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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아는 공자는 '진짜' 공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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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아는 공자는 '진짜' 공자인가?

[철학자의 서재] 최술의 <수사고신록>·<수사고신여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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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생각이 책을 통하여 독자에게 전달될 때 그 과정은 단순하다고 볼 수도 있지만 이면을 세세히 따져보면 사연도 많고 우여곡절이 담긴 복잡한 과정일 때가 더 많을 것이다.

어떤 저술은 저술 과정에서 저자가 혼신의 정력을 담고, 역경 속에서 간난신고를 겪으면서 한 사람의 일생을 바쳐 탄생하는 경우도 있다. 공자와 연관된 기록들을 꼼꼼히 고증한 <수사고신록(洙泗考信錄)>(이재하 옮김, 한길사 펴냄)과 공자의 제자들과 연관된 기록을 고증한 <수사고신여록(洙泗考信餘錄)(이재하 옮김, 한길사 펴냄)도 저자 최술의 필생의 노력이 담긴 저술이다. 이 책이 독자들의 손에 들어오는 과정에도 소설 같은 기이한 인연들이 있다. 이런 저술이 한문을 모르는 독자들도 읽을 수 있도록 우리말로 번역이 되어 있는 것은 우리 독서계의 독자들에겐 행운이라고 본다.

최술(崔述, 1740~1816년)은 청대를 대표하는 고증학자로 호는 동벽(東壁)이다. 만년에 6년 동안 지방 관리를 맡은 적이 있지만 생애의 대부분을 경서와 역사서의 연구에 몰두하였다. 몰락한 사대부의 후예로 궁핍한 생활 속에서도 필생의 정력을 쏟아 요순부터 공자에 이르는 역사를 고증한 획기적인 저술인 <고신록(古信錄)> 36권 등, 총 34종 88권의 저술을 남겼다. '고신록'이란 철저한 고증을 거쳐 믿을 수 있는 것만 기록한다는 의미이다.

▲ <수사고신여록>(최술 지음, 이재하 옮김, 한길사 펴냄). ⓒ한길사
<고신록>의 일부인 <수사고신록>과 <수사고신여록>은 공자와 제자들의 행적에 덧씌워진 신화와 왜곡을 걷어내고 원형을 복원하는 데 결정적인 공헌을 한 불후의 명저로 꼽힌다. 수사는 공자의 고향 곡부 지역의 두 강 수수(洙水)와 사수(泗水)를 가리키며, 이 때문에 '공자학'을 '수사학'이라 부르기도 한다.

<고신록>은 최술 사후 87년인 1903년 일본에서 <최동벽 선생 유서>가 출판됨으로써 일본 사학계를 들끓게 했으며, 중국으로 역수입되어 1920년대 고사변파(古事辨派)를 형성하는 데 결정적 영향을 끼쳤다. 최술의 저술에 대해 중국 근대 역사학의 대가인 양계초는 '고대사 연구의 표준'이라 했고, 5·4 운동의 주역이었던 호적은 '중국의 새로운 역사학의 출발점'이라고 격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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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함께 양대 경제 대국으로 불릴 만큼 경제 성장을 이룩한 중국은 천안문 광장에 거대한 공자 상을 세웠고, 전 세계에 수백 개의 '공자 학원'을 만들고 있다. 중국 CCTV의 <대국굴기(大國崛起)> 일본 편에서는 <논어와 주판(論語と算盤)>의 저자 시부사와 에이치(澁澤榮一)를 일본을 경제대국으로 이끈 인물로 극찬했다.

시부사와 에이치는 기업 활동을 하는 과정에서 뇌물을 쓴 사건 보도를 보고 <논어와 주판>에서 이렇게 말한다.

"이런 사건이 발생한 것은 분명 인의 도덕과 이윤 추구를 별개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생산을 하여 이윤을 추구함에 있어서 올바른 도리에 따라 경영해야 한다는 경영 철학이 기업인들 사이에서 뿌리내려 있었다면 이와 같은 부정행위는 생기지 않을 것이다. 설령 상대방이 탐욕에 사로잡혀 이러한 제안을 하더라도, 그것은 정의에 위배되는 행위이기 때문에 단호히 거절할 각오가 되어 있다면 반드시 그런 제안을 물리칠 수 있다. 여기서 나는 기업가의 인격 수양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것을 더욱더 통감한다. 경제계에 부정행위가 끊이지 않아 국가의 안전이 위협당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 나는 심히 우려하고 있다."

시부사와는 인의 도덕, 인격 수양, 윤리의 근원으로 공자의 <논어>를 제시했다. 이윤 추구와 인의 도덕은 상호 보완 관계에 있으며, 윤리적 경영이 결국 국가와 개인의 행복을 증대시킬 수 있다는 주장을 여러 예화들과 개인적 경험을 들어서 설득하면서 윤리의 표상으로 <논어>를 제시한 것이다.

2010년을 전후로 우리나라 대기업의 임원들 사이에 <논어> 읽기 바람이 분 것도 중국에서 불고 있는 공자 바람과 시부사와 에이치의 저술 등의 영향을 받았다고 본다. <논어>가 산업 현장과 경제 업무 현장에 출연하는 것은 지금까지 보아온 <논어>의 모습으로는 생소한 것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논어가 새삼 우리 생활 가까이에 등장하고 사람들의 일상에 함께함으로써 대중화된다면 <논어>를 둘러싸고 할 이야기는 더욱 많아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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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술의 <수사고신록>과 <수사고신여록>은 어쩌면 전문가들이 시시콜콜한 문제들을 꼬치꼬치 따지는 부류의 책이라고 볼 수도 있다. 저자는 <논어> '양화' 편에 나오는 양화라는 인물과 양호라는 인물이 같은 사람이 아니라는 증거를 여러 자료를 들고 나와 증명하려고 하는데 이런 것들이 일반 독자들에게는 지엽적인 문제로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서 이 책을 거론하는 이유는 또 다른 측면에서 가치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논어>의 표면층을 계속 훑는 책들을 여러 권 읽을 시간이 있다면 다른 층면을 들여다 볼 수 있는 <논어>에 관한 이런 책을 보는 것이 가치가 있다는 뜻이다. <수사고신여록>의 '그을음이 묻은 밥풀을 먹었다는 이야기를 변증함'을 한번 옮겨 본다.

<공자가어>에서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공자가 진나라와 채나라 사이에서 어려움을 당해 이레 동안 굶었다. 이에 제자 자공이 농부에게 곡식을 구해왔고, 안회는 밥을 지었다. 그때 그을음이 밥에 떨어졌으므로, 안회가 그을음이 묻은 밥풀을 건져 먹었다. 그런 모습을 멀리서 본 자공은 안회가 밥을 훔쳐 먹은 것으로 여기고, 방으로 들어가 공자에게 일러바쳤다.

이에 공자는 '내가 물어보겠다'고 말한 뒤 안회를 불러들여 이렇게 떠보았다. '어젯밤 꿈에 돌아가신 분들을 보았느니라. 밥이 다 지어지면 가져오너라. 내가 그분들께 먼저 올리고 싶구나' 그러자 안회가 대답했다. '그을음이 밥에 떨어졌기에 제가 그 부분을 먼저 먹었습니다. 하오니 제사를 지낼 수 없습니다'……"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성인은 진심으로 사람을 대한다. 하물며 용사행장(用舍行藏, 관직에 나아가 도를 실행하고 재야에 물러나 도를 지킴)을 같이 할 수 있다던 안연에 대해서야 더 말할 필요도 없다. 그런 안연에게 꿈을 핑계 삼아 요모조모 살피다니, 어진 사람도 차마 그런 꾀를 내지 않을 터인데, 하물며 공자와 같은 성인이 어찌 그러했으랴!

안연은 공자의 모든 면을 고루 갖추어서 거의 공자와 비슷한 수준의 사람이었으니, 자공에게 밥을 훔쳐 먹었다고 의심받지도 않았으리라. 자공의 지혜로움은 성인을 알아보기에 충분했으며, "제가 어찌 감히 안회를 따를 수 있겠습니까?"라고 말했다. 그러니 밥을 훔쳐 먹었다고 안연을 의심하지도 않았으리라. 어찌 그럴 리가 있었겠는가!

스승과 제자들 사이에 서로 시기하고 시험했다는 <공자가어>의 이 따위 이야기는 애초에 오늘날의 백정이나 주막의 거간꾼들이 하는 짓거리와 다름없다. 비천한 시정잡배들도 오히려 자신들의 행동을 부끄러워할 때가 있는 법인데, 성현에게 그런 행동을 덧씌우고 만 셈이다. 아 이런 자들을 어찌 올바른 사람이라 말할 수 있겠는가!

이 이야기는 <여씨춘추>에서 따온 것인데 어투는 이와 조금 다르다. <여씨춘추>에서의 의도는 사람을 제대로 알기 어려움을 밝히려는 데 지나지 않았다. 그리하여 눈으로 직접 본 것도 오히려 믿을 수 없음을 공자와 안회에 빗대 말했을 따름이다. 그런데도 <공자가어>는 마침내 진짜 있었던 이야기로 여겼으니 잘못이다.

나는 그러므로 이렇게 말한다.

<공자가어>는 공 씨의 유서가 아니다. 그것은 위서이다. <공자가어>는 <사기> '공자세가'에 비해 내용이 더욱 비루하다. 하지만 세상의 선비들은 <공자가어>를 '공자세가'보다 더욱 믿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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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대 고증학은 '무증불신(無證不信)' 곧 '증거가 없는 것은 믿지 않는다'는 정신을 앞세웠기에 과학적 학문 방법과 상통한다고 보지만, 앞의 <공자가어>에 대한 최술의 비판은 객관적 증거가 아니라 최술의 주관적 '성인상' 또는 인간관에 근거하고 있다. 최술은 안연이 논어의 앞뒤 기록을 참고로 할 때 공자의 수제자임에 틀림없고, 성인 공자의 경지에 가까운 인물의 수준에서는 이런 사건이나 대화가 나올 수 없다는 것이다. 물증 위주의 객관적 증명은 아니지만 이것도 하나의 논증 방법이다.

<논어>를 읽어 본 사람은 고층건물의 입구에서 누구를 기다리고 있을 때 '공자께서는 출입문의 한 가운데 서 계시지 않았다'는 구절을 떠올리게 된다. 음식점에서 육회라도 먹게 되면 '회는 잘게 썬 것을 좋아하셨다'는 말이 떠오른다. 물가에 서면 '흘러가는 것이 이와 같구나! 밤낮을 쉬지 않도다' 하는 말이 떠오른다. <논어>는 그런 책이다.

그 책 속의 장면들을 우리는 곧잘 떠올릴 기회를 갖게 되고, 그때 공자나 제자들이 했던 말과 태도 및 행동이 재음미된다. 그래서 <논어>를 좀 읽은 사람들은 공자나 자로나 안연이나 자공과 같은 사람들의 형상을 나름대로 그리게 될 것이다. 최술의 책을 읽으면 저자가 그리고 있는 성인상이 느껴진다. 동시에 저자의 성품과 모습도 느껴진다. 이러한 과정이 성인의 학문이 제시하는 윤리 도덕의 근원에 더 접근하는 차원이라고 본다.

<논어>에 "많이 들은 것 중에 의심스런 것을 제외하고 남은 믿을 만한 것을 남에게 말한다면 말에 허물이 적을 것이다"는 구절이 있다. 현대는 '정보 시대'라 하여 홍수처럼 많은 정보가 우리 귀에 들어오지만 그 가운데는 잘못된 것이나 근거 없는 것, 거짓된 것도 섞여 있어 그것을 파악하지 못하고 남에게 전달한다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허물을 짓는 것이다.

<논어>를 읽고 공자에 관한 여러 글을 읽은 분들이 <수사고신록>과 <수사고신여록>을 읽게 되면 <논어>의 "의심스런 부분을 제외하고 말하라(多聞闕疑 愼言其餘)"는 말의 무게를 다시 되새기게 되리라고 본다. 그러므로 이 책은 <논어>와 공자에 관한 여러 지식들을 밋밋하게 읽고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믿을 수 없는 것과 있는 것을 따지는 과정에서 문제를 꼬집어 읽게 만들기 때문에 독자들을 각성시키는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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