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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번을 쓴 사람은 누구나 테러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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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번을 쓴 사람은 누구나 테러리스트?"

'테러와의 전쟁'이 오히려 테러리즘 키운다

'테러와의 전쟁' 심장부인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국과 동맹국들의 안보만이 중시될 뿐 아프간 국민들의 안보는 철저히 무시되고 있다는 현지로부터의 증언이 나왔다. 또 현지 문화에 무지한 미국 등 서방의 개입은 오히려 아프간인들을 테러리즘에 동조하게 하는 부작용을 낳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아프간 여성전문교육원에서 프로그램 조정자로 일하고 있는 파잘 가니 카카르는 12일 광주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열린 토론회 '테러와의 전쟁과 아시아 민주주의'에서 "우리 아프간인들은 매일 아침 집을 나설 때 자살테러, 폭탄, 납치 등 불안정에 대한 공포를 느낀다"며 현재 아프간인들은 심각한 안보 위기를 겪고 있다고 호소했다.

카카르는 "사회기반시설(인프라)는 완전히 파괴됐고, 정부의 통치는 취약하고 부패가 만연했다"며 "칸다하르 (탈레반 지도부) 탈옥 사건의 사례를 보면 이 정부가 얼마나 약한지 알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아프간 정치인들은 군벌 지도자로 칭하는 것이 더 어울린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아프가니스탄에서 민주주의가 (정치인들이) 부정한 짓을 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되면서 잘못 이해되고 있다"며 "이로 인해 종교인들은 민주주의(자체)를 부도덕한 수단으로 여기고 있다"고 말했다.

또 그는 외국 출신인 아프간 정부의 자문관 대다수는 아프간 국민, 문화, 종교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예를 들어 터번을 쓰는 것은 아프간인들 대부분이 가지고 있는 문화적 전통이지만, "터번을 쓴 사람은 테러리스트"라고 낙인찍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 아프가니스탄 여성전문교육원에서 일하고 있는 파잘 가니 카카르는 12일 광주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열린 토론회 '테러와의 전쟁과 아시아 민주주의'에서 아프간 민중이 직면한 위험에 대해 강조했다. ⓒ프레시안(곽재훈)

"국가 억압이 국민을 테러리스트로 만든다"

카카르는 테러리스트를 찾는다며 밤낮으로 수색이 가해지고 여성과 어린이들이 학살당하기도 하는 상황 때문에 아프간 민중들 사이에서는 오히려 '테러리스트들이 하는 활동이 옳을 수도 있다', '그들은 피해자다'와 같은 인식이 퍼지고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아프간의 문화와 종교적 규범을 고려하지 않고 아프간 가정을 공격하는 것은 아프간 국민들의 마음 속에 국제사회에 대한 적개심을 키운다"며 "아프간 국민과 아프간의 가치, 종교에 대한 나토(NATO) 군인들의 부주의와 무시가 시정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아프간 인구의 99%가 무슬림인데도 온건한 이슬람단체에 대한 지원이 부족할 뿐 아니라 정책 결정 과정에서 이들을 배제시킴으로써 종교적 적대감을 형성했다"고 비판했다. 또 "고등교육을 받지 못하는 젊은이들이 매년 7만 명에 달한다"며 "젊은이들에게 고등교육의 기회와 일자리를 제공해야 한다. 이들은 테러리즘의 원천이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풍키 인다르티 인도네시아 인권감시 사무총장은 이런 상황은 몇몇 개별 국가만의 사례가 아니라 보편적인 경향이라며 "국가와 보안군의 억압과 가혹한 법집행이 정부를 비판하는 시민들을 테러리스트가 되도록 자극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카카르는 또한 "대테러리즘은 아프가니스탄 내 국제군의 주둔을 정당화하는 설득력 있는 사유가 되지 못하며, 오히려 사람들이 테러리즘을 지원하고 피난처를 제공하는 심리를 촉발했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아프간 내에 국제안보지원군(ISAF)가 주둔하고 있지만 여전히 참화는 증가하고 있다"며 "2009~11년까지 인권 침해와 공격 행위, 안보 불안은 더 증가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아프가니스탄에는 아프간 국민에 의한 대테러 정책은 없으며 미국이 주도하는 동맹국들로부터 다양한 정책이 나오지만 이들 정책의 수립 과정에서 아프간 국민들은 중요하지 않다"며 "가장 중요한 것은 미국과 동맹국들의 안보 문제이며, 아프간 국민이 아닌 이들의 안보를 안전하게 보호하는 데 가치를 두고 있다"고 비판했다.

▲ 발언하는 파잘 가니 카카르. ⓒ프레시안(곽재훈)

파키스탄, 빈 라덴 위치는 모르면서 민간인만 잡아들여

아프간과 함께 '아프팍'으로 불리는 파키스탄에서도 '테러와의 전쟁'은 알카에다와 탈레반에게보다 민간인들에게 더 위협적인 것으로 보인다. 파키스탄 국가인권위원회의 I. A. 레만은 이날 토론회 발표문에서, 파키스탄이 '테러와의 전쟁'에 합류하기로 결정한 이후 수많은 사람들이 체포, 억류되고 미 당국에 신병이 인도됐다고 말했다.

레만은 "헌법에 명시된 권리는 무시되고 있으며, 수천 명의 파키스탄 사람들이 부지불식간에 실종되었다는 신고가 들어오고 있다"면서 "수년 간 '테러리스트'라 지목 받은 사람은 누구도 정당하거나 공정한 재판조차 받을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그는 하나의 사례를 소개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나지르 아흐메드라는 파키스탄인은 '테러리스트와 연관되어 있다'는 혐의로 체포되어 투옥되었지만 그에게서는 아무런 범법 혐의도 발견되지 않았다. 그런데 심지어 아흐메드에 대한 인신보호청원서를 접수받은 고등법원에서 그를 구제하기 위해 집행관을 파견했는데도 경찰은 유치장에 갇힌 나지르의 신변 인도를 거부했다는 것이다.

또 그는 미승인·불법 범죄인 인도 문제도 제기했다. 그는 파키스탄 내에서 체포된 테러 용의자들이 적법한 절차 없이 미 당국에 인도됐고 이 중 몇 명은 관타나모 수용소로 보내지기도 했다고 비판했다. 그는 페르베즈 무샤라프 전 파키스탄 대통령의 자서전 <사선에서>를 인용해, 파키스탄이 672명에 이르는 알카에다 지도자와 활동가를 체포했으며 이 가운데 최소한 369명을 미국 당국에 인도했다고 밝혔다.

테러와의 전쟁, 한국도 남 일 아니다

한국은 '테러와의 전쟁'과는 비교적 무관하다는 인식이 지배적이었다. 아프가니스탄·이라크·파키스탄 등과 지리적으로 떨어져 있고, 이슬람 극단주의 운동의 직접적인 영향도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테러와의 전쟁'으로 인해 민주주의가 후퇴했다는 아시아 각국의 흐름에서 한국도 자유롭지 못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태호 참여연대 사무처장은 이날 토론회에서 "테러와의 전쟁과 한국군의 아프간·이라크 파병 이후 반테러 입법 시도가 계속되고 있고, 축소돼 오던 국가정보원(국정원)의 역할도 다시 강화되고 확대되고 있어 인권 침해 논란을 야기하고 있다"며, △국가보안법 폐지 노력의 무산, △테러방지법 제정 시도, △테러자금조달금지법 제정 시도, △외국환관리법과 이란 제재, △통신비밀보호법 개악 시도, △국정원법 개악 시도, △이슬람권 출신 이주노동자에 대한 사찰과 차별 등이 '테러와의 전쟁'을 빌미로 한 인권과 민주주의에 대한 침해 사례로 들었다.

테러방지법은 입법 시도가 좌절됐지만, 테러자금조달금지법은 '공중 등 협박 목적을 위한 자금 조달행위의 금지에 관한 법률'로 수정 입법됐다. 이 두 법안은 공통적으로 '테러'에 대한 정의가 지나치게 모호하고 포괄적이며, 처벌 등 대응 조치가 과도하고 권리 침해 소지가 매우 크다고 이 처장은 지적했다.

또 통신비밀보호법과 국정원법을 개정해 국정원의 권한을 강화하려 한 것은 개인의 사생활 등 인권 침해 소지가 크다는 면에서, 이란 제재와 이주노동자 사찰은 이슬람 문화권에 대한 편견과 차별을 강화시킨다는 면에서 우려스럽다고 그는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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