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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도덕주의 외교가 평화의 장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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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도덕주의 외교가 평화의 장애물이다"

[해외시각] "북한·이란과 대화했다면 위험국가 됐겠나"

동아시아의 평화와 안정을 보장하기 위해 다자적 안보체제를 구축해야 한다는 주장은 꽤 오래된 얘기다. 학문 영역에서 특히 그러했고, 현실의 영역에서도 아세안이나 아세안+3(한·중·일),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등 다양한 시도들이 이뤄지고 있다.

중국이 미국과 더불어 'G2'로 부상하고 일본이 미국에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고, 북핵 문제는 여전히 풀리지 않는 오늘, 다자 안보체제는 더욱 적극적으로 모색되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생각이다.

동아시아재단이 발간하는 <글로벌아시아>(편집인 문정인 연세대 교수) 2010년 봄호가 커버스토리로 이 문제를 집중 조명한 것은 이같은 시각의 반영이다. <글로벌아시아>는 존 아이켄베리 미 프린스턴대 교수, 다나카 히토시 일본 국제교류센터 선임연구원 등 저명 학자들의 글을 통해 동아시아 안보체제의 가능성을 타진했다.

문정인 편집인은 "북핵 문제, 양안분쟁, 영토분쟁, 군비 증강문제뿐만 아니라 에너지 안보, 기후 변화, 테러리즘, 초국가 범죄문제 같은 비전통적 안보위협 요인에 의해 동아시아 지역 안보가 지속적으로 위협 받고 있는 시기"라며 "동아시아 안보를 위협하는 요소들이 산재해 있고 지역 내 세력 분포가 재편되는 상황에서 안보체제에 대한 심각한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참여 학자들의 글 중에서 우선 눈에 띄는 점은 마이클 그린 조지타운대 교수와 수잔 셔크 캘리포니아주립대 교수가 드러낸 관점의 차이였다.

마이클 그린은 현재까지 동아시아에서 있었던 지역적 회의 기구가 동아시아 안보체제의 기반으로 발전될 가능성에 회의를 표하며, 여전히 미국과의 동맹 관계가 향후 이 지역 내 신생 안보체제의 중심적인 역할을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수잔 셔크는 "동아시아 다자관계 구축에 대한 워싱턴의 소극적인 반응은 그것이 동아시아 지역 내 미국의 동맹관계와 미국의 리더십을 저해할 수 있다는 지속적인 우려를 반영한다"고 솔직히 털어 놓으면서도, "하지만 만일 미국이 동아시아 지역의 다자관계 구축에 좀 더 적극적인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면 다자주의가 민감한 외교 정책과 안보 이슈들을 해결하는 데에도 얼마나 효과적인지를 깨닫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조현 외교통상부 다자외교조정관은 "동북아시아 다자 안보체제 구축은 역내 평화와 안정을 격상시키는 데 필수적인 요소"라면서 "미국의 동북아시아 지역에 대한 지속적인 개입이 동북아시아 지역의 효과적인 안보 유지에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런 주장들은 다소 상투적이다. 부시 행정부에서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아시아 담당 선임국장을 지냈던 마이클 그린이나 클린턴 행정부에서 국무부 차관보를 역임한 수잔 셔크는 각각 공화당과 민주당의 전형적인 시각을 반영하는 것일 뿐이다. 한미동맹만이 절대선인양 여기고 있는 이명박 정부의 현직 외교관으로서 조현 조정관이 할 수 있는 말도 예상된 수준이다.

이들의 '모범답안'에 문제를 제기하듯 색다른 시각을 제시한 이는 싱가포르의 석학인 키쇼레 마부마니. 싱가포르국립대 리콴유공공정책대학원장인 그는 '결과가 중요하다 : 아시아에서는 실용주의가 우세'라는 글에서 아시아의 외교가 서구와 다른 건 실용주의를 중시하는 것이라면서 동아시아에 접근하는 미국과 유럽의 태도에 일침을 놓았다.

<프레시안>은 동아시아 다자 안보체제 논의에서 중요한 시사점을 주는 마부바니의 흥미로운 분석을 요약해 소개한다. <글로벌아시아> 홈페이지(www.globalasia.org)에서는 그의 논문을 포함, 이번 호에 실린 전체 글을 볼 수 있다.


결과가 중요하다 : 아시아에서는 실용주의가 우세

안보 문제에 대한 동아시아적 접근법을 이해하는데 있어 근본적인 문제점은 서방의 담론에 사용되는 개념들이 현실을 이해하는데 적절하지 않다는 것이다. '현실주의 대 자유주의'라는 통상적인 구분은 동아시아 국가 정책결정자들의 생각을 이해하는데 유용하지 않다.

아시아 국가들의 대다수 정책결정자들은 어떤 이데올로기나 사고의 틀에 얽매이지 않고, 결과에만 관심을 둔다. 논리적으로 안 맞고 모순되더라도 안보에 도움 된다면 그걸 택한다. 검은 고양이건 흰 고양이건 쥐만 잡으면 된다는 덩샤오핑(鄧小平)의 말은 오늘날 동아시아의 안보 문제에도 적용된다.

중국은 지정학적으로 뛰어난 사고를 하는 인물들이 20세기에 많았다. 그건 갑자기 생겨난 게 아니라 1842년 아편전쟁 패배에 따른 굴욕을 경험한 결과였다. 중국의 지도자들은 그 경험을 통해 많은 교훈을 얻었는데, 덩샤오핑이 근대화에 전념한 것은 그 때문이었다. 근대화를 위해 중국은 강국들의 힘겨루기에 연루되지 않고 평화로운 상태에 있어야 했다.

1950년대 후반 중소분쟁 이후 마오쩌둥(毛澤東)과 저우언라이(周恩來)는 미국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는 지정학적 수완을 발휘해 당시 최대의 위협인 소련과의 균형을 깼다. 미국과의 이데올로기적인 차이는 부차적인 것이었다.

냉전이 끝나고 지정학적 지형이 변화되던 시기 덩샤오핑은 부상하는 중국이 언젠가는 미국과 아시아 이웃 국가들에게 위협으로 인식될 수 잇다는 사실을 포착했다. 그는 냉전 시절 미국이 소련에 취했던 봉쇄 정책이 다시 중국을 향하게 되는 상황이 최악이라는 걸 알았다. 또한 미국에 비해 중국이 얼마나 약한지 알고 있었고, 중국 경제가 성장하기 위해서는 최소 몇 십년간 평화가 필요하다는 걸 알았다.

덩샤오핑이 채택하고 장쩌민(江澤民)과 후진타오(胡錦濤)가 계승한 최우선 전략은 중국을 국제 질서에 통합시키는 것이었다. 그 질서가 비록 미국이 주도하는 것일지라도, 덩은 저자세를 유지했다. '조용히 관찰하고 분석하라' '능력을 숨기고 주목받는 걸 피하라' '저자세를 취하라' '앞장서지 마라' 등의 내용이 포함된 그의 '28자(字) 전략'은 지금도 중국 정책의 길잡이가 되고 있다.

미국과 중국, 과거를 다루는 다른 방식

중국의 지도자들이 결과로만 평가하는 정책을 편 결과, 우선 중국은 미국의 봉쇄정책을 피할 수 있었다. 미국에서 중국을 적대시하는 강경파들이 미국의 대외정책을 좌우해 오지 못했던 것은 행운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중국은 미국과의 상호의존성을 크게 높임으로써 봉쇄 정책을 차단할 수 있었다.

중국은 미국이라는 수출시장에 의존했고, 미국은 자신들의 국채를 사주는 중국에 의존하게 됐다. 작년 2월 힐러리 클린턴이 국무장관에 취임한 후 첫 번째 순방지로 동아시아를 택한 이유 중 하나는 금융위기가 정점에 이르렀던 당시 중국으로 하여금 미국 국채를 계속 사달라고 하기 위해서였다. 상호의존성이 높아지면서 양국은 서로에게 취약해졌고, 이러한 상호 취약성 때문에 양자 관계는 함부로 다뤄지지 않았다.

둘째, 중국은 주변국들과도 경제적 상호의존성을 구축했다. 미국의 경우와 비교해 보면 이는 특징적이다. 1979년 테헤란 주재 미 대사관 억류 사태 이후 미국과 이란의 관계는 매우 나쁜 상태로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중국은 다르다. 일본은 2차 대전 때 중국인 최대 3000만 명을 학살했고 지금도 역사교과서나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 문제로 중국인들을 분노케 한다. 일본은 이란이 미국에 입힌 트라우마보다 훨씬 큰 트라우마를 중국에 남겼다.

그러나 미국은 과거의 영향을 받지 않고 미래의 정책을 결정하는 실용적 접근을 하는 게 구조적으로 불가능하다. 반면 중국의 지도자들은 그렇게 할 수 있다. 따라서 미국은 그간 이란에 대한 제재를 지속적으로 강화해온 반면, 중국은 일본과의 관계에서 완전히 반대로 해 왔다. 교역을 늘려서 2004년부터 중국은 미국을 누르고 일본 제1의 교역파트너가 됐다. 2004년은 역사교과서 문제로 중국에서 반일 시위가 일어났던 해였다.

아시아인들은 외교정책을 결정하는데 있어 도덕관념이 없거나(amoral) 부도덕한(immoral) 것인가? 미국은 이란이나 북한의 체제적 특성을 무시하고 외교 관계를 구축할 수는 없는가? 미국은 그렇게 할 수 없다. 이란과 북한의 정권을 악마로 묘사해왔기 때문이다.

미국의 대외정책 결정에는 도덕주의적 경향이 있고 많은 미국인들은 그것을 자랑스러워한다. 클린턴 장관은 작년 4월 인터뷰에서 "미국의 대외정책에서는 언제나 도덕(moral dimension)을 중요시하고, 그렇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아시아의 실용주의적 태도는 미국의 도덕주의적 접근보다 더 도덕적인 결과를 낳을 수 있다. 막스 베버는 "선에서 선이 나오고 악에서 악이 나오는 건 아니다"고 했다. 미국이 만약 이란·북한과 관계를 정상화하고 교역을 늘리고 경제적 상호의존성을 강화했다면 두 정권은 지금 크게 전환되는 과정에 있었을 것이고 미국에 대한 위협의 정도도 줄어들었을 것이다.

북한·이란이 정치군사적·이데올로기적으로 미국에 품고 있는 적대감은 1971년 닉슨이 방문하던 당시 중국이 미국에 가졌던 적대감보다 크지 않다. 따라서 미국이 두 나라 정권들과 협력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게 아시아 사람들의 생각이다. 그러나 미국은 그런 지정학적 옵션을 상상할 수도 없을 것이다. 따라서 미국의 도덕주의적 접근은 평화의 걸림돌이다. 아시아의 실용주의 정책은 평화를 만들고 있다.

▲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왼쪽에서 두번째)은 작년 11월 싱가포르 APEC 정상회의에 미얀마 지도자가 참석했는데도 불구하고 자리를 같이 해 미국의 실용주의적 변화 가능성을 보여줬다. ⓒ연합뉴스

절차 중시하는 유럽, 결과 강조하는 아시아

중국과 아세안(동아시아국가연합)과의 관계에서도 실용주의가 있다. 1967년 아세안이 창설되던 때 중국은 "중국과 공산국가들을 봉쇄하려는 냉전주의자들의 도구"라고 소리 높여 비난했다. 그러나 오늘날 아세안에 더 큰 영향을 미치는 나라는 미국이 아니라 중국이다. 중국은 2001년 아세안에 자유무역협정(FTA)을 제안하면서 자신들의 경제적 번영을 공유하기로 하면서 아세안을 이용해 중국을 봉쇄하려는 미국의 시도를 차단했다.

중국의 FTA 제안에 충격을 받은 일본도 2005년 아세안에 FTA를 제안했고 호주, 뉴질랜드, 한국, 인도도 아세안과 FTA를 맺었다. 2012년 발효되는 일-아세안 FTA를 제외하고 다른 FTA는 모두 올 1월부터 발효됐다.

FTA를 제안하고 체결하게 된 정책결정자들의 마음속에는 정확히 어떤 생각이 있었을까? 지정학적으로·경제적으로 어떤 결과가 나올까? 그들의 머릿속에는 분명하고 논리적인 생각이 있었나? 아니면 그들은 단지 기회에 대응한 것일까? 이런 질문들은 모두 서로 연관된 것인데, 지역 협력에 대한 아시아적 접근법은 유럽의 모델을 따르지 않는다.

유럽인들은 목표를 가지고 시작한다. 비전을 분명히 제시하고, 그걸 달성하기 위해 회원국간 협상을 벌인다. 긴 협상 후에 협정이 체결된다. 그리고 나면 긴 비준 과정이 기다린다. 모든 법적 과정이 완료되기 전에 협력을 시작하는 것은 유럽의 맥락에서 상상할 수 없다.

그러나 동아시아에서는 법적 과정에 대해선 신경을 거의 안 쓴다. 형식은 그리 큰 문제가 안 된다. 문제가 되는 건 결과다. 유럽인들이 리스본 조약을 협상하고 비준하는데 수천 시간을 쓴 것과는 달리, 아세안+3 같은 기구는 1997년 콸라룸푸르에서 있었던 아세안 정상회의에 한·중·일 정상들이 초대되면서 그냥 시작됐다. 어떤 참석자도 처음부터 어떤 비전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2001~06년 중일관계가 악화되고 2000년 한일관계가 나빴을 때는 그 시도가 실패로 돌아가는 것처럼 보였다. 태국에서 열린 작년 정상회의는 시위 때문에 취소됐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세안+3 정상회의는 첫 회의가 열린 후 10년 간 급속도로 성장해왔다. 치앙마이 이니셔티브, 아시아 채권시장 이니셔티브 등을 성과 커다란 성과로 꼽을 수 있다.

동아시아 국가들 대부분은 국제정치에 있어 현실주의적 접근과 자유주의적 접근 사이에 모순이 없다고 본다. 중국의 주변국들은 중국이 이 지역에 행하는 정책에 대해 환상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들은 중국이 이타주의나 박애 정신 같은 것으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다. 중국은 지난 20~30년 간 평화를 달성하기 위한 가장 최선의 길은 자신들의 경제적 번영을 주변국들과 공유하는 것임을 계산속에 넣고 있었다. 냉철한 지정학적 논리가 주변국들에 대한 따뜻한 정책을 가져 온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중국의 정책은 주변국들에게도 이익이 되기 때문에 그들이 중국의 이니셔티브를 거절할 이유는 없었다.

오바마가 보여준 실용주의의 실마리

중국 주변국들은 몇 십 년 후면 지금보다 훨씬 강력해진 중국과 상대해야 한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따라서 그들은 동아시아 지역에 미국과 유럽의 강력한 영향력이 계속 미치는 것을 선호할 것이다. 그들은 또한 동아시아에 대한 미국과 유럽의 복잡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정책과도 상대할 준비가 되어 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이 지역에 대한 유럽이나 미국의 정책은 '복잡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것과도 거리가 멀다.

아세안에 대한 유럽의 정책은 재앙에 가깝다. 오직 하나의 요소가 정책을 좌지한다. 미얀마. 유럽 정부들은 미얀마와의 어떤 협상도 거부한 채 인권 문제에만 몰두해왔다. 미얀마가 아세안의 회원국인 까닭에 유럽연합(EU)과 아세안의 관계도 고전을 면치 못해 왔다. 인도도 처음에는 미얀마에 대해 유럽식으로 접근했었는데, 그건 결국 중국에 미얀마라는 지정학적 선물을 주는 셈이라는 사실을 알고 나서 즉각 정책을 바꿨다. 그러나 EU는 그렇게 할 수 없고, 결과적으로 아시아에서의 지정학적 기회를 이용할 수도 없다.

미국은 다소간의 정책 변화(U-turn)를 할 능력이 있다. 오바마 행정부가 들어서기 전까지 미국의 대통령이 미얀마의 지도자가 참석한 정상회의에 참석하는 건 상상할 수 없었다. 그러나 오바마는 작년 11월 싱가포르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 왔다. 미국은 국내정치적 요인 때문에 미얀마에 대한 의례적인 비난을 내놨지만, 미얀마 때문에 아세안과의 관계를 희생시키지는 않을 것이라는 메시지였다.

미국이 이 지역에 대한 전통적인 영향력을 지키려면, 오바마 대통령이 보여준 실용주의적 모습이 더 많아져야 한다. 중국이 미국보다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힘의 균형이 변하는 상황에서 미국과 유럽의 정책결정자들은 그간 생각할 수 없었던 것을 생각해야 한다. 그들은 과연 이데올로기적이고 형식주의적인 접근법을 포기하고 "실용주의적" 게임을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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