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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유일의 초강대국? 미국은 이제 종이호랑이!

[해외 시각] 영국, 사우디, 파키스탄도 미국 따르지 않아

2001년 9.11 사태 이후 미국의 세계 전략은 군사력에 의한 영향력 확대였다. 미국은 2001년 아프간 침공, 2003년 이라크 침공에 이어 이란까지도 군사력으로 무너뜨려 대중동지역 전체를 미국의 영향권 아래 두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추진했다. 그러나 12년이 지난 지금 이러한 미국의 계획은 백일몽임이 드러나고 있다.

특히 지난 8월 30일 미국의 가장 충실한 동맹국이었던 영국의 의회가 미국의 시리아 군사 공격에 반대하면서 군사력에 의한 미국의 세계제패 전략은 결정적 타격을 입었다. 이어 지난 달 미국의 숙적이었던 이란이 전면적 평화공세에 나서면서 오바마 정부의 중동 전략은 협상에 의한 문제 해결 쪽으로 크게 선회했다.

물론 이같은 방향 선회는 미국의 자발적 선택이라기보다는 미국의 영향력 쇠퇴에 따른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측면이 강하다. 영국은 물론이고 미국의 전통적 우방이었던 파키스탄과 사우디아라비아, 이집트, 심지어 미국에 의해 세워진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정부마저도 미국의 뜻을 거스르고 있기 때문이다. 조지 W. 부시의 이라크에 대한 예방전쟁 이후 10년만에 미국은 국제사회에서 종이호랑이로 전락한 것이다. 앞으로 미국이 할 수 있는 일은 '정직한 중재자'로서 대화와 협상에 의해 국제적인 갈등을 풀어나가는 것이다.

다음 글은 9.11 사태 이후 군사력으로 대중동지역을 제패하려던 미국의 야망이 어떻게 무산됐는가를 보여주는 중동문제 전문가 딜립 히로의 글을 전문 번역한 것이다. 원문 (원문보기) <A World in Which No one is Listening to Planet's Sole Superpower>는 지난 9월 29일 진보적 웹진 <톰 디스패치>에 게재됐다.<편집자>

종이호랑이로 전락한 미국

지구 상의 유일한 초강대국이 자신이 공개적으로 밝힌 의지를 다른 나라에 관철시키지 못하는 일이 거듭되고, 무시만 당한다면 어떻게 될까? 이런 질문은 (조지 W. 부시 전 대통려이 이라크를 침공했던) 10년 전만 해도 상상 속의 또 다른 지구에서나 일어날 수 있는 수수께끼 정도로 여겨졌을 것이다.

그런데 실제로 이런 일이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 특히 대중동지역(Greater Middle East)에서 벌어지고 있다.

시리아 화학무기 처리를 둘러싸고,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펼쳐준(당초 미국이 추진했던 군사행동 대신 유엔 감시 하에 화학무기를 제거하자는) 우산 밑으로 체통없이 서둘러 피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이 일화는 훗날 대중동지역에 대한 미국 영향력 쇠퇴의 결정적 전환점으로 얘기될 것이다.

대중동지역은 중국 국경에서 북아프리카에 이르는 광대한 지역으로 '불안정의 호(arc of instability)'라는 그럴듯한 이름이 붙어있다. 한때 조지 W. 부시와 네오콘 일당은 이 지역 전체를 철저하게 평정해 미국의 영향권 아래 둘 것을 꿈꾸었다. 하지만 지금 대중동지역은 평정은커녕 더 큰 혼란으로 가고 있다.


▲ 시리아의 화학무기 사태를 두고 미국이 군사공격을 유보하고 러시아의 화학무기 폐기 방안을 수용한 것은 미국의 중동 지배력이 쇠퇴한 것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으로 회자되고 있다. 사진은 지난 9월4일 러시아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에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옆에서 시큰둥한 모습을 보인 블라미미르 푸틴 대통령. ⓒAP=연합


지금처럼 동맹국이건 적국이건 세계 최후의 슈퍼파워로 한때 가공할 힘을 휘둘렀던 미국의 말을 경청하거나, 고분고분하게 말을 듣는 나라들이 줄어든 적이 없다. 이집트 군부에서 사우디 왕가, 이라크의 시아파 지도자, 이스라엘의 정치인들에 이르기까지 미국에 맞짱 뜨는 인물의 명단이 늘어나고 있다.

미국의 영향력이 쇠퇴했다는 증거는 최근 곳곳에서 찾을 수 있다. 예를 들어 2011년 8월 바샤르 알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은 오바마가 단호하게 촉구한 퇴진 요구를 일축했다. 오바마 정부의 한 고위 관료갸 "아사드는 퇴출될 것이 분명하다"고 장담한 이후에도 달라진 것이 없었다. "세상 일은 뜻대로 안된다"는 속언 그대로다.

비슷한 사례는 2010년 3월 오바마와 하미드 카르자이 아프가니스탄 대통령과의 회담에서도 찾을 수 있다. 하미드는 미국이 대통령 자리에 앉힌 인물이다. 당시 오바마는 30분이나 하미드 정부의 부패와 무능에 대해 질책을 했다. 이런 문제를 개선하지 못하면 미국의 지원도 축소될 것이라는 경고도 덧붙였다. 하지만 오바마 정부는 다음 달 워싱턴을 방문한 하미드를 극진하게 귀빈 대접을 하면서, 여전한 아프간 정부의 부정부패와 무능에 대해서는 거의 입도 뻥긋하지 않았다.

2009년 5월 벤야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회담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오바마는 서안지구와 동예루살롐에 유대인 정착촌 확장 건설을 중단할 것을 이스라엘 측에 요구했다. 그러나 힘겨루기 끝에 세계 유일 강대국은 꼬리를 내리고, 이스라엘의 정착촌 확장은 계속됐다.

대중동지역에서 미국의 권위가 쇠퇴하는 것을 보여준 사례들은 이밖에도 많다. 오바마가 2009년 1월 대통령에 취임하기 전부터 이런 과정은 상당히 진행되고 있었다.

사실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그리고 테러와의 전쟁의 일환으로 벌인 몇몇 전투 등 미국이 벌인 전쟁들은 해가 갈수록 점점 실패로 끝날 것이 명백해지고 있었다. 오바마는 취임 연설에서 미국은 "세계를 이끌 준비가 되어 있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그 선언은 중동에서 철저하게 틀린 것으로 드러날 호언이었다.

아프가니스탄 그리고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하고 점령한 미국의 행위는 의기양양한 유일 초강대국이 2단계 국면으로 접어드는 시발점이었다. 1단계는 1991년 12월에 끝났다. 상호확증파괴(MAD) 시대, 즉 냉전의 상대역인 소련이 붕괴한 것이다. 10년 뒤 미국은 80개에 육박하는 나라에 걸쳐 '테러집단'으로 규정한 조직들을 분쇄하고 '악의 축(이라크, 이란, 북한) 국가들의 정권 교체를 위한 작업에 나섰다.

'악의 제국' 소련을 패배시키면서 미국은 상대적으로 부담이 적은 이런 목표를 달성할 자신감이 절정에 달했다.

미국은 파키스탄을 발판으로 그 과업을 달성하려 했다. 파키스탄은 미국의 동맹국이자 원조를 받고 있으면서도 1990년대 아프간 탈레반이 등장하는 데 주요 역할을 담당했다. 미국 정책결정자들의 노력은 분통이 터질 정도로 효과가 없었다. 파키스탄의 지도자, 군부, 주민들은 미국으로부터 얻을 것은 최대한 얻으면서(미국은 아프간 전쟁에서 파키스탄에 대한 의존이 필수불가결한 처지), 대가는 최소한으로 지불하는 데 능수능란했다.

오늘날 파키스탄 경제는 미국의 원조와 국제통화기금(IMF)의 정기적인 만기 연장 대출이 아니면 정부를 운영할 수 없을 정도로 파탄난 상태다. IMF에 대한 미국의 발언권이 절대적이라는 점에서 오바마 정부는 파키스탄을 마음대로 휘두를 수 있어야 이치에 맞을 것이다. 하지만 파키스탄 지도부는 대부분 반미감정을 갖고 있는 주민들로부터 지지를 받은 경우가 아니라면, 미국의 외교적 무능이 부각될 기회를 좀처럼 주지 않는다.

적절한 사례가 하피즈 무하마드 사예드의 과감한 행위였다. 그는 2008년 인도 뭄바이에서 미국인 6명을 포함해 166명의 무고한 시민을 살해한 라슈카르 에 타이바(순정한 군대, LeT)의 창립자이자 지도자다. 사건 이후 미국 국무부와 유엔은 이 단체를 테러조직으로 규정했다. 2012년 미 국무부는 사예드의 체포와 기소에 결정적인 도움이 되는 제보에 1000만 달러를 현상금을 걸었다.

그러나 62세의 늙은 전사 사예드는 공개 기자회견을 열고 "나 여기 있다. 미국은 현상금을 나에게 줘야할 것"이라고 큰소리쳤다.

그는 파키스탄 펀잡 주의 주도 라호레의 요새같은 근거지를 벗어나서 활동을 게속하고 있다. 그는 지난 2월 데클런 월시 <뉴욕타임스> 기자와 인터뷰에서 "나는 보통사람처럼 돌아다닌다. 그게 내 스타일"이라고 떠벌였다.

그는 파키스탄 곳곳 대규모 집회에 나타나 연설하고, 파키스탄 TV에서 초대하기에 안달난 유명인사다. 파키스탄에서 활동하는 정보기관 관계자들에 따르면, 그가 이끄는 조직은 아프가니스탄에 주둔한 나토군과 인도 외교관 시설에 대한 공격을 잇따라 감행하고 있다.

지난 8월 사예드가 파키스탄 독립일에 널리 홍보된 퍼레이드를 이끌었다. 지역 경찰의 보호까지 받으면서 말이다. 이슬라바마드 주재 미국 대사관의 한 대변인은 "이 자의 움직임과 활동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 파키스탄 정부가 이 자에 대한 제재를 하도록 촉구한다"고 말할 뿐이다.

미국이 더 골치 아파하는 것은 알카에다와 연계된 파키스탄 탈레반의 역할이다. 파키스탄 탈레반은 미 국무부에 의해 테러조직으로 규정돼 있는데, 지난 5월 파키스탄 총선 결과에 결정적인 영향력을 발휘했다.

파키스탄 탈레반은 집권 파키스탄 인민당이 무슬림이 아닌 사람들도 당원으로 받아들인다는 이유로 대중집회와 후보들을 공격할 것이라고 위협했다. 이러한 위협으로 집권 인민당(PPP)은 농촌사회에 가까운 파키스탄 대부분의 선거구에서 제대로 유세를 펼치지 못했다. 신뢰할 만한 여론조사도 할 수 없는 사회에서 대중집회의 규모와 빈도가 당의 위세를 보여주는 핵심 지표로 작용하는데 이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 것이다.

그 결과 나와즈 샤리프가 이끄는 야당 <파키스탄무슬림리그>가 압승을 거뒀다. 이 승리로 의회에서 집권당의 힘은 급격히 약해졌다.

지난 9월 중순 샤리프 총리는 파키스탄 탈레반과 조건 없는 평화협상을 위한 초당적인 합의를 이끌어내며 신세를 갚았다. 탈레반 지도부는 몸값을 더 챙겼다. 파키스탄 국경지대에서 자신들에 대한 미국의 무인기 공격을 중단시키라고 샤리프 정부에게 요구한 것이다.

샤리프 정부는 유엔 총회에서 미국의 무인기 공격을 의제로 제기하겠다는 발표를 했다. 샤리프 정부의 조치는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 예멘, 그리고 소말리아에서 미국의 무인기 공격에 대한 유엔인권 및 대테러 특별조사위원 벤 에머슨의 보고서와 동시에 나올 가능성이 높다. 에머슨 보고서는 10월 유엔 총회에 제출될 예정이다. 에머슨은 이미 미국의 무인기 공격은 파키스탄의 주권 침해에 해당한다는 의견을 밝혔다.

나아가 샤리프 정부는 미국의 거부 입장을 뻔히 알면서도 아프가니스탄과의 '화해'를 촉진하기 위한 조치라는 명분으로 아프간 탈레반 수감자들을 석방하기 시작했다. 백악관에서 '요주의 인물'로 점찍어놓은 수감자도 포함됐다.

하지만 아프간 탈레반의 최고지도자 물라 무하마드 오마르(파키스탄 정부의 은밀한 보호를 받고 있는 것으로 널리 믿어진다)가 아프간의 카르자이 정부와 협상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조짐은 없다. 그는 틈만 나면 카르자이는 미국의 앞잡이라고 비난하고 있다.

오마르는 지난 8월 초 금식 기도를 끝내고 벌이는 연례 축제 '에이드 알 피트르'을 맞아 발표한 메시지를 통해 변함없이 강경한 입장을 보였다. 그는 "2014년 선거라는 이름의 기만적인 드라마에 대해, 아프간의 신실한 신도들은 흔들리거나 참가할 일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나아가 그는 미국이 주도하는 나토군과 아프간에 파병된 동맹국들에 대해 투쟁을 지속할 것을 선동하면서, 아프간 보안군은 외국군, 정부관료, 미국이 주도한 군에 협력하는 아프간인들을 공격하라고 부추겼다.

한편, 오바마 정부는 2014년 12월까지 미국과 다른 나토 전투병력이 아프간에서 철수 한 뒤에도 '아프간군 훈련'을 명분으로 상당 수의 미군 병력을 유지할 수 있는 협정에 카르자이 대통령이 서명하라고 압력을 가해왔다. 하지만 카르자이는 자신의 정치적 생존이 미국에 의존하고 있음에도 지금까지 강경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미국의 지원으로 정부가 수립된 이라크의 경우도 비슷하다. 부시와 오바마 정부 모두 1만~2만 명의 군사교관과 특수전 부대를 이라크 현지에 남겨두기 위해 협정을 맺으려고 노력했지만 친이란 성향의 시아파 총리 누리 알말리키가 완강히 거부하면서 실패로 끝났다.

요즘 말리키 정부는 미국의 거듭된 불만에도 불구하고 자국 영토와 영공을 통해 이란제 무기가 시리아 정권에 공급되는 것을 허용하고 있다. 반면 지난 8월말 시리아 정권이 화학무기를 사용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미국이 시리아 공습을 추진했을 때 이라크는 시리아에 대한 군사공격을 위해 영공을 제공하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라고 선언하기까지 했다.

'의지의 동맹'의 쇠퇴

러시아 푸틴 대통령은 지난 9월 11일 미국의 시리아 군사공격 계획에 대해 <뉴욕타임스>에 논쟁적인 기고문을 게재했다. 이 글에서 푸틴은 "외국의 국내정치 문제에 대해 군사개입을 하는 것이 미국에게는 흔한 일이 되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전세계의 많은 사람들은 점차 미국이 민주주의의 모델이 아니라 야만적인 힘에 의존하고, '우리와 함께 하지 않으면 적'이라는 슬로건으로 억지로 동맹세력을 끌어모으는 나라로 보고 있다"고 주장했다.

푸틴의 기고문이 발표되기 며칠 전 오바마는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에서 시리아 문제에 대해 '동맹 전선'을 결성하는 데 실패했다. 20개 참가국 중 미국의 시리아 공격에 찬성한 나라는 간신히 절반에 이르렀을 뿐이다.

브릭스 5개국(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남아공)은 유엔 안보리의 승인이 없이시리아에 대해 군사공격을 해서는 안된다는 입장이었다. 세계에서 무슬림 인구가 가장 많은 국가인 인도네시아와 아르헨티나도 같은 입장이었다.

G20 정상회의 1주일 전, 영국 의회는 미국의 주도하는 대 시리아 공격에 합류하자는 결의안을 부결시켰다. 미국의 '푸들'로 불리는 영국이 미국의 목줄을 빠져나가면서, 오바마는 처절한 패배를 맛보았다.

궁지에 몰린 오바마는 미 의회의 동의를 구하려 했다. 하지만 미 의회에서도 오바마의 군사행동 계획에 동조하는 의원은 소수에 불과했다. 의원들은 전쟁에 대한 유권자들의 반감이 크고, 시리아에 대한 공격이 국익에 부합한다고 믿는 미국인들의 거의 없다는 여론조사에 부응해 오바마의 결의안을 반대하는 쪽에 줄지어 섰다.

이때 존 케리 국무장관이 즉흥적으로 언급한(시리아가 스스로 화학무기를 폐기한다면 미국의 군사공격을 피할 수 있다는, 하지만 그런 일은 없을 것이라는) 제안을 러시아가 잽싸게 낚아채 진지한 협상 의제로 만들어버리는 일이 생겼다. 결국 오바마는 TV 연설을 통해 시리아 화학무기 폐기를 위한 푸틴의 제안을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발표했다.

미국의 쇠퇴를 드러낸 이례적인 협상

케리 국무장관과 러시아의 외무장관 세르게이 라브로프가 제네바에서 타결한 시리아 확학무기 폐기안이 러시아의 입장을 더 반영한 것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이 협상안은 미국의 군사공격은 절대 안된다는 점을 명시했다. 또한 오바마 정부가 피해가려 했던 유엔안보리가 협상안의 실행과 이행여부를 감독하는 중심기관의 역할을 맡게 됐다.

협상안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러시아는 거부권을 가진 안보리 상임이사국으로서 영향력이 건재하다는 것을 보여줬다. 또한 러시아는 시리아 정권이 미국의 공격으로 군사능력이 위축될 위기를 면하게 해줬다. 그 결과 시리아 대통령이 반군들에 대해 전력 우위를 유지할 수 있게 됐다. 전반적으로 시리아 반군과 미국은 완전한 패자가 된 것이다.

패자 중에는 터키, 사우디아라비아, 카타르, 그리고 요르단도 있다. 반대로 이란과 이집트 군부는 정반대의 이유로 승자에 속한다. 시라아 아사드 정권은 이란과 같은 시아파의 일파인 알라위파이며, 이스라엘과의 대결전선에서 가장 중요한 동맹세력이다. 이집트 군부 입장에서도 자신과 적대관계인 무슬림형제단이 아사드의 불구대천의 적이라는 점에서 소득이 있다.

이집트 군부는 사상 최초의 민주적 선거로 대통령이 된 무하마드 무르시를 축출한 뒤, 중동에서 가장 오래된 정치조직이자 무르시의 정치적 기반인 무슬림형제단 자체를 궤멸시키려고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지난 7월 3일 쿠데타를 일으킨 이집트 군부는 오바마가 이집트 군부의 행동에 대해 곤혹스러워 하면서도 끝내 이를 '쿠데타'로 규정하지 않는 것을 보고 안심했다. 이집트 군부의 행위를 쿠데타로 규정하면 (반민주적 정권 교체의 대해서는 미국의 원조를 중단한다는) 미국의 외국원조법 규정에 따라 원조가 중단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미국의 대응은 지난 2012년 아프리카 말리에 대한 원조를 중단한 것과 대조적이다. 당시 말리 군부는 무혈 쿠데타로 민주적으로 선출된 아무두 투레 대통령을 축출했었다.

오바마가 이집트에 대한 원조 중단을 검토하려 했을지 모르지만, 이스라엘 측은 '장시간 전화 통화'에 의한 대미 로비를 통해 이집트 군부에 불리한 어떠한 제재도 없을 것을 분명하게 보장했다.

이스라엘의 총리이자 외교장관인 벤야민 네타냐후와 모셰 얄론 국방장관, 그리고 국가안보보좌관 야코프 아미드로르는 미국의 상대편인 케리, 척 헤이글, 수전 라이스에게 전화를 걸어, 무르시 이후의 이집트 정권에 연간 13억 달러의 군사원조를 동결시키지 말 것을 촉구했다.

이집트 군부에게는 이스라엘의 대미 로비력이 여전히 막강하다는 것은 희소식이었다. 특히 주미 이스라엘 대사 마이클 오렌은 미국의 원조가 중단되어서는 안된다는 점을 강력하게 주장했다. 이스라엘의 유력 칼럼니스트 알레스 피시먼은 지난 8월 25일 이스라엘 최대 일간지 <에디오트 아하로노트>에 "이스라엘은 미국에 대해 거의 필사적인 외교전을 펼쳐왔다"고 실토했다.

이 글이 발표된 시점은 이집트 내무부 소속 치안군이 평화적 연좌시위를 벌이고 있던 무슬림형제단 지지자 천여명을 학살한 지 열흘이 지난 때였다.

오바마는 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한 이집트 군부에 대해 "길거리에서 시민들이 살해되고 인권탄압이 자행되면 전통적인 협력관계는 유지될 수 없다"고 경고했다. 하지만 오바마가 실제로 취한 조치는 이집트와의 연례합동군사훈련을 취소한 것이 전부였다.

아프가니스탄처럼 미국의 원조를 받는 국가이면서 경제가 추락하고 있는 이집트에 대해 미국이 보여주는 무능력은, 무르시가 축출된 뒤 헤이글 국방장관이 이집트 국방장관 압둘 파타 엘시시와 15차례나 가진 전화통화 내용이 폭로되면서 확실하게 드러났다.

헤이글은 군부 쿠데타를 주도한 엘시시 장군에게 "방향을 바꾸라"고 간청했으나 무위에 그쳤다. 아프간의 카르자이 정부, 파키스탄 지도부, 그리고 아사드 시리아 정권에 대해 드러난 미국의 무능력이 이집트 군에 대해서도 다시 드러난 것이다.

이집트에 대한 미국의 군사원조 중단 위협은 중동의 오랜 동맹국인 사우디아라비아로부터도 반격을 받았다. 미국에 대한 노골적인 도전으로 비쳐지는 발언이 사우디아라비아의 외교장관 사우드 알파이잘로부터 나왔다. 그는 공개적으로 미국과 유럽연합이 이집트에 대한 원조를 철회하면 어떠한 재정적 공백도 대신 채워줄 것이라고 약속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지난해 1030억 달러의 재정흑자를 기록했다는 점에서 그의 발언에는 무게감이 실렸다.

이집트에서 쿠데타가 일어난 지 일주일 안에 사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 그리고 아랍에미레이트 3개 원유생산국들은 이집트 재정 지원을 위해 120억 달러를 쏟아넣었다. 이들 나라들은 모두 대외 안보를 미국의 지원에 의존하고 있다.

이렇게 중동의 전제왕정들이 이집트 군부가 민주적 질서로의 복귀를 호소하는 미국에게 도전할 수 있도록 부추겼다.

호전적인 선전과 외세에 대한 이집트의 공포증을 이용해 이집트 군부는 미국을 무시하는 차원을 넘어섰다. 그들은 미국이 무슬림형제단과 공모하고 있다는 음모론을 퍼뜨리기까지 했다. 이런 음모론은 국영 매체와 말 잘듣는 민영 매체들을 통해 부지런히 전파되고 있다.

예를 들어 지난 8월말 국영 신문 <알아흐람>은 '보안 소식통'을 인용하는 형식으로 압델 나세르 살라마 편집인의 선동적인 커버스토리 기사를 내보냈다. 보안당국이 이집트 주재 미국 대사 앤 패터슨, 무슬림형제단 지도자 카라트 엘샤터(당시 체포된 상태), 37명의 테러리스트, 가자지구에 근거지를 둔 200명의 무슬림 전사가 연루된 음모를 적발해 무산시켰다는 내용이다. 이들은 이집트와 가자지구를 연결하는 비밀땅굴을 통해 시나이 반도에 침투해 혼란을 야기하려고 했다는 것이다.

이런 내용은 이집트 북부를 고립시켜 분리독립시키려 한다는 음모와 연결된다. 패터슨 대사의 대응은 살라마에게 항의 편지를 보냈을 뿐이다. 이런 얘기들은 이집트에서 확대 재생산되고 있으며, 대중의 심리에 단순한 음모론이 아니라 사실처럼 자리잡고 있다.

10여 년전만 해도 이집트 군부 독재자가 새로 등장해 공개적으로 미국을 이렇게 감히 중상모략하는 지경에까지 이를 것을 누가 상상할 수 있었을까? 4반세기 동안 미국의 관대한 원조가 중단되지 않고 계속 흘러들어가는 피원조국인 처지에서 말이다. 미국의 지배력이 대중동지역에서 쇠퇴하고 있다는 증거를 찾는다면, 달리 멀리서 찾을 필요도 없다.


필자 약력
딜립 히로는 극작가, 정치칼럼니스트, 저널리스트이자 역사학자로 특히 남아시아, 중앙아시아, 중동, 그리고 이슬람 문제의 전문가로 꼽힌다. 1947년 인도·파키스탄 분리 이후 영국에서 독립한 인도로 이주한 힌두계 부모 밑에서 태어났다. 필자는 미 버지니아 폴리텍과 주립대에서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Apocalyptic Realm: Jihadists in South Asia (2012)와 파이낸셜타임스가 '그 해 최고의 책' 중 하나로 선정한 Inside Central Asia: A Political and Cultural History of Uzbekistan, Turkmenistan, Kazakhstan, Kyrgyzstan, Tajikistan, Turkey and Iran (2009) 등 33개의 저서를 썼다. 가디언, 뉴욕타임스, 워싱턴포스트, 옵서버의 고정 필자이며, CNN과 BBC의 논평가로도 활동하고 있다. 런던에 살고 있다.

(전문 번역: 이승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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