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로부터 격동의 66일이 지났다. 이달 23일 안 후보는 "제가 후보직을 내려놓겠습니다. 이제 단일후보는 문재인 후보입니다"라며 사퇴를 전격 선언했다. 이번에는 탄식과 눈물이 선거캠프 안에서 소용돌이쳤다.
▲지난 9월 19일 출마 기자회견 중인 안철수 후보. ⓒ프레시안(최형락) |
'안철수 후보'의 두달 여정
출마선언 이후 사나흘 간은 출사표를 몸으로 쓰는 시간이었다.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직을 맡았던 서울대와 이사회 의장으로 있던 안랩을 찾아 사표를 제출하고 함께 일하던 동료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강을 건넜고 다리를 불살랐다"고 했다. 기업인, 지식인으로서의 삶을 정리하고 정치인으로서의 삶을 살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이어 현충원과 봉하마을을 참배했고 지역일정, 정책일정, 지지자 모임 등 정치인으로서의 나날이 시작됐다. 기존 정당조직과는 변별점이 뚜렷한 '네트워크 형태'의 선거캠프와 정책포럼을 구성하고 지역조직과 세대별 조직, 팬클럽이 발족되는 등 세력화에도 나섰다.
여기까지가 바쁘게 보낸 출마 이후 한 달이었다. 전문가들을 중심으로 진용을 갖추며 초기 세력구축에는 비교적 성공했다는 평가였다. 또 출마 직후부터 '단일화는 언제?' 라는 질문에만 시달린 끝에 독자적 존재감을 부각하는데 힘썼고 여기에서도 성공했다는 평이었다. 견고한 지지율이 이를 말해준다.
10월 중·하순부터는 정치인 안철수의 색깔이 본격화됐다. 삼성 백혈병 피해자와 제주 강정마을, 쌍용차 해고노동자 분향소, 현대차 비정규직 고공농성 현장 등 색깔이 뚜렷한 현장을 찾았다. 문재인 후보와의 단일화를 앞두고 야권 지지층의 표심에 다가가기 위한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 따랐다.
정치인 안철수의 또 하나의 색깔은 이 무렵 드러난 '새정치'의 실체를 통해서도 나타났다. 10월 23일 인하대 강연이 시작이었다. 사례로 든 것 뿐이라고 진화하긴 했지만, 국회의원 100명을 줄이면 그 돈으로 복지를 더 많이 할 수 있다는 식의 강연 내용은 일대 파란을 불러일으켰다.
한편 이 때부터는 독자 노선과 단일화 노선이 병행되는 시기였다. 단일화 전망에 대한 어떤 질문에도 '생각하고 있지 않다'는 태도에서 조금씩 변화가 감지됐다. "안 하겠다는 것은 아니다"(10월30일), "국민께 실망시켜 드리는 일은 없을 것"(10월26일) 같은 말이 나온 것도 이 시기다. 하지만 "계파 만들어 총선 그르친 분들"(11월2일) 등 민주당에 대한 비판과 쇄신 요구도 여전히 있었다.
이후 대선후보 안철수의 마지막 20일은 단일화 국면으로 완전히 넘어온 시기였다. 11월 5일 전남대 강연에서 문 후보에게 단독 회동을 제안한 이후 6일 두 후보 간의 만남이 이뤄졌다. '새정치 공동선언' 합의를 시작으로 외교안보정책, 경제복지정책, 단일화 방법(룰) 등 세 차원에서 단일화 논의가 이뤄졌고 여론과 언론의 모든 시선은 여기에 쏠렸다.
하지만 단일화 과정은 진통을 거듭했다. 14일 안 후보 측은 단일화 논의 중단을 선언하고 나섰다. 민주당이 '안철수 양보론' 등 언론 플레이를 했고, 지역조직을 동원했다는 인식 때문이었다. 18일 민주당 지도부 총사퇴에 이어 같은날 후보 간의 2차 회동을 통해 단일화 협상은 재개됐지만 양 측의 갈등은 쉬이 가라앉지 않았다.
후보들 두 명은 웃고 악수하며 카메라 앞에 서도, 물밑에서는 서로에 대한 불만이 앙금처럼 쌓여갔다. 결국 단일화 룰 협의는 19일~21일 간의 실무팀 협상, 22일의 후보 간 협상, 23일 오전의 특사 채널 가동에도 공전을 거듭했고, 이날 저녁 안 후보는 전격 후보직 사퇴를 선언하기 이른다.
▲안 후보의 사퇴 기자회견 모습. ⓒ연합뉴스 |
안철수가 던진 화두, '새정치'
대선후보로서의 도전은 여기까지였지만 안철수의 정치인생은 이제 막을 올렸을 뿐이다. 정치인으로서의 삶을 선택한 후, 그는 단일후보가 되지 못해도, 대선에서 패배해도 계속 정치인으로 살아갈 것이라고 천명했다. 정치인으로서 그의 새출발은 공약집 '안철수의 약속'에서부터 시작될 것이라고 사퇴 후 캠프 관계자들에게 말하기도 했다. 사퇴 회견에서도 그는 강조했다.
"국민 여러분께서 저를 불러주신 고마움과 뜻을 결코 잊지 않겠습니다. 제가 부족한 탓에 국민 여러분의 변화에 대한 열망을 활짝 꽃피우지 못하고 여기서 물러나지만 제게 주어진 시대의 역사와 소명 결코 잊지 않겠습니다. 그것이 어떤 가시밭길이라고 해도 온 몸을 던져 계속 그 길 가겠습니다."
"정치인이 국민 앞에 드린 약속을 지키는 것이 그 무엇보다 소중한 가치"임을 강조하며 물러난 그는 '약속을 지키는 정치인'으로서 앞날에 대한 기대를 모으고 있다. 그의 사퇴는 '국민'이라고 명명된 유권자의 호출에 의해 후보가 됐음을 강하게 내세웠고, 누구보다도 자신이 이를 강하게 의식했던 안철수다운 선택이었다.
자신을 불러낸 '국민'이 단일화를 원한다면, "문 후보님과 저는 두 사람 중에 누군가는 양보를 해야 되는 상황"인데 문재인이 물러나지 않는다면, "더 이상 단일화 방식을 놓고 대립하는 것은 '국민'에 대한 도리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대선후보직을 사퇴했어도 그의 존재감은 오히려 커졌다. 우선 20여일 남은 대선에서 안 후보의 역할이야말로 승부의 향방을 가를 중요한 열쇠라는 지적이 많다. (☞관련기사 보기) 이후 안 후보와 안 후보의 세력의 역할에 눈길이 쏠리는 이유다. 주말인 25일 현재까지는 안 후보 선거캠프에서 주요 역할을 했던 인사들이나 지지층의 움직임이 가시적으로 드러난 것은 없다.
한편 이후 대선 국면에서의 역할 못지않게 정치인 안철수가 한국 정치에 기여할 바 역시 주목된다. 안 후보는 출마선언 이전에도 이후에도 '새로운 정치'를 중심 의제로 내세웠다. 사퇴 회견에서도 "새 정치의 꿈은 잠시 미뤄지겠지만 저 안철수는 진심으로 새로운 시대, 새로운 정치를 갈망한다"고 했다. 무엇보다 대선후보직 사퇴 자체가 그의 진정성을 가장 강하게 주장하고 있다.
기성 정치권에 대해 일반 유권자의 눈높이에 맞는 쇄신을 요구하고, 쌍용차 문제와 삼성 백혈병 문제에 대해 상식에 기반한 진보적 해법을 내놨던 그의 강점이 대선 국면과 그 이후까지의 한국 정치에서 소금의 역할을 하기 바라는 것이 많은 유권자의 요구일 것이다. 이후 어떤 방법을 통해 정치에 참여할지 아직 정해진 것은 없지만, 어떤 방법을 선택하더라도 그를 정치권으로 불러낸 지지세력은 그의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힘을 더할 것이다. 이것이 '새 정치'라면 이를 반대할 사람은 드물 것이다.
다만 짚어볼 점은 있다. 안 후보 스스로가 말했듯이, 보통의 정치인들은 자신의 정견을 먼저 내세우고 이에 대한 결과로 지지를 받아 정치를 한다. 정견이 유권자의 선택을 받지 못하는 정치인은 사라진다. 반면 안 후보는 7월 19일 <안철수의 생각>을 내기도 전에 선택을 받아 버렸다. 안 후보에게 명확한 정견을 밝히지 않는다면서 '답답하다'는 비판이 나오기도 했지만 알고 보면 이같은 속사정이 있었다.
대선 후보로 뛸 때 그랬듯, 여전히 '국민의 뜻'에 자신의 정견을 맞춰가려 할 수도 있다는 것은 정치인 안철수의 강점인 동시에 우려되는 점이기도 하다. 의견을 내놓고 유권자의 동의를 구하는 것이 아니라, 유권자가 무엇을 원하는가를 자신의 의견으로 치환하는 것은 '포퓰리즘'이다. 대선후보직까지 던짐으로서 진정성의 화신이 된 안철수가 다시 '국민의 뜻'을 내세워 의원 수 100명 감축이나 중앙당 폐지 등 포퓰리즘적 요구를 계속한다면, 어떤 정치세력이 이를 쉽사리 거부할 수 있을까? 대선 이후의 한국 정치에 안 후보가 기여할 수 있는 길은 적어도 이는 아닐 것이다. 많은 유권자들이 '안철수의 약속'에서부터 다시 시작될 그의 새출발을 성원하겠지만 그 역시 한 사람의 유력 정치인으로서 비판과 감시를 받아야 하는 까닭이 여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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