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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겔법철학비판> 소지 해군 중위, 항소심 무죄 나왔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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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겔법철학비판> 소지 해군 중위, 항소심 무죄 나왔지만…

집시법 위반 부분만 벌금 20만 원…軍 검찰, 상고 추진 논란

북한 관련 근현대사를 중립적 입장에서 다룬 강의교재를 작성하고 <헤겔법철학 비판> 등 유명 인문학 서적을 소지했다는 이유로 군 검찰에 기소됐던 해군사관학교 국사 교관 김 아무개 중위(31)가 항소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그러나 군 검찰은 판결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상고장을 제출한 것으로 2일 알려졌다. 무리한 상고 추진이 아니냐는 논란이 예상된다.

국방부 고등군사법원은 지난달 27일 선고된 2심 판결에서 김 중위가 작성한 해군사관학교 국사 강의노트에 대해 "전체적인 내용을 볼 때 그 내용이 대한민국의 존립·안전과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위협하는 적극적이고 공격적인 것임을 인정하기에 부족하다"면서 "이적표현물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김 중위가 소지한 <청년을 위한 한국현대사>와 <해방전후사의 인식> 등 서적의 이적표현물 여부에 대해서는 "이미 학계에서는 물론이고 일반인들 사이에서도 대중적으로 읽히고 있다"면서 "공소장이 특정 부분만을 발췌해 '위 서적이 한국전쟁의 원인을 미국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한 것은 역사연구의 결과를 왜곡한 것으로 보인다"며 이적성이 없다고 했다.

<헤겔법철학 비판>과 <제국주의론>에 대해서는 "위 서적은 학문의 연구대상으로서 고전적 공산주의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반면, 북한의 경우 주체사상으로 유지되는 일당독재체제로서 고전적 공산주의와는 그 동일성 내지 유사성을 인정하기 어려워 위 서적에 북한의 활동이나 주의주장에 동조하는 구체적 내용이 들어있지 않다"고 판시했다.

또 고등군사법원은 이적성이 인정된다고 판단한 일부 논문 자료 등의 경우에도 "위 표현물들을 소지한 것은 대한민국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학문의 자유에 포함되는 피고인의 학업이나 연구를 위한 학술적 목적 때문일 수도 있다는 사실이 인정된다"며 국가보안법 위반 부분에 대해 전부 무죄를 선고했다.

다만 김 중위는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집회에서 야간 행진에 참여해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을 위반한 점에 대해서는 유죄가 선고돼, 20만 원의 벌금형을 받았다.

앞서 군 검찰은 김 중위가 2009년 작성한 '09학년도 2학기 국사수업 강의노트'에 북한 체제에 대한 중립적 기술이 있는 점, <해방전후사의 인식>, <청년을 위한 한국현대사>, <헤겔법철학비판>과 같은 서적을 소지한 점 등을 문제삼아 국가보안법 7조1항 및 5항 위반(찬양고무죄)으로 지난해 6월 기소했었다.

같은해 11월 1심 군사법원은 검찰의 기소를 받아들이며 특히 <해방전후사의 인식>과 <청년을 위한 한국현대사> 및 일부 논문자료 등에 대해서는 이적표현물이 맞다고 판단,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김 중위는 이에 불복해 항소했고 결국 2심에서 무죄 판결을 이끌어냈다.

그러나 군 검찰은 이같은 고등법원의 판결에 불복, 대법원 상고를 결정했다. 고등군사법원은 31일 군 검찰이 제출한 상고장이 접수됐다고 밝혔다.

김 중위는 <프레시안>과의 통화에서 "무죄가 나온 국가보안법 부분에 대해서는 고등법원의 법리적 판단이 옳았다고 생각한다"면서 "(집시법 위반 부분에 대한) 벌금형은 이것이 군인 이전의 행적이고 당시 연행되거나 기타 처분을 받지 않은 사안이다. 저도 상고할 것"이라고 밝혔다.

1년째 재판, 제대할 때 이미 지났건만…

한편 김 중위는 기소휴직 상태로 아직 군인 신분을 유지하고 있다. 2009년 입대한 김 중위는 원래 올해 6월 전역이 예정돼 있었으나, 기소로 인해 그의 제대는 재판 종결시까지 미뤄져 있는 상태다. 군 검찰의 상고로 제대는 또 미뤄졌다.

김 중위는 "벌금 20만 원 때문에 기존 휴직일이 복무일로 산정이 되지 않아 전역 자체가 안 된다고 하더라"며 "그렇다면 국가보안법으로 기소된 내 처지에서 과연 무죄와 유죄의 차이가 뭐냐"고 답답한 심경을 토로했다.

김 중위는 1년을 재판으로 허비했는데 군에서는 '남은 11개월을 복무하거나, 내키지 않으면 현역부적합 판정을 신청해 이병으로 제대하라'고 하고 있다며 "그러면 무죄 받은 것과 유죄로 강제전역 되는 것의 차이가 뭐냐"고 되물었다.

그는 "해군은 무죄를 받은 사안에 대해 해결하려는 의지보다 규정만 되풀이하며 '본인이 알아서 하라'고 한다"며 "기소휴직 때는 무죄만 받으면 복무한 것으로 인정하겠다고 했지만, 무죄가 나오니 책임을 피하고 무죄 사안을 기소한 군 검찰부에 대한 책임은 묻지 않으려는 것 같다. 어느 누구도 나에게 피해를 보상하려 하지 않는다"고 군 당국을 비판했다.

지난 6월 <한겨레>는 "기소휴직의 남발이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나 무죄추정의 원칙 등 헌법상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며 대학 재학시 자본주의 연구회 사건에 연루돼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기소된 해병대 ㄱ 중위, 역시 대학시절 용산참사 촛불시위에 참석했다가 집시법 위반으로 기소된 공군 ㅈ 중위 등의 사례를 특집 보도했었다.

신문은 "기본권을 제한하는 법률은 엄격하게 법률에 기준을 정하거나 하위법령에 위임하도록 돼 있지만, 군인사법을 제외하면 구체적으로 기소휴직을 규율하는 법령은 없다"며 "위임 법령이 없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문제지만 그런 이유로 임용권자의 재량에 따라 막걸리법처럼 운용될 위험이 크다는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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