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한국은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에서 국외 출전으로는 역사상 최초로 16강에 진출했다. 월드컵이 국가적·국민적 축제일 수 있어도 개개인 모두가 거기 소환될 이유는 없기에, 또 국가적·국민적으로 조성된 흥을 구태여 일상의 에너지로 충전할 이유가 없기에, 나는 경기를 보지 않았다.
하지만 월드컵 경기의 시청 여부와 무관하게 한국이 경기하는 기간 내내 월드컵은 우리의 일상에 비선택적으로 개입해 들어왔다. 가령 일상적으로 듣는 음악 전문 라디오 채널에서까지 월드컵 특집으로 출전국의 국가(國歌)를 소개하는 식으로 말이다. 그때 방송 진행자는 가슴에 손을 얹고 비장하게 애국가를 부르는 우리 선수들을 떠올렸는지, 자기네 국가도 제대로 따라하지 못하는 유럽 선수들을 짐짓 조롱했다. 평소 러시아를 포함해 유럽 문화를 흠모하던 그 진행자의 내면에도 어김없이 대한민국 국민으로 훈육된 신체의 기억이 작동하고 있었나보다.
나는 고등학교 정규 교육을 끝으로 더 이상 애국가를 부르(는 의례에 참석하)지 않았던 것 같다. 문화 공간인 극장에서마저 국민의례를 강요했던 1980년대 후반을 떠올리면 정확히는 이미 십대 후반부터 일상적 국가 의례를 거부했던 셈이다. 그 대신 국민의례를 민중의례로, 애국가를 '임을 위한 행진곡'으로 대체해서 참여하고 열렬히 부르기 시작했다.
대한민국이라는 국가 형성을 위해 희생을 강요당한 순국선열 대신 한국 현대사가 배제했던 민주주의와 인권을 위해 자신을 바쳤던 민주열사를 추모하고, 영원하고 숭고한 국가 이미지를 재생산하는 애국가 대신 국가 폭력에 의해 희생된 이들을 기억하는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는 행위야말로 폭압적 국민국가가 강요하는 정체성 바깥에 설 수 있는 길이라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동질적 국민성을 소환하는 폭력적 일상의 재출현
따라서 오랫동안 나의 의식은 군부독재의 종식은 정치적 민주화이고, 정치적 민주화는 국가폭력을 제거하는 절대적 민주주의의 도래라는 단순한 등식을 이분법적으로 내재하고 있었던 셈이다. 김대중·노무현 정권이 실정과 한계를 노정했지만, 이어진 그 10년은 그야말로 한국식 민주주의를 선명하게 확보할 것이라는 기대를 받았다. 즉, 김대중·노무현 시대야말로 국가 폭력의 과거를 청산, 치유하는 동시에 한국의 현대사를 새롭게 구성하는 미래 시간을 열 것으로 믿었던 것이 사실이다.
결국 외환 위기나 보수우익의 결집 등 내우외환의 장애가 더해 한국 사회에 대한 새로운 비전을 현재화하려던 김대중·노무현 대통령 각자의 포부는 좌절됐다. 그러나 현재를 미래로부터 새로이 구성하려던 시도는 단순한 실패로 끝나지 않고 우리의 현재가 여전히 끔찍한 과거 가운데 침윤돼 있음을 적나라하게 까발려 주었다.
국민의 기본권을 요구했던 촛불 집회 참여자들에 대한 공권력의 사찰과 보복, 뒤이은 용산 철거민 살인은 물론이고, 다른 한편으로 광주항쟁 30주년 기념집회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 금지, 천안함 침몰을 빌미로 한반도 긴장 조성 및 나아가 참여연대를 비롯해 정부와 이견을 내면 어김없이 테러하는 우익 집단의 군복 코스튬플레이와 가스통 퍼포먼스 등이 우리의 현재 일상 속에 과거적 국민성을 소환하고 있는 것이다.
직접적으로는, 끊임없이 특정한 국민성을 요구하고 구미에 맞지 않으면 밥줄을 끊는 식의 극단적이고 치졸한 공권력이 유포하는 공포와 불안은 일상적 자기 검열의 언어적 선택과 자기 통제의 발화행위라는 실천을 낳고 있다. 정치적 공론장은 물론이고, 사적인 인터넷 접속에서도 친북/좌파/빨갱이라는 연결어가 반북/우파/국가주의의 대립항으로 떠돌면서 우리의 생각과 언어를 파고들고 분절화한다.
이런 대목에 와서야 <전장(戰場)의 기억>(도미야마 이치로 지음, 임성모 옮김, 이산 펴냄)에서 도미야마가 지적하는 일상이 전장과 분리된 것이 아니고, 일상을 구성하는 신체적 실천이란 국민적 정체성을 구성하는 신체적 실천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이야기를 주목하게 된다. 다시 말하면 한 국민 국가와 그 속에서 주조된 정체성이란 특정한 정치 현실(군부 독재와 같은)을 극복하거나 대체한다고 쉽게 제거되는 것이 아니었다.
비록 도미야마가 전장에서 희생된 오키나와인의 '일본인 되기'라는 동질화 과정을 중심으로 논의하고 있지만, 국민국가에 의해 육성된 우리의 일상적인 신체적(언어적) 훈육 역시 언제든 전쟁이 재개될 수 있는 정치 역학을 배경으로 한다는 점에서 우리의 정체성도 직·간접적 전쟁 경험 및 전장 동원의 가능성과 유리되지 않기에 도미야마의 오키나와를 먼 이야기로 치부하기 어렵다.
그러나 도미야마가 개인의 다양한 일상적 실천이 국민적 정체성으로 기계적으로 환원된다고 보는 것은 아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하는 점은, '나'라는 개인의 정체성이 상상하듯이 균일하지 않은 것은 물론이고 우리가 정체성을 형성하는 과정이란 이렇듯 나의 사회적 실천 가운데 무의식적으로 습관화되어 익숙해져버린 신체적 변용을 동반하기에, 그것은 쉽게 지워지지 않고 상이한 정치적 맥락 가운데 불시에 안착하는 악몽처럼 동거한다는 점이다. 우리는 특정한 이데올로기적 역사적 맥락의 국민성을 지닌 자로 국가에 의해 소환되고 검증받는 가운데 그러한 국민성을 거부하는 이중적 지점을 형성할 수밖에 없다.
프란츠 파농이 묘사했듯이 식민지 공간에서의 정체성은 지배자/피지배자로 명확히 나누어지지 않는다. '식민주의자인 자기'와 '식민화된 타자'의 이항대립이 아니라 둘 사이의 심연 속으로 빠져드는 양의적 정체성을 이룬다는 것이다.
반면, 내가 그토록 쉽사리 국민적 정체성의 외부에 설 수 있다고 착각했던 것은 폭력국가와 이항대립적인 숭고한 상상적 공동체(민주국가)를 내 정체성의 근거로 삼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한 가상적·이념적 근거의 배경에는 "꿈같은 무한한 미래를 한없이 확신하면서 자기 존재의 필연성을" 확보하려는, 즉 또 다른 균질적 정체성을 구성하려는 욕망이 숨어 있었던 게 아닐까.
그 결과 국민성을 폭압적으로 길들여 말하는 입을 막고 말을 가로채는 국가폭력과는 다른 곳에서, 역사 및 그 속에서 희생된 이들의 말을 특정한 방식(핍박받는 혹은 저항하는 민중)으로 재구성하고 "대신 말할 수 있다"고 단정하는 결과를 낳았던 것은 아닐까. 파농의 말대로 하얀 가면 뒤에 흑인의 진정한 정체성이 숨겨져 있는 게 아니듯이, 국민성의 이면에 순정한 민중성이 오롯하게 자리 잡고 있는 것은 아니다. 폭력적인 지배의 벡터에 대응하는 또 다른 벡터는 특정한 정체성으로 규준화·동질화하려는 시도를 벗어날 때라야 비로소 구성될 수 있을 것이다.
▲ 프란츠 파농. 그의 지적대로 식민지 공간에서의 정체성은 지배자/피지배자로 명확히 나누어지지 않는다. '식민주의자인 자기'와 '식민화된 타자'의 이항대립이 아니라 둘 사이의 심연 속으로 빠져드는 양의적 정체성을 이룬다는 것이다. ⓒ프레시안 |
비-역사의 장 : 불확정적·반복적인 '수행적 시간' 속에서 지각 불가능하게 되기
한국전쟁이 발발한 지 올해로 60년을 맞았다. 정부는 유엔군으로 참전했던 영미권의 퇴역 군인들을 대거 초청해서 과거 전쟁을 되새기고 기념하면서, 종식되지 않은 전쟁을 새삼 확인하면서, 우리의 현재 위에 계속해서 과거의 전쟁 기억을 덧입히고 있다. 국가 전쟁에 동원되어 자신의 선택이나 의지와 무관하게 희생된 용사들의 정체성은 시대적 분위기 속에서 다시 한 번 국민의 이야기로 각색된다.
더구나 보수 언론이 천안함 희생자들을 끊임없이 '영웅'으로 명명할 때, 그리고 천안함 사태에 대한 대통령의 발표가 상징적으로 '전쟁 기념관'에서 행해질 때, 어느새 우리는 전장 가운데 떠밀려 들어오게 된다. 그에 발맞춰, 소극적으로 북한 인민들의 인권을 빌미로 좌파의 도덕성을 문제 삼던 우익들은 이제 적극적으로 북한 군부 세력과의 대치 국면을 조성하여 국민의 자격을 판정하려 한다.
이 모든 상황은 분단의 일상이라는 객관적 현실 인식을 넘어서, 선제 공격의 실질적 가능성을 타진하고 그 정당성을 확보하는 동시에 전쟁 동원에 응답할 국민성을 소환하고 있다. 이것은 국민적 동일성과 타자성을 이분화, 강화하는 것 이외의 어떤 다른 결과에 이를 수 있을까(물론 이 동일성에는 글로벌 스탠더드를 충족시키는 신자유주의적으로 선진화된 국민이 더해질 것이다).
이 옴짝달싹하기 힘든 정치·경제적 상황이 만드는 '한국인'에 이제 꼼짝없이 포박당해야 하는 걸까. 반복하는 역사의 교훈은 무엇일까? 우리는 일본 제국주의의 식민지 치하에서 기득권을 누렸던 이들이 해방 후 대한민국 안에 연착륙하면서 반공이데올로기와 국가 재건을 내세워 자신들의 흠결을 지우고 저항 세력을 단죄했던 것을 알고 있다. 마찬가지로 오늘날에도 자신의 기득권을 위해 온갖 탈법을 저질렀던 이들이 권력을 쥐고 국민의 자격을 검증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역사적 반복에서 자발적으로 벗어나는 길이 필요하다. 도미야마가 계속해서 참조하듯이, 파농은 <대지의 저주받은 사람들>에서 우리와 너무나 닮은 알제리의 식민주의 시대를 서술하면서 어떤 특권적인 편에서 봉인하고 포장한 고유한 민족성(민족문화)으로 환원하는 모든 시도를 거부한다.
일본 제국주의가 서술한 한국인, 반공 이데올로기가 소환한, 선진 글로벌 스탠더드가 요구하는 국민성 바깥으로 나와서 우리 자신의 삶을 이야기하고 들을 때, 어떤 설명자나 해석자도 거부할 수 있을 것이다. "사물을 인식하는 주체는 역시 교도하는 주체"라는 점에서 파농은 스스로 의사-치료자-교도자로서의 고정된 일방적 역할을 해체하려고 시도하지 않았던가.
파농이 임상 치료를 통해 수행하는 것은 진찰을 해서 환자의 내부에 병근(病根)을 발견하거나 그것을 치료하는 것이 아니다. 즉, 자신의 욕망을 타자성(백인)에 의해 잠식당한 환자 앞에서 '그런 꿈을 포기하게 하는 것이 나의 목적이 아니라, 오히려 동기가 한번 해명되면 그가 갈등의 진정한 근원을 행해서, 즉 사회구조를 향해서 행동을 선택할 수 있게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따라서 파농에게 "임상 치료란 사회를 새롭게 열어가는 힘을 계속 끌어내는 일"이다. 그때 치료의 과정은 제도적·폭력적 정체성 규정에 시달리면서 그 규정성이 낳은 흔적들(그것은 내부의 폭력, 불안이나 공포 같은 정신 장애, 작게는 자기 검열과 통제 같은 것들이 될 것이다)을 발견하는 과정이며, 그것으로부터 끊임없이 또 다른 힘을 이끌어내는 과정일 수 있다.
또 그 과정은 미리 규정된 정체성 바깥에서 매 순간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수행적(performative)"이며, 식민주의적 역사건, 분단적·이데올로기적 역사건 기존의 역사적 장에서 새로운 관계와 역사를 열어간다는 점에서 우리를 "비-역사"로 끌어들이는 힘을 발휘할 것이다. 이를 통해서 우리는 폭력적 힘이 조성한, 우리에게 이름(정체성)을 부여하는 "유일하며 당위적인 역사를 벗어나서 그러한 힘에 계속 대항하면서 거슬러 오르는 운동" 속으로 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거슬러 오르는 운동 가운데 우리는 기존의 지배적 관점으로는 "지각할 수 없는 존재"일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가 어떤 제도적 폭력과 도식적 힘에 저항하는 길은 단지 "'여기-지금'에 고정되지 않고 돌이킬 수 없는 분해와 죽음의 충격을 받아들이면서 투쟁하는 '나'"로 살아가는 과정에서 발견할 수 있을 뿐이다. 이 과정이야말로 또 다른 고정된 자기 찾기에 그치지 않고 새로운 사회성으로 이행해 나가는 과정을 열어줄 것이다.
'철학자의 서재'는 <프레시안>과 한국철학사상연구회가 공동으로 진행하는 서평 연재입니다. 매주 주말 한국철학사상연구회 철학자들이 심사숙고해 선정한 책을, 철학자가 직접 심혈을 기울여 쓴 서평으로 소개합니다. <편집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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