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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오 살리고 MB심판 하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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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이재오 살리고 MB심판 하자고?"

[4.11총선 현장⑮] 서울 은평을, 새누리 이재오 vs 통합진보 천호선

19대 총선의 많고 많은 격전지 중에서도 서울 은평을은 '이명박 대 노무현'의 싸움으로 여겨지면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새누리당 후보는 관록의 4선 의원이자 이명박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알려진 이재오 의원이다. 그 상대는 민주통합당과의 야권단일화를 이뤄낸 노무현 전 대통령의 대변인, 통합진보당 천호선 후보다.

그러나 막상 양 측 모두 이같은 판세 규정에는 고개를 젓는다. 이재오 후보 측에서는 'MB심판론'을 비켜 가려는 듯한 대응이다. 한 관계자는 "(이 후보가) 이명박 대통령을 만든 공신인 것은 맞지만, 2008년 4월 문국현 후보에게 패배하지 않았나"라면서 "미숙한 것을 반성하며 국민권익위원장 자리를 마친 이후 재보선 때 이미 주민들의 용서를 받았다"고 주장했다.

천 후보 측 한 관계자도 "'이명박 대 노무현'이라고 언론이 쓰고 있지만 저희가 강조하는 것은 '은평의 새로운 선택'"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은평은 일종의 '이재오 왕국'"이라며 "14년 동안 지역을 대표한 이재오를 바꿀 수 있나 하는 것이 구도"라고 규정했다. 다른 관계자도 "은평은 'MB심판' 자체가 안 먹히는 동네"라며 "여기는 이명박 정권 4년보다 이재오 의원 15년이 더 크다"고 말했다.

양 측은 모두 인물론을 내세우고 있다. 이재오 후보는 지역 사정에 훤하다는 경험을, 천호선 후보는 새로운 변화에의 열정을 강조한다. 큰 틀에서 심판론을 견지하고 있는 야권이 혹시 이재오 후보의 인물론에 '말려든' 것은 아니냐고 묻자 천호선 측의 한 관계자는 단호히 "아니다. 애초에 우리가 노무현 대 이명박 구도로 가야 한다고 한 적도 없고, 그런 구도가 되지 않으리란 것을 알고 있었다"면서 "수명이 다한 이재오에게 수명 연장의 기회를 줄 것인가, 새로운 인물 천호선을 택할 것인가 하는 주민들 선택이 관건"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재오 후보의 구호가 '은평 발전, 마무리하겠습니다'인 데에 빗대 "정치적 수명을 다한 정치인인 이재오 후보를 지역 주민들이 '마무리'해 줄 것이라 믿고 있다"고 말했다.

천호선 후보는 9일 지하철 연신내역 인근 유세 연설에서 "이 정부 4년 동안 바뀐게 있나"라며 이재오 후보를 겨냥해 "2년, 4년, 8년 전 공약 그대로다. (이는) 표를 얻기 위한 거짓말"이라고 몰아세웠다. 천 후보는 "은평의 발전을 위해서도 더 이상 속을 수 없다"면서 "대한민국 어디서 국회의원을 20년씩 시켜주나"라고 덧붙였다. 이날 천 후보 지지유세를 편 조국 서울대 교수도 가세했다. 조 교수는 "이재오 의원이 실세라는 거짓말에 속아서는 안 된다"면서 "이재오 의원과 박근혜 위원장의 사이가 안 좋은 것은 누구나 알지 않나"라고 말했다. 조 교수는 또 "민생파탄 책임자가 누구인지 생각해야 한다"면서 "이재오 후보는 이명박 대통령과 함께 심판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여론조사 지지율 10% 차이인데 왜 '박빙?'

양 측 선본은 여론조사 결과에 대해 비슷한 해석을 내리고 있었다. 사실 은평을은 여론조사 결과만 놓고 보면 '박빙'으로 불릴 만한 곳이 아니다. 발표된 모든 조사에서 이재오 후보는 천호선 후보에 10% 내외로 앞서고 있다. 오차범위를 넘어선 격차다. 그러나 양 측 모두 10% 내외의 차이를 '박빙'이라고 읽고 있다.

왜일까. 천호선 후보는 이날 <프레시안> 인터뷰에서 "여론조사가 많게는 십 몇 퍼센트, 적어야 8% 차이나게 나오는데 휴대전화로만 했을 때는 3% 차이까지 나온 적도 있다"면서 "여론조사로 예측하는 건 우스운 일"이라고 말했다. 천 후보는 "거리 여론이 좋다"면서 "만나는 사람들 반 이상이 호감을 보이면 괜찮은 거다"라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는 "시민들에게 자동차에 대고 인사해도 창문을 내리고 인사를 받아주더라"면서 "지지자들이 운동원들에게 수고했다고 인사하고 먹을 것을 갖다 주기도 해서 운동원들이 '선거를 서너 번씩 해봐도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며 놀라고 있다"고 전했다.

이재오 후보 측도 "여론조사의 한계를 생각하면 안심할 수 없다"고 똑같은 말을 하고 있다. "'원사이드' 선거가 아니다"라는 설명이다. 이 후보 측 관계자는 "접전우세 또는 박빙우세 정도로 보고 있다"면서도 "흐름이 있다. 우리가 이기고 있는 것은 맞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경험적으로 6.2 지방선거 때나 10.26 재보선 때를 보면 여론조사는 참고용이지 전부가 아니다"면서 "막판에 야권 지지자들이 결집하면 (개표 결과는) 모르는 것"이라고 경계심을 나타냈다.

이재오 후보 측도 만나는 주민들마다 반응이 매우 좋다며 승리를 자신하고 있었다. 이 후보 측 관계자는 "선거 때라 이재오 후보의 행보가 부각되지만, 사실 선거 아닐 때도 해오던 일"이라며 지역사회와 이 후보가 맺고 있는 친밀도가 매우 크다고 강조했다.

▲유권자에게 '90도 인사'를 건네는 새누리당 이재오 후보 ⓒ뉴시스

선거 유세 전략은 '극과 극'

두 후보의 유세 스타일은 극과 극이다. 이재오 후보는 이번에도 특유의 '조용한 선거'를 계속하고 있다. 아침에 일어나면 자전거를 타고 지역을 돌며 주민들을 만난다. '90도 인사'도 한다. 언론 취재도 응하지 않는다. 주민들과 만나는데 방해가 된다는 이유다. 선본 관계자는 "권위적으로 보이거나 주민들 불편을 끼치지 않기 위해 취재진은 물론 수행원 1명도 동행하지 않고 있다"고 했다. 이 후보는 선거운동 기간 내내 마이크를 잡고 연설을 하지도 않았고 새누리당 인사들의 지원유세도 1건도 없었다. 기자도 이 후보를 만나려 했으나 선본 관계자들은 '우리도 어디 계신지 모른다'며 접촉 불가를 선언했다.

천호선 후보 쪽에서는 이런 전략에 대해 "철저한 두더지 작전"이라고 평하고 있었다. '가능한 언론노출을 피해 선거를 쟁점화시키지 않고 철저히 지역 기반을 가지고 선거를 해보겠다는 뜻 아니냐'는 것이다. 천 후보는 이 후보와 대비되는 우렁찬 목소리와 격정적인 손짓으로 유세를 펼치고 있었다. 한명숙 민주당 대표, 조국 교수, 가수 이은미 씨 등 지원유세를 온 인물들의 면면도 초호화급이다.

마이크를 잡고 한 손을 높이 들어올리며 외치듯 연설하는 모습은 천 후보의 트레이드마크가 되다시피 했다. 이같은 웅변의 후유증인지 9일 만난 천 후보는 목이 완전히 쉬어 있었다. 한 관계자는 링거 주사까지 맞고 온 상태라고 전했다. 그럼에도 오후 2시 조국 교수의 지원유세 현장에서 천 후보는 또 마이크를 잡았다. 통합진보당의 보라색 대신 노란색 점퍼를 입은 천 후보는 쉰 목소리임에도 "열정"을 강조하며 열변을 토했다.

천호선 선본은 투표율이 관건이라고 보고 투표 독려에 힘을 쏟고 있다. 운동원들이 청사초롱을 들고 밤 11시까지 '달빛유세'를 벌이며 투표 참여를 권유하고 있다고 했다. 야권연대로 인한 효과도 천호선 후보에게 힘이 될 수 있다. 천 후보 측 관계자는 "총선에서 승리해야 정권 교체가 가능하다는 것을 민주당 역시 알고 있다"면서 민주당과의 공조가 잘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재오 후보 측 관계자도 "야권연대가 성사됐기 때문에, 민주당·통합진보당 후보들이 따로 있는 경우에 비해 마음을 더 놓기 어렵다"고 우려했다.

▲연설하는 통합진보당 천호선 후보. 노란색 점퍼가 눈에 띈다. ⓒ뉴시스

은평의 선택은?

유권자들의 반응은 복잡한 편이었다. 젊다고 다 야당 성향인 것도 아니었다. 지원유세를 나온 조국 교수를 스마트폰 카메라로 찍던 20대 여성은 "천 후보를 지지한다"면서 "저도 은평에 오래 살았는데, 이재오 후보가 별로 바꾼 것이 없다. 새로운 인물이 나와야 되지 않나 하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여성은 "(이재오의 낙선은) 지금의 정권 심판한다는 것을 가장 분명히 드러내는 부분"이라고도 했다.

불광역 근처의 한 카페에서 만난 20대 여성 2명도 "천호선 후보가 당선될 것"이라며 "이재오 아저씨 싫어요"라고 했다. 이들은 자신들의 후보 선호가 "기득권에 대한 반감" 때문이라며 "집에 있는 사람들이 전화를 많이 받으니 여론조사는 그렇게(이재오가 높게) 나오겠지만, 뚜껑은 열어봐야 아는 것"이라고 말했다.

유세 중인 천호선 후보를 버스정류장에서 만난 한 30대 남성도 활짝 웃으면서 "(연설) 너무 잘하시더라"고 먼저 인사를 건네기도 했다.

그러나 백화점 앞에서 만난 한 30대 여성은 "밖에서는 몰라도 은평구에선 이재오 의원의 평판이 나쁘지 않다"며 정반대의 평가를 내렸다. 이 여성은 "하는 동안 잘 했다"면서 "또 (당선)될 것 같다"고 말했다.

이재오 후보를 전폭적으로 지지할 것 같은 50~60대도 그렇지 않았다. 불광동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만난 한 50대 남성은 "천호선은 지명도가 없다"면서도 "구청장이 민주당이잖나. (국회의원도) 바꿔보자고 하는 사람들도 좀 있다"고 했다. 이 남성은 "이재오가 오래 하긴 했는데 은평 발전을 위해서는 별로 (한 게)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불광동 시외버스 터미널 인근에서 소매상을 하는 60대 남성은 "천호선은 이 지역 사람이 아니지 않나. 여기서 꾸준히 하면 다음에는 되겠지만 사람들 얘기로는 올해는 좀 빠르지 않나 한다"면서도 "이재오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 남성은 "재보선 때 공약이 이 터미널 근처에 생태공원을 만들겠다는 것이었는데, 지키지 않았다"면서 "내 자식들 봐도 그렇고 젊은 사람들은 다 민주당 쪽 같다. 나도 바꿔봐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재래시장 맞은편에 차를 세우고 손님을 기다리던 50대 남성 택시기사도 "손님들 중에 보면 바꾸자는 얘기를 하는 사람이 많다"면서 "요새 살기 좋다는 사람이 누가 있나"고 했다. 지하철 불광역 인근 슈퍼마켓 사장인 50대 남성도 "이명박이 워낙 못하지 않았나. 지금 야당이 못해서 그렇지 사실 8대2, 7대3으로 이기지 않으면 사실상 진 것"이라면서 "변화를 바란다"고 했다. 그러나 이 남성은 "이명박이 못해서 그렇지 이재오가 지역에서 뭘 잘못한 건 없다"고 이재오 후보에 대해서도 일부 긍정적인 평을 하기도 했다.

승부의 관건인 40대 유권자들의 반응도 엇갈렸다. 한 초등학교 앞에 서 있던 40대 여성 3명은 전형적으로 '정치에 관심 없다'는 반응이었으나 그중 한 여성이 다른 2명에게 "나 위험한 발언 해도 돼?"라고 하더니 "이재오 안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빵집을 운영하는 40대 남성은 "재래시장 쪽에는 이재오 후보 '골수팬'들이 있다"면서 "젊은 사람들은 바꿔보자고 하니 투표율이 관건일 것"이라고 했다. 정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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