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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스민 혁명, 미국 몰락의 신호탄"

[해외시각] "소련의 종말 알린 벨벳 혁명 '21세기 버전'"

알카에다 지도자 오사마 빈 라덴의 사살로 미국은 들떠 있다. 그러나 비무장 상태의 빈 라덴을 재판 없이 암살한 미국의 처사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는 유럽에서도 나온다. 미국이 '정당하다'고 규정한 것에 대해 '그건 너희들의 생각일 뿐'이라고 대드는 모습이다. 미국이 세계의 가치와 규범, 옳고 그름을 정하는 시절은 끝났다는 사실이 빈 라덴의 죽음을 통해서도 드러나고 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의 세계 지배를 가능케 했던 것은 미국의 군사력과 경제력이다. 하지만 미국이 각국에 심어 놓은 종속적인 엘리트 집단이 없었다면 미국의 영향력이 전세계적으로 관철될 수 없었다고 미국의 저명한 역사학자가 분석했다. 알프레도 매코이 미 위스콘신-매디슨 대학교 교수는, 현지인이지만 자국의 이익보다 미국의 이익에 복무하고, 미국의 가치와 규범을 자기들의 것인 양 주입시키는 엘리트들이 있었기 때문에 '미국의 시대'가 가능했다고 설명하고 있다.

21세기가 시작되고 10년이 지난 지금 각국의 '종속적 엘리트'들은 벼랑 끝에 몰려 있다. 미국의 이익을 위해 반드시 장악해야 하는 중동의 독재자들은 시민혁명에 의해 권좌에서 쫓겨나거나 쫓겨날 위기에 놓여 있다. 중동이 아닌 다른 지역에서 미국의 이익을 위해 살아 온 정치 지도자들은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미국 추종적 정책을 수정함으로써 위기를 모면하려고 하고 있다. 그들의 몰락 혹은 '배신'으로 미국의 세계 지배 체제는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

역사학자인 매코이 교수와 미국의 아시아 정책을 연구하는 위스콘신-매디슨 대학교 대학원생 브렛 릴리는 지난달 25일 미국의 웹사이트 <톰디스패치> 기고문에서 미국이 처한 상황을 거시적인 시각으로 분석했다.(☞원문보기) 이들은 1989년 동유럽을 휩쓴 '벨벳 혁명'이 소비에트 제국의 몰락을 알렸다면, 현재 중동을 휩쓸고 있는 '재스민 혁명'은 미국 세계 지배의 종말을 알리는 신호라고 말했다. 다음은 이들의 논평문의 주요 내용을 번역한 것이다. <편집자>


▲ 중동 독재자들의 '그리운 시절'. 왼쪽부터 지난 1월 재스민 혁명으로 물러난 벤 알리 전 튀니지 대통령, 반정부 시위로 벼랑 끝에 몰린 알리 압둘라 살레 예멘 대통령, 반정부 세력과 내전을 치르고 있는 리비아의 무아마르 카다피 국가원수, 2월 쫓겨난 호스니 무바라크 전 이집트 대통령

좌초한 미국 : 독재자, 귀족, 군복을 입은 암살단의 제국이 흔들린다

최근 일어난 특별한 두 사건에 의해 미국의 세계적인 힘의 구조가 의해 백일하에 드러났다. 첫째, 위키리크스가 공개한 미국의 외교 전문(電文)에는 세계 모든 나라의 지도자들에 대한 미국의 야비한 평가가 실려 있었다. 둘째, 중동에서는 독재자들에 대항하는 민주화 시위가 일어났다. 독재자들의 대부분은 미국과 동맹을 맺고 있었는데, 외교 전문에는 그들의 문제점이 상세히 기술되어 있었다.

이로써 미국 주도의 세계 질서가 무엇에 기반하고 있는지 하루아침에 드러났다. 그 질서는 미국에 충성하는 종속적 엘리트인 독재자, 귀족, 군복을 입은 깡패들로 구성된 각국의 지도자들에게 크게 의존하는 것이었다.

미 중앙정보국(CIA)은 왜 냉전이 최고조에 이르렀던 1965년 인도네시아의 수카르노 정부를 무너뜨렸을까? CIA는 왜 1963년 남베트남의 독재자 응오딘지엠(고딘디엠)을 암살하려 했을까?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은 위키리크스와 '아랍의 봄' 때문에 과거보다 훨씬 더 명확해졌다. 그들은 한때 미국이 선택한 부하였지만, 미국에 복종을 거부했고 쓸모없게 돼버렸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반세기가 지난 후, 미국은 왜 이집트의 호스니 무바라크를 [민주화 시위 초기] 지지함으로써 자신들이 말하는 민주주의적 원칙을 저버렸을까? 또, 시민 혁명으로 무바라크가 비틀거릴 때 집권자를 오마르 술래이만(무바라크의 정보 담당 참모였던 그는 카이로에서 고문실을 운영했고, 미국에 대여하기도 했다)으로 바꾸려 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답은 같다. 그들은 오랫동안 이집트가 아니라 미국의 이익에 복무하는 믿을만한 부하들이었기 때문이다.

서쪽으로 튀니지·이집트에서부터 동쪽으로 바레인·예멘까지 범(凡) 중동 지역에서 일어나고 있는 민주화 시위는 미국이 힘을 행사하는데 꼭 있어야 하는 종속적 엘리트들을 쓸어버릴 듯이 위협하고 있다. 근대이래 모든 제국들은 자신들의 글로벌 파워를 관철시키기 위해 각지에서 믿을만한 대리인들에 의지해왔다. 그러나 각 지역의 대리인들이 대중을 선동하고, 주인[미국]에게 말대꾸를 하고, 자신들 스스로의 목표를 내걸기 시작한다면 그건 곧 제국이 몰락하는 시점이었다.

1989년 동유럽을 휩쓴 '벨벳 혁명'이 소비에트 제국의 몰락을 알리는 조종(弔鐘)이었다면, 현재 중동을 휩쓰는 '재스민 혁명'은 아마도 미국 글로벌 파워의 종말을 알리는 신호로 기록될 것이다.

군부 의탁

[제국을 운영하는데 있어] 토착 엘리트가 왜 중요한지를 이해하려면 냉전 초기 미국을 봐야 한다. 미국은 당시 [세계적으로] 반미·친공 정서가 확산되고 있다고 보고 세계 각지에서 그걸 막을 수 있는 누구라도 찾아 나섰다. 1954년 12월 세계를 휩쓸고 있는 강력한 민족주의적 변화의 바람을 억누를 전략을 찾기 위해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가 소집됐다.

아시아와 아프리카 전역에서, 과거 유럽 국가가 한 세기 이상 지배하며 세계 질서를 이뤄오던 예닐곱 개의 제국들은 100여개의 새로운 나라들로 나뉘었고, 미국이 보기에 그 중 많은 나라들이 공산주의로 바뀔 가능성이 있었다. 중남미의 도시에서는 빈민이 늘어나고 농촌에서는 토지 없는 농민들이 많아지면서 좌파가 봉기했다.

[아이젠하워 행정부의] 조지 험프리 재무장관은 중남미에서 미국이 직면하고 있는 '위협'을 검토한 후 NSC 동료들에게 "민주주의에 대해 너무 많이 얘기하지 말라"며 "우파 독재자이지만 친미적이라면 그들을 지지하라"고 말했다. 전략적 통찰력을 가진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그 독재자들이 '우리의' 개라면 괜찮다"는 험프리의 말을 주목했다.

아이젠하워는 향후 50년간 미국이 지구적인 지배력을 행사하는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똑똑히 깨달았다. 민주주의 원칙 대신 미국을 지지할 뜻이 있는 지도자라면 누구라도 밀어주는 현실적인 정책을 쓰는 것이었다. 미국이 위기에 처했을 때 자국의 이익보다 미국의 이익을 먼저 생각하는 지도자들의 네트워크를 전세계에 구축하는 것이다.

냉전 시기 미국은 중남미에서는 군부 독재자를, 중동에서는 귀족들을 도왔다. 아시아에서는 민주주의자를 지지하는 경우와 독재자를 밀었던 경우가 섞여 있었다. 1958년 태국과 이라크에서 군부 쿠데타가 일어나자 제3세계의 군부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그러자 아이젠하워 행정부는 다른 나라의 군부 지도자들을 미국으로 데려와 '훈련'시키겠다는 결정을 내렸다. 신흥 국가가 발전하면서 나타나는 변화의 열망을 '관리'하는 방법을 가르치겠다는 것이었다.

그때부터 미국 정부는 동맹국들과 그 나라의 군을 양성하기 위해 엄청난 군사 원조를 쏟아 부었다. '훈련'은 미군과 각국 장교들의 관계를 긴밀히 하는데 활용됐다. 종속적 엘리트들이 충분히 복종하지 않는다고 판단되면, 미국에서 교육받은 군인들로 [정부 운영을] 대체할 수 있다고 여겼다.

민간인 출신 대통령들이 말을 잘 듣지 않을 경우 CIA는 쿠데타를 사주했다. 1953년 이란의 모사데크 총리가 석유 국유화를 시도하자 파즈롤라 자헤디 장군으로 총리를 바꿔버렸다. 인도네시아의 수카르노 대통령은 수하르토 장군으로 바꿔버렸다. 1973년 칠레에서는 피노체트 장군으로 하여금 쿠데타를 일으키도록 사주해 아옌데 대통령을 몰아냈다.

21세기가 되어도 대리 국가들의 군부에 대한 미국의 신뢰는 커져갔다. 예를 들어 이집트 군부는 미국으로부터 매년 13억 달러의 원조금을 받았다. 그 중에서 경제 개발에 쓴 돈은 고작 2억5000만 달러에 불과했다. 그 결과에 대해서는 민주화 시위가 한창이던 지난 1월 <뉴욕타임스> 기사를 보면 알 수 있다. "미국 장성들과 정보 요원들은 과거 자신들과 같이 훈련을 받았던 [이집트인] 친구들에게 조용히 전화를 걸어 30년간 있었던 투자를 탕감해줌으로써" [또 다른] 군사 통치로의 "평화적인 이행"에 대한 군의 지지를 이끌어 냈다.

중동의 다른 나라에서도 미국은 1950년대부터 과거 영국이 썼던 방식을 따랐다. 이란에서는 샤, 아부다비·오만에선 술탄, 바레인·쿠웨이트·두바이·카타르에서는 에미르, 사우디아라비아·요르단·모로코에서는 왕이라고 부르는 귀족들과 동맹을 맺는 방식이다. 모로코에서 이란에 이르기까지 이 광대하고 불안정한 지역에서 미국은 군사 동맹, 미국산 무기 체계, CIA의 지원, 미국 내 자본 도피처 제공, 미국 교육기관 입학 특혜 같은 특별대우 등을 통해 그들을 미국의 편으로 만들었다.

2005년 콘돌리자 라이스 당시 미 국무장관은 그 역사를 이렇게 요약했다. "미국은 60년 동안 중동의 안정을 위해 민주주의를 버렸다. 그러나 안정도 민주주의도 성취하지 못했다."



제국의 작동 방식

세계 각지의 리더들과 개인적으로 맺은 촘촘한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글로벌 파워를 수립한 헤게모니 국가는 미국이 처음은 아니다. 18~19세기 영국은 제해권을 장악했지만, 뭍으로 올라온 후에는 과거의 제국들처럼 각 지역에 동맹 세력이 필요했다. 복잡하고 변화무쌍한 사회를 통제하기 위해서였다.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인구 4000만에 병력은 9만9000명밖에 안 되는 작은 섬나라가 세계 인구의 1/4를 차지하는 4억의 제국을 다스릴 수 있었겠나?

영국은 1850년부터 100년간 피지의 부족장, 말레이 반도의 술탄에서부터 인도의 토호국 왕(maharajas), 아프리카의 에미르에 이르기까지 각지의 동맹 세력을 통해 공식적인 식민지를 다스렸다. 동시에 영국은 (베이징에서 이스탄불까지) 황제, (방콕에서 카이로까지) 왕,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카라카스까지) 대통령 등 종속적 엘리트들을 통해 보다 넓은 '비공식 제국'을 지배했다. 영국의 지배가 최고조에 이르렀던 1880년대에는 인도와 아프리카 등지의 공식적인 식민지보다 중남미, 중동, 중국 등에 걸친 비공식 제국의 인구가 더 많았다. 영국은 충성스러운 지역 엘리트들과의 협력을 통해 제국을 운영했다.

그러나 4세기 동안 영토를 확장했던 유럽의 다섯 제국들은 25년 만에 갑자기 없어졌다. 벨기에, 영국, 네덜란드, 프랑스, 포르투갈이 운영하던 제국은 1947~74년 사이 없어졌고, 아시아와 아프리카에서는 100여 개의 신흥국들이 생겨났다. 이같은 갑작스런 변화에 대해 영국의 역사학자 로널드 로빈슨은 "현지의 협력자가 없어지자마자" 제국의 힘이 빠지기 시작했다고 주장했다. 대부분의 학자들이 동의하는 설명이다.

탈식민화와 냉전은 같은 시기에 있었다. 미·소 양대 강국은 공히 정보기관을 이용해 신흥독립국의 지도자들을 조종하는 지배 방식을 택했다. 소련의 국가보안위원회(KGB)가 동유럽 14개 위성국에 있는 대리 조직, 예컨대 동독의 슈타지(Stasi. 국가보안성)와 루마니아의 비밀경찰 세큐리타트(Securitate) 등을 정치적으로 결합시켜 미국에 대항했다. 미국의 CIA는 4개 대륙에 있는 대통령, 독재자 등 충성파들을 감시했다. 쿠데타를 사주하거나, 돈으로 매수하거나, 비밀리에 침투하거나, 필요할 경우 귀찮은 지도자들을 제거하는 방식을 썼다.

그러나 민족주의 바람이 불면서 각 지역 엘리트들의 충성심이란 건 매우 복잡하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그들 중 많은 이들은 미국에 대한 충성심과 민족주의 사이에서 갈팡질팡했다. 미국은 그들을 더 면밀히 감시해야 했다. 종속적 엘리트가 반드시 필요했고, 그들이 자꾸 항명하는 게 귀찮아진 CIA는 그들을 복종시키기 위해 위험한 비밀 작전을 끊임없이 할 수밖에 없었는데, 냉전 시대 나타난 일부 위기 상황은 그로 인해 촉발된 것이었다.

미국은 단순한 대리인이나 꼭두각시로서 사는 걸 거부하고 자국(그리고 자신들)의 이익이라고 여기는 것을 극대화하고 싶어 하는 각국의 동맹 세력과 손잡을 수밖에 없었다. 힘이 가장 강했던 1950년대에도 미국은 필리핀의 라몬 막사이사이 대통령, 한국의 이승만, 남베트남의 응오딘지엠 같은 이들과 힘겨운 거래를 해야 했다.

예를 들어 1960년대 한국의 대통령이던 박정희 장군은 베트남에 군대를 보내는 대신 미국으로부터 수십억 달러의 개발 원조금을 요구했다. 미국은 한국이 원하는 돈을 다 지불하기로 한 뒤에야 5만 명의 한국 병사를 얻을 수 있었다.

탈냉전 시대의 세계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냉전이 끝나면서 소련은 에스토니아부터 아제르바이잔에 이르는 위성국가들을 갑자기 잃어버렸고, 한때 충성스런 대리인이었던 종속적 엘리트들은 [국민들에 의해] 축출되거나 가라앉는 제국의 배에서 뛰어 내렸다. '승리자'인 미국은 지구상의 '유일한 슈퍼파워'가 됐지만, 소련의 경우와 똑같은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물론 매우 느린 속도로.

그 후 20년 동안 세계화 현상이 나타나면서 중국, 인도, 러시아, 터키, 브라질 등 떠오르는 강국들로 이뤄진 다극체제가 형성됐고, 국적을 벗어 던진 기업 권력 체제는 개발도상국 경제의 독립성을 약화시켰다. 미국의 지역 엘리트 통제력이 약해지면서 미국은 이슬람 근본주의, 유럽의 규제 레짐, 중국의 국가 자본주의, 중남미의 경제적 국가주의 등과 이데올로기적으로 경쟁하게 됐다.

미국의 힘과 영향력이 쇠퇴하면서 종속적 엘리트들을 통제하려는 미국의 시도는 실패하기 시작했다. 미국이 혐오하는 베네수엘라의 우고 차베스 대통령을 쿠데타로 쫒아내려는 시도(2002년), 그루지야의 미하일 샤카슈빌리에 대통령을 러시아의 영향권에서 떼어 놓으려는 전쟁(2008년), 이란의 강적 마무드 아마디네자드를 대선 부정 시비로 축출하려는 시도(2009년) 등이 실패로 돌아갔다. 부시 행정부는 사담 후세인이라는 귀찮은 독재자 단 한 명을 몰아내기 위해 대규모 군사 공격을 해야 했다. 과거 같으면 CIA의 쿠데타 사주나 비밀 자금으로 충분히 해결할 수 있던 일이었다. 시리아와 이란이 이라크 내 저항세력을 돕는 걸 보면서, 부시 행정부는 시리아와 이란의 정권을 전복시킨다는 계획을 포기해야 했다.

또 미국은 자신들이 심어 놓은 하미드 카르자이 아프가니스탄 대통령에게 수십억 달러의 원조금을 준다고 해도 그를 마음대로 부릴 수 없음을 알게 됐다. 카르자이는 미국 정부가 보낸 특사에게 자신이 미국에 호락호락하지 않은 사람이라고 말했다. "미국이 앞잡이를 찾고 있고, 그 앞잡이를 '파트너'라고 부른다면 나는 응할 수 없다. 미국이 진짜 파트너를 찾는다면, 거기엔 응할 수 있다."

그리고 2010년 말이 위키리크스는 미국이 지난 50년간 구축해 놓은 대리 권력 체제에 대한 미 정부의 통제력이 떨어지고 있음을 가감 없이 보여주는 수천 건의 외교 전문을 공개했다. 이스라엘 <하레츠>의 언론인 아루프 벤은 그 전문을 읽고 "미 제국의 몰락, 군사적·경제적으로 최고의 위상을 가지고 세계를 지배했던 슈퍼파워의 몰락"을 볼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세계 각국에 파견되어 '고등판무관' 역할을 했던 미국의 대사들은 더 이상 없다. 미국의 외교관들은 주재국 정부가 무슨 말을 하는지 귀를 기울이느라 시간을 보내는 피곤한 관료들일 뿐이었다. 누가 슈퍼파워고 어디가 대리 국가인지 알 수 없었다"고 덧붙였다.

위키리크스의 외교 전문을 통해 점점 말을 듣지 않은 엘리트들로 이뤄진 다루기 힘든 세계 체제를 관리하느라 용을 쓰는 미 국무부의 모습이 드러났다. 필요한 정보를 모으기 위한 은밀한 거래, 상대를 복종시키기 위한 호의적인 행동, 강제로 협력을 이끌어내기 위한 협박, 영향력을 유지하기 위한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식의 원조 같은 방식은 더 이상 통하지 않았다.

예를 들어 미 국무부는 2009년 외교관들에게 초 각국 지도자들의 "이메일 주소, 전화·팩스 번호, 지문, 얼굴 생김새, DNA, 홍채 정보" 등 광범위한 정보를 모아서 제국의 경찰처럼 행동하라고 지시했다. 국무부는 또 바레인 주재 대사관에 바레인 왕자들에 대한 지저분한 정보를 모으라고 지시하며 "왕자들이 술을 마신다거나 마약을 하는 것 같이 (이슬람 국가에서 불명예가 되는) 더러운 정보는 없나?"고 묻기도 했다.

미국의 외교관들은 종속적 엘리트들의 약점을 찾아내는 방식으로 권세를 누리려고 했다. 리비아의 무아마르 카다피를 돌보는 "관능적인 금발의" 간호사, 파키스탄 자르다리 대통령의 병적인 쿠데타 공포증, 아프간 부통령의 5200만 달러 착복 같은 약점을 찾았다.

미국의 영향력이 쇠퇴하면서 미 정부는 자신들이 선택한 지역 동맹 세력의 많은 사람들이 점점 미국에 반항적이 되거나 적절하지 않은 인물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특히 전략적으로 중요한 중동 지역에서 그러했다. 예컨대, 2009년 중반 튀니지 주재 미국 대사는 [2011년 시민혁명으로 쫓겨난] 벤 알리 대통령과 그 정부가 경찰에 의존하고 부패는 만연하고 일반 국민들 보다 시대에 뒤떨어지면서 체제의 불안정이 커지고 있다고 보고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 대사가 본국에 제안한 정책 대안은 튀니지의 개혁을 이끌어내지 못했고, 그로부터 18개월 후 벤 알리 정부는 시위로 무너졌다.

이집트 주재 미국 대사관은 2008년 말 "이집트의 민주주의와 인권 개선을 위한 노력이 질식당하고 있다"고 보고했다. 그러나 그로부터 몇 개월 후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이 미국을 방문할 때 이집트 주재 미 대사관은 백악관에 "전통적인 미-이집트 파트너 관계에서 보여줬던 우호적인 분위기를 강화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또한 무바라크가 쫓겨나기 18개월 전인 2009년 6월 오바마 대통령은 무바라크라는 쓸모 있는 독재자에 대해 "중동 지역의 안정과 발전을 위한 든든한 동맹"이라고 칭송했다.

카이로 타르히르 광장에서 민주화 시위가 시작되자 이집트의 야권 지도자인 모하메드 엘바라데이 전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은 "독재자를 지지하는 미국의 잘못된 정책 때문에 아랍권 전체가 극단화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엘바라데이는 미국이 중동을 40년간 지배하면서 국민들은 생각하고 생동하는 것을 배우지 못하고 지속적으로 열등한 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중동은 인간 세계와 과학에 아무런 보탬도 되지 못하는 실패한 국가들만 모여 있는 곳이 됐다고 말했다.

제국을 한 번에 날려버릴 세계 전쟁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강대국은 단속적이고 고통스러우며 시간을 질질 끄는 과정을 통해 몰락한다.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 벌이는 미국의 전쟁이 패배라고 부르기에 아직은 부족한 어떤 상태로 점점 잦아들면서 미국은 지금 재정 위기에 시달리고 있고, 법정 화폐는 신용도를 잃고 있으며, 오랜 동맹국들은 미국의 라이벌인 중국과 경제적으로 심지어 군사적으로까지 관계를 맺어가고 있다. 게다가 중동에 있는 충성스러운 대리인들마저 잃을 가능성이 있다.

지난 50년 동안 미국은 종속적 엘리트에 기초한 지구적 권력 구조에 의해 뒷받침되어 왔다. 그 시스템은 미국의 영향력과 경제력을 놀랍도록 효과적으로 확대하는데 기여했다. 그러나 지금 그 충성스러운 동맹국들은 실패하거나 반항적인 국가들로 이뤄진 제국과 같이 돼버렸다. 반세기 동안 이어온 그 관계가 몰락하거나 끝장나게 되면 미국은 결국 좌초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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