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뭐래도 부정할 수 없는 흐름이 있다. 정권교체가 대세라는 사실이다. '이대로는 안 된다. 바꿔보자'는 것이 정권교체의 사회심리적 동력이다. 그런데도 야권이 우세를 잡지 못하고 있다. 2007년엔 정권교체 열망 때문에 바뀌는 건 기정사실이었고, 누가 야권의 후보가 될지에 관심이 쏠릴 뿐이었다. 그 때에 비해 정권교체에 대한 바람이 결코 약하지 않은데 어떻게 된 일인지 야권 후보가 뒤지는 형세다.
이를 설명할 수 있는 논리는 두 가지가 가능하다. 하나는 박근혜 후보가 이명박 정부와 다르다는 것이다. 지난 대선에서 아깝게 패배했고, 뒤이은 18대 총선에서 '친박'은 천덕꾸러기가 됐다. 또 세종시 수정을 놓고 박 후보와 이 대통령은 날카롭게 대립했다. 그 결과 박 후보의 정체성에 '반(反) MB'라는 요소가 자리잡게 됐다. 그래서 한때 여론조사에 의하면 '박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그것이 정권교체'라는 여론이 50%에 달했다.
이번에도 박 후보가 지닌 반MB 요소 때문에 야권이 정권교체의 여론을 온전히 수용하지 못한 탓에 열세라는 분석이 가능하다. 그런데 사실 이미지로 보면 다를 수 있으나, 박 후보가 경제민주화 등 개혁 정책을 포기함으로써 박 후보와 이 대통령은 사실 한 몸이 됐다. 후보 시절을 제외한 이 대통령, 두 번의 선거에서 패배한 이회창 전 총재, 박 후보 등은 모두 똑같다. 분단체제에서 기업사회를 지향하는 반공보수가 그들의 공유 정체성이다.
이쯤 되면 박 후보에게 반MB 요소가 있다는 주장이나 그가 정권을 잡아도 정권교체라는 느낌은 객관적 사실이 아니라 만들어진 허구다. 박 후보가 지난 대선에서 주장한 '줄푸세'는 그야말로 대한민국 보수가 포기할 수 없는 정책 레짐(policy regime)이다.
MB가 충실하게 추종한 줄푸세 노선에 따른 폐해를 바로잡자는 것이 김종인 새누리당 국민행복추진위원장이 표방한 경제민주화였다. 김 위원장이 정치적으로 사실상 위리안치되면서 박 후보는 원래의 줄푸세로 돌아갔다. 따라서 지금의 노선을 유지한 채 박 후보가 집권하면 그것은 MB정부 2기가 될 것이다.
다른 하나의 논리는 야권의 후보가 정권교체 열망을 충분히 담아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의 정권교체가 의미하는 바는 여야 간의 권력교체가 아니라 '지금까지와 다르고 새로운' 해법으로 바꾸자는 것이다. 그런데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는 이 다름과 새로움을 온전히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는 게 냉정한 평가다. 새누리당이 '실패한 정권의 실세'라는 이미지를 문 후보에게 덧씌우려는 의도도 바로 이것 때문이다.
문 후보에게 노무현 프레임을 덮어씌울 때의 효과는 노무현 정부가 실패했다는 점이 아니라 문 후보가 새롭거나 다르지 않다는 점이 부각되는 것이다. 후보 간에 정책 차별성이 없다면, 첫째, 선거가 후보 간 리더십이나 인물 경쟁으로 갈 수밖에 없고, 둘째, 투표율이 떨어진다는 장점이 박 후보에게 주어진다. 사람의 좋고 나쁨을 떠나 검증된 리더십의 측면에서 박 후보는 문 후보에 비해 앞서 있다.
노무현 시대에 대한 향수는 그의 서거 때 보인 추모열기에서 충분히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참여정부가 서민 삶의 문제에서 새누리당 정부와 얼마나 달랐나 하는 부분에서는 체험적 불만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 따라서 문 후보가 집권하더라도 별로 다를 게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 그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투표장으로 나올 가능성은 현저하게 줄어든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새로운 해법을 원하는 것이 정권교체의 핵심 이유라면 여야 후보 간에 차별성이 없을 때 투표율이 떨어질 것은 자명하다.
민주당이 '박정희 대 노무현'의 프레임에 빠져든 것은 치명적 실수다.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하자마자 정권심판론을 들고 나오면서 이 프레임에서 탈출을 시도했지만 그리 여의치 않은 것으로 보인다. 박 후보가 발빠르게 MB정부 실정을 비판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사실 지금의 정권교체론은 잘못한 정권, 정당에게 책임을 추궁하는 차원을 넘어선다. 여든 야든 실패한 해법이 아니라 새로운 해법을 내놓으라는 요구다. 이렇게 보면 야당이 너무 표피적 정권심판론에 머물러 있는 듯하다.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와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 ⓒ뉴시스 |
야권이 현재의 열세적 교착(inferior stalemate)에서 벗어나려면 두 가지를 해결해야 한다. 첫째, '이명박=박근혜'라는 사실을 아주 쉽고 간명하게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단순히 '이명박근혜'라는 표현만으로는 어렵다. 손에 잡히거나 금방 알아들을 수 있는 쉽고 간명한 근거를 제시해야 한다. 야권이 MB정부의 실정에 대한 공동책임을 거론하는데, 아직 수치나 명료함이 떨어진다.
게다가 언론환경이 좋지 않다. 복잡하고 정교한 논리를 구사하면 보수언론에 의해 차단되거나 왜곡될 것이다. 안 그래도 보수언론은 정책쟁점에 대한 논의나 분석보다 네거티브 공방에 초점을 맞춰 보도하고 있다. 양 후보가 별로 다르지 않다는 점을 기정사실화하고, 삶의 문제에 관한 쟁점이 없다는 점을 부각해 결국 투표율이 높지 않도록 유도하려는 의도 때문이다. 이런 언론환경을 고려하면 전선을 단순화하고, 네거티브 공세를 전격 중단하는 것이 좋다.
둘째, 문 후보가 '새롭고 다르다'는 사실을 실감나게 보여줘야 한다. 문 후보가 안철수 전 후보에 비해 갖는 태생적 단점이 바로 박근혜 후보나 기성 정치에 비해 얼마나 새롭고 다른지를 보여주기 어렵다는 것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의 인연에다 그 시대에 대한 책임, 낡은 민주당과 친노세력의 존재 등으로 인해 문 후보의 새롭고 다른 점이 제대로 부각되지 못하고 있다. 즉 문 후보는 아직 새로운 해법이나 새 시대를 온전하게 상징하지 못하고 있다. 이래서는 어렵다.
새롭고 다른 점을 보여주기 위해서는 사회경제적 차원의 쟁점을 만들어내야 한다. 무상급식처럼 아주 작은 정책이라고 할지라도 그것을 기준으로 양자의 차이를 아주 구체적이고 선명하게 보여줄 수 있는 쟁점이 필요하다. 불필요한 네거티브에 신경 쓸 게 아니라 정책쟁점 하나라도 만들어내는 데 힘을 쏟아야 한다. 사회경제적 쟁점이 있어야 새로운 해법을 열망하는 흐름에 부응할 수 있다.
선거에 출마한 후보는 개인이 아니라 집단적 정체성을 지닌다. 문 후보의 집단적 정체성은 친노에다, 민주당이다. 물론 친노를 도덕적으로 단죄할 명분은 그 어디에도 없다. 개개인으로 보면 아주 좋은 정치인이고 인격이다. 문제는 친노라는 정체성이 노무현 시대를 떠올리게 함으로써 '새롭고 다른' 해법을 보여주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사정이 이렇다면 문 후보는 친노 이미지를 털어내야 한다. 인간적 절연이나 배신이 아니라 시대적 요청을 감당하기 위한 정치적 응답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민주당이라는 측면에서도 다른 모습, 새로운 주체를 부여해줘야 한다.
다행히 문 후보에게는 마지막 무기가 남아 있다. 바로 안철수다. 문재인과 안철수가 얼마나 굳건한 새정치 동맹을 맺느냐, 얼마나 구체적이고 단호한 변화를 추진하느냐에 따라 문 후보에게 부족한 새로움과 다름이 채워질 것이다. 그래야만 정권교체를 원하는 유권자들을 투표장에 불러낼 수 있으리라. 따라서 이번 대선의 성패는 이 과제들을 풀어내는 문 후보의 역량, 즉 '문재인 리더십'에 달려 있다고 하겠다. 그의 분투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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