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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로 간 천문학자 "명작 썩히는 게으른 과학자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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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로 간 천문학자 "명작 썩히는 게으른 과학자들아!"

[親Book] 나대일의 <아인슈타인과의 두뇌 게임>

그 날 그 책을 처음 만났다. 그리고 그 순간부터 생전 만난 적도 없었던 그가 새삼 그리워졌다.

서늘한 나라에서 여러 해를 보내고 귀국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어느 무더운 여름날이었다. 허물없이 지내던 교수님 한분과 점심 식사를 같이 하기로 되어 있었다. 무슨 생각이었는지 평소 거의 입지 않던 청반바지를 꺼내 입고 집을 나섰다. 교수님 연구실에 들어서니 뜻밖에도 다른 학교에 계시는 교수님 한 분이 와 계셨다. 두 분의 대화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옷차림 때문에 몇 번 고사를 했지만 두 분은 괜찮다면서 필자를 이끌고 근처에 있는 학교 병원의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어색하게 따라나선 자리여서 영 마음이 편치 않았다. 까만 소복을 입은 젊은 여성 한사람이 홀로 외롭게 빈소를 지키고 있었다. 직접 만난 적은 없었지만 그가 쓴 논문을 통해서 또 과학 잡지에 기고한 글을 통해서 이름은 익숙했던 나대일 박사의 빈소였다.

두 분 옆에 숨듯 엉거주춤 서서 예를 갖추고 빈소를 빠져나왔다. 옷차림 하나가 필자의 행동을 이렇게 불편하고 어색하게 만들 줄이야. 두 교수님과의 늦은 점심 식사 자리가 이어졌다. 필자는 묵묵히 고 나대일 박사에 대해서 두 분이 나누는 이야기를 듣고만 있었다. 그가 발표했던 논문에 대한 칭찬에 이어서 순탄치만은 않았던 귀국 후의 연구소 생활 이야기가 이어졌다. 사제 관계로 만났었던, 그리고 그 때 그 빈소를 지키고 있었던 고 나대일 박사의 여인 이야기로 화제가 옮겨갔다. 학교로 자리를 옮긴 후 곧바로 병마가 닥쳐온 이야기까지 이어졌다. 두 분 말씀처럼 아까운 젊은 청년 천문학자의 죽음이었다.

▲ <아인슈타인과의 두뇌 게임>(나대일 지음, 동아일보사 펴냄). ⓒ동아일보사
하지만 점심을 하는 내내 필자의 마음은 정작 부끄럽게도 누런 봉투 속에 든 책 한 권에 가 있었다. 유족들이 빈소를 찾은 조문객에게 나눠준 <아인슈타인과의 두뇌 게임>(나대일 지음, 동아일보사 펴냄), 바로 그 책이었다. 식사를 마치자마자 다른 약속이 있다는 핑계를 대고 곧바로 근처 카페로 뛰어갔다. 자리에 앉자마자 누런 봉투에서 그 책을 꺼냈다. 그러고는 쉬지 않고 끝까지, 그 책을 읽어내려 갔다. 그렇게 필자는 그의 책을 처음 만났다.

최근에 오스트레일리아의 레이 노리스 교수가 쓴 보고서 <차세대 천문학>을 보면 다른 몇몇 천문학 분야와 함께 '교육과 홍보'를 차세대 천문학의 가장 중요한 분야로 언급하고 있다. <아인슈타인과의 두뇌 게임>의 머리글에는 이미 이런 생각이 아주 명쾌하게 서술되어 있다. 그는 "학자들에게 강의 활동이란 연구 활동의 연장이나 다름없는 것이다"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의 일반 대중을 위한 과학책에 대한 인식은 지금 봐도 날카롭고 정확하다.

"이런 상황에서 하물며 학자가 일반 대중을 위한 훌륭한 책을 쓰기란 하늘의 별을 따기 보다 더 힘들다. 재능의 한계도 그러려니와, 대중이란 학생이라기보다는 극장의 관객에 더 가까운 존재이기 때문이다. 관객은 흥미가 없으면 극장에 들어가지 않고, 재미가 없으면 극장을 떠난다. 이런 두려움 때문인지 우리 학계에서는 현대 과학이라는 거대한 명작을 관심 있는 사람들에게 공연해 보이려는 노력이 미흡했던 것 같다."

이런 인식을 바탕으로 그가 "신선한 학계의 공기를 일반 대중과 같이 호흡해 보려는 의도에서 현대 물리학의 최대 발견이었던 상대성이론과 이를 바탕으로 한 현대 우주론을 되도록 쉽게 써보았다"는 결정체가 <아인슈타인과의 두뇌 게임>이다. 대중을 위한 천문학 책의 저자라고 해봐야 여전히 고 조경철 박사나 한국천문연구원 원장 박석재 박사를 비롯한 몇몇 천문학자밖에 떠올릴 수 없는 현실을 생각하면 고 나대일 박사의 이런 현실 인식은 현재 시점에서도 여전히 유효하다고 하겠다. 작년에 현역 천문학자인 이석영 교수(<빅뱅 우주론 강의>)와 우종학 교수(<블랙홀 교향곡>)의 책이 출간된 것이 그나마 위안이다.

연구 활동 외에 강의와 과학 문화 활동을 막 시작하면서 혼란에 빠져있던 필자에게 이 책은 큰 공감을 일으켰고 나침반 역할을 했다. 고민을 나누는 동지를 만난 것 같은 느낌이었다. 형이 없는 필자에게는 '형님'같이 다가온 책이었다. 마음이 답답하거나 마감이 임박한 글이 잘 써지지 않을 때 이 책을 다시 꺼내드는 습관이 생겼다. 머리글을 다시 읽으며 마음을 가다듬었고 본문을 다시 읽으면서 필자가 쓰고 있는 글을 반추해 보는 거울로 삼았다.

그의 현실 인식보다 더 큰 미덕은 이 책의 이야기 방식에 있는 것 같다. "되도록이면 쉽게 써 보았다"던 그의 말처럼 이해가 어려운 상대성이론을 대중에게 설명하기 위해서 그는 스스로 이야기꾼이 되었다. 차분하면서도 호소력 있는 글로 극장의 관객을 위한 공연을 시작한 것이었다. 마치 뜨거운 별빛을 흡수했다가 고스란히 다시 발산하는 흑체처럼 그는 상대성이론을 온통 흡수한 다음 자신만의 이야기로 바꾸어서 당당하게 그 뜻을 온전히 대중들에게 발산하고 있다.

특수상대성이론을 설명하면서 장자의 '나비 꿈'을 들먹인다. '알고 보니 빛은 무죄'이고 '진범은 시간과 공간'이라면서 일반상대성이론을 설명한다. '시간은 감각이다'라고 시간의 상대화를 선언하기도 하고 '달리면 무거워진다'고 너스레를 떨기도 한다. 대중적 과학 글쓰기에 정답이야 없겠지만 그의 글쓰기가 하나의 전형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1993년 초판이 나왔으니 20년이 다 되어가지만 그의 글은 여전히 현대적인 느낌으로 살아 다가온다.

지난 주말에 미국에서 대학교에 다니는 아들 녀석을 만나러 갔다 왔다. 스무 살 청춘의 격랑을 겪고 있는 아들을 향한 부모로서의 애정 표현이기도 했지만 또 한편 이미 다 커버린 아들을 여전히 품안에 두고 싶고 그의 문제를 확인하고 공유했으면 하는 조바심이 담긴 여행길이기도 했다. 그런데 또 다른 의미에서는 격랑에 휩쓸린 필자 자신을 위한 여행이기도 했다. 최근 들어서 부쩍 늘어난 과학 문화 활동의 자기장 속으로 자의반 타의반으로 계속 빨려들어 가면서도 정작 관객 앞에서 본격적인 '공연'을 하기를 여전히 게을러하고 두려워하는 필자 자신을 위한 일상의 탈출이기도 했다.

미국 가는 비행기 속에서 읽을 생각으로 책이라고는 달랑 <아인슈타인과의 두뇌 게임> 한 권을 챙겼다. 그런데 선뜻 책을 펼칠 수가 없었다. 온갖 상념이 머릿속을 꽉 채우고 책을 접할 여지도 허용하지 않았다. 아들과의 짧은 주말 동거를 마치고 귀국하는 길에 비로소 이 책을 다시 펼쳐볼 수 있었다. 이번엔 책의 내지에 쓰인 글 한 구절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이 책을 행복한 어린 시절과 모든 읽을거리들을 마련해 주셨던 어머님께 바칩니다."

이제야 늘 그가 그리웠고 이 책이 남다르게 푸근하게 다가왔던 이유를 알 것 같다. <아인슈타인과의 두뇌 게임>을 다시 읽으면서 이번에는 아이들에겐 그런 부모가 되고 싶고 독자들에겐 그런 필자가 되고 싶다는 욕망이 생겼다. 작은 바람이 하나 더 있다면 지금은 절판된 <아인슈타인과의 두뇌 게임>이 다시 출간되었으면 하는 것이다.

숙명처럼 만났던 이 책에 대한 감흥과 편견을 오래도록 간직하고 싶다. 그 감흥과 편견을 더 많은 사람들과 나누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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