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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안 날치기' 한나라당, 심판할 군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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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안 날치기' 한나라당, 심판할 군주는?

[철학자의 서재] 마키아벨리의 <군주론>

해 배웅을 하지 못하는 이유들

고단했던 한 해가 저물고 신묘년 새해가 밝았다. 온 나라가 구제역으로 인한 소들의 죽음으로 가득하다. 소만이 아닌 듯하다. 인간의 삶도 고난의 해가 될 듯하다. 그래서 묵은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기에는 마음이 너무 무겁다. 왜냐하면 우리네 삶에 무겁게 내려앉는 사건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사건은 2011년 12월 8일, 친서민의 탈을 벗어버린 한나라당의 예산안 날치기 통과이다.

대략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영유아 예방 접종' 지원 예산은 2010년 203억 원에서 2011년 144억 원으로 감액되었고, 방학 중 밥을 먹지 못하는 저소득층 아이들에게 책정되었던 급식 지원비 283억 원 전액은 '0'원으로 편성되었으며, 보육 시설을 이용하지 못하는 하위 소득 가구 아이들 양육 지원금 2743억 원은 연평도 포격으로 인한 안보 강화의 시급성 때문에 잠시 뒤로 밀린 것이라는 한나라당의 해명 아닌 해명과 함께 행방불명되었다.

어디 그뿐인가! 취업 후 학자금 상환제로 이자를 대납해 주는 3015억 원이 1900억 원으로 삭감되었으며, 저소득층 자녀 성적 우수 장학금 1000억 원은 예산안에서 삭제되었다. 노인 복지 예산 역시 120억 원이 삭감되었고, 2009년 추경 당시 5400억 원을 편성하기로 한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예산도 사라졌고, 중소기업의 자금 운용에 지원되던 긴급 경영 안정 자금도 2010년 2500억 원에서 2200억 원으로 삭감되었다. 중소기업에 지원하는 신성장 기반 지원금은 2010년 1조 1600억 원에서 3780억 원 감액, 모태조합 출자 지원금은 1000억 원에서 320억 원 삭감되었고, 농어민 지원금도 8580억 원이 삭감되었다. 망년회, 송년회를 하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과연 우리는 2011년 예산안 날치기 통과라는 폭력의 정치를 해 배웅할 수 있을까? 노나라의 묵자가 이끌었던 제가백가의 한 파인 묵가(墨家)에 따르면, 강한 자가 약한 자의 것을 강탈하지 않는 것이 올바른 정치인 '의정(義政)'이다. 그러니 현실의 정치는 인민을 배제한 정치, 폭력의 정치인 '역정(力政)'인 것이다. 또한 노자의 말을 빌면, '약평소선(若烹小鮮)' 즉 작은 생선을 삶듯 자꾸 건드리지 말아야 하는데, 현실의 정치는 생선을 자꾸 뒤집어 요리를 망치듯 인민의 삶을 위태롭게 만들고 있다.

소모성 열병에 걸린 정치

서민 복지를 내동댕이친 이명박 정부의 정치, 이것은 인민의 처지에서는 위기의 정치이다. 일찍이 현실주의 정치사상을 최초로 주장한 인물로 평가받는 마키아벨리는 <군주론> 첫머리에서 모든 국가를 공화국과 군주국으로 나눈다. 그리고 <로마사 논고>에서 공화정을 충분히 논했기에 <군주론>에서는 공화정을 제외한 군주정만을 논할 것이라고 한다.

▲ <군주론>(니콜로 마키아벨리 지음, 신복룡 옮김, 을유문화사 펴냄). ⓒ을유문화사
하지만 <공화국론>대신 <로마사 논고>라고 제목을 썼다고 해서 공화정의 미래를 포기했다고는 볼 수 없을 것이다. 두 책 모두는 공화정과 군주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으며, <군주론>에서는 모든 주제를 군주의 관점에서 논했고, <로마사 논고>에서는 여러 주제들을 군주와 공화제의 관점을 모두 취하며 논했다.

<로마사 논고>에서 마키아벨리는 헌정 대상인 자유 시민을 군주의 자격이 있는 사람, 즉 시라쿠사의 히에론 같은 실질적인 군주와 같다고 한다. 히에론은 <군주론>에서 모세나 다윗에 버금가는 군주의 모델로 제시되고 있기도 하다. 따라서 궁극적인 목적에 있어서 <군주론>은 자신의 가르침을 실제 군주에게 전한 책이며, <로마사 논고>는 같은 가르침을 잠재적 군주에게 전한 책이라고 할 수 있다.

마키아벨리는 <군주론> 헌정사 부분에서 자신의 집필 의도를 다음과 같이 밝힌다.

"인민에 대해 잘 알려면 군주가 되어야 하며, 군주의 본질을 잘 알려면 인민의 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물론 여기서 "군주"라는 용어의 모호성은 해소되지 않고 있다. 이를 테면 군주란 폭군이 아닌 군왕을 의미할 수도 있고, 모든 군주를 가리키는 말일 수도 있으며, 공화국의 인물을 포함해 지배자의 위치에 있는 사람 모두를 가리킬 수도 있다. 그런데 이러한 용어의 모호함은 자유민주주의 공화국을 표방하고 있는 우리 삶에서 '공화국의 인물을 포함해 지배자의 위치에 있는 사람'으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군주의 본질을 잘 알려면 인민의 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마키아벨리의 가르침은 정부와 여당의 '2011년 예산안 날치기 통과라는 폭력의 정치' 철학에서는 사라지고 없다. 마키아벨리는 인민의 지지를 받는 정치를 강조한다. 더욱이 그는 귀족들의 사적인 욕망이 정치 공동체의 위기라고 진단하고 있다.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에서 정치적 지혜를 소모성 열병에 비유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 병은 초기에는 치료하기 쉬우나 진단하기 어려운 데에 반해서, 초기에 발견하여 적절히 치료하지 않으면 시간이 흐름에 따라서 진단하기는 쉬우나 치료하기는 어려워집니다."

서민 경제가 위기에 처했고, 부자와 빈자의 간극이 더 벌어지는 현실에서 정부의 정책은 삶의 치료를 방치하고 있다. 서민의 복지가 바닥에 떨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복지의 중요성이 더 필요한 상황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적절한 개입과 행위를 해야 하는 것이 바로 마키아벨리가 말하는 정치적 지혜인 것이다.

정치적 지혜, 정치적 역량(virtú)의 부재는 공동체의 분열을 지속시킬 수밖에 없다. 따라서 바로 마키아벨리가 <군주론>에서 일관되게 주장하고 있는 것은 귀족과 인민의 대립이다. 그는 귀족에 대해 불신한다. 왜냐하면 귀족은 끊임없는 사적 욕망을 추구하고 있기 때문에 공동체의 몰락을 초래할 수밖에 없다.

서민 경제와는 너무나 거리가 먼 한나라당의 정치는 공동체의 몰락과 사적 이익을 교환한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들의 정치에서는 인민들의 정치를 찾아볼 수 없다. 인민들이 정치에서 배제당한 채, 남은 정치는 공(公)의 빈약함과 사(私)의 풍성함뿐이다. 참으로 공(空)허한 정치이다!

외양의 정치, 그 역설의 의미

기획재정부가 내놓은 '2011년 경제 정책 방향과 과제'는 '따듯한 서민 경제'를 표방하고 있다. 또 이명박 정부는 '2011년 경제 정책 방행과 과제'에서 '균형 재정 목표 달성을 위해 재정 지출 증가율은 재정 수입 증가율(7.7%)보다 2.9% 포인트 낮은 연평균 4.8% 수준으로 관리'한다고 한다. 2013~2014년에 '균형 재정'을 달성하는 것이 목표다.

어처구니없는 맷돌질이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정부는 균형 재정을 위해 '부자 감세 철회'를 그야말로 철회하고 4대강의 거대 토건 사업을 유지하고자 한다. 결국 정부가 찾은 균형 재정을 위한 대안은 2011년 복지 예산을 축소한 것이다. 복지 예산 규모를 5조2000억 원 늘렸다며 사상 최대라고 주장하지만, 복지 급여인 국민연금, 기초노령연금 등 자연 증가분 3조6000억 원과 해외에서는 복지 예산으로 간주하지 않는 주택 자금 증가분 1조3000억 원을 제외하면 실질 증가분은 3000억 원밖에 되지 않는다. 올해 예상되는 물가인상률 3%를 고려하면 오히려 복지 예산은 감소된 것이다.

이러한 위선 행위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마키아벨리가 <군주론>에서 말하는 '외양'의 정치가 이 대목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할 수 있다. 외양의 조작은 말 그대로 서민을 위한 정치인 것처럼 '보여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다. <군주론>에서 그는 군주의 교사로 켄타우로스 키론을 거론한다. 그리고 그는 여우 같으면서 사자 같은 사람이 되라고 한다. 이러한 문구는 그 자체로 진지하게 여기기보다 젊은이들을 위한 교육적 기능을 가진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외양의 정치는 통치자가 필수적으로 대중의 지지를 받아야 함을 은연중에 '역설'하고 있는 것이다.

마키아벨리 사상의 함의를 염두에 둔다면 노동의 유연화를 통한 '따듯한 서민 경제'라는 위선의 정치가 갖는 역설은 무엇인가? 지배자가 얼어붙은 서민 경제를 외면하고 부추기면서 '따듯한 서민 경제'라는 위선의 정치, 외양의 정치를 행하는 것은 여전히 정상적인 정치, 인민의 지지를 기반으로 하는 정치, 선의 윤리가 우월하다는 점을 고백하는 것이다.

위선적 행위를 극복하는 방법은 정신분열증에 걸린 환자처럼 위선적 행위에 윤리적 부담을 느끼지 않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자기기만 속에서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하는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행위가 공동체에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한다는 점이다. 마지막 방법은 위선의 탈을 벗어 던지고 악행을 중지하는 것이다. 위선의 탈은 이미 벗어 던져버렸다. 그러나 문제는 정부가 정체성을 전화하지 않는 한 악행을 중지할 것 같진 않다.

생성의 민주주의

현실에서 위선의 정치학이 드러내고 있는 문제는 '따듯한 서민 경제'라는 정치적 선전과 상징 조작이라는 외양의 정치가 예외적인 상황이 아니라 일상화될 때이다. 한국 사회는 다른 나라 못지않게 민주주의를 위한 처절한 변혁의 과정을 거쳤다. 그러나 오늘날의 민주주의가 실질적인 민주주의이기에는 여전히 함량 미달임을 부인할 수 없다.

지배 권력은 상징과 조작의 정치에 근거한 대중 정치, 즉 외양의 정치를 통해 자신의 권력을 유지해 왔다. 이제 우리의 삶의 과제는 이러한 정치의 진행을 전환시키는 것이다. 지금은 보다 실질적인 생성의 민주주의가 요구되는 시점이다. 민주주의는 고정불변의 정치체제가 아니다. 오히려 끊임없는 생성의 정치 체제로서의 민주주의에 대한 구상이 필요하다.

지배 권력자들이 신자유주의 지구화를 항구적인 자신들의 정치 형이상학으로 확신하고 있는 정치는 생성의 민주주의를 간과하는 경향성을 가질 수밖에 없다. 서민의 경제를 간과하고 있는 관점에서 현실의 정권이 드러내고 있는 정치 철학은 이미 인민에 의한 민주주의 정치의 역동성을 상실했다.

따라서 "우리가 복지국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라고 말하는 이명박 대통령, 복지를 '즐기는 것'으로 표현하고 있는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의 외양의 정치에 필요한 가르침이 바로 <군주론>인 것이다. 현실에서 마키아벨리가 말하는 군주는 없다. 하지만 인민은 언제나 살아 있다. 지금, 그리고 여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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