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날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학술회의에 앞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남성욱 국가안보전략연구소장은 노동당 규약 개정의 핵심 목적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에서 김정은 노동당 중앙군사위 부위원장으로의 '3대 세습'을 정당화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며 "올해 북한의 최대 이벤트는 김정은 혼자 베이징에 가서 (중국 지도자들을) '알현'하는 것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김정은의 방중 시점에 대해서는 "중국의 전국인민대표자대회(3월 5~12일) 이후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남성욱 소장은 "이를 통해 (경제 지원 등을) 좀 얻어 오고 6자회담이 돌아간다면 하반기에 이것을 김정은의 업적으로 선전하면서 새로운 직책을 맡을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남 소장은 "북한의 경제 상황이 금년에 획기적으로 나아지기는 어렵다"며 "협상을 통해 외부에서 식량 등 경제 지원을 받아내는 것이 북한의 회생 전술 중 하나"라고 말했다.
현재 김정은이 일종의 협의체인 당 중앙군사위 부위원장직만 맡고 있을 뿐 조직이나 선전 등 핵심 당직을 맡고 있지 않은 상황에 대해 남 소장은 "지금 김정은은 특정 조직에 소속된다는 개념보다는 '올라운드 플레이어'로 활동하는 것 같다"며 "후계자 수업을 받는데 한 기관만 전담하는 것은 맞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북한 문건에서) '김일성 민족', '김일성 조선 100년사 결산' 등의 표현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 3대 세습 과정에서 (김일성 전 주석의 출생 100주년인) 올해 4월 15일을 '디데이'로 보는것 같다"며 "다만 이 시점에서 김 위원장이 권력에서 이탈하는 게 아니라 '김씨 패밀리' 왕조의 완성이라는 이벤트로 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 국가정보원 산하 국가안보전략연구소(INSS)는 7일 오후 서울 중구 태평로 프레스센터 기자회견장에서 '북한의 노동당 규약 개정과 3대 권력세습'이라는 주제의 학술회의를 열고 지난해 9월 개정된 북한 조선노동당 규약 전문을 공개했다. ⓒ뉴시스 |
개정 '노동당 규약' 뭘 담았나?
남 소장은 "(규약 개정의) 포인트는 3대 세습의 제도적 장치를 확실히 만든 것"이라며 "지난해 9월 당 대표자회가 계속 연기됐을 때 왜 열리지 않나 했더니, 이런 제도적 기반을 만드는데 상당한 시간을 소비하지 않았나 추정된다"고 말했다.
남 소장은 "(규약의) 서문 첫머리부터 기존의 맑스-레닌주의 용어를 삭제하면서 김일성의 당이라고 규정하고, 당의 기본 원칙을 '당 건설의 계승성 보장'이라고 밝힘으로써 3대 세습이 당의 기본적인 임무임을 명백히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한 김일성은 당 규약에 등장하는 모든 조직의 설립자이며 김정일은 김일성의 업적을 계승·발전시켰다고 하고 있는 점, 기존의 '유일사상 체계'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유일 영도 체계' 수립을 강조한 점 등을 들어 북한 노동당을 '김씨 왕조'의 사당(私黨)으로 만들었다고 성격을 규정했다. 학술회의 발제에 나선 임재천 고려대 교수도 개정된 당 규약은 '김일성 당 규약'이라며 "김일성 일가의 사당화 경향이 뚜렷하게 나타난다"고 말했다.
남 소장은 3대 세습을 위한 제도적 장치로써 군과 정권 기관에 대한 당의 통제를 강화하고 당 중앙 조직을 정비한 것을 꼽았다. 그는 '조선인민군은 당의 영도하에 모든 정치활동을 진행한다'는 부분이 새로 삽입된 것은 당의 군 장악력을 높이기 위한 것이라며 "기반이 약한 후계자에 반해 군의 영향력 확대를 우려하고 있음을 반증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당 총비서에 관한 조항을 신설해 총비서가 중앙군사위 위원장을 겸임토록 한 것도 "총비서직만을 승계하는 것으로 당과 군의 전권을 장악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라고 그는 설명했다. 또 기존에는 5년에 한번씩 열도록 돼 있던 당 대회를 필요시 언제라도 열 수 있도록 한 것과, 김정은이 부위원장을 맡고 있는 중앙군사위에 '국방 사업 전반을 당적으로 지도'하는 권한을 부여한 것도 3대 세습을 용이하게 하기 위한 장치로 꼽았다.
그는 이런 전반적인 제도 손질에 대해 "아무리 독재국가지만 북한에서도 논리적 정당성이나 절차적 합리성 같은 것은 지켜야 할 덕목"이라면서 "세습을 염두에 두지 않고서는 당 규약을 건드릴 이유가 없다"고 강조했다.
"사당화는 아닌 민족주의 본성 드러난 것" 반론도
그러나 이날 학술회의에서 토론자로 나선 브라이언 마이어스 동서대 교수는 "사당화라는 표현은 오해의 여지가 있다"며 "노동당은 충성 말고는 다른 원칙이나 이데올로기가 없는 당이 아니며, 김정일조차 이데올로기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그는 "40년대 후반부터 북한을 지배해온 이데올로기는 민족주의"라며 "소련 외교관들도 그렇게 본 적이 있듯이, 노동당은 겉으로는 맑스-레닌주의를 표방하면서도 안에서 완전히 다른 이데올로기인 '조선민족주의'를 내세웠다"고 말했다.
마이어스 교수는 "어차피 북한은 애초부터 공산주의 국가가 아니었다"며 "공산주의 국가라고 립서비스를 한 것은 돈줄을 잡고 있는 소련과 중국에 잘 보이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소련이 무너지자마자 파시즘에 가까운 선군정치를 선언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라며 "사당화라기보다는 극우 민족주의, 수령주의라는 이념적인 본성이 확연히 드러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노동당을 독일의 나치당에, '주체사상의 대부' 황장엽을 괴벨스에 비유하며 △ 중앙당의 정책 지도력이 저하된 점, △ 당 대회가 잘 열리지 않는 점, △ 최고지도자와의 친분이 공식적 직책보다 중요한 점, △ 고위당직자부터 말단까지 족벌주의와 부패가 만연하다는 점 등을 노동당과 나치당의 공통점으로 지적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가장 중요한 것은 부패가 심한데도 (북한 국민들은) 당이 대표하는 이데올로기를 아직 열정적으로 믿고 있다는 사실"이라며 "수령주의와 결사옹위를 부각시키는 규약 개정이 선전적으로 매우 효과적일 수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외부인들에게는 한심해 보이지만 개인 우상화가 사회를 단결시키는데 매우 효율적일 수 있다는 것을 무시해서 안 된다"며 "북한이 혈통 말고 뭘 내세울 수 있겠나. 아직도 (북한이) 돌아가고 있는 것은 오히려 개인 우상화 덕분이 아닌가 생각될 때도 있다"고 말했다.
노동당 규약의 북한 내 위상에 대해서도 의견이 엇갈렸다. 남 소장은 "당 규약은 헌법 못지않게 주민 생활 통제하는 엄격한 규범"이라며 그 중요성을 강조했으나 같은 연구소의 현성일 책임연구위원은 "당원이든 비당원이든 북한 사람들은 규약에 관심이 없다"고 말했다.
북한 외교관 출신으로 지난 1996년 탈북한 현성일 연구위원은 "수령의 '교시'와는 달리 당 규약은 잘 몰라도 크게 지장이 없다"며 "나도 노동당원으로 10년간 당 생활을 했지만 당 규약을 이렇게 열심히 공부해 보긴 (이번 학술회의를 위해서가) 처음"이라고 말했다. 그는 "정치 불안정이 발생했을 때 가장 중요한 요소는 당 규약이 아니라 권력층 스스로의 인식"이라며 "북한 권력층이 스스로 규약에 구속되려 하겠는지는 매우 불투명하다"며 회의적인 시각을 제기했다.
이 연구소 이기동 책임연구위원은 "북한의 당 규약은 의외로 중간 정도의 서열에 위치하고 있다"며 "수령의 교시와 '유일사상 체계 10대 원칙'이 당 규약보다 상위 규범에 위치하는 한 당 규약의 규범적 실효성에 대해 회의적일 수 있다"고 말했다. 이 연구위원은 북한이 '공산주의'라는 용어를 삭제하는 대신 '인민대중의 자주성'이라는 추상적이고 모호한 표현을 사용한 점에 주목하며, 이는 3대 세습에 공산주의 이념이 방해가 된다는 사실의 반증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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