 분노처럼 비본질적인 파생 현상을 놓고 딴죽을 걸자는 것도 아니다. 다만, 류사오보가 진행하는 운동의 성공을 위해서도 몇 가지 조언은 하고 싶다.

중국만이 아니다.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그리고 한국까지 아시아의 여러 나라들의 인권 문제는 늘 인권의 보편성과 이른바 '아시아적 가치'의 충돌로 이어지곤 했다. 아시아적 가치는 주로 아시아 여러 나라의 정치 지도자들이 유포, 확산시킨 논리였다. 아시아에는 아시아의 가치가 있는데, 일방적으로 서구의 가치를 주입하는 건 잘못이라는 거였다.

발뺌과 변명을 위한 것이지만, 대놓고 무시하기 어려운 무언가를 담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바로 아시아의 여러 나라들이 근대 이후 서구의 군사적, 정치적, 경제적 침략의 희생물이었다는 점 때문이다. 중국은 이미 G2의 일원으로 부쩍 성장했지만, 그 깊은 내면에는 미국 등 서구에 대한 뿌리 깊은 피해의식이 자리 잡고 있다.

류사오보도 이 같은 점을 여러 차례 지적하고 있다. 이 같은 피해의식은 정치지도자들만의 것이 아니라 인민 대중에게 폭넓게 자리 잡고 있다. 류사오보가 이런 점에 좀 더 유의했으면 어땠을까. 언론, 출판, 집회, 결사의 자유 등 인권의 소중함을 위한 싸움을 벌여나가되, 중국적 가치를 반영한 인권 발전상을 제시하면 어땠을까?

중국인이 아니기에 공자가 중국에 미친 영향력이나 류사오보가 지적하는 '해악'을 정확히 이해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공자를 "'태평할 때 세상에 나오고 난세에는 숨는' 처세의 대가였고 전형적인 기회주의자"이며 "가장 교활한" 사람이라고 극단적으로 평가하고, 다른 교수의 책을 통해 "상갓집 개"로 몰아붙이는 대목 등은 아쉬웠다.

류사오보보다 더하면 더했지, 결코 적지 않은 핍박을 당했던 김대중은 싱가포르의 리콴유와 아시아적 가치에 대해 논쟁하면서 동학의 인내천과 맹자의 역성 혁명까지 끌어다 유교적 왕권 정치의 인본주의 이념이 서구식 민주주의 이념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했다. 리콴유가 '문화는 운명'이라고 했을 때, 김대중은 '문화가 운명인가?'라고 되물었다.

중국 공산당의 공자 붐 조성에 반대에는 단호한 입장을 지니더라도, 공자에게도 배울 것이 있고 따라야 할 가르침이 있는데, 배타적 애국주의에 동원되어선 안 된다든지, 당국의 붐 조성은 공자를 제대로 따르는 게 아니라는 논리를 펴나갔으면 어땠을까. 김대중은 늘 '서생적(書生的) 문제의식과 상인적(商人的) 현실 감각을 아울러 갖춰야 한다'고 했다.

탄압하는 사람들도 어쩌지 못할 정도의 정교한 논리, 답답하기 짝이 없더라도 다만 반발 짝만 앞서더라도 대중과 함께 운동을 진행하는 지혜와 끈기 같은 것이 있었더라면, 어쩌면 류사오보가 바라는 세상은 지금보다 훨씬 더 현실에 가깝게 다가올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랬다면, 부시 정권과 공화당이 흑인 국무장관 임명을 통해 흑인 지위 향상을 이뤄놓고, 이 때문에 오바마가 당선되었다는 식의 견강부회까지 치닫지는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랬다면 한 누리꾼이 쓴 글 '미 제국주의는 세계를 지배하려는 야심을 버려라'에 대해 그렇게까지 흥분하지 않을 수도 있었을 거다.

하지만 책을 읽으며 이런 조언이 번지수를 잘못 찾은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류사오보의 책은 종잡을 수 없는 논리의 비약도 많았지만, 이게 한 권의 책을 염두에 두고 쓴 글이 아니라, 이곳저곳의 인터넷에 그때마다의 필요와 사정에 따라 쓴 글들을 묶은 것이라는 점을 생각할 때, 어쩌면 일관성이나 시종을 관통하는 논리 같은 게 부족해 보이는 것이 당연한 것일 수도 있다.

이런 점을 보완하는 게 바로 출판 편집자의 역할이다. 그가 최소한의 자유도 박탈당한 채 구금되어 있는 운동가라면, 필자를 이렇게 맨 얼굴로 독자와 만나게 하는 건 결례가 아닐까.

류사오보에 대한 책은 너무 빨리, 그것도 후다닥 나왔다. 노벨상에 유독 호들갑을 떠는 한국의 현실에서는 얼마든지 가능한 속도전이었다. 하지만 후다닥 번역해 책을 내는 것 말고, 출판사가 보여준 성의는 거의 없었다. 고난을 겪는 인권운동가에게 최소한의 경외심이랄까 공감하는 마음이 있었더라면 이런 식으로 책을 펴내지는 말았어야 했다. 좀 더 시간이 걸리더라도 공을 들였어야 했다.

류사오보에 대해 아예 새로운 책을 쓰거나 그게 아니라면 각주 수준을 넘어선 해제라든가, 적어도 옮긴이의 말이라도 들어있어야 했다. 그랬다면 어쩌면 이 책을 통해 드러난 것보다 훨씬 더 출중한 인물일지도 모를 류사오보가 한국에서 출판된 그의 책 때문에 오히려 본래의 빛이 바래지는 일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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